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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① 학계에서 주장된, 흑치지역  
노성매



백제말기의 장수 흑치상지의 행적이 기이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백제 서부인으로, 선조가 흑치 땅에 봉해져 흑치씨가 된 그 후손이다. 흑치상지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봉지와 호주를 승계하여 달솔(達率)이 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 출간 󰡔일본서기완역본󰡕 1권 384쪽 주석을 보면, 백제 지방행정구역 5부의 지방장관 관등이 달솔로 되어있다. 흑치 가문이 대대로 흑치의 봉지와 백제관등 달솔을 승계하며 서부통치권을 위임받았음을 암시한다.

백제의 흑치 지역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흑치에 관한 지명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뜻밖에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에서 단서를 찾고, 하나씩 파고들다보니 물속에 잠긴 백제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흑치는 태백의 오나라가 건국한 형(荊) 땅으로 이어지고, 일본서기에는 吳와 백제와의 밀접했던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吳를 통해 마주하게 된 가야.

백제 남부, 가야, 오, 형, 초(楚)가 한 줄기로 당겨졌다. 그곳은 장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 흑치는 吳의 서부에 해당된다. 백제 서부의 구심점이다.

차마무역은 백제의 고도화된 상술을 말해준다. 운남의 차를 전투력이 강한 토번의 말로 바꾸어 백제 강병(强兵)을 육성했다. 토번과의 대규모 마시(馬市)가 있던 아안(雅安). 현재 중국에서 애써 지우고 있는 지명이다.

아안(雅安)과 운남, 동남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이 백제의 서부중심지가 되고, 그곳은 검주(黔州) 지금의 중경이다.

흑(黑)의 음사 ‘검[黔:검다]’의 지역이다.



1. 학계에서 주장된, 흑치지역


검색을 하다보면 흑치상지를 이방인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남방 번족출신이라는 것이다. 우리민족과는 이질적인 흑치라는 지명.

흑치 땅에 대한 견해는 둘로 나뉜다. 국내파와 해외파이다.

국내파의 대표, 백제학회장 노중국 교수는 예산군 덕산(德山)으로 비정했다.

백제 때의 금물현(今勿縣)이다. 금은 ‘검다’ 물은 ‘내’의 음사. ‘검은 내’는 곧 흑치의 ‘검은 니’와 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덕산현(德山縣)을 보면, 현 서쪽 11리에 가야산(伽倻山)이 있고, 남쪽 8리에 대덕산(大德山)이 있다. 가야사(伽倻寺)와 용연사(龍淵寺)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지금의 경남 합천군에 소재하는 가야산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지명의 위치조차 뒤틀려있으니, 금(今)을 흑(黑)으로 물(勿)을 치(齒)로 연결시키는 억지주장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해외파에는 두 갈래가 있다.


⑴ 동남아시아 필리핀:이도학 교수의 주장이다. 백제의 뛰어난 항해술과 동남아시아 교역을 근거하여, 필리핀 지역의 흑치 풍습을 이유로 들고 있다.

① 󰡔일본서기󰡕 흠명 4년(543)에 백제가 부남[扶南:베트남 남부]의 재물과 노예 둘을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

日本書紀卷第十九 欽明天皇四年…秋九月 百濟聖明王遣前部奈率眞牟貴文 護德己州己婁與物部施德 麻奇牟等 來獻扶南財物與奴二口.

② 백제와 곤륜[베트남 중부 참파왕국]의 충돌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642년 왜에 건너온 백제의 조문사절이, 백제의 국내사정을 얘기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이다.

‘…작년 11월에 대좌평 지적이 죽었다. 또한 사신을 접대하는 관원이 곤륜에서 온 사신을 바다에 던져넣었다.’

日本書紀 卷二四 皇極天皇元年…百濟弔使人等言。去年十一月。大佐平智積卒。又百濟使人擲崑崙使於海裏

이에 대해서는 동남아시아 무역이권을 둘러싼, 백제의 곤륜 길들이기라는 평이 있다.

③ 무령왕릉 출토 유리구슬의 화학성분 분석결과 동남아시아 제품으로 판명. 부남에서 발견된 유리구슬과도 일치한다.

위와 같이 동남아시아와의 활발한 해상교역의 중간 거점지역이 필리핀이며, 백제의 흑치지방이라는 주장이다.



⑵ 중국 광동성 광주(廣州) 일대:소진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2002년 그곳을 답사했다. 인근 남녕(南寧)에 백제향이 있다. 현지 주민들은 오늘날에도 현대 한국어발음으로 ‘대백제’라고 부르고 있다. 거기에 흑치의 원인인 빈랑을 씹던 풍속과 벼농사를 덧붙인다.


 

중국 사이트 「Baidu지도」에서 ‘百濟’를 검색하면 남녕시에만 백제향(百濟鄕)을 포함해 75곳이 된다.


「Baidu지도」에서 ‘百濟’ 검색

「네이버지도」 ‘백제’ 검색

    남녕(南寧)  75건

   공주       256건

    광주(廣州)  13건

   부여       292건

    상해(上海)  22건

   충청북도   31건

    소주(蘇州)  13건

   경상북도     9건



한반도와 직선거리로 6천여 리나 떨어진 중국 서남부의 남녕. 백제와의 직접적인 연고가 있지않고서야 1,400여 년 전에 지워진 이름 ‘百濟’를 지금껏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주와 부여는 백제문화유적 복원 사업이 집중된 곳이다. 백제권인 충청북도에 ‘백제’의 이름이 31곳밖에 없다는 것과 비교하면, 남녕이 차라리 백제에 더 근접한 듯하다.



( 2017년 03월 08일 04시 56분   조회: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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