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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춘추는 단국(檀國)의 기록과 사적(史籍)이 있었음으로 저술이 가능했다.   
관리자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에는 제후들에게도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앙숙(盎肅)이라는 무도한 자를 선라(仙羅), 속진과 개마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토벌 하였으며, 10월 추수를 마친 후에는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유의 깊게 볼 만하다. 우순(虞舜)에게 남국(藍國), 회대(淮岱)지방을 감독하라 했더니 슬쩍 땅을 훔쳐서 자기 땅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그 땅을 정벌하여 모두 내쫓으니 천하의 제후들이 알현하러 왔다는 기록도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태자 부루(扶婁)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사공(虞司空)과 만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태자는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방법을 전하여 주었다고 한다. 또 회대(淮岱)지방은 분조(分朝)를 두었다고 하는데, 분조(分朝)란 나라를 둘로 나누었다는 뜻이다. 회대(淮岱)지방이 단국의 수도인 평양(平壤)으로부터 너무 멀어 제후왕을 뽑아 그 곳을 대신 감독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또 부도지 제 14장에 기록을 살펴보면 황궁씨의 후예 6만이 부도에 이주하였으며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기고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보내 이를 보게 되는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남방 해양족으로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호주에서까지 단국을 찾아왔을 것으로 보인다.

환웅천황시대에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사해제족을 초청하였고, 단국천황시대에 매년 조시(朝市)를 열었다는 기록은 바로 환국(桓國)과 단국(檀國)이 국제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상고시대에 법과 질서를 관장했던 주축국가였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중국 역사서의 원천이라고 하는 서경(書經)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공자(孔子)의 집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춘추시대에 공자의 손에 의해 쓰여 진 것으로 여겨진다.

 

서경(書經)/순전(舜典)/우서(虞書)/二卷

 

歲二月(세이월) 東巡守(동순수) 至于岱宗(지우대종) ()望秩于山川(망질우산천) 肆覲東后(사근동후) 協時月(협시월)正日(정일) 同律度量衡(동률도량형) 修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수오례오옥삼백이생일사지) 如五器(여오기), 卒乃復(졸내복)

 

이월에 동쪽으로 순행하여 태산(泰山)에서 시제(柴祭)를 지내고 차례로 산천에 망제를 지냈다. 그리고 동쪽에 천자를 배알하였다. 시기와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잡고, 음률과 도량형을 통일하고, (), (), (), (), () 등 다섯 가지 예와 다섯 가지 옥홀(玉笏)과 홀밑에 까는 붉은색, 검은색, 흰색의 세 가지 색깔의 비단과 경대부(卿大夫)들이 드는 새끼 양과 기러기 두 가지 산 짐승과 사()가 드는 꿩 한 가지 죽은 짐승 및 처음 만날 때의 예물을 제정하셨다. 나머지 다섯 가지 홀은, 의식이 끝난 뒤 돌려 주었다.

()이란 제례에 쓰이는 물건으로 옥() 또는 상아, 대나무 등으로 만들어 대신들이 손에 쥐는 패()이다. 다른 말로는 수판(手板)이며 패()에는 제례의 순서를 적어 놓은 것이다.

 

이 기록에서 보면 공자의 기록이라 할 만큼 유교적 의례에 대해 비교적으로 소상히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단군세기(檀君世紀)와 규원사화(揆園史話)의 기록과 일치 또는 상충되는 바가 있으니 어느 쪽의 기록이 맞는지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도산에서 제후들을 소집한 태자 부루(扶婁)는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방법을 전하여 주었다. 이에 대해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에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발췌

紫府先生 發貴理之後也. 生而神明得道. 飛昇 嘗測定日月之纏. 次推考 五行之數理 著爲七政運天圖 是爲 七星曆之始也. 後 蒼其蘇 又復演其法以明 五行治水之法. 是亦 神市黃部之中經來也. 虞人姒禹 到會稽山 受敎于朝鮮 因紫虛仙人 求見 蒼水使者扶婁 受黃帝中經 乃神市黃部之 中經也. 禹取而用之 有功於治水.”

자부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나면서부터 신명의 도를 깨달았다. 하늘에 날아 올라가 일찍이 해와 달의 운행을 헤아려 정리하였다. 오행의 셈하는 이치를 미루어 생각함으로써 칠정운천도를 저술하였다. 이것이 칠성력의 시작이다. 훗날 창기소가 또 그 역법을 재연함으로써 오행치수의 방법을 밝혔다. 이 역시 신시황부의 중경에서 유래하였다. ()나라의 신하 우()가 회계산에 이르러 조선(단국)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허선인을 통하여 창수사자 부루 뵙기를 청하였고 황제중경을 받았으니 곧 신시황부의 중경이다. 우가 그것을 받아 사용하니 치수에 공이 있었다.“

회계산(會稽山)은 양자강 남쪽에 있다. 창수사자(蒼水使者)는 오월춘추(吳越春秋)에 창수사자가 직접 하나라 우임금에게 금간옥첩을 전했다고 기록 하였다. 위 내용에서 우인사우(虞人姒禹)는 우나라(순님금)의 신하이며 아직 님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금간옥첩, 황제중경, 신시황부중경은 모두 같은 책이다.

나아가서 태자부루께서 제후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가 그토록 숭배하는 제천대례는 모두 환국에서 전해준 것이 된다.

우순(虞舜)이 도요(陶堯)로부터 권좌를 찬탈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천자를 배알하여 윤허를 받는 일이고 그 다음으로 천문력을 정리하고 도량형과 음률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공자의 기록에 나오는 사근동후(肆覲東后)이다. 그후 단국황제는 우순(虞舜)에게 남국(藍國), 회대(淮岱)지방을 감독하라 했는데 슬금슬금 이웃나라의 땅을 훔쳐서 자기 땅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그 땅을 정벌하여 모두 내쫓았다. 그러자 천하의 제후들이 알현하러 왔다는 기록이 또한 사근동후(肆覲東后)가 아니겠는가! 사근동후(肆覲東后)는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뜻도 담겨있다. 사근동후(肆覲東后)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존 한자사전

 

방자하다(放恣); 베풀다(); 늦춰주다(); 저자(); 말끝 고치다(更端辭); 외양간(); 고로(); 벌리다(); 길다(); 궁구하다()

 

뵈옵다(); 제후가 천자를 뵙다(諸侯秋見天子); 만나다(); 겨우() (진흙근) + (볼견)

 

 

한글 오피스 2010

 

임금 후; -6; [hòu]

임금, (), 왕비, 후비, 토지의 신()

명사후비(后妃)’의 준말.

 

更端辭 경단사 :

 

고칠 경{다시 갱}; -7; [gēng,gèng]

고치다, 다시, 재차, 개선하다, 새로워지다, 고쳐지다

 

바를 단; -14; [duān]

바르다, 곧다, 옳다, 바로잡다, 진실

 

말 사; -19; [cí]

, 논술, 하소연하다, 말하다

명사

사상을 말이나 글로 나타낸 것.

② ⦗문학한문의 한 체흔히 운어(韻語)를 씀.

 

이렇게 사전적 해석을 조합하면 제후가 경건한 마음으로 입조심하며 동쪽에 계신 천자를 뵙고 하명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왜 우리학자들이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공자는 똑바로 기록했는데 우리가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 이것이 사대주의, 식민사상이다.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저들의 제후였다는 열등의식부터 기조로 깔고 해석하니 그렇다. 이런 사고방식이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유교를 숭상하던 양반 선비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백일사의 기록은 더욱 빛나고 소중해진다.

사근동후(肆覲東后)를 환웅천황시대에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사해제족을 초청하였고, 단국천황시대에 매년 조시(朝市)를 열었다는 기록과 연결하면 환국(桓國)과 단국(檀國)이 국제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상고시대에 법과 질서, 제천대례를 관장했던 주축국가였으며 사방에서 제후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신시(神市)에 찾아와서 머무르며 환국천황을 경배하고 은혜와 복덕을 구해갔다는 부도지의 기록이 사실인 것으로 정리된다.

 

 

 

 

 

동이(東夷)에 관한 공자(孔子)의 다른 기록

 

 

공자는 춘추 말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공자의 생몰년은 bc.551~ bc.479년이므로 이를 단국시대 년표로 비교하면 bc.54639대 단제(檀帝) 두홀(豆忽)때이다. 당시 중국 대륙은 전쟁을 하느라 사회가 몹시 혼란한 상태에 있었다.

맹자는 당시 시대 상황을세상의 도()가 쇠퇴하여 부정한 말과 포학한 행동이 생겨나 신하로서 군주를 죽이는 자가 있으며,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죽이는 자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비관했던 공자는 평소 바다 건너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공자가 말한 동이(東夷)에 대한 기록은 논어(論語)에 있다. 공자(孔子)가 구이(九夷)에 가서 살려고 하자, 혹자가 말하기를,“누추해서 어떻게 살겠는가?”하니, 공자가 말하기를,“군자가 살고 있는데 어찌 누추한 것이 있겠는가.”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띄워 바다로 나가 구이(九夷)가 사는 곳으로 가고 싶다.’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공자가 뗏목을 타고서라도 가고 싶다는 말은 실천에 옮겼을 때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으므로 아마도 산동반도에서 출발하여 장산군도를 따라 요동반도 대련지구로 이동하는 경로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군자국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실재로 단국의 수도인 평양이 있었던 곳이며 청구시대에는 삼신산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도 그러므로 孔子九夷에 살고 싶어하였다. 故孔子欲居九夷也.”라고 기록하였다.

 

또 공자의 7대 후손인 공빈(孔斌)이 지었다는 동이열전(東夷列傳)이 있는데 이 글은 단기(檀紀) 4283(서기 1950)에 경찰교양협조회(警察敎養協助會)에서 간행한 발해국 대야발(大野勃) 저서 단기고사(檀奇古史)164쪽 부록에 실려 있다고 한다.

또 같은 글이 홍사(鴻史)라는 책의 서문으로 써지기도 하였는데 그 내용은 똑같고 출전만 틀리게 동국열전(東國烈傳)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東夷列傳 全文

 

東夷列傳(註 檀奇古史 附錄)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星分箕尾 地接鮮白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立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余亦欲居東夷之意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吾先夫子 印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字 子順)

동방에 오랜 나라가 있으니 이름하여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별자리 분류로는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의 방향(동북방)이며, 땅은 선백(鮮白)에 접해 있었다. 처음에 신인(神人) 단군(檀君)있었는데 마침내 아홉 이족(九夷)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었으며 요()임금과 더불어 병립하였다.

순임금(虞舜)이 동이(東夷)에서 태어나서 중국에 들어와 천자가 되어 다스리기에 이르니 많은 왕들 중에서 탁월하게 뛰어난 분이셨다.

자부선인(紫府仙人)이 학문에 통달하고 다른 사람보다 지혜가 있으니 황제 헌원이 그에게서 공부하고 내황문을 받아와서 염제 신농씨 대신 임금이 되었다.

소련과 대련(동이족으로 공자 선생 등이 '효경'등 에서 언급이 자주 되는 인물)이 부모의 상을 잘 치러 3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3년을 근심하니 나의 할아버지께서 칭찬하셨다.

() ()가 도산(塗山)에서 회맹(會盟)할 때에 부루(扶婁)께서 몸소 임하시어 나라의 경계를 정하였다.

유위자가 하늘이 낳은 성인으로 훌륭한 이름이 중국에도 넘쳐흐르니 이윤이 그 제자로 공부해서 은나라(동이족왕조) 탕임금의 어진 재상이 되었다.

그 나라는 비록 크나 스스로 교만하지 아니하며 그 병력은 비록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으며, 풍속이 순후(淳厚)하여 길을 가는 사람이 양보하고 먹는 사람은 밥을 상대에게 권했었고 남녀가 처하는 곳을 달리하여 앉은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니 동방예의의 군자국(東方禮儀之君子國)이라고 할 만 하다.

이런 연유로 은나라 태사(太史)였던 기자(箕子)가 주()나라 조정에서 신하 노릇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서 동이(東夷)의 땅에 피해 가서 거처하였고 우리 선대 어른(공자)께서 동이에 거처하고자 하셨으며 누추하지 않다고 여기셨다.

내 친구 노중련(魯仲連) 역시 동쪽 해안 지방을 답사할 뜻을 가지고 있고 나도 역시 동이에 거처하려는 뜻이 있었는데 왕년(往年)에 동이의 사절이 (우리나라 즉, 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살펴보니 그 몸가짐이 대국인(大國人)의 금도(衿度)가 있었다.

 

동이는 대개 천 여 년 이래로부터 우리 중화(中華)와 서로 우방의 의리가 있어서 나라 사람들이 서로 와서 거처하고 가서 사는 경우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우리 선대 어른께서 동이가 누추하지 않다고 여기신 것은 그 뜻 역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깊이 느낀 바가 있어 이 진상을 기록함으로써 후인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나라 안리왕(安釐王) 10(bc268) 곡부(曲阜) 공빈(孔斌)이 기록하다. (), 자순(子順)

 

공자(孔子)는 춘추(春秋)의 저자라고 맹자(孟子)가 말했다. 그런 후에 수많은 간신적자들이 벌벌 떨었다고 한다. 그 만큼 춘추(春秋)라는 책은 엄중한 역사의 평가가 담겨있었다는 말이다. 춘추(春秋)는 노나라의 역사서이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일러 기술(記述)하되 지어내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공자(孔子)가 자신의 저술이 옛 일과 사적에 따라 있는 것을 기록했을 뿐 스스로 지어내지는 않았다고 한 말이다.

그 기록들이 대부분 단국(檀國)의 기록과 사적(史籍)이었음을 아는가?

순임금(虞舜)이 동이(東夷)에서 태어나 서토의 천자가 되었다는 말과 자부선인(紫府仙人)께서 황제 헌원에게 전쟁하지 말고 뉘우치도록 가르치고 삼황내문이라는 책을 내려주었으며, 소련과 대련이 부모의 상을 잘 치렀던 효경, 도산회의(塗山會議), 유위자의 제자 이윤, 그 밖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산해경(山海經) 조차도 조선(朝鮮)의 경전(經典)이라는 뜻이니 공자(孔子)는 단국(檀國)의 기록과 사적(史籍)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춘추(春秋)를 저작하지 못했을 것이고 공자의 그런 춘추필법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스스로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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