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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戰亂史/王亂으로 因해 漢과 扶餘軍에 大敗  
律坤

 

 

高句麗 戰亂史/王亂으로 因해 漢과 扶餘軍에 大敗

 

 


  3代 大武神王이 돌아가자 太子가 너무 어려 政事를 돌볼 수 없으므로 부득이 나라 사람들이 大武神王의 동생을 王으로 추대한 사람이 민중왕(閔中王)이다.

 

  민중왕 2년 여름 5월이 되자 나라 동쪽에 대홍수가 나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에서 곡식을 풀어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3년 가을 7월에는 동쪽으로 王이 사냥을 가 흰 노루를 잡았다. 겨울 11월에는 혜성이 남쪽 하늘에 나타났다가 무슨 일인지 20일 후 자연히 소멸되었다. 12월에는 경도(京都:지금의 西安의 長安城)에 눈이 오지 아니했다.


  4년 여름 4월 민중(閔中)의 들에 王이 사냥을 나갔다. 가을 7월 우연히 사냥을 나갔는데 석굴(石窟:바위 굴)을 보고 王이 左右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반드시 이 굴속에 장사지내고 묘의 봉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해 9월 동해인(東海人:동쪽 넓은 땅에서 사는 사람) 고주리(高朱利)란 사람이 고래를 잡아 바쳤는데, 밤에 고래 눈에서 빛이 나타났다.

 

  겨울 10월 잠우(蠶友:누에를 침) 부락에 사는 큰 집 사람 대승(戴升) 등 1만여 가(一萬餘家) 호가 樂浪으로 들어가 항복했다.

 

  5년에는 민중왕이 돌아갔다. 王后와 군신들은 민중왕이 남긴 유언을 어길 수 없어 석굴에 장사지내고 호를 민중왕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4대 민중왕 때부터 무언가 국가에 王의 亂이 생길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5대 모본왕은 3대 大武神王의 元子이다. 민중왕이 돌아가자

      

왕위에 올랐으나 사람됨이 어질지 못하고 포악했으며 국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2년 봄에 장수를 파견하여 漢나라 땅이었던 북평(北平:山西省 陽高縣 西南)과 어양(漁陽:섬서성 京兆 密雲縣 西南. 즉 지금의 西安南), 그리고 상곡(上谷:河北省 易縣. 지금의 保定市), 태원(太原:山西省 太原市) 등을 습격하다가 요동태수(遼東太守)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뢰로서 맞이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그리고 3월에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4월에는 서리가 내리고 우박이 쏟아지자, 가을인 8월에는 사신을 보내 굶주리는 백성에게 곡식을 나누어주었다.

 

  4년에는 모본왕이 점점 포악해졌다. 언제나 사람을 깔고 앉기도 하고, 누울 때는 사람을 베개삼아 눕기도 했다. 깔린 사람이 움직이기만 하면 용서 없이 죽이고, 신하가 간하면 활을 쏘기도 했다.


  6년 겨울 11월이 되었다. 본래 두노(杜魯)는 모본 사람으로 왕의 左右에서 시중드는 신하인데 임군을 죽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자기도 王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두노(杜魯)는 임군이 사람을 무참히 죽이는 것을 보고 항상 울고 있는 것을 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왜 우느냐. 옛 사람의 말에 나를 어루만져 주면 임군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라 하였다. 지금 王의 행동이 사람을 학대하고 죽인다. 그러기에 백성들은 원수로 여기고 있다. 고로 너는 계획을 하라고 하였다.

 

  두노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장도(藏刀:지니는 칼)을 갖고 王 앞으로 나아가 왕이 끌어다 앉힐 때 칼을 뽑아 왕을 살해했다고 되어있다.

 


  필자는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 自己行爲의 過程이 運命이라고 말한다. 또한 人間의 가장 큰 적은 利己的인 탐욕(貪慾)이라고 말한다.

 

모본왕이 人間 以下의 행동을 하였기에 臣下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6대 태조대왕은 유리왕자이다. 유리왕은 아들이 없었는지 고추가(古鄒加)의 재사(再思)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태후(太后)로서 扶餘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자 太子가 불초하여 사직을 이을 수 없어 유리왕자를 6대 왕으로 잇게 하였다.

 

  3년 봄 2월에는 漢나라 군사가 침범해 올 것을 대비하기 위해 요서(遼西)에 10개의 城을 쌓았다. 가을 8월에는 가뭄이 심해 나라 남쪽에는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곡식의 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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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가을 7월이 되자 동옥저(東沃沮)를 토벌하고 땅을 빼앗아 그 땅에 城과 邑을 삼았다. 그리고 나라의 경계를 개척하여 넓히고 東으로는 넓고 넓은 땅을 확보했으며 남으로는 살수(薩水)에 이르렀다.

 

  16년 가을 8월에는 갈사왕(曷思王:扶餘王 帶素의 막내동생)의 손자인 도두(都頭)가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므로 도두(都頭)에게 우대(于台)의 벼슬을 주었다.

 

  20년 봄 2월에는 관나부(貫那部)에 있는 패자(沛者)인 달가(達賈)를 파견하여 조나(藻那)를 토벌하고 그 나라 王을 사로잡았다. 여름 4월에는 경도(京都)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22년 겨울 10월에 왕(王)은 환나부(桓那部) 패자(沛者)인 설유(薛儒)를 파견해 주나(朱那)를 쳐서 그 王子인 을음(乙音)을 사로잡아 고추가(古鄒加)로 삼았다.

 

  25년 겨울 10월에는 扶餘에서 사신이 세 뿔 난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王에게 헌납했는데, 상서로운 물건이라 하여 대 사면령을 내렸다.

 

겨울 11월에는 경도(京都)에 3척(三尺:90㎝)의 폭설이 내렸다.

 

  53년 봄 1월에는 扶餘에서 사신이 범의 길이가 2장(二丈:6m)이며 털 색은 아주 선명했으나 꼬리가 없었다.

 

이 당시 王은 장수를 파견하여 漢나라 요동(遼東)을 쳐서 여섯 고을을 약탈했는데 漢나라 경기(耿夔) 太守가 軍事로 左右에 진을 치고 막아 王의 軍이 大敗하였다. 가을 9월에는 경기 태수가 맥인(貊人)을 격파했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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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년 가을 9월에 王은 질산(質山)의 양지에서 붉은 노루를 잡았다. 겨울인 10월에는 동해곡(東海谷) 太守가 붉은 표범을 바쳐왔는데 꼬리가 9척(九尺:2m70㎝)이었다.

 

  59년 고구려는 파견사를 보내 공물을 바치러 가서 현도(玄菟)에 속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66년 봄 2월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여름인 6월 王은 예맥(濊貊)과 더불어 漢의 지역인 玄菟를 습격하고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하였다.


  69년 봄에는 漢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풍환(馮煥)과 玄菟太守 요광(姚光), 그리고 요동태수(遼東太守) 채풍(蔡諷)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하여 예맥(濊貊)의 거수(渠帥)를 죽이고 兵馬와 재물을 탈취하였다.

 

王은 아우인 수성(遂成)을 파견하여 군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유주자사(幽州刺史) 풍환(馮煥) 등을 되받아 치게 하였다. 수성(遂成)은 사자(使者)를 적진에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므로 풍환은 믿게 되었다. 수성은 이로 인해 험한 곳을 점령하고 大軍을 차단하고 몰래 3천 명으로 현도(玄菟)․요동(遼東) 두 郡을 공격하여 그 성곽을 불사르고 2천여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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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4월에는 선비(鮮卑) 8천 명과 더불어 요대현(遼隊縣)으로 가서 공격하므로 요동태수(遼東太守) 채풍(蔡諷)이 장병을 이끌고 新昌으로 나아가 싸우다 죽었다. 이때 채풍이 죽기 직전 공조연(功曹椽)․용서(龍瑞)․병마연(兵馬椽)․공손포(公孫酺) 등은 채풍을 막아주려다 모두 함께 진중(陣中)에서 죽고 그밖에 죽은 자도 1백여 명이었다. 王은 수성(遂成)에게 나라의 군사를 통솔케 하였다고 되어있다.

 

  12월 王은 馬韓과 예맥(濊貊)의 기병 1만 여를 거느리고 玄菟城을 포위하니 扶餘王은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어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漢나라 군사와 협력하여 막아 싸우다가 王의 군사가 大敗하였다.

 

  다음 해인 70년 王은 馬韓, 예맥과 더불어 遼東을 침범했는데 扶餘王이 군사를 보내어 구원하여 우리 군사는 敗하였다고 적고 있다.

 

 

 

( 2012년 08월 09일 20시 41분   조회:2099  추천: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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