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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후씨(夏后氏) 때부터 한(韓)의 제후국이 생기게 되자, 변한(弁韓:番朝鮮國)이란 나라가 夏나라 우(禹)임금 때부터 생기게 되었다.
  이때의 변한(弁韓), 즉 번조선(番朝鮮)은 한(韓)씨 성이었고, 치두남씨(蚩頭男氏 一世.B.C.2224년 乙亥年. 재위 51년)였다. 2세(二世)가 낭야씨(瑯耶氏.B.C.2173년. 재위 42년)이다.
  이렇게 하여 74세 기준씨(箕準氏.B.C.243년, 재위 11년) 때까지 1977년간 존속했다.

  ★ 三國遺事 卞韓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卞韓은 百濟라 했으며 一名 남부여(南扶餘)라고 되어있다.

  『新羅始祖赫居世卽位十九年壬午, 卞韓人以國來降, 新舊唐書云, 卞韓苗裔在樂浪之地, 後漢書云, 卞韓在南, 馬韓在西, 辰韓在東, 致遠云, 卞韓百濟也…而唐書云, 卞韓苗裔在樂浪之地云者, 謂溫祚之系出自東明故云耳, 或有人出樂浪之地, 立國於卞韓, 與馬韓等並峙者, 在溫祚之前爾, 非所都在樂浪之北也, 或者濫九龍山亦名卞那山, 故以高句麗爲卞韓者盖謬, 當以古賢之說爲是百濟地自有卞山, 故云卞韓, 十五萬二千三百戶』

  신라시조 혁거세가 즉위한 지 19년 壬午 때이다. 변한 사람들이 나라에 항복해 왔다. 新唐書․舊唐書에 의하면 변한은 묘족(苗族)의 후예로서 樂浪 땅에 살고 있었다.
  後漢書에 따르면 卞韓은 남쪽에 있었고 馬韓은 서쪽에 있으며, 辰韓은 동쪽이라 했다.

  崔致遠의 말에 의하면 변한(卞韓)은 百濟이다…
  唐書에서 말하기는, 卞韓의 후예는 樂浪 땅에 있었다. 이것은 온조(溫祚)가 東明王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일 뿐이다.
  그리고 卞韓 사람들은 혹 樂浪의 땅에서 나왔다고 했다. 혹 어떤 사람들이 낙랑 땅에서 일어나 변한에 나라를 세워 마한 등과 더불어 맞섰다고 하는 것은 온조 이전에 있었던 일로, 낙랑의 북쪽에 도읍지를 정했다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구룡산(九龍山)의 다른 이름이 변나산(卞那山)이기도 했기 때문에, 고구려로 변한(卞韓)을 삼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 안 것이다.
  마땅히 옛 현인(최치원)의 견해가 옳다. 백제 땅에 변산(卞山)이 있었기 때문에 변한(卞韓)이라 한다.
  백제 전성기 때는 15만2천3백 호가 있었다.
 
  ◆ 여기서 中國古今地名大辭典을 通해 卞山을 찾아보기로 한다.
  사전 130쪽에는 卞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卞山. 在浙江吳興縣西北十八里. (隋書地理志)長城縣有卞山. (寰宇記)卞山. 郡國志云 卞山採玉處. 非也. (周處風土記)當作冠弁之弁. (徐陵孝義寺碑)「高弁蒼蒼 遙聞天語」卽此. 主山上有三巖. 曰碧, 曰秀, 曰雲. 而碧巖爲最勝. 山之西曰避洞. 廣五尺. 深不可測. 相傳唐末黃巢之亂. 居人多避於此. 故名.』

  卞山은 절강성(浙江省) 오흥현(吳興縣) 西北 18里로 되어있다. 또한 수서지리지(隋書地理志)에는 長城縣에 卞山이 있다고 했다.
  환우기(寰宇記)에는 卞山을 군국지(郡國志)에서는 옥을 캐는 곳이라 했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
  주처풍토기(周處風土記)에는 마땅히 관의 고깔인 고깔 변(弁)이라 했다.
  서능효의사비(徐陵孝義寺碑)에는 高弁蒼蒼 遙聞天語( 높이 달린 고깔의 창창함이여, 하늘의 말을 듣기가 아득하기만 하구나) 했는데, 즉 이것이다.
  卞山의 주된 산 위에는 세 바위가 있는데, 벽(碧), 수(秀), 운(雲)이라 하고 벽암(碧巖)이 제일 뛰어나다.
  산의 서쪽에는 몸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이 있는데 넓이가 5척으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나라 말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해 살았다고 한다. 옛 이름이다.

  ◆ 다음은 通典에 있는 卞韓을 살펴보기로 한다. 本文을 싣고 解說해본다.

 『弁辰, 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風俗相似, 祠祭鬼神有異, 施竈皆在戶西…』

  弁辰 즉 卞韓과 辰韓은 더불어 함께 섞여 살았다. 역시 성곽(城郭)도 있었다. 의복(衣服)이나 거처(居處)도 辰韓과 같았다. 言語와 風俗도 서로 같았다.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다른 데가 있었다. 부엌을 만들었는데 모두 집의 서쪽에 있었다…


  ★ 삼국사기 잡지(雜志) 第三 地理一.

 『若新舊唐書皆云, 卞韓苗裔在樂浪之地…樂浪郡距洛陽東北五千里, 注曰屬幽州, 故朝鮮國也, 則似與鷄林地分隔絶』

    신당서(新唐書),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변한(卞韓)은 묘족(苗族)의 후예로 낙랑 땅에 있었다…
  낙랑은 낙양으로부터 동북 5천리에 있다. 주(注)에 이르기를, 유주(북경 일대)에 속했다. 옛날의 조선국인데, 즉 계림의 땅과는 같으나, 서로 갈라져 떨어지게 되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雜誌) 第三 地理一.

  『新羅崔致遠曰, 馬韓則高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此諸說可謂近似焉, 若新舊唐書皆云, 卞韓苗裔在樂浪之地』

  신라 최치원의 말에 의하면, 마한은 고려요, 변한은 백제요, 진한은 신라다. 이 설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구당서에는 모두, 변한은 묘족의 후예로 낙랑 땅에 있었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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