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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 世紀四, 三韓편을 보자.

  『…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在西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南與倭接, 辰韓在東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有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小者數千家各在山海間地, 合方四千餘里』

  한은 3종이 있다. 하나는 마한, 둘째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 서쪽으로는 54개 국이 있었다. 그 북쪽에는 낙랑이 있고, 남쪽으로는 왜가 접해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었는데 12국이 있었다. 그 북쪽에는 예맥이 접해 있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었는데, 역시 12국이 있었다. 그 남쪽에는 역시 왜와 접해 있었는데,  두루 78국이 있었다. 그 중 한 나라가 백제다.
 큰 나라는 1만여 호를 갖고 있었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이들은 모두 산이나 바다 지간의 땅에 살았다.
  방경은 모두 4천여 리이다.


  ★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 하권(下卷)의 기록.

  『辰馬弁人終鼎峙, 羅與麗濟相次興, 自分爲郡至羅起, 計七十二算零』

  진한ㆍ마한ㆍ변한의 세 발 솥과 같은 형세가 기울게 되자,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점차 일어났다.
  신라가 일어날 당시에는 72개국이 난립했다.


  ★ 양서(梁書) 권54 열전(列傳) 제48 동이(東夷)편의 기록이다.

  『…百濟者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有五十四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百濟卽其一也, 後漸疆大』

  백제의 선조는 동이로, 삼한국(三韓國)이 있었다. 첫째 마한, 둘째 진한, 셋째 변한이다. 변한과 진한은 각 12개국이 있었다. 마한에는 54개국이 있었다.
  큰 나라는 1만여 호였으며,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총 십여 만 호였으며, 백제는 그 중 하나였는데, 그후 점차 강대해졌다.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제8권에는, 삼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舊唐書百濟爲馬韓故地, 中略, 遼史地理志辰州本高麗蓋牟城渤海蓋州, 又改辰州以辰韓得名, 中略, 高州三韓縣辰韓爲夫餘, 弁韓爲新羅, 馬韓爲高麗, 中略, 高麗全境亦匠封域至所屬諸國』

  구당서에 의하면, 백제는 마한의 옛 땅이다. 중략.
  요사지리지에는, 진주는 본래 고구려 개모성이며, 발해의 개주다.
  또한 진주로 인해 진한이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고주 삼한현으로 진한은 부여가 되었고, 변한은 신라가 되었으며, 마한은 고구려가 되었다.


  ★ 양서(梁書)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百濟者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五十四國, 中略, 漸疆大兼諸小國, 其國本與句麗在遼東之東, 晉世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백제의 선조는 동이족이다. 동이는 삼한국(三韓國)이 있었다.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요, 셋째는 변한이다.
  변한과 진한은 각 열두 나라가 있었다. 마한은 54개 국이 있었다. 중략.
  점차로 그 강역이 넓어져 작은 나라들을 아우르게 되었다. 그 나라는 본시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는 이미 요동을 다스리고 있었다.
  백제 역시 요서의 진평이군(晋平二郡)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 마한은 주(周)나라 때 한(韓)의 뿌리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감숙성 변방에 있던 진(秦)의 유민들이 진한(秦韓)으로, 진한(秦韓)은 진한(辰韓)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 후 신라를 건국하게 된다.
   진서(晉書) 본문에서 보듯이 고구려는 마한, 백제는 변한, 그리고 신라는 진한(秦韓 또는 辰韓)으로 본다면 큰 잘못이다.
  물론 최치원이 본 것도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딱 잘라서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을 신라로 본다면 크나큰 잘못이다.
  진서(晉書)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진한(辰韓은 秦韓)과 마한이 함께 있었고, 또 가까이 경계선을 두고 서로 사이좋게 살았다.
  하지만 진(秦)의 많은 유민들이 노역을 피해 마한 땅으로 피난을 와 동쪽 경계에 살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진한(秦韓)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신라 시조 혁거세는 거서간(居西干), 즉 서이(西夷)로서 조선유민으로 흘러와, 진한(秦韓) 땅에서 신라를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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