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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원류사 제 2권 중에서 / 유호씨의 행상(行狀)  
박민우

 






  부도지를 읽으신 분이 제일 햇갈려 하는 대목이 아마도 이번 장일 것입니다. 

  유호씨가 오행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그럼 오행을 공부하시는 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이 글의 앞 장은 삼묘족의 발생 / 도요는 누구인가 등인데 생략 했습니다. 

  






 유호씨의 행상(行狀)




 [인용문]


 

 부도지 제 19장


 이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세(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처(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정명(正命)으로 입공(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부도지 제 20장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때에 유호씨가 서방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邑)을 이루었다. 유호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제족(諸族)이 자행(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대성의 일(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 일(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부도지 제 21장



 또 그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변행(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 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율(律)과 여(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의 윤멱(輪冪)은 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이요 5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다섯 중에서 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 풍(風) 초(草) 석(石)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 목, 수, 화 혹은 토, 목, 수, 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 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계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무혹(誣惑)하여 곧 천화(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부도지 제 22장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 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물사(物事)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인세(人世)와 불합(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이(理)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정증(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禍)가 한 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 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천세(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부도지 제 23장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회(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4,7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분절이다. 이는 2,5,8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구가 1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6,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 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부도지 제 24장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이었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천이었다. 그러나 하군(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 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중(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부도지 제 25장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생민(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고, 한 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이,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理)를 설(說)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부도지 제 26장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族)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願)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여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婁)의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부도지 인용 끝]



 부도지 제 18장에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 보다 나이를 100여 살 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한 것은 유호씨가 무인(巫人)이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단군시대가 열리고 47대 단군과 마한 번한을 다스린 단군이 있었지만 유호씨 만큼 일을 많이 한 사람을 더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유호씨가 서방으로 떠난 후 무인(巫人)의 맥(脈) 끊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단군을 보좌하는 현자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단군세기와 단기고사를 통틀어 보아도 석자장(石子丈)과 유위자(有爲子) 두 사람 정도가 뛰어난 현자로 기록 돼 있었다. 무인(巫人)은 유호씨처럼 파견사가 되어 어려운 일을 해결하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일을 하고 또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 단군은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그들은 천부인을 이어받은 영웅이자 지도자였다. 그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군주이고 땅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천도수련에 힘썼으므로 성인이 되면 모두 무인(巫人)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유호씨가 서방으로 떠난 후 차츰 그 맥이 끊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석자장(石子丈)도 부루단군 때 사람이다. 유위자(有爲子)는  제 12 세 단군 아한(阿漢) 때 사람이다.


  [인용문]


 단기고사(檀奇古史) 제 2 세 부루(扶婁) 26년


 “ 26년에 석자장(石子丈)이 아뢰기를 “시조의 천부경(天符經)을 참고하여 보면, 하늘이 만물을 지어 그 모양과 색깔이 가지가지이나 각각 그 시작이 있는 것은, 그 중에 한 가지의 영(靈)을 포함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일시무시(一始無始)인데, 일(一)이 무시(無始)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태초에 무시(無始)로부터 먼저 이수(理數)가 있어, 일양(一陽)과 이음(二陰)이 도(道)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物質)의 도(道)입니다.  태극(太極) 이상(以上)의 것을 말하면, 이 도(道)는 이(理)와 기(氣)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신(神)의 오묘함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도(道)에서 나왔고 또 도에 들어가니, 도의 근원은 하늘(天)에서 나왔고, 사람의 근원은 신조(神祖)에서 나왔으니, 하늘과 신조(神祖)는 그 사이가 밀접하여 하늘이 곧 신조입니다.  바라옵기는, 신사신전(神社神殿)을 세워, 백성으로 하여금 경건하고 사모하게 하므로 신앙(信仰)하게 하여 만고(萬古)의 기본을 잊지 않는 도(道)를 삼으소서.”하니 임금께서 그렇게 하겠다 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려 삼신전(三神殿)을 세우고,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위(三神位)를 봉안(奉安)하여 백성들에게 경배하게 하였다. “ 출처 인터넷 http://cho-am.com/ 


 [인용 끝]


 혹자는 단군이 신선이었을 것이라 하지만 신선은 산을 지키는 사람이지 무인과는 많은 계급 차이가 있다. 단군은 하늘 아래 최고 높으신 분이고 신선은 산수비 라고 하는데 산을 지키면서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道人을 말한다. 그러니 신선은 단군의 신하쯤 된다고 보면 된다.


 유호씨는 성인다운 풍모와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도요가 만든 오행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 도(道)의 경지가 깊고 깊음을 느낄 수 있다. 도요가 오행을 수리적으로 오판하였으므로 그것이 장차 천세(天世)에 미치는 화(禍)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 때문에 우(禹)의 아들 계(啓)가 크게 반발했다. 부도지의 기록이 사기 하본기 에도 나온다. 계(啓)는 우(禹)의 아들인데 유호씨(有扈氏)가 배반하자 계가 육경(六卿)을 불러 몸소 하늘을 대신하여 토벌하니 유호가 오행(五行)을 위모(威侮)하고, 삼정(三正)을 태기(怠棄)한 죄를 들어 멸망 시켰다고 기록했다.



  [인용문]


 사기 권 2 하본기 제2(史記 卷二 夏本紀 第二)

     

 (상략) 夏后帝啓 禹之子 其母塗山氏之女也 有扈氏不服 啓伐之 大戰於甘 將戰 作甘誓 乃召六卿申之 啓曰 嗟 六事之人 予誓告女 有扈氏威侮五行 怠棄三正 天用勦絶其命 今予維共行天之罰 左不攻于左 右不攻于右 女不共命 御非其馬之政 女不共命 用命 賞于祖 不用命 于社 予則帑女  遂滅有扈氏 天下咸朝 (이하 생략)


 하후 제계는 우(禹)의 아들이다. 그 어머니는 도산씨(塗山氏)의 딸이다. 유호씨(有扈氏)가 복종하지 않자 계가 그들을 정벌하려고 감(甘) 땅에서 크게 싸웠다. 먼저 싸우기 전에    감서(甘誓)를 지어 육경(六卿)의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육경의 관리들아 나는 그대들에게 맹세하며 말 하노라! 유호씨(有扈氏)가 무력의 힘에 기대어 오행(五行)과 삼정(三正)을 업신여기며, 태만히 하여, 하늘이 그의 운명을 끊어 버리려고 한다. 이제 나는 하늘의 정벌을 받들어 행할 것이다. 왼쪽에 있는 부대가 왼쪽을 공격하지 않거나 오른 쪽에 있는 부대가 오른 쪽을 공격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하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말을 부리는 병사들이 말을 잘 몰지 못하는 것은 그대들이 하늘의 명령을 받들지 않은 것이다. 하늘의 명을 따르면 종묘에서 상을 줄 것이나 하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사직에서 목을 벨 것이다. 나는 그대들의 아내와 아들 딸을 노예로 삼거나 죽일 것이다"


  [인용 끝]



  부도지의 기록과 상반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호씨와 계(啓)가 전쟁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의 아들 계(啓)가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천이었다. 그러나 하군(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 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중(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이것은 신라사람 박제상이 쓴 부도지의 기록이다. 누구의 말에 더 믿음이 가는가!

 

 필자는 춘추전국시대에 글 쓰는 학자가 많아지면서 역사를 기록할 필요가 생겨 옛 문헌을 뒤지고 또는 무덤에서 나온 죽서 편을 보고 또 구전을 바탕으로 새 역사를 창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마천이 쓴 오제본기는 문제가 많다. 없는 역사는 새롭게 만들고 단국에서 배운 간지 천문은 요임금이 만든 것으로 날조하고 요임금의 즉위 날짜도 단군보다 빠르게 조작하고 첫 도읍지도 평양으로 같게 만들었다. 그리고 임금이란 관직도 도용했다. 단국의 신하 유호씨가 오행을 만든 것을 들어 천문을 마음대로 고치고 스스로 천자가 된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꾸짖었으나 사마천은 요임금은 천자이기 때문에 오행을 만들고 천문도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고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유호씨를 오행(五行)과 삼정(三正)을 욕한 반역자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유호씨와 하우(夏禹)의 아들 계(啓)와 일전을 치룬 것을 크게 왜곡하여 유호씨를 죽였다고 했다. 그러나 부도지에는 그 반대로 기록하고 있다. 또 도요가 단주를 죽인 일은 유호씨가 순임금을 토벌한 것과 유사하게 새 역사를 창조했다. 하(夏)나라를 망하게 한 말희(妹喜)와 상(商)나라를 망하게 한 달기(妲己), 주(周)나라를 망하게 한 포사(褒姒)의 기록은 모두 날조 된 것이다. 왕조 교체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요망스런 여자 탓으로 돌리는 가부장적 유교 사회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역사가의 힘이다.


 당시에 글 쓸 줄 아는 사람은 주로 귀족 왕족 등 출신 성분이 높았으며 그렇지 않으면 공부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동이족이었지만 단군이 동북의 자방에 도읍을 세우고 조선제(朝鮮祭)를 열어 만국의 사신으로부터 조공을 받으니 하(夏)나라 때부터 조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단국이 강성하고 문화와 사상이 발달한 대국이었으므로 천문, 지리, 역법, 사상, 철학, 건축, 병법, 의학, 의약, 본초, 제철, 치수, 농업, 광업 등 모든 것을 단국에서 배워가는 수준이었다. 하나라에서 죄지은 자가 도망오기도 했고 폭정을 못 이겨 도망해오는 자도 있었다. 또 단국에서 하나라의 일을 도우려하면 그걸 국정간섭으로 생각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마천은 역사를 조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마천 시기에 이미 조선은 그들의 적국이었고 오랫동안 정치적 간섭을 받아왔으므로 불편한 심기가 팽배했을 것이다. 단국조선이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 조선에 대해 올바른 역사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선을 깎아내리고 싶어 안달한 학자가 쓴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 책 이겠는가?   


 그들의 옛 조상은 황제인데 자오지 천황에게 패배하여 청구국 대풍산 삼청궁에 가서 자부진인(紫府眞人)에게 삼황내문(三皇内文)을 받아 도를 깨우쳤다고 했다.

 


 “ '태백일사(太白逸史) / 마한세가(馬韓世家)'에 " 때마침 자부선생께서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드시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지어 천폐(天陛)께 진상하니 천왕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삼청궁(三淸宮)을 세우고 그 곳에 거하시니 공공(共工), 헌원(軒轅), 창힐(倉頡), 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 여기에 와서 배웠다. 자부선인은 헌원에게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주면서 공연히 싸움을 좋아하지 말고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며 가르쳤다." (환단원류사)


 “ 태백일사(太白逸史)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편에 소개하기를 " '삼황내문경'은 자부선생이 헌원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맘을 씻고 의에 돌아오게 한 것이다. 선생은 일찌기 삼청궁에 사셨으니 궁전은 청구국 대풍산의 남쪽에 있었다. 헌원이 몸소 치우를 배알했는데, 가는 길에 명화를 거치게 되어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경문은 신시의 녹서로 기록되어 세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추연하고 주를 더하여 따로 신선음부의 설이라고 한 것이다. ”(환단원류사)


  “ '운급칠첨'에 황제(黃帝)가 청구에 있는 풍산(風山)에서 자부진인(紫府眞人)으로부터 도(道)를 전수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단원류사)


 그들의 조상인 황제(黃帝)도 무릎 꿇은 단국인데 어찌 두렵지 않았겠는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면서 단국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단국(檀國)은 단국조선이다. 조선의 원래 명칭이 단국이다. 환인천제 환국, 환웅천황 환국, 단군님금 단국이다. 당요가 당국(唐國)을 세웠는데 바로 우리 단국의 국명을 훔친 것이다. 그것 뿐 만이 아니다. 부도지 제 20장에“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는 것은 단국을 무시하고 사사로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겠다는 의도이다. 그들이 설치한 도산(塗山)의 단(壇)은 부도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가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여기서 완전히 역사 날조는 절정에 달한다. 소위 상서(尙書) 우공(禹貢)편은 우(禹)가 삼묘족을 탄압하여 조공을 거둔 일을 말한다. 그것이 우(禹)의 치적으로 둔갑하여 산을 뚫고 물을 터서 구주(九州)를 정하고 각 지방의 지리 풍토로부터 토산물 및 조세에까지 총정리 했다고 한 것이다. 부도지에는 그것이 폭돌(暴突)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날강도 조폭 깡패 수준이라는 말이다. 이 글의 처음에서 소개했듯이 도요는 1차로 성을 빠져나간 사람의 후예라고 하였다. 성급하기도 하였지만 마고성에서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돌아와 성벽을 파헤친 자들이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만 그건 이야기일 뿐이고 부도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속뜻은 그들이 뉘우치지 않고 계속 나쁜 짓을 되풀이 했다는 것이다. 황제(黃帝)는 그래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대풍산에서 道를 얻어갔지만, 도요(陶堯) 때부터는 잘못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못 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이것도 못 난 조상 탓이라고 해야 하는가!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고 제천단을 함부로 세웠으며, 천자국에서도 모르는 오행설을 퍼트려 혹세무민하였으며,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 낸 후 남의 땅을 빼앗고 자칭 제왕이 되었다. 도요는 두 딸로 하여금 멀쩡한 단국의 신하 순(舜)을 유혹하여 불효자로 만들었고 아들 단주가 삼묘의 수령이 되어 아버지에게 삼묘와 왕족을 구분하지 말고 평등하게 다스리라고 하자 단주와 삼묘를 초토화 시켜버렸다. 순이 그 보위를 빼앗았으며 우(禹)가 빼앗고 다시 그 아들이 보위를 빼앗았다. 사마천이 찬양한 요임금의 선양(禪讓) 또는 선위(禪位)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지만 이것은 공자의 춘추 이래 유교를 받들기 위해 백성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부도지를 쓴 신라(新羅)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은 그 생몰년대가 추정하기를 서기 363년 ~ 서기 418년 이라고 한다. 사마천은 서력으로 기원전 사람이니 신라의 박제상이 사마천의 사기를 보았을 수도 있고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라는 천부인(天符印)을 계승하고 환인께서 내려주신 천손이 가는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토의 나라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동안 천자국으로서 당당히 1천 년 동안 역사와 전통을 지켰다. 그리고 그 역사와 전통을 자손만대에 전하기 위해 징심록(澄心錄) 3교(敎) 15지(誌)를 기록하여 후세에 비전(秘傳)했다. 부도지는 그 일부에 한 편일 뿐이다.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禊祓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나머지 3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이 책들은 모두 분실 되었지만 그 제목만 보아도 환인천국(桓因天國)의 도전(道典)이 분명하지 않은가!


 어느 편의 말이 옳고 그런가에 대해서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면서 단군 제 12세 아한(阿漢) 때 선인(仙人) 유위자께서 3천 년 후의 세계를 내다 본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용문]



  단기고사(檀奇古史) 제 12 세 아한(阿漢)


 “ 2년 여름에 발이 하나인 짐승(一足獸)이 송화강(松花江)가에 와서 놀며 슬피 울었는데, 임금께서 유위자(有爲子)에게 묻기를 “이것은 알지 못하는 짐승인데 발 하나로 뛰어다니며 슬피 우는구나.”하시니, 유위자가 대답하기를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좋은 징조가 있고, 망하려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일이 생겨서 신물(神物)에 나타나며 사체(事體)에 움직이고, 화와 복이 장차 이르게 되면 착한 것도 알게 되며 착하지 못한 것도 알게 될 것이니, 이것은 천지조화의 징조입니다.  이 짐승은 하나라 남쪽의 양수(陽獸)인데 신명(神明)한 물건입니다. 하나라가 장차 어지러울 것을 미리 알고, 그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와서 슬피 울고 있습니다. 다만 이 짐승만 보아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천도(天道)의 운행을 살피면 만세(萬世)의 일도 능히 미리 알 수가 있습니다.”하니 임금께서 “하(夏)나라를 대신하여 천자(天子) 될 사람이 누구냐.”하시니 유위자가 대답하기를“신(臣)이 하나라의 인물을 살피니 하나라에는 그런 인물이 없고, 다음가는 사람으로는 천을(天乙)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진 보좌관(賢佐)인 이윤(伊尹)을 얻어 덕행(德行)을 길러 그 이름이 세상에 높아졌으니 하나라를 쳐서 천자가 된다면 그 자손이 600여 년은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다.”임금께서“그 다음은 누구냐.”하시니, 유위자 아뢰기를“서이(西夷)에 성인(聖人)이 나서 덕을 닦고 은혜를 베풀면 민심이 다시 돌아와 그 어진 분의 보필이 생기게 될 것이니, 그 자손이 왕위를 게승 한다면 800년은 이어갈 것입니다.”

  임금께서“내 후손의 성쇠(盛衰) 시기는 과연 어느 때인지 그 대략을 묻노라.”하시니, 유위자 대답하기를“국가성쇠(國家成衰)의 운수는 하늘이 정하게 되어있는 것이므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백성을 선하게 다스리시어 덕이 만방에 넘치니, 나라의 문명(文明)정도가 중화(中華)를 훨씬 초월합니다. 그러나 중화가 은조(殷朝)에 이르러서는 예악법도(禮樂法度)가 찬연히 구비될 것이며, 성현(聖賢)이 배출되어 경전(經傳)을 저술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 여러 학자들이 각각 그 이상(理想)을 말하리니, 문화의 향상이 전무후무하여 천하를 휩쓸 것이므로, 만국이 그 문화를 암오하여, 다투어 그 나라에 와서 배우고 익혀 한학(漢學) 전성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전하의 성자신손(聖子神孫)이 혹 북방에서 터를 보전하며, 혹 동방으로 도읍을 옮기며 혹 남방에서 건국하는 자가 있겠으나, 큰 자는 땅이 수천 리 될 것이며 작은 자는 수백 리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후손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 상대를 침략하는 전쟁만 일삼고, 문화는 점점 퇴보하여 조국문자(祖國文字)는 돌보지 않고,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날로 높아져 수 천 년 후에는 모화(慕華)하여 유학(儒學)에 미친 사람이 나라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문자(文字)는 다 없애고 한문자(漢文字)만 정용(專用)할 것이며, 한문으로써 우리나라 국명(國名)과 왕호(王號)와 관명(官名)과 지명(地名)과 모든 물건의 이름을 번역할 것이며, 이름까지 중화 사람의 이름과 같아 우리를 중화 사람으로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손들이 그 선조(先祖)를 잃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심히 원통한 일입니다. 엎드려 비옵기는, 오직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고 염려하시어 뒷일을 미리 준비하시옵소서.”하였다.

  임금께서 “선생은 참으로 천고의 신인(神人)이로다.  능히 반만년 후의 일을 추측하도다.”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려, 비석을 나라의 사방 경계에 세우고, 그 비면(碑面)에 우리나라 문자로 제왕(帝王)의 이름을 새겨, 영원히 국문(國文)을 보전하라 하셨다.  


 출처 인터넷 http://cho-am.com/


  [인용 끝]






  오행(五行)과 삼정(三正)




 소위 오행이란 것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이다. 여기에 일(日), 월(月)이 추가되어 음양오행이 된다. 오행(五行)은 천문이다. 지구에서 관측하기를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 가운데 사람의 눈으로 관측 가능한 별을 가리킨다. 그것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다. 천왕성은 망원경이 발명 된 후 발견했다. 그 중에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오행성이라 하였다. 동이의 천문학자는 오행성을 유심히 관찰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계시를 알려고 노력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부도지에서 유호씨가‘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며 꾸짖는 바람에 마치 오행이 천도에 어긋나는 법이고 도요가 오행을 창조한 것으로 오해를 불러왔다. 만일 그러하다면 애초에 오행성이 없었어야 유호씨의 말이 맞다고 할 것이 아니겠는가!


 도요는 그전부터 있어왔던 오행을 수리적으로 오판하였고 천권(天權)을 훔쳤기 때문에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유호씨가 천자를 대신해서 경고를 준 것이다. 그때까지 단국은 천자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하면 내정간섭 이다.


 오늘날 오행은 반만년 동안 그 철학적 사상과 논리를 증대시키며 진화하고 발전해왔다. 이것은 인간 사고의 산물인데 유호씨가 뭐라 한다고 남의 나라에서 쉽게 알아듣고 고칠 일은 아니다. 오행사상은 단국에서 비롯된 것이고 도요는 단국에서 배운 것을 잘못 해석했을 뿐이다. 도요의 잘못이 크지만 그것이 대세였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천운(天運)이었다. 


 천자국은 오행제신(五行諸神)에게 매일 제사를 올렸다. 이를 욕되게 하는 도요를 유호씨는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시(神市)때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을 만들었다. 첫째 날은 (日)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고, 둘째 날에는 월신(月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셋째 날에는 수신(水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넷째 날에는 화신(火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다섯째 날에는 목신(木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여섯째 날에는 금신(金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일곱째 날에는 토신(土神)에 제사(祭祀)를 지냈다고 한다.” (神市本紀)


 이렇게 음양오행을 神으로 받들고 천문학자와 하늘이 대화하는데 느닷없이 도요가 끼어들었다. 도요는 스스로 임금이 되자마자 천문을 정리하는데 희중에게 봄철의 일을 맡기고, 희숙에게 여름을 화중에게 가을, 화숙에게 겨울철의 일을 맡겼다. 그리고 역법을 제정하였는데 1년이 366일이라 하였다.

  “ 帝曰咨汝羲和朞 三百有六旬有六日 以閏月 定四時成歲 允釐百工 庶績 咸熙. ”(虞夏書)


 “요임금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 희씨와 화씨여! 일년은 삼백육십육일이니, 윤달로 사철을 정하고 일 년을 이루도록 하라 하셨다. 백관들을 정말 잘 다스리시어, 여러 가지 공적이 모두 빛났다. ” (우하서)


 내용이 정교하고 별 문제가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도요는 혁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너무 정교한 것은 후대의 조작이라는 의심을 받게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주(周)나라 이후에 천문학과 갑골문이 발전하고 인간의 사고 체계가 정리되면서 요, 순, 우 시대의 기록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므로 요, 순, 우의 기록은 사실상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구전만으로 구성된 반쪽도 안 되는 역사였다. 사마천이 무슨 자료를 보고 그렇게 역사를 정교하게 기록했겠는가!


 그러므로 필자의 생각은 사마천이 침소봉대(針小棒大) 하여 역사를 왜곡을 한 것으로 본다. 어째거나 우하서(虞夏書)에 기록한 대로라면 도요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천문 역법은 단국에서 배워간 것이다. 신시씨 때 발귀리선인과 복희씨께서 개척한 것이다. 


 오행에 대해 유호씨가 우(禹)에게 유시하는 것을 보면 마치 현대의 달력을 보고 말하는 듯하다. 별로 어렵지도 않고 고명하신 학자의 오행론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유호씨가 도요를 두고 천수를 모른다고 꾸짖으며 오행을 설명한 것을 보면 한 마디로 곡조를 모르면 튕기지 말라는 식의 훈계이다.

 

 복희씨 때 지축이 기울어진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복희씨 이후 약 800년이 지나 칠회제신력이 만들어 졌다. 지축이 기울어 졌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음양력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그전에는 간지력(幹枝曆)만 있었다. 그러면 유호씨가 화낸 진짜 이유는 무엇 때문 이었을까? 그것은 단순히 9수 5중의 이치를 모르고 자칭 제왕이라 하고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나누고 남의 땅을 빼앗고 제천단을 함부로 짓는 등 온갖 못 된 행동을 하니 화를 내며 정치적 압박과 간섭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수리적 오행만 가지고는 엉터리라 말 할 수 없다. 또 유호씨가 삼정(三正)을 언급한 데서도 모순이 보인다.


 삼정(三正)이란 하. 은. 주 3왕조가 바뀔 때마다 사시(四時)와 월(月)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잡기 위해 행한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정삭(正朔)을 바꾸어 통일한 것이다. 그래야만 천자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해가 시작되는 간지 시작점의 위치를 정하는 것인데 이것을 정삭(正朔)이라 한다. 또 세수(歲首)를 정하는 일이다. 북두칠성 손잡이 격인 두병(斗柄)의 위치가 인(寅)에 있으면 건인월(建寅月)이라 하였고 이는 하나라의 정삭(正朔)이다. 두병(斗柄)의 위치가 축(丑)에 있을 때는 건축월(建丑月)인데 이는 상(商)나라가 했다. 주(周)나라는 자(子)에 맞추어 세수(歲首)를 정했으므로 건자월(建子月)이다. 일반적으로 삼정(三正)이라 하면 이 세 가지 정삭(正朔)을 일컫는 것이다. 문제는 유호씨가 있었을 때는 삼정(三正)이란 말이 있을 수 없다. 삼정(三正)은 주(周)나라 이후에 생긴 말이기 때문이다. 대개 서토의 고대 역법은 주(周)나라 때 크게 발전하여 지나간 역사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호씨가 말한“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어들였다.”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시기를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닌가!


 부도지를 지은 박제상이 잘못 기록한 것인지 부도지를 옮겨 쓴 금당 선생이 잘못 기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면 요, 순 시절에도 세수를 바꾸었을 것인데 그것을 지목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삼정(三正)이란 말은 ‘서경’을 비롯하여 ‘회남자’에도 나오는 말이니 조선시대 유교를 공부한 학자는 모두 아는 말이다. 어쩌면 금당선생께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고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부도지 원본을 확인할 수 없으니 이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그렇다면 배달환국 때 세수(歲首)는 어떻게 정했는지 알아본다. 배달환국 자오지 천황 때 자부선인께서 칠회제신력을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복희씨와 발귀리 선인께서 천문도학(天文道學)을 펼쳤으므로 그 도학(道學)이 전해진 것이다. 그때는 계해(癸亥)를 세수(歲首)로 정하였는데 단제구을(檀帝邱乙) 때 갑자(甲子)로 세수(歲首)로 바꾸었다. 이렇게 세수(歲首)를 바꾸는 것은 천자국 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건방지게 요가 도둑질하니 유호씨가 화난 것이다. 다음 기록을 보면 배달환국 시대이니만큼 삼정(三正)이란 말은 없고 다른 명칭과 방법으로 세수(歲首)를 정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신시에는 60갑자의 세수(歲首)를 계해(癸亥)를 썼지만, 육계(六癸)는 신시씨(神市氏)가 신지(神誌)에게 명하여 제정(制定)된 것으로 계(癸)를 첫해가 시작하는 세수(歲首)로 한 것이다. 계(癸)는 계(啓)요, 해(亥)는 핵(核)이니, 일출(日出)의 뿌리가 된다. 그러므로 계(癸)를 소라(蘇羅)라하고, 갑甲은 청차이(淸且伊)라 하고, 을(乙)은 적강(赤剛)이라 하고 ,병(丙)을 중림(仲林)이라 하고 정(丁)을 해익(海弋)이라 하고, 무(戊)를 중황(中黃)이라 하고, 기(己)를 열호수(烈好遂)라 하고, 경(庚)을 임수(林樹)라 하고, 신(辛)을 강진(强振)이라 하고, 임(壬)을 유부지(流不地)라 한다. 해(亥)를 지우리(支于離), 자(子)를 효양(曉陽), 축(丑)을, 가다(加多), 인(寅)을, 만량(萬良), 묘(卯)를 신특백(新特白), 진(辰)을 밀다(密多), 사(巳)를 비돈(飛頓), 오(午)를 융비(隆飛), 미(未)를 순방(順方), 신(申)을 명조(鳴條), 유(酉)를 운두(雲頭), 술(戌)을 개복(皆福)이라 한다. "


 이 명칭들은 모두 산스크리트이다. 그중 해설이 가능한 것은 ‘해(亥)는 핵(核)이니, 일출(日出)의 뿌리가 된다. 그러므로 계(癸)를 소라(蘇羅)라 한다.’뿐이다. 다른 것은 아직 밝히지 못 했다. 누군가 열심히 연구해서 꼭 밝혀주기 바란다.


  "계(癸)는 계(啓)요, 해(亥)는 핵(核)이니, 일출(日出)의 뿌리가 된다. 그러므로 계(癸)를 소라(蘇羅)라 한다."  이것을 설명하면, 소라(蘇羅)는 천축 실담어로 '수라 sula'를 말한다. '수라 sula' 또는 '수리라  surila'는 "태양을 잉태하여, 태양을 인도하다, 태양을 열다." 등의 뜻이다. 또 왕, 영웅의 뜻도 있고, 신성하다는 뜻도 있다. 영어 Sun(태양)의 어원도 실담어 '수라 sula'이다. 옛말에 어동지 일양시생 일성계 이보춘풍(於冬至 一陽始生  一聲鷄 已報春風)이란 말이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동지 때가 되면 양의 기운이 처음 생겨나고, 새벽 첫닭 울음소리에 이미 봄이오는 것을 알리는구나. (해설: 강상원 박사)


 오늘날 사용하는 60갑자(甲子)의 원조는 60계해(癸亥)를 세수(歲首)로 하였던 것이다. 갑자, 갑술, 갑신, 갑오, 갑진, 갑인 등 육갑(六甲)이 아니라 계해, 계유, 계미, 계사, 계묘, 계축 등 육계(六癸)였던 것이다. 이것은 양의 기운이 처음 잉태되는 순간부터 력법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동이족은 과연 태양을 숭배하던 민족이며 광명족 이다. 설날의 어원도 천축 실담어로 '수라 sula'이며 설날은 바로 동지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태양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간지(干支)는 천지(天地)를 뜻한다. 간(干)은 바로 줄기간(幹)에서 글자가 간소화 되면서 표기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우주에서 기(氣)가 내려오는 것을 하늘의 줄기로 보았다. 하늘의 줄기가 사람이므로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천기의 작용을 천간지지(天干地支)로 나타내었고 이를 역법으로 정했는데 도요가 천자의 지존을 건드렸으니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인용문]


서경 / 하서 / 감서 / 제3장(第三章)


 제 3장(第三章)


“ 有扈氏威侮五行하며 怠棄三正할새 天用(剿)絶其命하시나니 今予는 惟恭行天之罰이니라


유호씨(有扈氏)가 오행(五行)을 위모(威侮)하며 삼정(三正)을 태만히 하여 버리기에 하늘이 그 명(命)을 끊으시니, 이제 나는 하늘의 벌을 공손히 행할 것이다.


威는 暴殄之也요 侮는 輕忽之也라 汨五行而死하니 況於威侮之者乎아 三正은 子丑寅之正也니 夏正은 建寅하니라 怠棄者는 不用正朔也라 有扈氏暴殄天物하고 輕忽不敬하며 廢棄正朔하고 虐下背上하여 獲罪于天일새 天用剿絶其命하시나니 今我伐之는 惟敬行天之罰而已라 今按此章컨대 則三正迭建이 其來久矣라 舜協時月正日도 亦所以一正朔也니 子丑之建이 唐虞之前에 當已有之니라


위(威)는 포진(暴殄)[함부로 버림]함이요 모(侮)는 경홀(輕忽)히 하는 것이다. 곤이 오행(五行)을 어지럽히다가 귀양가 죽었으니, 하물며 오행(五行)을 위모(威侮)하는 자임에랴.


삼정(三正)은 자(子)·축(丑)·인(寅)의 정월(正月)이니, 하정(夏正)은 건인월(建寅月)[북두성(北斗星) 자루가 인방(寅方)을 가리키는 달]로 하였다. 태기(怠棄)는 정삭(正朔)을 쓰지 않는 것이다.


유호씨(有扈氏)가 하늘이 낸 물건을 함부로 버리고 경홀(輕忽)히 하여 공경하지 않으며, 정삭(正朔)을 폐기하고 아랫사람들을 학대하고 윗사람을 배반하여 하늘에 죄를 얻었으므로 하늘이 그 명(命)을 끊으시니, 이제 내가 정벌함은 오직 하늘의 벌을 공경히 행할 뿐이다. 이제 이 장(章)을 살펴보건대,


 삼정(三正)을 차례로 세운 것은 그 유래가 오래이다. 제순(帝舜)이 사시(四時)와 월(月)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잡은 것도 또한 정삭(正朔)을 통일한 것이니, 자월(子月)과 축월(丑月)을 정월(正月)로 삼은 것이 당(唐)·우(虞) 이전에 마땅히 있었을 것이다.


 [인용 끝]


 이 말은 어디까지나 역사를 왜곡한 춘추전국시대 학자들의 주장이다. 서경 감서의 주장이 엉터리라는 것은 부도지가 잘 말해준다. 이런 역사를 조선시대 학자들이 공자 왈 맹자 왈 하면서 배웠으니 얼마나 지식 오염이 심했겠는가! 오죽했으면 왕이란 자가 유시를 내려 환민족의 역사와 사상이 담긴 소중한 책을 거두어들이라 했겠는가! 조선은 많은 유학자들이 태어난 나라이다. 천재가 너무 많아 배를 띄우면 반드시 산으로 가는 나라였다. 환민족의 광명사상은 몽땅 유교에 처박아 넣고 명분과 실리를 지키며 허세만 부리다가 전 세계를 통일하고 천하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놓친 샌님의 나라였다. 

 


  [인용문]


  세조 7권, 3년(1457 정축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인용 끝]

 

 

 이렇게 우리의 역사가 말살되기 시작했다. 환민족사의 대재앙은 사마천이 역사왜곡을 하고부터 시작해 우리가 유교를 숭상하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발해의 대광현이 단기고사를 저술할 때만 해도 우리는 서토를 한낱 조무래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호씨의 행상(行狀) / 결론




 약 4,300년 전에 유호씨 와 계가 전쟁을 치른 장소를 찾아보기로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 인터넷 판을 참고하였다. 검색 창으로 찾기 때문에 페이지는 없다.



  [인용문]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 인터넷 판

  http://shuiren.org/kodaichimei/  


 有扈 : 古國名。今陝西鄠縣。爲后啓所滅

 유호 : 엣 나라 이름. 지금 섬서성 호현이다. 계(啓)가 멸망시킴.


 鄠縣 : 夏時扈國。 秦爲鄠邑。漢爲鄠縣。故城在今陝西鄠縣北

 호현 : 하나라 때 호국이다. 진 때 호읍. 지금 섬서성 호현 북쪽에 옛 성이 있다.


 甘 : 在陝西鄠縣西南。〔書甘誓〕大戰于甘

 감 : 섬서성 호현 서남쪽에 있다. (계가 감서를 쓴 곳이다.) (계와 유호씨의) 큰 전쟁이 있었다.


[인용 끝]

 



그림 출처 :  위키백과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그 당시는 사통팔달로 물길이 이어져 있었으므로 유호씨는 서안에서  배를 타고 남해, 동해까지 쉽게 이동이 가능했다. 그전에 유호씨는 도요를 감시하기 위해 돈황에서 남하하여 서안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곳이 호현 이다. 호현에서 남으로 내려와 감(甘)의 넓은 들판에서 싸워 우(禹)와 계(啓)를 물리쳤다. 그후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갔다고 했으니 서남 땅은 서안에서 물길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곳에는 곤륜산맥이 있고 곤륜산맥이 끝나는 곳에 사천성이 있다. 사천성은 물과 농지가 풍부하고 비옥한 땅이라 漢나라 때부터는 천부지국(天府之国)이라 부를 정도였다. 또 그곳에서 양자강을 타고 동서로 왕복하면서 서남제족과 삼묘족까지 두루 소통하고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보다시피 유호씨는 끝까지 쉬지 않고 백성을 위해 평생 몸과 마음을 다 받쳐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돈과 명예만 쫓아다니며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부귀영달만 꿈꾸는 공직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인 중에 성인이다. 그것은 열길 물속도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무인(巫人)이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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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03월 23일 19시 27분   조회:544  추천: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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