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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토대제비문의 염성(鹽城)에 관한 고찰 - 강소성 일대가 염성이다  
자료실

   思無不通 (2004-01-30 18:42:59, Hit : 2237, Vote : 318) 
 
 
 
  광대토대제비문의 염성(鹽城)에 관한 고찰 - 강소성 일대가 염성이다.
 

안녕하십니까 ?

  차이나의 고구려사말살기도음모(동북공정)와 맞물려 광개토대제의 호태왕비도 세간의
  주목을 많이 끌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제의 호태왕비에 관한 논문도 많고 설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이 왜곡한 임나일본부의 남한 내의 존재여부였을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왜곡된 것이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습니다.

  호태왕비문에 엄청난 비밀이 많이 쓰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그 것을
  밝히는데에는 소홀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이처럼 차이나의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면서 쫒기듯이 허둥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는 호태왕비문의 아주 작은 단초를 보고 추리를 해 볼까 합니다.

  광개토대제의 호태왕비문에는 수 없이 많은 성(城)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 중의 하나이지만 저를 붙잡는 성(城)의 이름이 바로 염성(鹽城)입니다.
 
  제가 올린 글을 송준희 선생님이 대신 올린
  "몽롱탑(朦朧塔)의 전설 - 당태종이 우물에 숨은 사연" 에 대하여 알아보다가 그 염성이
  광개토대제의 비문에 나온다는 것을 안 것이지요.

  먼저 광개토대제의 그 비문 원문을 보면
  鹽城, 倭滿倭潰城, 大□□□□□□□□□□□,九盡?陏尖羅人戎兵 .... 이하 생략
  염성  왜만왜궤성  대 .......................... 구 진?수첨라인수병....
   (이 원문은 율곤학회에서 가져 왔습니다.)

 
  여기에 염성이 보이는데 뒤에 왜와 관련한 문귀가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한 염성이 바로 제가 올린 몽롱탑이 있는 염성시가
  바로 광개토대제의 비문에 나오는 염성이었습니다.
  글자와 음이 같아서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의 글을 보면 이해하실 겁니다.

  盐城市城区为全市政治、经济、文化和交通的中心。原是盐都县的一部分。
  城区政府驻地盐城,三国时期尚为海滩村落,名“瓜坨村”,后因盐业发展,
  逐渐发展成为盐业集散中心集镇。盐城何时建城,尚无确切记载。
  据晋安帝时改名盐城的历史,可能建城即在此时。晋时所建盐城为土城,城以瓢形,瓢根在西,
  寓拦海挡潮之意,故至今仍以“瓢城”称盐城。明朝永乐十六年(1418年)为防倭寇备战,改建砖城,
  并在城外筑月城,驻军把守。1938年拆除城墙时,曾发现有刻有“洪武”年号的城砖,可证实建于明代。
  城墙高阔,周围七里许,东西及南北直径各二里余,辟有东、西、北三门,濠河深约30米,围绕全城,
  有水门将河水引入城内,称市河。明万历七年(1579年)增开南门,并筑有门楼,
  因此楼为知县杨瑞云所修,故名杨楼。唐代的盐城,是中外交往的海口之一。
  当时日本、高丽等国的使节、商贾,常经由此地渡海往来。
  所以唐人又称盐城为“剧邑”,可见盐城在江淮平原的重要地位。

  위의 글은 아래에서 가져 왔습니다.

      http://www.yancheng.gov.cn/intro/chengqu/index1.htm (염성 城區)

   염성시의 성구(城區)는 염성시 전체의 정치, 경제, 문화와 교통의 중심이다.
   원래는 염도현(榮縣)의  일부분이었다. 성구정부는 염성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해변 모래사장(海灘 , 해탄)을 중심으로 한 촌락 중심이었는데
   이름을 "과타촌(瓜坨村 , 오이 무더기 마을)이라고 했으며 후에 염업(鹽業, 소금업)이
   발전하여 염업이 집산되는 중심지역으로 되었다.

   염성(鹽城)은 언제 건축되었는가 ?   아직 정확한 기록이 없다.(?)
   진(晋)나라 안제(安帝) 때 염성의 이름을 바꾼 역사가 있는데 이 시기에 성을 쌓았을 것이다.
   진나라시에 쌓은 염성은 토성(土城)이었는데 성(城)의 모양이 표주박처럼 생긴 성이었다.
   서쪽에 표주박을 심었었다. 바다를 막고 조류를 막는다는 뜻에서 빗대어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표성(瓢城, 표주박성, 바가지성)이라 부른다.

   명나라 영락(永樂) 16년 (1418년) 왜구를 막고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벽돌로 성을 개축했다.
   더불어 성(城) 외곽에 월성(月城)을 쌓은 것이 있는데 군대를 주둔시키고 성을 지키게 했다.
   1938년 성 담장이 터져 제거할 때 "홍무(洪武)"라고 새겨진 성의 벽돌을 발견하여 이 성이
   명나라시대에 건축이 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성의 담장은 높고 넓으며 주위는 7 리(里)에 이른다. 동서와 남북의 직경이 각 2 리(里)여에
   이른다. 동, 서, 북 3 개의 문이 있다. 호(濠, 해자)가 있는데 그 깊이가 30 m 인데 온 성을
   둘러싸고 있다. 수문이 있어 성내로 강물을 끌어들이는데 시하(市河)라 한다.
   명나라 만력(萬歷) 7 년 (1579년) 남문을 증개하여 문에 누각을 세웠다.
   이 누(樓)를 양서운(楊瑞雲)이 개수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이름이 양루(楊樓)이다.

   당나라때의 염성은 중국과 외국과의 왕래의 관문의 하나였다.
   당시의 일본, 고려(고구려)등의 사절, 장사아치들이 이 곳을 통해 늘상 바다를 건너  왕래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당나라 사람들은 염성을 "극읍(劇邑)"이라고 했다.
   가히 염성은 강회(江淮)평원의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이 차이나 강소성 염성시정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yancheng.gov.cn)의
염성의 성구(城區)를 설명하는 란에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염성(鹽城)이 염업이 발달하여 얻은 지명이며 또한 실지로 성(城)을
쌓은 기록이 있다는 것인데, 염성을 쌓은 시기와 관련하여서는 아직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
없다고 해 놓고는 진(晉, 晋)나라 시기에 개축을 한 사실로 그 축성연대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가 개명(개축)했다는 내용을 설명하다가 난데없이 영락(永樂)16년이라는
구절이 나오니까 갑자기 명나라 성조(成祖) 16년(1418년)을 갖다 붙여 놓았습니다.
진나라 안제(安帝)는 사마덕종(司馬德宗)으로 바로 광개토대제가 고구려를 통치하던
시기의 왕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위 진 안제때 개명을 했다는 이 염성은 바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제때에 쌓은 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락(永樂)16년은 서기 406년 병오(丙午)년이며 진나라 안제 의희(義熙)2년이다.

또한, 광개토대제의 비문에 나오는
鹽城, 倭滿倭潰城, 大□□□□□□□□□□□,九盡?陏尖羅人戎兵 ....
염성  왜만왜궤성  대 .......................... 구 진?수첨라인수병....

이 구절은 광개토대제 영락10년과 14년 사이에 나오는 기록이며,
또한 영락14년 기록을 보면,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 □□□□□石城□連船,
□□□□□率□□□僕句□□□□, 相遇王重要截盪刺倭寇潰敗斬殺無數, 이라고 되어 있어
영락 14년 갑진년 왜가 수시로 대방(帶方)경계를 침입하여 왜구를 궤멸시켜 참살한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염성을 설명하는 위의 차이나 설명에서
永乐十六年(1418年)为防倭寇备战,改建砖城 (영락16년 위방왜구비전 개건전성)을 보면
왜구의 침입을 마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벽돌로 성을 개축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위 광개토대제의 왜구 궤멸시킨 사실과 연호 등을 미루어 봤을 때
염성(鹽城)은 광개토대제 때 이미 이 지역을 고구려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고,
성을 쌓고 개축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염성은 고구려 광개토대제 영락16년(406년)에 성을 쌓은 것이 확실합니다.

이미 몽롱탑의 전설을 통해 이 지역에서 광개토대제 후대의 연개소문 시절에도
당태종과의 전투가 있었듯이 광개토대제가 양자강 이남까지 진출한 사실이
실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제의 비문에 나오는 염성(鹽城)은 현재 차이나의 강소성 염성(鹽城)지역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확실합니다.

( 2009년 02월 08일 17시 57분   조회:4027  추천:405 )   
이 름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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