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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夷論  
[펌]박문기

 

박 문 기
농부ㆍ사학자
동이학교 교장

 

지금 우리에게는 민족학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민족사학을 주장하는 이나 현 제도권의 사학을 고집하는 이들이 다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고유문자까지도 '漢文'이라 하여 중국의 글자로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부류가 다 우리민족의 원칭(原稱)인 '이夷'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까지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 夷자는 맨 처음으로 활을 만들어 사용한 우리의 원시조상들을 일컬었던 말이었다. 그 원시조상들이 동북아시아 전역을 아홉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미개한 한족(漢族)과 적모벽안(赤毛碧眼)의 융족(戎族)들을 복종시켜 유구히 천하를 안녕케 하였다. 즉 우수한 무기로써 위엄을 보이고 순후한 덕으로서 은혜를 베풀었던 것이다.

 

인하여 중국의 옛 사서에는 夷자를 상한다. '죽인다' '평탄하다' '기쁘다' '즐겁다' '간이簡易하다' '떳떳하다' 등으로 표현하였다. <例「綱日」註 夷 傷也「周禮」注 夷之尸也者謂尸之 借也「詩傳」「節南山」郡子如夷「天作」有夷之「有客」 降福孔夷「假雨」云胡不夷「柔桑」亂生不夷>

 

또한 아홉 구역의 夷人들을 구이(九夷)라 하였고 그들이 다 머리털이 검다하여 구려九黎라 기록해 놓고 있다. <例 :「論語」(子罕) 子 欲居九夷「史略」 九黎亂德「山海經」凶黎之戰>

 

 

釋夷

「禮記」 王制篇에 말하기를 동방사람을 가리켜 夷라 하는 것은 夷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어질고 호생(好生)의 덕이 있으며 땅을 존상한다 만물이 다 땅에 뿌리를 두고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 유순하여 쉽게 도로써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도 있는 것이다. <東方曰夷 夷者 抵也 言仁而好生 萬物低也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 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夷에는 아홉 종류가 있는데 말하기를 견이( 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라 한다. 그러므로 孔子가 九夷의 땅에서 살고 싶어라 했던 것이다.


옛날에 요임금이 희중羲仲을 명하여 우이( 夷 : 于夷)의 땅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력(日曆) 만드는 법을 익히게 했는데 그곳은 양곡(暘谷 : 지금의 山東)이라 하는 곳이며 대개 해가 맨 먼저 나오는 곳이다. <夷有九種……故孔子欲居九夷也>


동한시대 허신(許愼: 字 叔重)은 그의 편저인 설문해자(設文解字) '大'부(部)에 夷자를 풀이하여 말하기를
「夷는 동방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글자의 형상이 바로 큼(大)과 활(弓)이 합쳐 진 것이다.」하였다.


이를 淸代의 단옥재段玉裁가 주해(主解) 하기를
예로부터 전해 오는 각종 문헌에는 夷자를 平자로 풀이하여 읽었다. 그리고 단순히 큰대(大)자와 활궁(弓)자가 합쳐졌으므로 동방 사람이라고 했음은 지나치게 지식 수준이 낮은 사람이 고쳐 놓은 바이다. 이제 元代의 황공소(黃公紹)가 찬(撰)한 고금운회(古今韻會)로 바르게 하여 바로 이(아래)와 같이 同書 양부(羊部)에 이른다.

 

「남방의 만족(蠻族)이나 민인( 人)은 벌레와 같고 북방의 적인(狄人)은 개와 같으며 동방의 맥인(貊人)은 해태( )와 같고 서방의 강족(羌族)은 염소와 같으며 서남방의 극인(棘人)이나 초요족(焦僥族)은 사람과 같다. 대개 이들이 그 땅에 살고 있으므로 자못 순리의 성품이 있다. 그러나 오직 東夷는 큼(大)을 좇으니 대인(大人)이다. 夷의 풍속이 어지니 어진 자는 오래 산다. 그래서 군자가 죽지 않은 나라가 있다.」
공자께서 「도를 펼 수 없는지라 구이(九夷)에 가 살고」자 하시었다 또「뗏목이라도 타고 바다로 떠나고 싶다」고 하시었음은 바로 자신의 쓰임이 있을 데를 말씀한 것이다.


살피건대 그곳은 하늘이 크고 땅도 크며 사람 또한 크니 크다는 대(大)자의 형상도 바로 사람의 형상을 그려 놓은 것이다. 그리고 夷자는 전서(篆書)에도 대(大)자를 따라 쓰게 되어 있어 하(夏)와 다르지 않다. 하(夏)란 중국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운운


<夷 : 東方之人 從大以弓 段註云 : 各本均作平也 從大從弓 東方之人也 淺人所改耳 今正韻會正如是 羊部曰 : 南方蠻 從蟲 北方狄從犬 東方貊從 西方羌從羊 西南棘人焦僥從人 蓋在坤地 頗有順理之性 惟東夷以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孔子曰 道不行 俗之九夷 乘 浮於海 有以也 按天大 地大 人亦大 大象人形 而夷篆從大則與夏不殊 夏者中國之人 也 云云>

 

대략 이상과 같은 중국측의 문헌들을 살펴보아도 다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夷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음을 어렵지 않게 읽어 볼 수 있다. 당시 夷의 수방(首邦)이 바로 고조선이었음은 고금의 학자들이 다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여러 사료에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禮記>에는 우리 동이 민족이 인류의 중국 민족과 대등하다는 식으로 표현하여 은근히 중국을 같이 높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저 단순히 자기네와 다르지 않다는 말 한마디로 풍속이 어질고 어질기 때문에 오래 살며 오래 살기 때문에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와 쉽사리 대등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글자의 형태만을 들어 사방의 주변 민족을 벌레나 짐승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자기들보다도 키가 작은 서남방의 극인이나 초요족에 한해서 겨우 사람 같은 것으로 말했음은 별로 명료한 해석이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저 군자란 덕을 이룬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산해경>에는 「그-(군자국)-사람들이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其人 好讓不爭> 고 하였다.

 

「夷는 어질고 호생(好生)의 덕이 있어 만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서 나오는 것처럼 천성이 유순하다」했고 그래서「쉽게 도에 나아갈 수 있으며 도에 나아 간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를 이루고 산다」고 하였다. 때문에 공자께서 항상 중국의 문란함을 한탄하시고「풍속이 어진 군자의 나라」에 가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박 문 기
농부ㆍ사학자
동이학교 교장


誤夷狄之夷

 

사실이 그러했는데도 夷를 대개 '오랑캐'라는 뜻으로 써 온 것은 과연 어째서 였는지 이제 그 연유를 알아보기로 한다.


대저 공자가 춘추를 기술할 당시 이미 주왕실周王室은 미약했고 남쪽 夷人 집단의 초楚나라는 날로 강성해지던 시기였다. 초나라는 급기야 왕의 칭호를 쓰고 주왕실을 능멸하여 겁박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공자는 존화양이론(尊華讓夷論)을 내세웠고 춘추에 초왕이 작위를 끝까 지 '초자(楚子)'라 기록하였다. 즉 기울어 가는 주왕실을 높이어 붙들고 夷人 집단의 중국 침범을 막자는 것이며 참칭(僭稱)한 초왕의 호칭을 인정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夷의 군장(君長) 담자 子를 찾아가 예법을 배웠고 중국의 문란함을 한탄하였다. 그리고 九夷의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左傳」<云 中尼聞之 見於 子 旣而告人曰 吾聞之 天子失官 在四夷 猶信> 「論語」<云 夷狄之有君 不如 諸夏之亡也> 同書 <子罕篇>子 欲居九夷>


헌데 이러한 말들이 다 뒷날 夷를 '오랑캐'라 오해할 수 있는 근원이 되었다. 그 중에 공자가 '구이의 땅에 살고 싶다'고 한 대목이 제일 문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공자가 그렇게 말하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만일 거기에 비루한 풍습이 있으면 어찌하시렵니까?」<或曰陋如之何> 하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거기엔 군자들이 사는데 무슨 비루함이 있겠는가」<子曰君子居之 何陋之有> 하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뒷날 송宋나라 때 주자(朱子 : 朱熹)가 이 문장을 주해하기를 「군자가 살게 되면 자연 동화되리니 무슨 비루함이 있으리오」<君子所居則 化何陋之有> 하고 풀이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퇴계退溪 李선생도 어쩔 수 없이 원문에 현토懸吐 하기를 「或曰陋커늘 如之何잇고 子曰君子居之면 何陋之有리오」하였다. 즉 '혹자가 비루한 곳이거늘 어찌하시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대답해 말하기를 군자인 내가 거기에 가서 산다면 무슨 비루함이 있으리오'하는 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저 공자가 평생동안 자신을 높이어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음은 그 문장 을 대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그가 스스로 군자라 이르고 자신 있게 비루한 풍속을 문명시킬 수 있다고 말했을 리 만무한 일이다. 당시 문명 되었다는 중국에서도 자신의 도를 펴지 못해 늘 한탄했는 데 말이다. 그래서 뗏목이라도 타고 바다로 떠나고 싶다 <乘浮 浮于海>고 했는데 말이다. 그는 또한「마을에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마을을 택하여 살지 않으면 어찌 지각이 있다고 할 수 있으리오」<「論語」里仁篇云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사실로서 미루어 보더라도 당시 공자는 인후한 풍속이 있는 군자의 나라에 가서 살기를 원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주자의 주해는 심히 잘못된 것이며 그 주해로 인해서 뒷날의 학자들이 대개 夷자를 오랑캐라는 뜻으로써 왔던 것이다. 이제 필자가 만일 아이들에게 그 문장을 가르친다면 먼저 아래와 같이 토(吐) 를 달겠다.

或曰陋如之何 잇고, 子曰君子居之어니 何陋之有리오」 그리고 주자의 주해에서 '則' '化' 두 글자를 빼내버리고 가르쳐 주겠다. 즉 「군자가 사는 바이니 무슨 비루함이 있겠는가」<君子所居 何陋之有> 라고 말이다. 이리하면 대략 앞에서 밝힌 夷의 풍속이 '어질다' '군자의 나라'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등의 사실과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성(大聖)인 공자의 높은 덕에 누(累)가 되지 않는 말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박 문 기
농부ㆍ사학자
동이학교 교장


結論

 

옛부터 우리는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夷란 바로 큰 활을 지닌 사람을 형상한 것이다. 이 활이란 사냥이나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활은 옛 효자 대정씨大庭氏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 대정씨는 바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의 원시조상이었다고《자치통감》호삼성胡三省 주(註)에 기록되어 있다. 그 대정씨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5천여 년 전이었고 그 당시에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 법이 없었으며 그저 백모(白茅)로 싸서 들판에 내다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대정씨는 자신을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시신이 짐승의 밥이 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에 나뭇가지를 잘라 줄을 매고 싸릿대로 살을 먹여 짐승을 쫓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상주(喪主)를 조문한다는 글자를 쓸 때 활에 살을 먹인 형상인 조(弔)자를 쓰고 있다. 즉 효자가 활에 살을 먹이고 부모의 시신을 지키고 있음을 위로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조(吊)자와는 근본 뜻부터가 다르다.

 

이렇듯 활이 효자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뒷날에 이르러서는 이로써 도적을 쫓아내고 무도한 나라를 정벌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사서에 夷자를 '상한다' '죽인다' 등으로 쓰여졌던 것이다. 또한 역대로 중국을 통치한 왕조가 거의 다 夷人집단이었고 중국인들은 이 夷人집단에 의해서 수난을 당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지금까지도 도적을 뚱이東夷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옛 조선이 가장 강성했을 때에는 한족漢族의 세력을 멀리 서쪽 기주岐周밖으로 축출하고 중원에 은왕조殷王朝를 세워 6백 4여 년 동안 천하를 통치한 장쾌한 역사도 있었다.


그러나 은왕조가 망한 후로는 동이의 수방(首邦)이라 일컬었던 조선이 단 한번도 중국을 정복한 사실이 없었다. 지금 사람들이 흔히 한문이라 일컫는 진서眞書는 바로 은왕조시대 갑골문 甲骨文이 그 원형인 것이다. 사실이 그러한데도 사람들은 거의가 다 중국의 글자라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대개 어느 민족이든지 망하게 되면 고토(故土)에 돌아가는 법이다. 그러한 사실은 근세 일본이 패망하자 왜인들이 저희 나라로 돌아갔고 청나라가 망하자 부의傅儀가 유중을 거느리고 만주로 돌아갔으며 원元나라가 망하자 몽고족들이 다시 사막으로 돌아갔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옛날에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箕子가 유중을 거느리고 요수遼水를 건너 온 것은 바로 옛 선왕들의 고토에 돌아온 일이다.


그런데 지금 민족사학을 부르짖는 자나 현 제도권의 사학을 주장하는 이들이 다 기자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2천여 년의 역사를 몽땅 떼어내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한민족임을 내세워 우리는 동이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허다한 실정이다.

 

무릇 우리 민족의 특징을 말하라 하면 뒷머리가 납작하고 머리털이 곧은 편두직모(扁頭直毛)의 현상을 맨 먼저 꼽을 수가 있다. 요즘 인류학자들의 말로도 이러한 인종이 이 지구상에 가장 오래된 인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옛 중국 문헌에 夷가 인류의 뿌리라고 한 말과 딱 일치하는 말이다.


활이 우리의 원시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우리는 활을 잘 쏠 수 있는 기질을 타고났다. 때문에 지금의 양궁洋弓이라는 것도 우리에게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도 우리 선수들의 기량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가 夷의 후예라는 사실을 가히 숨길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겐 夷를 제대로 연구하여 뒷날 실지회복에 대비할 수 있는 민족학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 2009년 03월 08일 21시 07분   조회:3433  추천:465 )   
강현구 2009-03-11 20:29:00
삼묘(三苗) ---> 동이(東夷) ---> 조선(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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