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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황실사관  
베이징원인

중국인들의 황실사관  

한겨례 필진네트워크

 

베이징원인 / 이상수의 중국 이야기

 

http://wnetwork.hani.co.kr/lixiangzhu/

 

 
중국이 압록강에 건설한 윈펑댐 안에서,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와 2000여기에 이르는 고분군이 나왔다(관련기사 참조). 1964년 건설된 이 댐으로 인해 수몰됐던 옛 고구려 장수들의 흔적이 댐 보수공사를 위해 수위를 낮춘 덕분에 42년 만에 물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번에 수몰지구에서 다시 발견된 이 유적지에 대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9일자 보도(전문은 아래에 번역해 붙였음)는 우리를 여러 차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인류 공동의 자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행위=우선 놀라운 것은 40여년 전 댐 건설에 임하는 중국 당국의 용맹무쌍함이었다. 댐의 수위가 내려가자마자 옛 성터의 윤곽과 2000여기에 이르는 고분군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 지역을 수몰시킬 당시 이미 이곳이 고대의 유적지라는 사실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였음을 뜻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윈펑댐 공사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 이 지역이 수몰되기 직전이던 1964년 5월 수몰지구인 량민, 추피, 스후, 화피 등 지역에서 지린성박물관 문화재발굴팀이 205기의 고분을 발견한 바 있다. 그러나 댐 공사의 기일에 몰려 당시 발견한 고분 가운데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고 특징이 있는 적석묘·방단적석묘·계단적석묘·봉토석실묘·봉토동실묘 등 30여기만 발굴한 바 있다.


세월의 풍화와 퇴적에 따라 물에 잠기고 진토에 뒤덮인 유적지조차 먼지를 걷어내고 물을 빼내어 옛 모습을 되찾도록 해야 하거늘, 적어도 1500년에서 2000년 전의 유적임이 분명한 고대의 대형 조형물을 물속에 그대로 잡아넣은 중국 당국의 ‘만행’은 옛 사원과 불상을 무참하게 파괴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죄상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탈레반 정권이 불상을 파괴할 때는 “어떤 형식으로든 신의 형상을 만드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원리주의 철학이 작용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도대체 어떤 논리와 생각을 가지고 인류 공동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물에 잠기도록 만들었는지 그 강심장과 무신경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2004년 7월 지린성 지안 등지의 고구려 유적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기 전까지 중국 당국이 지안의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환도산성 등에 대해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음을 떠올릴 때, 중국 당국이 고구려 유적지를 고의로 물에 잠기게 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댐 부지 선정과 공사를 강행할 때 적어도 ‘미필적 고의’로 고구려 유적지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소홀히 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고구려의 옛 성터와 2000여기의 고분군이 물에 잠겼다는 것은 고분에 누워 영원한 잠에 빠져있던 고구려의 귀족과 장수들의 주검 또한 물에 잠겼다는 뜻이다. 그들의 안식을 빌며 고분 내부를 장식했을 고구려 특유의 벽화들 또한 물에 잠겨 선명한 빛깔을 빼앗겨갔다는 뜻이다. 그들의 생전을 기억하며 넣어두었던 청동검 등의 부장품 또한 물에 잠겨 부식돼 녹아갔다는 뜻이다. 그들이 견고하게 쌓았던 성채와 돌무덤 또한 물살에 휩쓸리며 틀어지고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고구려의 유적지이든 아니든 적어도 1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이런 거대한 유적지를 물속에 집어넣어 파괴한 행위는 인류 공동의 유산을 파괴한 범죄행위이며, 이런 나라는 어떤 이유로든 ‘문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회의가 중국 쑤저우에서 열렸다는 건 씁쓸한 희극이다.


신화통신의 용맹스런 단정 보도=우리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이 유적지의 발견 소식을 전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다. 중국의 모든 매체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지니는 <신화통신>은 이번 조사를 진행한 연구원의 말을 따 이 고분군과 옛 성터가 “마땅히 한나라 때의 것”이라고 매우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신화통신>의 보도는 이렇게 단정하는 근거를 하나도 밝히지 않았다. 보도는 “옛 성의 성벽 구조와 쌓은 양식을 볼 때 고구려·발해·요·금 시기와 모두 다르다”며 “이 때문에 이 옛 성은 마땅히 한나라 때 쌓은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벽 양식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근거는 전혀 밝히질 않았다. 또, 고구려·발해·요·금과 다르다고 해서 한나라 때 쌓은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당연히 비과학적인 단정이다. 이런 식의 추론은 “이 연필이 철수 영희 영수 영자가 쓰던 연필이 아니므로 왕 서방의 연필이 틀림없다”는 식의 마구잡이 억지다.


역사학자들이 충분히 검토할 일이지만, 중국 당국이 고구려의 유적지로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한 지안의 고구려 유물군으로부터 100㎞ 동북방에 위치한 윈펑댐 안의 수몰 유적지에 갑자기 한나라 때의 성이 등장한다는 것도 매우 코믹한 발상이다. 한나라의 동쪽에 고구려가 있었는데, 그 동쪽에 다시 한나라 유적이 등장한다는 얘기니, 이 쯤 되면 학자의 양심이나 객관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서글퍼진다.


이렇게 무책임한 주장을 중국의 모든 매체가 인용하는 <신화통신>에 과연 내보내도 좋은가. 당신들이 보기엔 한국이 그렇게도 우스운가. 당신들이 보기엔 학문의 세계가 그렇게도 만만한가.


지금까지의 적지 않은 고구려사 연구 성과에 따르면 성과 무덤을 돌로 쌓은 적석문화는 고구려의 문화를 한족(漢族)의 것과 구별해주는 고구려만의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근거도 대지 않고 이를 “한나라 때의 것”이라고 단정하는 건 한·중 두 나라의 관계 발전을 음해하려는 세력의 음모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때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한·중 관계에 심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사실을 떠올릴 때, 중국 당국은 <신화통신>이 왜 이런 ‘동북공정’ 풍의 비과학적인 기사를 내보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신화통신>은 아무 근거 없이 비과학적으로 이 유적지를 “한나라의 것”이라고 단정했지만, 이 글은 지금까지 드러난 고구려 유적지의 분포와 역사적 상식,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등 전문 학자들의 판단을 근거로 이 유적지를 고구려의 것으로 단정하고 적었음을 밝혀둔다.)


중국인들의 중세 황제사관=고구려 하면 떠오르는 연관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하고 싶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적지 않은 중국 친구들도 사귀었지만, 이들과 지내면서 솔직히 가장 피곤한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편견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문제가 한국인들에게 예민하다는 건 중국인들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맨 정신일 때는 이런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술이 몇 잔 들어가면, 한국에 대한 중국의 비교 우위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지, 이런 유형의 주장이 슬그머니 튀어나온다.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논리의 근거는 간단하다. 조선 왕조가 한 번도 ‘황제’라 칭하지 못했고, 중국에 대해 조공과 사신을 지속적으로 보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조선 왕조가 중국 주변의 어느 왕조보다 열심히 사신과 조공을 보낸 건 사실이다. 이걸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걸 근거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 아직 중세의 황실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케케묵은 중세인들이다.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을 가지고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앞선 ‘사회주의 단계’까지 간 나라에서(월반의 후유증으로 자본주의를 다시 복습하고는 있지만), ‘가장 선진적인 생산력’을 대표하고 ‘가장 선진적인 문화의 발전방향’을 대표하는 중국공산당으로서, 이 따위의 ‘농노제 생산양식’을 대표하는 낙후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는 마땅히 ‘선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특별 재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중국만이 ‘황제’라고 칭하고 이른바 ‘주변국’들은 ‘왕’이라고만 칭해야 한다는 건 중국이 정한 중국의 룰일 뿐이지 전혀 현대 역사학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 이건 중국이 과거 봉건제 시절 매우 괴팍한 독단주의를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중국인들이여, 처지를 바꿔 한번 생각해 보라. 중국은 자기네 나라의 최고 지도자만을 ‘황제’라고 칭하고 다른 나라는 다 ‘신하 나라’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다. 이 웃기는 자기중심적 이론에 따르면 중국에 한번이라도 선물(중국 황제들이 ‘조공’이라 부르는)을 보낸 나라는 다 속국 취급을 당하고, 어떤 이유로든 중국에 외교관을 파견하면 그건 속국이 황제국의 윤허를 받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아Q식 정신세계가 아니라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오묘한 정신세계다.


그런 괴이한 사고방식을 지닌 이 덩치 큰 나라의 주변에 있는 작은 나라들은 얼마나 피곤했겠는지 한번 상상해보라. 당신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네들은 왜 ‘황제’라고 스스로 칭하지 못했는가? 그건 중국만이 황제이고 너네들은 신하나라라는 걸 인정한 것 아닌가?” 이런 황당한 논리가 적지 않은 중국인들의 머리를 아직까지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작 우리의 최고 지도자를 ‘황제’라고 부르기 위해 중국과 민족의 사활을 건 싸움을 했어야 옳다는 말인가?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런 한심스런 중세기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웃나라를 대할 때 나는 무한히 절망스러웠다.


한족과 히브리 민족의 선민의식=지난 5월12일에는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대학원생들 앞에서 강연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강연 원고 전문은 ‘이상수의 중국이야기’ 글방[http://wnetwork.hani.co.kr/lixiangzhu/]에 올려놓았음). 이 자리에서도 한 학생이 ‘조공(租貢)’과 ‘사신 파견’을 근거로 “한국이 부속국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은 그렇게 판단한다고 했다. 그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반박을 해주었다. “황제-부속국의 세계관은 중세의 것이다, 조공과 사신 파견은 당시 일종의 외교 관행이다, 그걸 가지고 부속국이라 판단하는 것은 봉건적 중세적 황실사관이다, 당신들은 ‘가장 선진적인 문화와 생산력의 발전 방향을 대표’(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세 가지 대표 사상’의 내용)해야 할 터인데 어째서 농노제 시대의 생산력과 문화를 대표하려 하느냐.” 질문한 학생은 귀뿌리까지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일들과 부닥칠 때마다 나는 아직껏 ‘황제사관’을 탈피하지 못한 현대의 중국인들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중국의 황제 사관은 유대인의 ‘선민의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이다.


오로지 중국만 황제가 될 수 있고 다른 주변국은 ‘신하나라’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의 황제가 ‘천자(天子)’, 다시 말해 ‘하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 없듯, 천자 또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주변 국가는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시험 삼아 한번 물어보자. 하느님께서는 왜 꼭 아들이 하나뿐이신가? 유대인 전통에서 나온 예수 또한 야웨 하느님의 독생자였던 걸 상기시킨다. 하느님께서는 아들을 좀더 낳으셔서 각 겨레마다 고루 ‘천자’를 하나씩 앉혀주시면 안됐을까?


또 물어보자. 왜 하느님께서는 유독 유대인이나 중국인만 사랑하사 그들에게만 하느님의 아들이 될 자격 또는 그들의 왕만 천자가 될 자격을 부여하셨는가? 하느님이 그렇게 편협하신 분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편협한 신이란 그 선택받은 종족만의 신이지 인류의 신이나 우주의 신이 될 자격은 없는 게 아닌가?


선민의식에 바탕을 둔 사상과 주장은 모두가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나온 망발일 뿐이다. 황제사관과 한족중심주의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라고 물었던 공자에서부터,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겨울을 거둬들이지 않는다”고 설파한 순자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대의 철인들이 성취한 하늘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명정대한 깨달음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배반하는 저급한 의식일 뿐이다.


“황제 실컷 하시게, 나 오랑캐 할테니”=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스스로 황제라 칭한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 1천년 이래 제1대 사건’이라고 불렀다. 단재 선생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우리의 조상님들이 그까짓 ‘황제’라는 명분 때문에 중국과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는 대신 조공 보내고 사신 보내 그들과 잘 지낸 게 아주 현명한 처사였다고 본다. (소중화주의나 사대주의에 찬성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한번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해 매우 해박한 한 중국 지식인과 이 주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중국의 수(隋)나라와 항쟁을 벌였던 고구려의 영양왕(嬰陽王)이 더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하면서 수나라의 ‘신하’임을 인정했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국이 중국의 ‘신하나라’임을 이 때부터 이미 인정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주장에 대해 큰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사료를 잘못 읽은 것이다.


그가 얘기한 대목은 한국의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 8권’에 나온다. 중국의 <수서(隋書)>에도 실려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영양왕은 수나라 왕에게 자신은 “요동분토신(遼東糞土臣)”이라고 칭했다. “요동의 똥 덩어리 땅의 신하”란 뜻이다. 중국 친구들은 이런 대목을 근거로 “너네가 스스로 신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윽박지르고 싶을 테지만, 천만의 말씀, 이건 영양왕이 수왕을 놀린 것이다. 당신은 중원의 황제라 자칭하지만, 스스로를 황제라 부르든 상제라 부르든 우린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하시라! 나를 신하로 칭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시라! 대신 우릴 쓸데없이 괴롭히지 좀 마라! 수백 년 수천 년 쓸데없는 전쟁으로 날을 지새울 순 없지 않나! 너 황제 실컷 해먹어라, 나는 똥 덩어리 땅의 신하라고 불려도 아무 상관없다! 뭐 이런 얘기다. 얼마나 후련한 발상인가. 나는 여기서 코 막히고 귀 막힌 중원의 갑갑한 중심주의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오랑캐의 씩씩한 기상을 읽는다.


그런데 이걸 근거로 이 때부터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난센스라 아니할 수 없다.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가장 어렵다.


똑같은 농담을 우리는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뚫었고(神策突天文)
오묘한 술수는 땅의 이치를 다했구려(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드높으시니(戰勝功旣高)
족한 줄 아시고 원컨대 그만 그치겠다 하시라(知足願云止)


우중문은 처음에 이 시를 받았을 때 을지문덕이 항복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시는 을지문덕이 우중문을 놀린 것이다. “너 대단한 거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너 이겼다 치고 돌아가겠다고 해라”라는 말이다. 수나라 왕은 영양왕의 오랑캐다운 농담에 속아 넘어갔지만, 우중문의 대군은 깔끔하게 후퇴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을지문덕의 군사에 비참한 끝장을 맞이한다. <삼국사기>는 우중문의 군사가 요수(遼水)를 건너 고구려를 칠 때는 30만5000명이었는데, 살아 돌아온 이는 겨우 27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류의 양심으로 돌아보라=<신화통신>을 통해 전해진 중국 지린성 윈펑댐 고구려 유적지 발견자들의 ‘동북공정 사관’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들이 댐의 물이 빠진 기회를 이용해 이 지역을 답사해 유적지를 찾아낸 노고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물에 잠겼던 유물은 그대로 유물일 뿐이다. 여기에 함부로 정치적 시각에 오염된 이야기를 끼얹지 않는 성숙함이 더욱 아쉽다. 그건 고구려의 유적이든 아니든 먼저 인류 모두의 자산이자 보물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건 중국 당국이 이 유적지를 다시 수장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유적지의 운명에 대해 어디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문화재청은 뭐하고 있나. 문화관광부와 외교부는 또 뭐 하고 있는 건가. 직무 유기 아닌가. 빨리 당국이 나서서 윈펑댐 내 유적에 대한 실태 조사와 이 유적지 보호를 위한 조처에 힘써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고구려의 잊혀진 장수들이 무덤에서 빠져나와 윈펑댐 물밑을 둥둥 떠다니는 악몽이 그대들의 꿈속을 찾아갈 일이 두렵지도 않은가.

 

 

* <신화통신> 보도 전문 / 지린성의 한나라 때 옛성 물 위로 떠오르다


[신화망 창춘(長春) 5월9일발 / 기자 저우창칭(周長慶)·마양(馬揚)] 관련 전문가들은 최근 압록강변의 지린(吉林)성 바이산(白山)시 싼다오거우(三道沟)진에서 고대 성터를 발견했으며, 이는 초보적인 연구 결과 한나라 때 고성이다.


이 옛 성터는 오랫동안 압록강 위의 윈펑(雲峰)댐 수면 아래 잠겨 있다가, 최근 댐 수위가 내려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5월2일 압록강변을 따라 고고학 조사연구를 진행한 지린성 장백산문화연구회 회장이자 문사(文史) 전문가인 장푸여우(張福有) 연구원과 지안시박물관 직원 쑨런제(孫仁杰), 츠융(遲勇) 등은 이 옛 성터를 발견해 초보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이 옛 성터는 바이산시 바다오장(八道江)구 싼다오거우(三道沟)진 동압록강 오른쪽 언덕 해발 280m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1m 이상 두께의 진흙에 덮여있다. 이미 수면과 진흙에서 벗어난 성벽을 볼 때, 이 옛 성터는 정방형에 모서리는 둥글게 돼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담장의 높이는 1.5m, 넓이는 4m이고, 석재로 층을 만들어 쌓았으며, 내부에는 돌과 흙을 섞어 쌓았다. 성벽 밖에는 성을 보호하기 위한 해자를 팠는데, 현재 볼 수 있는 해자의 넓이는 4m, 깊이는 1m이다. 서쪽 성벽은 수면위에 드러난 부분의 길이가 180m이고, 남쪽에는 성문이 나 있으며, 성문의 넓이는 6m이다. 북쪽 성벽은 수면 위에 드러난 부분의 길이가 220m인데 성문은 보이지 않는다. 동쪽 성벽은 후대에 지은 건물에 눌렸고, 남쪽 성벽은 싼다오거우 물에 침식을 당했다. 성 안에는 두 곳의 건물터가 있는데, 이 건물터가 성과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장푸여우 등 전문가의 소개에 따르면 옛 성의 안쪽과 북쪽에 10여기의 적석묘를 볼 수 있다. 특히 옛 성 안에 있는 1호묘는 정사각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8m이고 높이는 2m이며, 돌을 2층으로 쌓았다. 이런 종류의 묘장(墓葬) 연대는 서기 4세기 정도의 것이다. 옛 성터 안의 묘장 연대를 분석한 데 따르면 성을 먼저 쌓고 묘장은 나중에 한 것이다. 옛 성의 성벽 구조와 쌓은 양식을 볼 때 고구려·발해·요·금 시기와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이 옛 성은 마땅히 한나라 때 쌓은 것이다.


한 달 기한의 고고학 조사 연구 중 장푸여우, 쑨런제, 츠융과 지린성 지안시, 바이산시, 린장시의 유관 부문 동지들은 함께 행동하고 비바람을 함께 맞으며, 윈펑댐 지구 압록강 오른쪽 언덕에서 량민(良民), 추피(秋皮) 등 8곳의 고분군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서기전 1세기에서 4세기까지의 옛 무덤을 모두 2000여기 찾아냈다. 이 옛무덤과 옛 성터는 모두 윈펑댐 수몰선 아래에 있었다. 1964년 5월 수몰된 지 42년만에 댐 수위가 잠시 41.13m로 낮아지면서 처음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위치가 비교적 낮은 옛 무덤과 옛 성터는 여전히 30m 수심의 물 아래에 있다.

( 2009년 02월 24일 23시 17분   조회:3187  추천: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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