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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莫大於分 ①종묘대제의 희생  
노성매

 

 

 

 

조선시대 학동들이 처음 대하는 역사책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이다.

 

서당에 입학하면 천자문 계몽편에 이어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뗀다.

그리고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하는 서당이 있고,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하는 서당도 있다.

그렇게 문(文)에 대한 이해가 갖추어지면, 통감(通鑑)으로 들어간다.

                                                    〔전통문화연구원 權卿相先生 言之〕

 

 

통감의 첫머리는 B.C.403년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周紀 威烈王在位二十四年

戊寅二十三年 初命晉大夫魏斯趙籍韓虔為諸侯

 

 

주 위열왕 23년.

처음으로 진의 대부 위사, 조적, 한건을 명하여 제후로 삼았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사마광의 사평(史評)이 들어간다.

 

臣光曰

天子之職 莫大於禮 禮莫大於分 分莫大於名 何謂禮 紀綱是也 何謂分 君臣是也 何謂名 公侯卿大夫是也

 

천자의 직분은 禮보다 더 큰 것이 없다.

禮는 分보다 더 큰 것이 없다.

分은 名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무엇을 禮라 하는가.

기강이다.

무엇을 分이라 하는가.

君臣과 같은 上下의 지위를 말한다.

무엇을 名이라 하는가.

공경대부와 같은 작호의 명칭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마광은 군신(君臣)간의 기강이 무너지고 전국시대가 시작된 책임을 왕에게 돌린다.

 

今請於天子而天子許之 是受天子之命而為諸侯也 誰得而討之

故三晉之列於諸侯 非三晉之壞禮 乃天子自壞之也

 

지금 그들에 천자에게 제후를 청하여 천자가 그들에게 제후를 허락하였으니,

이는 천자의 명에 의해 그들이 제후가 된 것이다.

그러니 누가 그들을 토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삼진(三晉)이 제후에 반열한 것은,

삼진이 예(禮)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천자 스스로 예를 무너뜨린 것이다.

 

 

모택동(毛澤東)이 자치통감을 17번 읽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으나,

하루에 100쪽을 읽어도 110년이 넘는다는 방대한 책이다.

통감절요 등의 축약본도 권수가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에도 자치통감을 완독한 이가 과연 몇 일까 싶지만,

통감의 첫머리는 모든 선비들이 마르고 닳도록 외웠을 것이다.

 

자치통감이 제왕학(帝王學)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는,

첫머리에 실린 사마광(司馬光)의 사평(史評)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얼마 전에 종묘에 들렀다가 종묘에 올리는 제사상을 보았다.

 

희생의 제물로 쓰이는 소(牛), 양(羊), 돼지(豚)가 나란히 제사상에 올려져 있다.

 

 

         

 

 

 

희생의 제물 세 종류,

그리고 앞에 놓이는 술잔 셋.

왕과 왕비로 인해 위의 사진에는 술잔이 도합 6개가 진설되어 있다.

 

종묘대제에는 헌관(獻官)이 세 명이다.

왕, 세자, 그리고 영의정이다.

왕이 초헌관이 되고, 세자는 아헌관이 되고, 영의정은 종헌관이 된다.

 

희생의 동물이 세 종류 쓰인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지던 유습 때문이다.

삽혈이나 희생에 쓰이는 동물은 귀천(貴賤)에 따른 엄격한 구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그 예가 뚜렷이 보인다.

 

전국시대 조(趙)의 평원군(平原君)이 진(秦)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기 위해 초(楚)로 떠날 때,

그의 식객이던 모수(毛遂)가 스스로를 평원군에게 천거하였다.

그리고 모수는 평원군을 따라 초나라로 가서 동맹을 크게 성사시킨다.

 

毛遂曰 從定乎

楚王曰 定矣

毛遂謂楚王之左右曰 取雞狗馬之血來

毛遂奉銅槃而跪進之楚王曰

王當歃血而定從 次者吾君 次者遂

 

모수가 초왕(楚王)에게 물었다.

“조와 초의 합종은 이루어진 것입니까?”

초왕이 대답했다.

“이루어졌다”

이에 모수는 초왕의 좌우 시종에게 말하였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모수는 피가 담긴 구리쟁반을 받들고 꿇어앉아 초왕에게 올리면서 말하였다.

“왕께서는 삽혈로 합종을 맹약하십시오. 다음은 저의 주군인 평원군이며, 다음은 저 모수입니다.”

 

이에 대해 사기색은(史記索隱)은 말하였다.

 

史記索隱 卷十九 平原君虞卿列傳第十六

取雞狗馬之血按盟之所用牲貴賤不同天子用牛及馬諸侯用犬及豭大夫已下用雞

今此總言盟之用血故云取雞狗馬之血

 

닭과 개와 말의 피를 취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면,

맹서할 때 쓰이는 희생은 귀천(貴賤)이 같지 않다.

천자는 소(牛)나 말(馬)을 쓰고, 제후는 개(犬)나 돼지(豭)를 쓰며, 대부 이하는 닭(雞)을 쓴다.

지금 여기에서는 초왕과 평원군, 모수가 모두 삽혈로 맹서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라고 말한 것이다.

 

초왕(楚王)은 말의 피로,

평원군은 제후이므로 돼지의 피로,

모수는 그 신분이 대부 이하인 까닭에 닭의 피로 삽혈을 하는 장면이다.

한 사발의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다.

제 신분에 맞는 동물의 피를 각기 마시는 것이 삽혈의 의식이다.

 

 

이것이 조선시대에까지 일관했던 ‘分莫大於名’이다.

 

종묘대제에 쓰이는 희생은 소 1마리, 양 5마리, 돼지 5마리이다.

왕의 희생에는 소, 세자의 희생에는 돼지, 영의정의 희생에는 양이 쓰이고 있다.

 

왕은 1인이므로 소가 1마리가 된다.

세자는 제후의 반열이다. 그러므로 五方을 상징하여 돼지가 5마리이다.

영의정은 대부의 직책이다. 역시 五方을 상징하여 양이 5마리이다.

 

 

분(分)에 맞는 기명(器名)의 사용.

그것을 공자는 국가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名以命之 器以別之…

此禮之大經也 …

昔仲叔于奚有功於衛 辭邑而請繁纓 孔子以為不如多與之邑…

誠以名器旣亂則上下無以相有故也

故曰分莫大於名也

 

작호의 명칭으로 명(命)을 내리고,

거복(車服)의 등급과 같은 것으로 지위를 구별하는 것이다 …

이것이 禮의 큰 법이다…

옛날 중숙우해가 위(衛)에 큰 공로가 있었다.

위군(衛君)이 식읍을 주려고하자,

중숙우해는 식읍을 사양하고

위군(衛君)이 하는 것과 똑같은 반영(繁纓)을 청하였다.

공자는 중숙우해에게 반영을 허락하는 것은

식읍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

명기(名器)가 혼란하게 되면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서로를 보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分)은 명(名)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어쩌면 역사 연구와 전혀 상관없을 듯도 싶은

‘禮莫大於分 分莫大於名’을 가지고 장황하게 한 편을 기술해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매스컴으로 얼굴이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길거리에서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장관인지 알 도리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남겨진 역사는 드러난 모양새만 보고 상대의 신분을 알 수 있었던 시대의 산물이다.

 

남겨진 역사 ‘왜곡과 진실의 경계’에서 증거의 흔적으로 남겨진.

 

                  禮莫大於分 分莫大於名

 

 


* 거복(車服)의 등급 : 고대 수레의 장식이나, 수레에 매는 말[馬]의 수효, 말의 장식, 복식 등에는

                              상하의 등급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이를 車服의 등급이라 한다.

                              대부의 수레는 말이 2필, 제후는 4필, 왕은 6필이었다.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온량거는 말이 4필이다.

 

*반영(繁纓) :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반영'을 '번영'으로 표기한 곳이 많다.

                     말머리의 갈퀴장식을 반(繁)이라 한다.

                     말의 배 부위 장식을 영(纓)이라 한다.

                     신라 천마도의 말머리에 이상한 뿔 모양이 있다하여

                     말(馬)이 아니라고 하는 말들이 한동안 있었다.

                     반영(繁纓)은 고대 신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명(器名)이다.

 

 

 

다음편→ 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 회맹

 

 

 

( 2016년 08월 08일 14시 14분   조회:358  추천: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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