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콘텐츠를 보실려면 Abode Flash Player(무료)가 필요합니다.

이 콘텐츠를 보실려면 Abode Flash Player(무료)가 필요합니다.

 
 
  HOME > 한民族史 > 상고사 > 삼 한
1 2
  ★ 이십오사(二十五史)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韓, 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趙一淸曰弁韓後漢書作弁辰, 然弁辰別是一國, 則此當作弁韓, 以當三韓之數…王會汾曰, 晉梁二書, 皆作弁韓…朝鮮史, 謂三韓誰曰分立實則辰弁二國, 僅爲馬韓所支配, 非勢均力敵也…漢書朝鮮傳, 眞番辰國, 欲上書見天子朝鮮雍閼, 師古曰, 辰謂辰韓之國也, 後漢書光武帝紀建武二十年秋, 東夷韓國人率詣樂浪內附, 東夷有辰韓, 卞韓馬韓謂之三韓國也, 梁書, 辰韓始有六國, 梢分爲十二, 新羅其一也, 馬韓有五十四國百濟其一也, 舊唐書, 百濟國, 爲馬韓故地,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다. 동서로 바다가 있고, 남쪽으로는 왜(倭)와 접하고 있다. 나라의 방경은 4천리다.
  3종이 있었는데, 첫째 마한, 둘째 진한, 셋째 변한이다.
  진한은 옛 진국(辰國)이다. 조일청의 말에 의하면, 변한은 후한서에 보면 변진(弁辰)으로 되어있다. 변진은 별도의 한 나라로 보일 것이나, 마땅히 변한이며, 당연히 삼한에 속한다.
  왕회분의 말에 의하면, 진서(晉書)ㆍ양서(梁書) 두 책에는 변한(弁韓)으로 되어있다…
 한서 조선전에 의하면, 진번(眞番)은 진국(辰國)이다. 위의 책을 볼 것 같으면 천자조선국이었다.
  사고의 말에 의하면 진(辰)은 진한(辰韓)의 나라다…
  후한서 광무제(A.D.25년) 건무 20년 가을에, 동이 한국인들이 무리지어 낙랑 땅에 이르렀다.
  동이는 진한, 변한, 마한이 있었는데, 이를 삼한국(三韓國)이라 한다.
  양서에는, 진한은 처음 6국이 있었으나, 점차 12국으로 갈라졌다. 신라가 그 중 한 나라다.
 마한은 54개 국이 있었는데, 백제는 그 중 한 나라다.
  구당서에 의하면, 백제국은 마한의 옛 땅이다. 마한은 서쪽에 위치에 있는데, 그 백성들은 서쪽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며, 씨도 뿌리고 곡식도 심었으며, 양잠을 했고, 목화도 심고 무명옷도 만들었다.
  각기 거느리는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큰 우두머리는 스스로 신지라고 이름했다.


  ★ 그럼 대방(帶方)의 위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帶方郡, 漢置帶方縣, 後漢末公孫康割樂浪郡南部爲帶方郡地, 以帶水爲名, 晉因之, 後沒於高麗… 高句驪倂樂浪後, 帶方遂爲高句驪百濟競爭之地, 後魏復置帶方縣於此』

  대방군은 한나라 때 두었던 대방현이다. 후한말 공손강이 낙랑군 남부를 쪼개어 대방군을 두었다. 대수(帶水)라는 지명으로 인해 대방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진(晉)나라가 있었던 자리이다.
  후에 고구려에게 멸망했다. 고구려가 낙랑을 병합한 후에, 대방은 고구려와 백제의 다툼의 땅이 되었다. 후위때 다시 대방현을 이곳에 두었다.

  ◇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진(晉)나라를 찾아보았다.

  『國號晉, 都洛陽, 在今河南洛陽縣東北二十里. 愍帝徙都長安, 在今陝西長安縣西北十三里…』
  
  진(晉)나라이다. 도읍은 낙양이다. 지금의 하남성 낙양현 동북 20리에 있다. 민제(愍帝) 때 도읍을 장안으로 옮겼다. 지금의 섬서성 장안현 서북 13리에 있다.


 

이 콘텐츠를 보실려면 Abode Flash Player(무료)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