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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⑥ 흑치준에게 승계된 흑치의 봉지   
노성매



6. 흑치준에게 승계된 흑치의 봉지



흑치준 역시 아비 흑치상지와 마찬가지로 흑치부군(黑齒府君)으로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는 부군(府君)이 신위(神位)의 대명사로 쓰인다. 선부군(先父君)이라함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한다.

그러나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한다.

씨(氏)가 고대에는 왕의 칭호였으나, 현대에는 아무개 씨(氏)라는 호칭 접미사가 되었다. 군(君) 역시 조선시대까지도 봉작(封爵)의 호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의 미칭이다.

부군(府君)의 시대별 쓰임에 의문을 가지고 당 시대의 묘지명을 뒤져보았다.

당(唐)의 제도에, 대주(大州)를 부(府)라 했다.

천자, 제후, 경대부를 막론하고 땅에 봉해진 사람을 군(君)이라 했다.

唐制,爲大州曰府

天子諸侯及卿大夫有地者皆曰君

당의 제도는 당 시대에 통용된 법이다.

흑치상지의 연국공흑치부군묘지문(燕國公黑齒府君墓誌文), 흑치준의 상주국흑치부군묘지명(上柱國黑齒府君墓誌銘)의 흑치부군(黑齒府君)은 현재의 관습과 달리 봉지를 승계받은 흑치부의 군장으로 표기되었다.


봉지(封地)와 식읍(食邑)의 통치와 계승권은 나라가 아닌 봉해진 씨족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해도 세가는 존속된다. 이러한 지방호족세력들의 자치권은 유럽의 도시국가들과 견주어볼 수 있다.

회주(懷州)의 소가 풀을 뜯는데 익주(益州)의 말이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다. 회주와 익주는 동서의 극이다. 그럼에도 공명하는 바는 동서의 역사에도 예외가 아니다.

고려왕건이 지방호족세력들의 이반을 막기 위해 숱한 비(妃)들을 맞아들였고, 청의 건륭제가 집권초기 지방호족들과 부단한 싸움을 벌였던 것도 봉지의 여파가 그때까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흑치의 봉지는 백제의 존속과는 별개로 흑치준에게 상속되었다.

아비 흑치상지가 반역으로 죽음을 당했을 때도 연좌되지 않았고, 약관이 되자 무측천에게 아비의 신원을 당당하게 요청했으며, 31세에 요절했음에도 상주국이 되었던 흑치준.

그의 거대한 울타리는 여전히 흑치의 봉지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 2017년 03월 08일 05시 50분   조회: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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