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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그럼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구당서 백제전에 남아있는 취리산 회맹의 맹문(盟文)을 통해 백제왕 부여융을 확인해보자.




興亡繼絶 往哲之通規 事必師古 傳諸曩册

    故前百濟太子司稼正卿扶餘隆爲熊津都督 守其祭祀 保其桑梓

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끊어진 왕조를 다시 잇게 해주는 것은 옛 성인들이 행한 법도였다.…

그러므로 전 백제태자였던 사가정경 부여융을 세워 웅진도독으로 삼고, 백제의 사직을 받들게 하고 백제의 땅을 보존하게 한다.



흥망계절(興亡繼絶):또는 부위계절(扶危繼絶)이다.

      쇠락해가거나 혹은 끊어진 왕조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 사용되는 구절이다.

     부여융이 전란으로 쇠망해가던 백제의 왕통을 다시 이었다는 의미이다.



립(立):고대사서의 기록법으로 ‘왕위에 오르다’ ‘왕으로 세우다’로 쓰인다.


         *예:丙午六年 王崩 子赧王延立 [난왕 연이 왕위에 올랐다]

                燕人共太子平 是爲昭王 [태자 평을 세우니, 이 분이 소왕이다]


        태자의 신분에서 세워진다[前百濟太子]는 것은 왕위(王位)밖에 없다.



대사가정경(大司稼正卿):당은 나라의 재정을 부여융에게 맡겼다.


부여융은 의자왕 사후 당(唐)에서 대사가정경(大司稼正卿)의 벼슬을 받았다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태종춘추공 조와 구당서에는 사가정경(司稼正卿)이다.


구당서 44권 직관(職官)을 보면, 지금의 재무부장관에 해당된다.


司農寺漢初治粟內史,景帝改為大農,武帝加「司」字。梁置十二卿,以署為寺,以官為卿,隋為司農卿,龍朔二年改為司稼卿,鹹亨複也。

卿一員,從三品上。少卿二員。從四品上。卿之職,掌邦國倉儲委積之事,總上林、太倉、鉤盾、導官四署與諸監之官屬,謹其出納。少卿為之貳。凡京百司官吏祿給及常料,皆仰給之。孟春藉田祭先農,則進耒耜,季冬藏冰,仲春頒冰,皆祭司寒…


나라의 창고를 관장하고 창고에 쌓인 물품들을 위임받아.

재정과 출납, 관리들의 녹봉 등을 담당하는 당(唐)의 중심 직책이다.

당의 모든 조세가 사농시(司農寺)로 모여들고, 사농시에서 쓰임에 따라 분배되어 흩어졌으며, 백관들의 월급 역시 여기에서 지급되었다.

그리고 계절에 따른 나라의 제사를 담당했다.

그리고 사농시의 장이 대사가정경 부여융이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외국인이 절대 접근할 수 없는 내직(內職) 중의 최고 요직이다.

나라의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직책이다.


고려시대의 사농시와 당의 사농시는 그 격이 다르다.


외국의 왕족포로를 우대하기 위한 허울 좋은 명예직도 아니다.


그런데 패전국 포로의 신분에서 1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당의 재정을 총괄하는 요직을 맡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더구나 백제 땅에서는 잔류한 당군(唐軍)과 백제군 사이에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제사의 또다른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패전국 포로의 신분이었음에도, 당은 나라의 재정을 부여융에게 맡겼다. 부여융을 떠받든 것이다.

무엇 때문에.





⑵ 백마(白馬)의 피로 삽혈하다



삼국사기 문무왕5년

秋八月 王與勑使劉仁願熊津都督扶餘隆盟于熊津就利山…刑白馬而盟 先祀神祇及川谷之神而後歃血


구당서백제전

麟德二年(665)八月, 隆到熊津城與新羅王法敏 刑白馬而盟 先祀神祇及川谷之神而後歃血


다시 [종묘대제의 희생]의 내용으로 되돌아가보자.


전국시대 초왕(楚王)과 조(趙)의 대부(大夫) 평원군, 평원군의 가신인 모수(毛遂)가 합종을 맹약하기 위해 삽혈을 하려고 했다.

모수는 시종들에게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각각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세 명의 신분에 따른 희생동물이 달랐기 때문이다.


史記索隱 卷十九 平原君虞卿列傳第十六

盟之所用牲貴賤不同 天子用牛及馬 諸侯用犬及豭 大夫已下用雞 今此總言盟之用血故云取雞狗馬之血


닭과 개와 말의 피를 취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면,

맹서할 때 쓰이는 희생은 귀천(貴賤)이 같지 않다.

천자는 소(牛)나 말(馬)을 쓰고, 제후는 개(犬)나 돼지(豭)를 쓰며, 대부 이하는 닭(雞)을 쓴다.


당(唐)의 이감(李甘)이 지은 [우위인설(寓衛人說)]에는 ‘會盟則牲馬 宗廟則犧牛’라 했다.

왕의 회맹에는 말을 생(牲)하고, 종묘의 제사에는 소를 희(犧)한다.

불교용어에 마보사(馬寶祀)가 있다.

왕의 대제(大祭)이다. 고대 최고 신성한 제사로, 말을 희생으로 썼다.

aśvajmedha-yaña,譯曰馬寶祀 國王之大祭也…為古代最神聖之祀 祭以馬為犧牲 故有此名



고대 신분제에 있어 말[馬]을 희생으로 쓰고 삽혈을 할 수 있는 자는 오직 王과 天子일뿐이었다.



부여융과 신라왕 김법민은 동등한 왕의 신분으로 취리산에서 마주했다.


문무왕이 친히 대병(大兵)을 이끌고 웅진까지 발걸음할 정도의 백제세력이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백마를 잡아 그 피로 나란히 삽혈을 했다.

회맹의 내용에서 구구절절 당(唐)에 대한 가장된 미사여구를 제거하고 보면,

신라와 백제 두 나라 사이의 상호 불가침조약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로부터 6백여 년 후 일연(一然)은 삼국유사 태종춘추공조

에서 ‘假王夫餘隆’으로 그를 기록했다.


끝내 왕위를 지켜내지 못하고 마지막에조차 당에 기댔던 못난 왕, 허수아비 왕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



( 2017년 01월 05일 09시 35분   조회: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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