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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② 흑치준의 묘지명, 흑치는 吳나라에 있다  
노성매



2. 흑치준의 묘지명, 흑치는 吳나라에 있다



그는 676년에 당(唐)에서 태어나 706년 31세로 요절하여 낙양의 북망산에 묻혔다는데, 묘지명에는 당에서 군공(軍功)을 세우기 전까지 고향 흑치에서 지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닷가에서 나라를 벌였으니, 목화(木華)의 「해부(海賦)」에서 고향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分邦海濱見美玄虛之賦

[海賦 …汎汎悠悠於黑齒之邦]


택국에서 추장으로 호칭된 것은, 자사(子思)의 「삼도부(三都賦)」에서 그 중시됨을 취했기 때문이다.

稱酋澤國取重太沖之詞

*三都賦 中 吳都賦 …儋耳黑齒之酋 金鄰象郡之渠.

담이와 흑치에서는 우두머리를 추(酋)라 하고, 금린과 상군에서는 거(渠)라 한다.

*좌우 추장(酋長) 10여 인과 도피했다[삼국사기 흑치상지열전]


먼 미개의 땅에서 그들을 교화시켰으며 당(唐)에서 누차 관직에 몸담았다.

熾種落於遐荒積衣冠於中國


공을 세우고 업적을 이루어 천지에 이름을 드날렸다.

立功立事懸名於晝月之旗



‘흑치조제(黑齒雕鯷) 제관출봉(緹冠秫縫) 태오지국(大吳之國)’을 인용한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이를 검게 물들이고 이마에 문신을 하는 태백(太白)의 오(吳)나라. 周 太王[고공단보]의 장자 태백이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주고자 형(荊) 땅으로 도망하여 吳의 시조가 되었다.

해부와 오도부는 강남과 형 땅의 기록이다. 전국책에에서 초왕(楚王)이 형왕(荊王)과 혼용으로 쓰이는 것은 역시 형 땅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흑치준의 묘지명은 고향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증조 가해…조부 사자… 모두 형산의 옥과 같이 빼어났고, 울포의 진주처럼 빛을 발하였다.

曾祖加亥…祖沙子…並玉挺荊山珠光蔚浦

*화씨지벽(和氏之碧)과 변씨지벽(卞氏之碧)으로 유명한 형산(荊山)의 옥(玉), 수후지주(隨侯之珠)로 이름높은 장강의 진주[夜光珠]. 모두 형(荊) 땅 초(楚)의 보물이다.

그리고 흑치준의 장례행렬에는 초(楚)의 만가(挽歌:輓歌), 태백으로부터 전해진 주(周)의 퉁소소리가 길을 인도한다.

途移楚挽路引周簫


형(荊)의 주나라 풍습으로 흑치준의 장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흑치준의 묘지명에 언급되는 해부, 오도부, 형산의 옥, 울포의 진주, 초의 만가, 주의 퉁소는 모두 형(荊) 땅으로 일관된다. 고향과 관련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기록할 수 있겠는가.



( 2017년 03월 08일 05시 02분   조회: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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