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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씨성(李氏姓)의 기원  
bc8937

 

출전 : 李氏의 뿌리역사  

 

 

律坤 李重宰  율곤 이중재

 

 

 

 

李氏가 생기게 된 동기(動期)는 환인씨(桓因氏 BC. 8937年)에 의해 구전(口傳)으로 나타난 것이 최초 라고 할 수 있다.

 

산해경(山海經)과 목천자전(穆天子傳) 덕행편(德行編)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원문생략>

 

"마고성(麻姑城)이 있던 이전원(伊甸園)은 천제울국(天帝 國)이 있었다. 그 당시 아홉부족(九部族)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장수의 반란으로 인해 환인(桓因)은 천부인(天符印) 3개(天印, 地印, 人印)를 갖고 3,000군도(群徒)를 데리고 만리(萬里)길을 오는 도중 환인(桓因)의 어머니가 병난으로 죽자 桓因은 아홉 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죽기위해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그때 많은 사람에 의해 구출된 후부터 나무 목(木)자에 아들자(子)인 이(李)씨라는 姓씨가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으나 정식으로 使用되지는 않았다. "

 

다음은 중국의 성씨심원(姓氏尋源)의 내용을 위주로 이씨성의 기원에 대해서 나열한것이다. (李氏의 뿌리歷史)

 

성씨심원(姓氏尋源)은 청(淸)나라때 장주(張澍)가 편찬한 책을 1992년 호남성(湖南省) 악록출판사(岳麓出版社)에서 발행 되었다.

 

"서문(序文)에서 보면 초목의 뿌리는 곤륜산(崑崙山)이며 上古代때부터 한일자의 성을 천신(天神), 즉 하늘의 신(神)인 반고환인씨(盤古桓因氏 BC. 8937年)께서 姓氏를 사용해 왔다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李氏姓의 祖上은 풍속통(風俗通)에 의하면 백양(伯陽), 즉 老子의 뒤라고 적고 있으나 먼 선조는 황제(黃帝 BC. 2679年)의 손자(孫子)격인 고양씨(高陽氏 BC. 2491년)의 묘예(苗裔)라고 적고 있다.

 

묘예란 묘족(苗族)의 후손이란 뜻이다. 본시 묘족은 환인씨(桓因氏 BC.8937년)가 원 조상이이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편을 보면 묘족(苗族)은 세 갈래인 삼묘(三苗)로 나누어짐을 볼 수 있다. 후일에 와서 황제(黃帝)는 묘황(苗皇)이라고 되어있다. 본시 황묘는 환인씨(桓因氏)이며 苗皇인 황제는 먼 훗날 후손에 속한다.

 

당(唐)나라 세계표(世系表)에 따르면 전욱고양씨( 頊高陽氏)는 대업(大業)을 낳았으며 대업은 여화(女華)를 낳고 여화는 고도(皐陶)를 낳았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고도는 요(堯)임금을 뜻하고 있으며 요(堯)는 대리(大理)벼슬을 했다. 대리(大理)는 형별을 다루는 직책이다. 요(堯)임금 이름은 방훈(放勳)이며 姓은 이(伊), 또는 이기씨(伊祁氏)라고 했다. 호(號)는 생익(生益)이라 했으며 생익이란 뜻은 은혜로움을 이룬다는 뜻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본시 요(堯)임금의 성(姓)은 이(伊)또는 이기씨(伊祁氏)이고 벼슬이름은 대리(大理)이며 자(字)는 정견(庭堅)이라고 되어있다. 대리(大理)라는 관명은 순(舜), 하(夏), 상(商)나라로 이어지면서 대리(大理)는 관명(官名)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大理라는 벼슬의 명을 받은 부족의 성(姓)은 리씨(理氏)가 되었다고 성씨심원에서 기록하고 있다.

 

위(魏)나라때 이중선(李仲璇)이 공자(孔子)의 사당에 있는 비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씨(李氏)의 선조는 고양씨(高陽氏 BC. 2491년) 후손에서 비롯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후 은(殷)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주신(紂辛 BC. 1154~1122년)에 이르러 리씨(理氏)성을 가진 사람들은 영(靈)이라 했으며 노예들이 날뛰자 은(殷)나라 주신(紂辛)왕은 용서할 수 없어 죄를 물어 죽였다고 했다. 죄를 받고 죽은 자의 처는 진(陳)나라에서 설화씨(契和氏)라는 제후왕으로 있다가 아들을 두었는데 이정(利貞)이라 했다. 그 당시 利貞은 요(堯)임금이 있었던 성(城)인 허(墟)로 도망을 가서 외얏나무 열매를 먹고 살다가 성(姓)을 고쳐 이씨(李氏)라 했다고 성씨심원(姓氏尋源) 李氏편에 기록하고 있다.

 

북사(北史)와 남사(南史)를 당(唐)나라때 저술한 이연수(李延壽)에 의하면 리(理)는 이(李)씨라고 되어있다. 리(理)는 이(李)와 음이 그와 같기 때문에 고쳐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전(仙傳)에 의하면 백양(伯陽)인 老子 이이(李耳)는 나무아래서 태어났다고 했으므로 목성(木姓)이라고 했다. 갈현(葛玄)에 의하면 女子의 소생은 李氏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위(爲)씨 성이며 위(爲)씨는 리(理)씨라고 적고 있다.

 

理氏는 李氏의 옛 글자로 통용된다고 했으며 老子의 조상인 위(爲)와 리(理)의 성(姓)은 벼슬에서 유래되었으므로 위(爲)씨 성(姓)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漢나라때 속국인 제후왕이었던 이익(李翊)의 비문에 의하면 선조가 나타난 것은 기자(箕子)의 싹, 즉 씨앗이라고 했다.

 

조(趙)나라의 고을에서 李氏가 나왔는데 조(趙)나라 장수였던 무안군(武安君)의 왕후는 초(楚)나라와 한(漢)나라 사이에 광무군(廣武君)의 윗자리라고 했다.

 

북사(北史) 이사겸(李士謙)전에 따르면 촉(蜀)나라 때 오랑캐의 부세를 담당하고 있었던 李氏가 있었는데 그는 이특(李特)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진서(晋書)에 따르면 李氏는 성을 바꾸어 양설씨(羊舌氏)라 했으며 석예(釋例)편에는 이씨의 왕후는 위(爲)씨와 李氏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또 관씨지(官氏志)에 의하면 주(周)나라때 독고해(獨孤楷)의 본성은 李氏였으며 아버지는 둔(屯)이었고 제(齊)나라 신무왕(神武王)때 사원에서 전쟁이 있을 당시 독고해(獨孤楷)는 짐승이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싸워 주었기에 독고해의 집안을 믿어 성을 하사했는데 독고씨(獨孤氏)라 하여 제후왕으로 봉했다고 했다.

 

백가성(百家姓)은 1994년에 해남출판사(海南出版社)에서 출간된 원판인 몽학총서이다. 몽학총서(蒙學叢書) 李氏편에 따르면 치음(徵音), 즉 火의 음에 속한다고 했다.

 

본시 리(理)씨의 출현은 농서군( 西郡)이라 했으며 농서군은 지금의 대륙 감숙성(甘肅省) 난주(蘭洲)라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밝히고 있다. 난주는 金城이 있는 곳으로 新羅의 성(城)이 있었다는 기록이 古代의 歷史書인 後漢書와 三國史記 등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은(殷)나라 말 주신왕(紂辛王 BC.1154 ~1122년)때 리이정(理利貞)은 도망을 가 나무아래서 살았기에 성을 고쳐 위(爲)씨와 李氏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기에 老子는 李氏의 조상이라 했다.

 

그 후 조(趙)나라때 이목사(李牧仕)가 있었고 漢나라 때는 이광사(李廣仕)가 있었으며 唐나라때는 이연(李淵)이 있어 李氏는 넓게 분포되었다고 했다.

진(晋)나라때는 유리극(有里克)이 있었고 위(衛)나라 때 는 유례지(有禮至)가 있었던 것은 모두가 리씨(理氏)의 후손이며 李氏와 같은 원류라고 백가성(百家姓)에서 기록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李氏姓의 祖上은 환인씨(桓因氏 BC. 8937년)의 효성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李氏의 姓은 사용하지 아니했다. 따지고 보면 李氏의 성은 요(堯)임금의 관직인 대리(大理)에서 후에 위(爲)와 리(理)라는 관직에서 李氏로 유래되었다는게 정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씨의 성(姓)은 老子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이씨의 직계 조상은 老子인 이이(李耳)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초의 조상은 요(堯)임검이 아닌가 생각된다.

 

黃帝의 증손자인 제곡고신씨(帝 高辛氏 BC. 2482년)의 세 번째 아들이 요(堯)임금이며 이름은 방훈(放勳)이다. 요임금이 天子가 되기 전 대리(大理)라는 벼슬에 있었다. 대리는 형벌을 담당하는 관직이며 요임금의 고향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당산현(唐山縣) 서북 8리 이다. 요임금의 姓은 본시 이(伊)이지만 제후왕으로 등극할 때 姓은 이기씨(伊祁氏) 이다.(중국고대직관대사전<中國古代職官大辭典>41쪽 大理 참고)

 


老子의 먼 조상은 전욱고양씨( 頊高陽氏 BC. 2491년)이다. 황제(黃帝 BC. 2679년)의 친손자로써 하남성(河南省) 복양시( 陽市) 동남이 고향이다. 복양시는 산동성(山東省) 서쪽과 하북성(河北省) 남쪽 경계지역에 접해있는 곳이다.

 


老子는 도가(道家)의 창시자로써 춘추시대(春秋時代 BC.770~476년)때 초(楚)나라 고현(苦縣)사람이다. 楚나라는 본시 주(周)나라의 제후국이다. 고향은 하남성(河南省) 동쪽에 있는 녹읍(鹿邑)인 곡인리(曲仁里)이다. 老子의 姓은 李氏이며 이름은 이(耳)이고, 자는 담(聃) 또는 백양(伯陽)이다. 李耳는 주나라 왕실(王室)의 수장사(守藏史)로 있었다. 수장사란 요즈음 같으면 국사편찬위원장과 같은 직책이다.(史記辭典 523쪽 堯 참고)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영( )씨인 진시황제(秦始皇帝)의 본래 성(姓)은 李氏의 출생이라고 성씨심원(姓氏尋源)에서 밝히고 있다.

 

자기의 姓氏를 가지고 있어도 왕이 내리는 姓을 따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신하(臣下)가 죄를 짓고 멀리 도망가 다른 姓氏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또 부모나 선조가 죄를 지었을 때 자기의 신분을 숨기고 성(姓)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그 뿐인가! 부모 없이 떠돌다가 다른 사람의 성씨를 쓰는 경우도 있고 경우에는 벼슬의 관직에서 성씨가 유래되는 예도 있다.

 

그리고 나라이름에서 연유되어 姓氏가 되는 경우도 많으며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지명을 따서 성을 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조상이나 선조들이 벼슬을 받은 데서 성씨를 쓰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성씨를 가진 경우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받은 자(字)나 시호(諡號)로 성을 사용하는 예도 있었다.

 

성씨심원(姓氏尋源) 제 17권에서 李氏, 王氏, 趙氏, 張氏는 풍속통(風俗通)에서 황제(黃帝 BC. 2679年)가 하사한 성(姓)이라고 적고 있으나 사서(史書)인 주서(周書)의 로사(路史)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즉 李氏에서 유래된 姓은 서씨(徐氏), 병씨( 氏), 안씨(安氏), 두씨(杜氏), 호씨(胡氏), 홍씨(弘氏), 곽씨(郭氏), 마씨(麻氏), 선우씨(鮮于氏), 장씨(張氏), 아포씨(阿布氏), 아질씨(阿跌氏), 사리씨(舍利氏), 주사씨(朱邪氏), 동씨(董氏), 나씨(羅氏) 등으로 분포되었다고 성씨심원(姓氏尋源) 307쪽에서 적고 있다.

앞에서 보는 것처럼 姓氏의 本貫이 제 각각이고 한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씨족(氏族)과 혈통(血統)은 멀어지고 말았다.

 

한국의 경우 족보가 생긴 이래 혈족(血族) 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씨(李氏)나 김씨(金氏) 박씨(朴氏) 장씨(張氏), 조씨(趙氏)등 할 것 없이 모두가 환인씨(桓因氏)에 의해 한일(一)자의 성씨에서 유래된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다. 고로 굳이 같은 본관(本貫) 같은 성씨(姓氏)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씨족(氏族)간의 李氏니 金氏니 朴氏니 하여 혈족 간에 지나친 경쟁심리를 유발하여 급기야는 상쟁(相爭)의 불씨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李氏의 뿌리를 上古史 때부터 철저하게 고증하면서 全州李氏니 金氏니 朴氏니 安氏니 張氏니 하는 따위는 아무 가치가 없음을 실감했다. 때로는 李氏가 영씨( 氏)로 또는 장씨(張氏)로 그리고 안씨(安氏)로 바뀌는 것을 보고 성씨의 뿌리라는 사실이 무의미함을 보았다.

 

고로 굳이 같은 성씨를 주장할 필요성이 없는 것을 느꼈다. 또한 요즘 호주제도의 폐지도 역시 같은 의견이다.

 

古代에는 호주제도를 아들이나 장남 따위에 고집하지 아니했다. 호주제도는 딸이건 사위든 능력 있는 자가 맡아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와 같이 姓氏 또한 마찬가지이다. 굳이 李氏니 金氏니 朴氏니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歷史가 잘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李氏의 뿌리歷史를 마무리 하면서 참으로 한民族은 단일민족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앞으로 한반도에 있는 모든 성씨들은 다른 姓氏들과 다르다는 것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民族의 같은 혈통을 지닌 같은 뿌리이기 때문이다."

 

 

 

 

( 2009년 02월 24일 22시 39분   조회:4522  추천:303 )   
이재호 2012-12-09 15:21:52
가문이 잘못 입력 된것 같아요 자료 도 틀리고
이 름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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