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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燕)과 제(齊)의 혈투 ②28년간 복수의 칼을 갈다  
노성매



연 소왕은 부왕 쾌(噲)의 어리석음으로 거듭된 내란과,

내란을 틈탄 제나라의 침탈로 인해

폐허가 된 연나라에서 왕위에 올랐다.


연소왕의 재위기간은 33년인데,

재위 28년에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해 끝을 보지 못하고,

아들 혜왕(惠王)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三晉(韓․魏․趙)과 秦, 楚까지 참여했던 당시의 국제전은

BC 284~279년, 6년간 지속된 전쟁이었다.


연나라가 장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은

사기 흉노전에 언급되어 있는데,

중국 측에서는 연 소왕 때라고 한다.


그러나 연소왕이 무엇 때문에, 언제, 무엇으로…

묻게 된다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자치통감을 보면,

내란과 제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연나라에서,

소왕이 즉위한 것은 赧王 己酉 3년인데,

다음해인 庚戌 4년,

秦의 張儀가 연소왕에게 연횡을 유세할 때,

벌써 長城이 거론된다.


‘대왕이 진을 섬기지 않는다면…

역수(易水)와 장성(長城)은 연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협박한다.

그에 연소왕은 진나라에 常山 자락의 5개 성을 떼어 바치게 된다.


자치통감 周紀는 史記와 전국책을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이다.

사기열전에 후대의 위작(僞作)과 위문(僞文)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굳이 연소왕 부분을 꼼꼼히 적어보는 것은,

만리장성의 축조 의혹 때문이기도 하다.




―――――――――――――



2. 연나라 소왕(昭王), 28년간 복수의 칼을 갈다



                                  전통문화연구회/ 권경상 선생님 譯 참고




주 난왕 3년[BC 312년]


난왕 원년. 제나라에게 연왕 쾌와 자지가 살해되고,

난왕 3년. 연나라에서는 연왕 쾌의 아들인 태자 평을 옹립했다.

이 사람이 소왕(昭王)이다.


소왕은 연나라가 제나라에게 격파된 후에 즉위하여,

죽은 자를 조상하고 고아들을 위문하며

백성들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했다.

자신을 낮추고 폐백을 후하게 하여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초치했다.


소왕이 곽외에게 말했다.


‘제나라는 우리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습격하여

연나라를 격파했습니다.

나는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연나라는 작고 국력은 미약해 보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진실로 재능이 뛰어난 자들을 얻어

그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려

선왕의 수치를 씻는 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선생께서는 인재가 될 만한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몸소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곽외가 말하였다.


‘옛날 어떤 임금이 천금을 가지고 근신(近臣)에게

천리마를 구하도록 한 일이 있었습니다.

천리마가 이미 죽었는지라 죽은 말의 머리를

오백 금에 사들고 되돌아왔습니다.

임금이 크게 노하자 근신이 말했습니다.

‘죽은 말도 오백 금에 사들였는데 하물며 산 말이겠습니까?

천리마가 제 발로 이를 것입니다.’

과연 만 1년도 되지 않아 천리마가 이른 것이

3마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왕께서 현사들을 초치하고자 하신다면

먼저 저로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천리를 멀다 하겠습니까?’


이에 소왕은 곽외를 위하여 집을 다시 지어주고,

스승으로 대우하며 그를 섬기니,

인재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왔다.

악의(樂毅)는 위(魏)나라로부터 왔고,

극신(劇辛)은 조(趙)나라로부터 왔다.

소왕은 악의를 아경(亞卿)으로 삼고,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자치통감 권4 주기. 난왕 30년[BC 285년]


제 민왕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난 뒤 교만해져서,

남쪽으로 가서 초나라를 공격하였고,

서쪽으로 가서 삼진[한․조․위]를 침벌하였고,

이주[二周:낙양으로 천도한 東周가 난왕 때 또다시 동서로 분열]를 병탄하여 천자가 되고자 하였다.


신하 호환이 정도를 간하자 단구대에서 그를 참하였다.

신하 진거가 바른말을 하자 도성 동문에서 그를 죽였다.


연 소왕이 밤낮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따르게 하여,

나라가 더욱 부유해지고 내실이 다져졌을 때,

악의와 더불어 제나라를 칠 것을 도모하였다.


악의가 말했다.


‘제나라는 제환공의 패업을 물려받은 곳입니다.

땅이 광대하고 백성들은 많으니,

연나라 홀로 공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왕께서 반드시 제를 정벌하고자 하신다면,

조(趙), 초(楚), 위(魏)와 맹약을 맺고 도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에 연소왕은 악의를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맹약을 맺게 하고,

한편으로 초(楚)와 위(魏)에도 사신을 보내어 연맹을 맺었다.

또한 조나라에게,

제를 정벌하게 되면 생길 이익으로,

진(秦)나라를 끌어들이게 했다.


제후들은 제민왕의 교만과 포악함이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고 여겨,

서로 다투어 연이 제를 치는 것에 동참했다.



난왕 31년[BC 284년]


연소왕은 동참한 나라 모두 군사를 일으키자,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았다.

진(秦)에서는 위(尉) 관직에 있는 사리(斯離)가 군사를 인솔하고

삼진의 군사들과 합세했다.

조왕(趙王)은 모든 나라의 인장을 악의에게 주어,

악의가 진, 위, 한, 조의 군사들을 모두 통솔하고 제를 공격하게 했다.


제민왕은 온 나라안의 모든 군대를 동원하여 항거하였다.

그리고 제수(濟水)의 서쪽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제나라 군대가 대패했다.


악의는 진과 한의 군사들을 본국과 멀다고 돌려보내고,

위나라 군사들에게는 위 땅과 가까운 송 땅을 경략하도록 하고,

조나라 군사들에게는 조 땅과 가까운 하간을 취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몸소 연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속 적을 몰아치면서 북쪽으로 추격했다.


……………


마침내 악의가 군대를 진군시켜 제나라 깊이 들어가니

제나라가 크게 혼란하여 갈팡질팡했다.


민왕이 제나라를 떠나 달아났다.


악의가 제의 도성인 임치로 들어가서

보물과 제기를 탈취하여 연나라로 실어 보냈다.


연소왕이 친히 제수(濟水)에 이르러 군사들을 위로하였으며

논공행상을 시행하고

군사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악의를 봉하여 창국군으로 삼고,

그로 하여금 제나라에 머물며

아직 굴복하지 않은 제나라 성들을 순시하면서 항복을 받아내도록 했다.


제민왕은 제를 떠나 위(衛)나라로 달아났다.

위나라 임금은 그를 궁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하고,

신하로 칭하며 제민왕을 받들었다.

그러나 제민왕이 오만불손하자

위나라 사람들이 그를 공격했다.


제민왕은 위(衛)를 떠나 추(鄒)와 노(魯) 땅으로 달아났는데,

교만함이 여전하여

추와 노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이윽고 거 땅으로 달아났다.


초나라에서 요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제(齊)를 구원하게 하고는,

제나라의 재상으로 삼게 하였는데,

요치는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 땅을 나누어가지고자 욕심을 내었다.


이에 민왕을 사로잡아, 그의 죄를 열거하며 말했다.


‘천승(千乘)과 박창(博昌) 사이 수백리 길에

피가 비처럼 내려 옷을 적시게 한 것을 왕께서는 알고 있습니까?’

왕이 말했다.

‘알고 있다.’


…………


요치가 마침내 거(莒) 땅의 고리(鼓里)에서 제민왕을 시해하였다.


………………


연나라 군사가 승세를 타고 멀리까지 추격하니

제나라 성들이 모두 그 기세만 바라보고도 달아나거나 무너졌다.


악의가 연나라 군사들을 정비하고,

남의 재산을 노략질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제나라의 뛰어난 백성들을 찾아내어

벼슬자리에 올리고 예우해주었다.

세금을 경감했으며

포악한 법령을 없애고

태공이 다스리던 옛 정사를 시행하니

제나라 백성들이 매우 기뻐했다.


이윽고 좌군(左軍)은 교수(膠水)를 건너

교동과 동래로 가게 했고,

전군(前軍)은 태산 동쪽을 돌아 동해에 이르러

낭야(琅邪)를 경략하도록 했으며,

우군(右軍)은 하수(河水)와 제수(濟水)를 에돌아

아(阿)와 견(鄄)에 주둔하여

위(魏)나라 군사와 연대하도록 하였다.

후군(後軍)은 북해 변으로 가서

천승(千乘)을 위무하게 하였으며,

중군(中軍)은 임치를 점거하고는

제나라 도성을 진무했다.


교(郊)에서 제환공과 관중에게 제사지냈으며,

현자들의 마을에 정표(旌表)를 세웠고,

왕촉의 무덤을 봉분했다.


제나라 사람으로 연나라로부터 식읍을 받은 자가 20여 명이요,

연나라 도성 계(薊)에서 작위를 받은 자도 1백여 명이었다.


6개월 지간에 제나라 70여 성을 항복받아

모두 연나라의 군현(郡縣)으로 삼았다.





資治通鑑卷三周紀

赧王 三年(己酉,西元前三一二年)

燕人共立太子平 是為昭王 昭王於破燕之後即位

吊死問孤 與百姓同甘苦 卑身厚幣以招賢者

謂郭隗曰 齊因孤之國亂而襲破燕 孤極知燕小力少 不足以報 然誠得賢士與共國 以雪先王之恥 孤之願也 先生視可者 得身事之

郭隗曰 古之人君有以千金使涓人求千里馬者 馬已死 買其首五百金而返 君大怒 涓人曰 馬且買之 況生者乎 馬今至矣 不期年,千里之馬至者三。今王必欲致士,先從隗始。況賢於隗者豈遠千里哉

於是昭王為隗改築宮而師事之 於是士爭趣燕 樂毅自魏往 劇辛自趙往 昭王以樂毅為亞卿 任以國政


資治通鑑卷四周紀


赧王三十年(丙子,西元前二八五年)

齊湣王既滅宋而驕 乃南侵楚 西侵三晉 欲并二周為天子 狐咺正議 斫之檀衢 陳舉直言 殺之東閭

燕昭王日夜撫循其人 益為富實乃與樂毅謀伐齊

樂毅曰 齊霸國之餘業也 地大人眾未易獨攻也 王必欲伐之莫如約趙及楚魏

於是使樂毅約趙 別使使者連楚魏 且令趙啖秦以伐齊之利 諸侯害齊王之驕暴 皆爭合謀與燕伐齊


赧王三十一年(丁丑,西元前二八四年)

燕王悉起兵 以樂毅為上將軍 秦尉斯離帥師與三晉之師會之

趙王以相國印授樂毅 樂毅並將秦魏韓趙之兵以伐齊

齊湣王悉國中之眾以拒之 戰於濟西齊師大敗

樂毅還秦韓之師 分魏師以略宋地 部趙師以收河間 身率燕師長驅逐北…

遂進軍深入齊人果大亂失度 湣王出走

樂毅入臨淄 取寶物祭器輸之於燕 燕王親至濟上 勞軍行賞饗士 封樂毅為昌國君 遂使留徇齊城之未下者

齊王出亡之衛 衛君辟宮舍之 稱臣而共具 齊王不遜衛人侵之 齊王去奔鄒魯 有驕色 鄒魯弗內 遂走莒

楚使淖齒將兵救齊 因為齊相 淖齒欲與燕分齊地 乃執湣王而數之曰 千乘博昌之間方數百里 雨血沾衣 王知之乎 曰知之…

遂弒王於鼓里

………

燕師乘勝長驅 齊城皆望風奔潰 樂毅修整燕軍 禁止侵掠 求齊之逸民 顯而禮之 寬其賦斂 除其暴令 修其舊政 齊民喜悅

乃遣左軍渡膠東東萊 前軍循太山以東至海 略琅邪 右軍循河濟 屯阿鄄以連魏師 後軍旁北海以撫千乘 中軍據臨淄而鎮齊都

祀桓公管仲於郊 表賢者之閭 封王蠋之墓

齊人食邑於燕者二十餘君 有爵位於薊者百有餘人

六月之間 下齊七十餘城 皆為郡縣


―――――――――――――――――


* 고(孤) : 아비를 잃고 왕위에 오른 임금이

  거상기간 중 자신을 칭할 때 ‘고자(孤子)’라 하고,

  어미를 잃었을 때는 ‘애자(哀子)’라 칭한다.


* 연인(涓人): 원래 궁중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임금과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을 뜻하게 되어

  가까운 신하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 買其首五百金而返 : 매사마골(買死馬骨), 천금매골(千金買骨)이란 고사성어의 출전.

  자치통감에는 죽은 말의 머리[其首]로 나오고,

  통감절요에는 [其首]가 아닌 [其骨]로 되어있다.


* 제민왕(齊湣王) : 자치통감과 통감절요에는 제민왕(齊湣王)으로,

   자치통감주와 전국책에는 제민왕(齊閔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 이주(二周) : 낙양으로 천도한 동주(東周)는 난왕(赧王)에 이르러

  낙양을 사이에 두고 또다시 동주(東周)와 서주(西周)로 분할된다.

 




( 2016년 09월 07일 06시 21분   조회:261  추천: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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