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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燕)과 제(齊)의 혈투 ③전단, 齊나라를 지켜내다  
노성매



  BC 2세기 후반의 전국시대 말기.

  수백 년간 이어졌던 살육의 시대.

  거리에는 장정들의 씨가 말랐고,

  나라마다 곳간은 텅 비었으며,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어,

  죽을 날을 받아둔 힘없는 노인의 형세.


  진(秦)이 통일을 했다기보다

  중원의 나라들이 스스로 무너졌다고 봄이 옳을 것입니다.

  전국시대 가장 피해를 입지 않은 진(秦)나라는,

  산동(山東) 밖에 있어 그나마 국력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동아시아 전체가 요동치며

  재편되는 과정에서,

  전국칠웅의 몰락, 삼한(三韓)의 쇠멸,

  진(秦)의 도약과,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연(燕)과 제(齊)의 혈투 역시

三國의 성립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진한편.

최치운이 말하기를,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들이 도망을 와서 살던 곳으로,

그들이 도망와 살던 탁수(涿水)의 지명을 붙여, 사탁, 점탁 등으로 마을 이름을 불렀다.

崔致遠云 辰韓本燕人避之者 故取 涿水之名

稱所居之邑里 云沙涿 漸涿等




=============




 3. 전단, 齊나라를 지켜내다




자치통감 권4 周紀


난왕 32년[BC 283년]


제나라에서 요치가 난을 일으켜 민왕을 시해하였을 때,

아들 법장(法章)은 신분을 숨기고

거 땅의 태사(太史) 교씨(敫氏)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공손가는 민왕을 수행하다가, 왕을 잃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아침에 집을 나가 늦게 돌아오면

나는 대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

네가 저물녘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구 밖에 기대어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네가 지금 임금을 섬기고 있다가

왕이 달아났건만 왕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

네가 그런데도 어찌 집으로 돌아왔느냐.’


*공손가는 왕을 모시다가 왕의 죽음을 알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께 차마 그 말을 못하고,

왕이 간 곳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듯함.


왕손가가 마침내 저잣거리로 들어가 크게 소리치기를

‘요치가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민왕을 시해하였다.

나와 함께 요치를 죽이고자 하는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라.’

저잣거리에서 왕손가를 따른 사람이 4백여 명이었다.


그들과 더불어 요치를 공격하여 죽였다.

이에 제나라 조정에서 도망 나온 신하들과 함께

민왕의 아들을 찾아 왕으로 옹립하고자 했다.

법장은 그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오랫동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법장을 옹립하여 제나라 왕으로 삼았고,

거성(莒城)을 보존하고서 연나라에 항거하였다.

그리고 온 나라에 널리 알렸다.

‘법장이 왕으로 옹립되어, 거(莒)에 계신다.’


난왕 임오 36년[BC 279년]


이보다 앞선 난왕 32년과 33년 무렵에

연나라가 안평을 공격하였는데,

임치의 시연(市掾)으로 있던 전단이 마침 안평에 있었다.


전단은 종인(宗人)을 시켜 수레바퀴의 곡(穀)과,

곡을 연결하는 축(軸)에 철망을 만들어 씌우게 했다.


안평성이 무너지고,

성중의 사람들이 다투어 탈출하려고 성문으로 몰려들었다.

수레바퀴 밖으로 돌출된 곡들이 서로 부딪치자,

바퀴의 축이 부러져 수레들이 주저앉는 바람에

모두 연나라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전단과 종인만이 철롱으로 화를 면하고

즉묵(卽墨)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전국시대의 수레는 전체가 나무로 제작됨.

삼국지를 보면 후한 말기에도 중원에는 나무수레였던 것으로 나옴.


이때에 제나라 땅은 모두 연나라에 복속되었는데,

오직 거(莒)와 즉묵만이 항복하지 않았다.


악의가 우군(右軍)과 전군(前軍)으로 거성(莒城)을 포위하게 하고,

좌군(左軍)과 후군(後軍)으로는 즉묵을 포위하게 했다.

이에 즉묵대부는 싸움에 나갔다가 전사하였다.


즉묵사람들이 말했다.

‘안평의 싸움에서 전단과 종인은 철롱으로 수레를 온전히 보존하였다.

이를 보건대 그는 지혜가 많고 병법에 익숙한 사람이다.’

라고 하고서,

전단과 종인을 함께 세워 장수로 삼고, 연나라에게 항거하였다.


악의가 거와 즉묵을 포위한 지 만 1년이 되어도 항복받지 못하자,

포위를 풀고 군사들을 성(城)에서 9리 뒤로 물려 진을 구축하게 했다.

그리고 영을 내리기를,

‘성안의 백성들이 나오거든 사로잡지 말고,

어려운 사람이 있거든 구휼해줄 것이며,

그들이 본업[생업]으로 되돌아가게 하여

제나라의 새로운 백성으로 여기고 어루만지도록 하라.’


거와 즉묵이 3년이 되도록 함락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 연소왕에게 악의를 참소하기를,


‘악의는 지략과 계교가 남들보다 뛰어나서

제나라를 공격하여, 단숨에 70여 성을 함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항복하지 않은 곳이 두 성일뿐인데,

악의의 능력으로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3년 동안 공격하지 않는 까닭은,

멀리 마음을 두고

군사들의 위세로만 제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켜

남면하여 왕노릇을 하고픈 욕심 때문입니다.

지금 제나라가 모두 복속되었건만,

아직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의 처와 자식이 연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나라에는 미인들이 많으니,

장차 그 처와 자식들마저 잊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왕께서는 그 점을 헤아립시오.'


소왕이 이에 큰 연회를 베풀어 모두 모이게 하고

참소한 자를 끌어내고 꾸짖어 말했다.


‘선왕께서 나라를 들어 현자에게 예를 표한 것은

땅을 탐하여 자손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덕이 박한 자가 왕업을 물려받게 되어

천명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나라사람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제나라가 무도(無道)를 행하여

우리나라의 혼란을 틈타 선왕을 시해하였고,

과인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니,

그 통한이 골수에 사무친다.

그런 까닭에 널리 뛰어난 신하들을 구하였고,

밖으로는 빈객들을 청하여

원수 갚기를 도모하였다.

그리고 그 중에 성공시키는 자가 있다면

그와 함께 연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이제 악의가 과인을 위하여 몸소 제나라를 격파하고

제나라의 종묘를 헐었으며,

선왕의 원수를 갚았으니

제나라는 악의가 그의 능력으로 취한 것이지

연나라가 얻은 것이 아니다.

악의가 만약 제나라를 소유할 수 있어

연나라와 나란히 열국이 되고

연의 우방으로 결속이 되어

제후들의 괴롭힘에 함께 대적해준다면

이것은 연나라의 복이며,

과인이 원하는 바인데,

그대는 어찌 감히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느냐.’

하고는 그를 참수했다.


그리고 악의의 처에게 왕후의 복식을 내리고,

그의 아들에게는 공자(公子)의 복식을 내려주었다


제후의 위용인 말 4필이 끄는 노거에,

그 뒤로 수레 1백 대를 따르게 하고는,

연의 재상에게 명을 받들고 가게 하여,

악의에게 당도하면,

악의를 세워 제나라 왕으로 삼게 했다.


악의는 두려워 감히 그 명을 받지 못하고

절을 하고는 글을 올려 죽음으로써 맹서를 했다.

이로 말미암아 제나라 사람들은

군신지간의 의(義)에 감복을 했고,

제후들은 군신지간의 굳건한 믿음을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는 참소를 도모하는 자가 없었다.


얼마 후에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였다.

혜왕은 태자가 되었을 때부터 항상 악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전단이 연의 혜왕과 악의 간에 틈이 있다는 것을 듣고,

연나라에 반간계를 놓아 말을 퍼트리기를,

‘제나라 왕은 이미 죽었고, 함락되지 않은 성은 2개뿐이건만,

악의는 연혜왕과 틈이 있자 주벌이 두려워

감히 귀국하지 못하고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으로 명분을 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군사들을 이끌고

제나라에서 남면하여 왕노릇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제나라 사람들이 아직 그에게 귀의하지 않자

즉묵을 느긋하게 공격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다른 장수가 와서 즉묵을 없애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연혜왕은 예전부터 악의를 미심쩍게 여기고 있었는데,

제나라의 반간계를 듣자,

기겁(騎劫)으로 장수를 대신하게 하고 악의를 소환했다.

악의는 연혜왕이 좋지 않은 감정으로

기겁으로 대신한 것을 알고는

마침내 조나라로 달아났다.

연나라 장군과 사졸들은 이로 말미암아 화를 내고 원망하다보니,

화목하지 못하게 되었다.


………


전단은 사졸들이 전투할만하다는 것을 알자,

몸소 판축과 가래를 잡고 사졸들과 일을 분담하였으며,

부인들은 군대의 항(行)과 오(伍)에 편재하였고,

먹고 마실 것을 모두 베풀어 군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싸울만한 갑졸들은 모두 숨겨놓고,

노약자와 여자들에게 성 위에 올라가 지키도록 하고,

연의 진영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약조하도록 하니,

연나라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전단은 또한 백성들로부터 금 1천 일을 거두어,

즉묵의 부호들로 하여금 연나라 장군에게 가져다주고는 말하게 했다.


‘항복하게 되면, 우리 가족들은 포로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연나라 장수는 매우 기뻐하여 그것을 허락했다.

연나라 군사들은 더욱 마음이 해이해졌다.


전단이 마침내 소 천여 마리를 구하여 성안으로 들이고는

소에게 진홍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오색으로 용무늬를 그려넣고,

소뿔에 칼날을 묶고,

소꼬리에는 기름에 적신 갈대를 묶어놓았다.

그리고 소꼬리에 불을 붙이고는

성의 수십 군데에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밤에 소를 풀어놓고

장사 5천 명이 그 뒤를 따르도록 했다.


소는 꼬리가 타들어가자 성을 내며 연나라 진영으로 내달렸다.


연나라 군사들이 크게 놀라서 소를 바라보니

모두 용의 무늬를 하고 있었다.

소뿔에 찔린 군사들은 모두 죽거나 다쳤다.

성안에서는 크게 북을 치고 소리를 치면서 뒤를 따라갔고

노약자들은 모두 구리 기물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니

그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연나라 군대가 크게 놀라면서 패하여 달아났다.


제나라 사람들은 기겁을 죽이고

도망한 군대를 쫓고 패배한 군대를 추격하니

지나는 곳마다 성과 고을들이 모두 연을 배반하고 다시 제나라로 되돌아왔다.


전단의 군사들은 나날이 더욱 많아져 승세를 타고,

연나라 군사들은 날마다 패하거나 무너지며 황하까지 달아나니,

제나라 70여 성이 모두 회복되었다.


마침내 거(莒)에서 양왕을 맞이하여 도성인 임치로 들어가니,

전단을 봉하여 안평군으로 삼았다.



―――――――――――――



資治通鑑卷四周紀

赧王三十二年(戊寅,西元前二八三年)

齊淖齒之亂 湣王子法章變名姓為莒太史敫家傭 …

王孫賈從湣王 失王之處其母曰

汝朝出而晚來 則吾倚門而望 汝暮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汝今事王 王走 汝不知其處 汝尚何歸焉

王孫賈乃入市中呼曰

淖齒亂齊國殺湣王 欲與我誅之者袒右

市人從者四百人 與攻淖齒殺之

於是齊亡臣相與求湣王子欲立之 法章懼其誅己久之乃敢自言

遂立以為齊王 保莒城以拒燕 佈告國中曰

王已立在莒矣


赧王三十六年(壬午,西元前二七九年)

初燕人攻安平 臨淄市掾田單在安平 使其宗人皆以鐵籠傅車槥

及城潰人爭門而出 皆以轊折車敗為燕所禽 獨田單宗人以鐵籠得免 遂奔即墨 是時齊地皆屬燕 獨莒即墨未下

樂毅及並右軍前軍以圍莒 左軍後軍圍即墨 即墨大夫出戰而死

即墨人曰 安平之戰 田單宗人以鐵籠得全 是多智習兵 因共立以為將以拒燕

樂毅圍二邑 期年不克 及令解圍 各去城九里而為壘,令曰

城中民出者勿獲 困者賑之 使即舊業 以鎮新民

三年而猶未下 或讒之於燕昭王曰

樂毅智謀過人 伐齊呼吸之間剋七十餘城 今不下者兩城耳 非其力不能拔 所以三年不攻者 欲久仗兵威以服齊人 南面而王耳 今齊人已服 所以未發者 以其妻子在燕故也 且齊多美女 又將忘其妻子 願王圖之

昭王於是置酒大會 引言者而讓之曰

先王舉國以禮賢者 非貪土地以遺子孫也 遭所傳德薄 不能堪命 國人不順 齊為無道 乘孤國之亂以害先王 寡人統位 痛之入骨 故廣延群臣 外招賓客 以求報仇 其有成功者 尚欲與之同共燕國 今樂君親為寡人破齊 夷其宗廟 報塞先仇 齊國固樂君所有 非燕之所得也 樂君若能有齊 與燕並為列國 結歡同好 以抗諸侯之難 燕國之福 寡人之願也 汝何敢言若此 乃斬之

賜樂毅妻以後服 賜其子以公子之服

輅車乘馬 後屬百兩 遣國相奉而致之樂毅 立樂毅為齊王

樂毅惶恐不受 拜書 以死自誓

由是齊人服其義 諸侯畏其信 莫敢復有謀者

頃之昭王薨惠王立 惠王自為太子時 嘗不快於樂毅

田單聞之 乃縱反間於燕 宣言曰

齊王已死 城之不拔者二耳 樂毅與燕新王有隙 畏誅而不敢歸 以伐齊為名 實欲連兵南面王齊 齊人未附 故且緩攻即墨以待其事 齊人所懼 唯恐他將之來 即墨殘矣

燕王固已疑樂毅 得齊反間 乃使騎劫代將而召樂毅 樂毅知王不善代之 遂奔趙 燕將士由是憤惋不和

………

田單知士卒之可用 乃身操版鍤 與士卒分功 妻妾編於行伍之間 盡散飲食饗士

令甲卒皆伏 使老弱女子乘城 遣使約降於燕 燕軍皆呼萬歲

田單又收民金得千鎰 令即墨富豪遺燕將曰

即降 願無虜掠吾族家 燕將大喜許之 燕軍益懈

田單乃收城中 得牛千餘 為絳繒衣 畫以五采龍文 束兵刃於其角 而灌脂束葦於其尾

燒其端 鑿城數十穴 夜縱牛 壯士五千人 隨其後 牛尾熱 怒而奔燕軍

燕軍大驚 視牛皆龍文 所觸盡死傷 而城中鼓噪從之 老弱皆擊銅器為聲 聲動天地 燕軍大駭敗走

齊人殺騎劫 追亡逐北 所過城邑皆叛燕 復為齊

田單兵日益多乘勝 燕日敗亡 走至河上 而齊七十餘城皆復焉

乃迎襄王於莒 入臨淄 封田單為安平君


――――――――――――



* 후복(後服)=후복(后服)


* 輅車乘馬 : (注)當時諸國之儀。乘馬,四馬.

  당시 제후들이 타는 수레를 노거(輅車)라 한다.

  수레를 끄는 말은 4필이다.


* 後屬百兩 :(注)風俗通以車有兩輪,故車稱兩.

  풍속통에 의하면 수레에는 양(兩) 바퀴가 있어서,

  고대에는 수레의 단위를 양(兩)이라 했다.


* 版 : 판축. 토담이나 토성을 쌓아올 때 다진 진흙을 담아 모양을 잡는 틀.


* 탁수(涿水) : 연나라의 도성으로 흐르던 역수(易水)의 상류로,

  흉노와 조(趙)의 중계 무역지였던 대(代) 땅에 있다.

  싸움에 넌더리가 난 연인(燕人)들이

  변방인 이곳으로 도망을 와서 부락을 이루기 시작하고,

  후일 진시황의 폭정에 시달리던 진나라 사람들도 이곳으로 도망을 와

  합세를 하게 되면서 진한(辰韓), 또는 진한(秦韓)이 된다.

  삼국유사와 후한서 근거.




( 2016년 09월 10일 17시 13분   조회:246  추천: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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