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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한民族史 > 상고사 > 삼 한
 ★ 마한(馬韓) 즉 막조선(莫朝鮮)은 1세인 웅백다씨(熊伯多氏. B.C1285년 丙申年. 재위 49년)로 시작하여 35세 맹남씨(孟男氏. B.C.153년 乙卯年. 재위 19년) 때까지 1151년간 존속했다. 마한은 막조선(莫朝鮮)이라고 했다.

 ★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 世紀三, 三韓편의 기록을 보자.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馬韓在西其民土著種植, 知蠶桑作綿布, 各有長帥散在山海間, 無城郭有爰襄國, 按通考作愛襄, 牟水國, 桑外國, 小石索國, 大石索國, 優休牟涿國, 臣濆活國, 伯濟國, 速盧不斯國, 日華國, 古誕者國, 古離國, 怒藍國, 月支國, 咨離牟盧國, 索謂乾國, 古奚國, 莫盧國, 卑離國, 占卑離國, 臣釁國, 支侵國, 狗盧國, 卑彌國, 監奚卑離國, 古蒲國, 致利鞠國, 冉路國, 兒林國, 駟盧國, 內卑離國, 感奚國, 萬盧國, 辟卑離國, 臼斯烏旦國, 一離國, 不離國(一名不彌國), 支半國, 狗索國, 捷盧國, 牟盧非卑離國, 臣蘇塗國, 莫盧國, 古臘國, 臨素半國, 臣雲新國, 如來卑離國, 楚山塗卑離國, 一難國, 狗奚國, 不雲國, 不斯濆邪國, 爰池國, 乾馬國, 楚離國, 凡五十餘國, 大國萬餘家小國數千家, 總十萬戶雖有主師邑落雜居, 不能善相制御, 三國志, 晉書, 馬韓凡有小國五十六所各有渠師, 鎭書謹案馬韓諸國, 後漢書稱五十四而, 三國志所錄, 莫盧國載爲五十五國』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었다.
  동서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왜와 접하고 있다. 마한은 (대방의) 서쪽에 있었는데, 그 나라 백성들은 땅을 일구어 종자를 뿌리고 곡식을 심었다. 뽕나무로 잠업을 할 줄 알았고, 면과 베를 경작했다.
  각 나라에는 큰 스승이 있었는데, 산해(山海) 지간에 흩어져 살았다. 성곽이 없었다.
  그 나라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원양국(문헌통고에는 애양국으로 되어 있다)ㆍ모수국ㆍ상외국ㆍ소석삭국ㆍ대석삭국ㆍ우휴모탁국ㆍ신분활국ㆍ백제국ㆍ속로불사국ㆍ일화국ㆍ고탄자국ㆍ고리국ㆍ노람국ㆍ월지국ㆍ자리모로국ㆍ소위건국ㆍ고해국ㆍ막로국ㆍ비리국ㆍ점비리국ㆍ신흔국ㆍ지침국ㆍ구로국ㆍ비미국ㆍ감해비리국ㆍ고포국ㆍ치리국국ㆍ염로국ㆍ아림국ㆍ사로국ㆍ내비리국ㆍ감해국ㆍ만로국ㆍ벽비리국ㆍ구사오단국ㆍ일리국ㆍ불리국(일명 불미국)ㆍ지반국ㆍ구소국ㆍ첩로국ㆍ모로비리국ㆍ신소도국ㆍ막로국ㆍ고랍국ㆍ임소반국ㆍ신운신국ㆍ여래비리국ㆍ초산도비리국ㆍ일난국ㆍ구해국ㆍ불운국ㆍ불사분사국ㆍ원지국ㆍ건마국ㆍ초리국을 합쳐 5십여 나라이다.
  
  큰 나라는 1만여 가(家)이며,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로, 모두 십만 호쯤 된다.
비록  부족의 우두머리들이 읍과 부락에 뒤섞여 살았으나, 그들을 잘 다루기가 힘들었다.
  삼국지(三國志)와 진서(晉書)에 의하면, 마한은 56개 나라이며, 나라마다 큰 스승이 있었다.
  마한 제국은 후한서에서 칭하기를 54개국이라 했다. 삼국지(三國志)에 기록된 것을 보면 막로국을 싣고 55개 나라라고 적고 있다.

  『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都目支國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 馬韓種人焉, 馬韓人知田蠶作綿布邑落, 雜居亦無城郭, 其南界近倭亦有文身者, 辰韓耆老自言秦之亡人避苦役適韓國馬韓割東界地』
  
  큰 나라는 1만여 호를 갖고 있었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이들은 모두 산이나 바다 지간의 땅에 살았다.
  방경은 모두 4천여 리이다.
  동서는 바다가 경계인데, 모두 옛 진국이다. 마한이 최대였다.
  진왕(辰王)의 도읍지는 목지국이 있던 진왕의 삼한 땅이다.
  그 뿌리가 마한 사람이다. 마한 사람들은 밭갈이와 잠업을 알았으며, 면과 마를 경작했으며, 읍과 부락을 이루었다.
  이 무리 저 무리들이 섞여 살았으나, 성곽이 없었다. 그 남쪽 경계에는 왜가 가까이 있었는데, 왜는 몸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진한의 늙은이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에서 고역을 피해 도망 온 사람들이 한국에 머물렀는데, 마한의 동쪽 경계를 나누어 살았다.

  『…謹案後漢書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朝鮮侯, 準爲衛滿所破走入海攻, 馬韓破之自立爲韓王準後滅絶韓人復自立爲辰王則右渠時所稱, 辰國卽, 箕準以後馬韓也, 師古指爲辰韓者誤矣…然卽, 箕準所取之馬韓箕氏以後之馬韓, 與夫箕準之馬韓, 凡三馬韓也』
  
  삼가 후한서를 살펴보면, 마한은 최대로서 마한인이 진왕(辰王) 조선후가 되었다.
  준이 위만에게 격파된 뒤 바다로 달아나, 마한을 격파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은 그 후 멸하고, 한인 스스로 진왕을 세웠는데, 즉 우거를 말한다.
  진국(辰國)은 준(準) 이후의 마한이다.
  사고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辰韓이란 잘못이다.
  그런 즉, 기자준왕이 취할 당시의 마한, 기자 이후의 마한, 그리고 기자 준왕이 다스리던 마한과 더불어, 무릇 삼(三) 마한(馬韓)이다.


  ★ 삼국지(三國志) 위오환등전진한왜인(魏烏丸等傳辰韓倭人)의 기록을 살펴보자.

 『魏略日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 土地肥美宜種五穀, 及稻曉蠶桑作縑布乘駕牛馬, 嫁娶醴俗, 男女有別,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
  魏略其國作屋橫累木爲之有似牢獄也. 國出鐵韓濊倭, 皆從取之諸市買皆用鐵如中國用鐵又以供給』

  위략(魏略)에 의하면 날이 밝을 때마다 많은 유민들이 마한의 고토로 흘러들어 마한이 세워지게 되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아름다웠다. 마땅히 오곡을 심을 줄 알았고, 벼농사를 지었으며, 누에를 쳐서 비단을 생산했고, 소와 말에 멍에를 씌우고 탈 줄 알았다.
  그리고 시집 장가가는 예법이 있었으며, 남녀가 유별했다. 큰 새의 깃털로 죽은 자를 장사지냈는데, 그 뜻은 죽은 자로 하여금 하늘로 훨훨 날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위략에 보면, 그 나라에서는 나무를 겹겹이 얽어 집을 지으므로 흡사 철통같은 감옥과 같았다. 나라에서는 철을 한(韓), 예(濊), 왜(倭)로 수출하여, 그곳 시장에서 매매가 이루어졌는데, 이리하여 모두 철을 사용하게 되었다.
  마한에서 철을 공급함으로써 중국 사람들이 모두 철을 사용하게 되었다.



  馬 韓 年 代 表

(莫朝鮮國:35世 1151년간. 姬姓. 伯夷․馮夷․東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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