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랑방 > 바람에 새긴 역사
흑치④ 吳를 중심으로 구축된 백제의 국제해상 네트워크  
노성매



4. 吳를 중심으로 구축된 백제의 국제해상 네트워크



백제는 한수와 장강 유역을 점거함으로써 국제 해상무역로를 독점할 수 있었다. 남북을 관통하는 한수를 통해 장안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교역, 동서를 가로지르는 장강을 통해 동남아시아 교역을 장악했다.

백제가 왜로 보낸 코끼리와 낙타로 상징되는, 남북과 동서 관통의 국제교역은 3후 6왕과 6대방, 흑치의 봉지를 가능하게 했다. 하나같이 한반도 백제에 존재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지명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백제는 한반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태평양을 항해하여 무역을 했으며, 거점지역 필리핀이 흑치라고 이도학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나 필리핀을 흑치로 본 견해에는 고대사 오류의 시발점인 배[船], 항해(航海)와 마주하게 된다.


⑴ 흑치가 필리핀이라는 주장의 오류, 대양항해 불가론

다이앤 머래이의 저서 󰡔그들의 바다󰡕는 서양 상선들이 인도를 거쳐 중국에 도달한 이후, 1790~1810년대까지의 중국남부 해적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19세기 초까지 중국인들의 바다에 대한 개념이 전혀 무지했다는 언급이다. 중국인들에게 배는 강의 수상교통으로 이해되었고, 관선(官船)은 평저선이 유일하여 육지를 끼고 겨우 항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1756년 광동성 광주가 해외무역의 유일한 항구로 지정되고, 광주에 재화가 넘쳐흐르자 해적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해적선은 서양기술을 발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평저선에 범선의 이점을 조화시켜, 통킹만 연안으로 진출함과 동시에 주강(珠江) 깊숙이까지 진입이 가능했다.

해적들을 토벌하기위해 수많은 도독들이 교체를 반복하며 실패를 거듭했던 것은, 서양문물과 결탁한 해적선 대 전통적인 하천방식의 관선(官船) 전투력이 원인이었다.

위기에 빠진 청 왕조는 포르투갈의 배들과 합동공격을 펼쳤으나, 대양을 운행하는 배는 강 진입이 불가한 덫에 빠지게 되어 역시 실패한다.


 

▴19세기 초까지 중국남부의 바닷길은 육지를 따라 항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명나라 정화의 항해신화는 허구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남양군도[필리핀]로의 대양 항해를 위한 배를 처음 건조하기 시작한 것은, 통킹만의 해적들에 의해서이다. 그들에게 대양항해에 적합한 배의 기술을 전수한 것은 서양인들이다.

현대에서도 날씨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순식간에 파도가 배의 몇 배 높이로 튀어오를 때, 목조로 만든 배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노와 방향키와 돛대는 무용지물이 된다. 현대의 강철로 이루어진 수천 톤의 배조차 심해(深海)의 거센 풍랑을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거기에 예기치 않은 변수로 작용하는 안개와 암초.

낙타 등에 의지해 네다섯 개의 죽음의 사막을 지나야하는 실크로드보다 더 혹독한 바닷길이었다.

베니스의 상인과 소그드 상인으로 상징되는 동서양의 교역로 실크로드는 열리지 않은 대양 항해의 산물이다.

바다가 아니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했던 지중해의 베네치아, 제노바 등은 1천여 년의 세월동안 목숨을 담보로 지중해의 풍랑과 싸워가며 선박기술을 축적했다.

그들조차 반나절 거리마다 육지에 기착하는 연안항로에서 조심스럽게 벗어난 것은 14세기로 접어들면서였다. 나침반과 해도(海圖) 때문이다. 깜깜한 밤길의 전조등과 같은 혁명이었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의 메메드 2세에 의해 실크로드의 서쪽 축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다. 에게 해를 거쳐 콘스탄티노플에서 소아시아와 흑해로 연결되던 실크로드 망이 무너졌다. 메메드 2세는 사라센 해적들을 지중해에 풀었다.

투르크에 의해 실크로드 망이 봉쇄되자 지중해상인들은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대항해의 시작이었다. 지브롤터 해협을 떠난 대형 범선들이 10척에서 1척, 다시 10척에서 2척이 되돌아오는, 죽음의 행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대양을 향한 뱃길이 개척되고 콜럼버스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1756년 광동성 광주(廣州)가 서양무역의 유일한 항구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6, 7세기에는 절대 불가능했던 대양항해를 염두에 두고, 백제의 국제해상무역에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복원된 백제선박. 21톤 화물적재 가능한 평저선. 대양의 파도앞에서는 가랑잎같은 존재였다.


출처/ KBS 특집다큐 대백제 2부 백제의 코끼리는 어디서 왔을까


▲ 1800년경 중국 전통선박. 그때까지도 大洋진출 불가한 평저선이었다.  출처/ 그들의 바다









▲ 1810년경 중국 전통선박으로부터 개량된 남부 해적선. 출처/ 그들의 바다 




( 2017년 03월 08일 05시 33분   조회:97 )   
이 름    비밀번호   

  
31 [경세유표]8도(道)→12성(省) 지방재분할론   노성매 2017/03/20 148
30 흑치⑥ 흑치준에게 승계된 흑치의 봉지   노성매 2017/03/08 90
29 흑치⑤ 흑치의 행정지명, 검중(黔中)   노성매 2017/03/08 102
흑치④ 吳를 중심으로 구축된 백제의 국제해상 ....   노성매 2017/03/08 97
27 흑치③ 吳는 백제남부 가야를 말하다   노성매 2017/03/08 103
26 흑치② 흑치준의 묘지명, 흑치는 吳나라에 있다   노성매 2017/03/08 108
25 흑치① 학계에서 주장된, 흑치지역   노성매 2017/03/08 125
24 6-4.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7/01/05 127
23 6-3.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7/01/05 131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