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게시판
이땅의 역사를 날조한 기록상의 첫 인물   
이규진
한漢나라 무제(武帝, BC156년~ BC87년)의 사관史官 사마천이 조작한 기자조선(箕子朝鮮)

한중 고대사를 날조한 기록상의 첫 인물은 2,100년 전 한나라 때의 사관史官인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한무제가 전쟁에 참패하고 돌아온 시기에, <사기史記>를 저술하였다. 사마천은 [사기]<본기本紀>에서 조선이라는 호칭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런데 제후국의 역사를 다룬 <세가世家>에서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 이라 하여 갑자기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썼다.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중국 사가들은 조선 역사가 약 3,100년 전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기자조선에서 시작된 것으로 정의한다.


《상서대전(尙書大典)》과 <사기史記> 등에서 전하는 기자조선의 내력은 이러하다. 주나라의 건국자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감옥에 감금되어 있던 기자箕子를 풀어 주었다. 이때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풀려난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조선으로 떠나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무왕이 그를 조선 왕으로 봉하였다. 그런데 제후로 봉해진 이후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다. <상서대전>은 기자箕子가 책봉을 받은 후 신하의 예를 행하기 위해 주나라를 찾아가 무왕에게 홍범구주에 대해 설명하였다고 한다.



반면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기자箕子가 책봉을 받았지만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았다(而不臣也)’라고 기록하였다. ‘기자를 제후로 임명했다’는 말 바로 다음에 ‘신하로 삼지는 못했다’는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후가 되면 당연히 신하가 되는 것인데도 그와 상반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결론적으로 기자箕子라는 인물이 조선 왕으로 봉해진 역사적 사실은 전혀 없었다.


중국 산동성 조현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정도 가면 왕성두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 들판 한가운데에 작고 초라한 모습의 기자箕子의 묘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떠나버렸다(走之朝鮮)’는 구절이다. 이것은 동방 땅에 그전부터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천명하는 내용이다. 기자가 망해 버린 고국을 떠나 이웃나라 조선으로 망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기자조선을 내세워 단군조선을 숨기려 하였으나,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기자조선은 한민족사를 그 출발부터 중국사에 예속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이 날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자箕子는 비간比干, 미자微子와 더불어 당시 상나라의 삼현三賢이었다. 비간은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에게 정치를 간하다가 사형되었고, 미자는 비간의 죽음을 보고 멀리 도망쳤다. 기자箕子는 거짓으로 미친 척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감금되었다. 기자箕子는 고조선 서쪽 변두리를 맴돌았을 뿐 한반도 지역으로 넘어 온 적이 없건만, 고려 때 송나라 사신이 “그대 나라에 기자箕子의 묘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 후 고려 숙종 7년(1102) 예부상서 정문(鄭文)이 무주고총(無主古塚)을 하나 찾아 임금께 청하여 서경(평양)에 가짜 기자묘(箕子墓)와 기자 사당을 만들었다.


또한 서경의 반듯한 도로 흔적들을 기자(箕子)가 만들었다는 정전제(井田制)의 증거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기자 정전터와 평양 을밀대 북쪽에 있던 기자묘를 조사하면서 그 허구가 밝혀졌다. 기자 정전터는 고구려시대 도시 구획 흔적이었고, 기자묘에서는 사기 파편과 벽돌조각만 나왔다. 기자箕子에 대한 진실은 그는 무왕에 의해 풀려난 후 상나라 유민을 이끌고 당시 단군조선(번조선)의 국경지역인 산서성 太原으로 이주하였다. 망명지 단군조선 땅에서 6년 정도 살다가가 고향 서화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였다.




중국인들의 역사 기록법
공자가 노나라 242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하여 <춘추春秋>로 이름 지었는데, 이 책은 주나라 왕실을 종주로 삼는 대일통大一統 사상과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정신을 표방하고 있다. 그 후 중국 사서들은 이 <춘추>를 역사 서술의 표준으로 삼게 되었는데, 중국 사서의 편찬 원칙은 다음 세 가지의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에 영광스런 일은 한껏 부풀려 쓰면서 수치스런 일은 감추고(爲國諱恥)
둘째, 중국은 높이면서 주변 나라는 깎아내리고(尊華攘夷)
셋째, 중국사는 상세히 쓰면서 이민족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祥內略外)

춘추필법은 표면적으로는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역사 서술법이지만, 사실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에 충실한 필법이다. 사마천 이하 역대 중국의 사가들의 잘못된 춘추필법을 지적한 것은 단재 신채호선생이다. 그는 [조선사연구초]<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에서 중국 역사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사마천을 “공자 춘추의 존화양이, 상내약외, 위국휘치 등의 주의를 굳게 지키던 완유頑儒”라고 혹평하였다.




중국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한 중국 초대총리 주은래
1963년 6월28일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과 조선,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중략
( 2016년 01월 15일 21시 54분   조회:927  추천:49 )   
bc8937 2016-01-21 23:57:13
신시(神市)가 저잣거리 맞는가?



신시(神市)는 저잣거리인가? 왜 저잣거리로 되었는지, 그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보지 못해서 빗어진 결과이다. 신시(神市)의 본뜻을 살펴보면, 神은 빛을 본다는 뜻이고 市는 저자가 아니라 뻘밭을 뜻한다. 그래서 불 또는 '벌'이라 읽어야 한다. 바로 대평원 뻘, 伐판, 초목이 무성한 넓은 장소를 뜻한다. 그러므로 신시(神市)는 삼신(三神, 不咸 산스크이트로는 브라흐마)이 계시는 곳, 밝은 빛이 하늘에서 왕창 집중으로 내려오는 밝고 밝은 넓은 장소, 얼마나 넓으냐 하면 한반도+서해+중국대륙+만주+연해주 정도 된다.

그중에 지금은 수몰된 서해 바다의 대평원이 신시(神市)이다. 원래 신불, '셔벌'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뀌면서 신불(神불초목이무성한 불 . 사전참고)이 된 것인데 역사를 잊어버리니까 신시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시장이 열리기는 했다. 그 당시 세계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던 삼신 상제를 숭상하는 뚱이의 후예들이 물고기 양고기 등 각국의 특산물을 바치러 셔벌에 모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저잣거리 같기는 했다. 부도지에 나옴.

다음은 부도지 제 15장 (第十五章)을 해설한다.

"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朝祭)에 받들어 올리니 오미(五味)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蒼生)의 재앙을 그치게 하라" 이를 가리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이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생선과 육(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의 대부분이 절인 어물과 조개와 가죽류였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고 조상의 은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멎게 하기 위함이다. 즉 육신고충의 고백이었다. "

처음에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이에 사해의 말과 글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사람들이 크게 화합하였는데 그것이 또 세월이 흘러 차츰 시들해지자 이번에는 부도에서 가까운 예(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와 해시(海市)를 매년 2차례 열고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냈다.

이때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는데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쳤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양식 꺼리가 되느라 희생된 물고기와 양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나라에서 큰 제사를 지낸 것이 조제(朝祭)인데 이때는 부도에 있는 여덟개의 큰 연못에서 제물지의(濟物之儀) 즉, 모든 희생물에 대한 예절을 갖추는 살푸리굿을 하였다는 것이다. "

이들은 셔벌에 와서 삼신께 제를 드리고 삼근영초, 칠색보옥, 오엽서실을 구해갔다. 이런 기록은 부도지에 자세히 나온다. 셔벌은 한밝해, 발해, 청구, 배달, 밝달, 박달 등 여러가지로 불렀다. 최후에는 단군께서 평양으로 불렀다.

朝鮮이라는 국명은 이들 사해의 형제국들이 특산물을 조공하러 매년 '셔벌'에 모였기 때문인데 이를 조선제(朝鮮祭)라고 하였다. 지금 시장(市場)이란 것도 풀어보면 '마당마당'이란 뜻이다.

출처 : 환단원류사



부도지 제 13장 (第十三章)


壬儉氏이 歸而擇符都建設之地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結果之地라.

明山麗水이 連亘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咸 之其也라.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곳은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씨앗을 품은 곳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함이 없는(그치지 않는) 곳이다.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가득하니, 이곳은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사방에 모여 생명이 만들어지는 복된 땅이었다.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姑之本城이라.

이에 밝은 태백의 땅 정상에 천부단을 쌓고 사방에 이를 지키는 보단(堡壇)을 설치하였다. 보단(堡壇)간에 서로 통하는 세겹의 도랑을 연결하니 그 간격이 천 리였다. 도랑(垓子)길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姑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이 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旣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이라

부도(符都) 아래에 마을을 만들고, 삼해(三海)에 두루 연결되는 연못을 만들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4진(津)과 4포(浦)사이에 또한 6부를 설치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자 그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하여 밝은 빛(光明)은 사해의 제족 모두가 화합하기 충분하였으며, 모든 제족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맥(脈)이었다.



bc8937

2015.06.11 15:35:42

신불(神市)은 배달국을 말하는 것이고, 불(市)은 청구(靑邱)와 같은 뜻이다.

조공(朝貢)을 생각해 보자 조선에 공물을 바치는 것이다. 바로 단군시대에 사해에서 입조하여 조공을 했다는 기록이 부도지에 있다.

임진년 조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건방진 철부지 관백 전하 풍신수길이(豐臣秀吉)이 선조대왕님에게 보낸 국서에 조선왕이 일본에 와서 항복하라고 횡신수설했는데 그때 쓴 말이 입조(入朝)이다. 이 미친 정신병자 같으니 기존의 해석데로 라면 입조는 조선왕이 조선에 들어가는 것인데 입조라니. 그렇다 입조라는 말은 조선단국부터 있었던 제후국들이 단군의 나라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굳어진 말이 일본도, 중국도 모두 입조란 말을 사용하게 된 이유이다.

그 밖에 朝政, 朝聘, 朝會 등... 조정, 조빙, 조회 등... 이런 말이 정녕 '리성계태왕' 조선(朝鮮)에서 처음 쓴 말이겠는가 그 말의 근원처는 바로 단국조선(檀國朝鮮)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단국은 밝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뜻하며, 조선은 어둠이 걷혀지고 광명이 밝아 온다는 산스크리트 이다. 본문에서도 소개 되었지만 鮮이라는 말도 뭔가를 바친다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이며 헌(獻 바치다)의 뜻이 있으며 헌도 산스크리트이다. 선의 산스크리트 본 뜻은 '까인'으로 K음이 묵음되어 헌이되고 헌이 선으로 된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풀면 그렇게 된다.

[朝鮮 : 둏헌. 조선] 동국정운=> 둏: 날이 새다. 헌: 까인(Khain k묵음 하인--> 헌)

Di-yo Khain 둄-까인 : 동이 트는 곳, 어둠이 깨이다. 밝아지다. 광명(光明)

또, 市, 이 글자는 저잣거리가 아니라 잡초가 무성한 덤불이라는 뜻, 여기서 덤은 뭔가 넘친다는 뜻과 무성하다는 뜻이므로 주어는 불이다. 그러므로 본 뜻은 '불'이다. 불은 푸른 초원에 풀과 수목들이 무성한 것을 말하며 쉽게 말하면 정글, 밀림, 초원 이런 뜻이다. 나라 이름에 神을 붙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엇을 것이니 상고시대에 문명 수준이 가장 높았던 나라인 만큼 神이라는 것은 곧 전 세계의 어머니나라인 것이다. 가장 존엄하고 지혜로우며 백성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에게 붙이는 최고의 존칭이다. 그런 위대한 분이 다스리는 나라를 '신불'이라한 것이다. 神은 존엄하고 지혜로운 왕(王, 왕은 천, 인, 지의 본성에 통달한 사람을 뜻함)께서 계신다는 뜻이고, 불은 푸른 뻘, 대평원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청구(靑邱)이다. 청구(靑邱)는 신선이 건설한 나라이다. 이건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것이며 동방삭이 '십주기'에 기록하였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며 동방의 청정자(靑精子)가 생명을 잉태시키고 길러낸 땅이다. 그런 철학적 사상이 정립되었을 때 청구(靑邱)라고 이름한 것이며 태초 환인씨 때는 이곳이 부상(扶桑)이었다고 '신선전'에서 '마고(麻姑)'가 말했다.

우리는 환국이라고하면 환국 이외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독자의 어릴때를 생각해 보시라 깡생이, 똥깡새이, 막뚱이, 귀요미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렀듯이 태고 때 환국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정해지기 이전에는 부상이라 불렀는데 부상이란 나무는 동방을 상징하는 나무이며 뽕나무를 가리킨다. 뽕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동쪽이며 바로 청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일 만년 동안 뽕나무를 키우며 누에를 치고 옷깜을 짜서 비단옷을 입고 살았다. 서방에서 비단을 알게 된 것은 겨우 2천 년 전의 일인 것을 알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문명선진국이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漢나라때 로마에서 신라국까지 비단을 얻기 위해 조공하러 왔다.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던가!

부상국은 동방을 다스리는 청정자(靑精子)가 내려온 곳으로 청정자(靑精子)는 곧 환인천제께서 임무를 정해 동방으로 보낸 것이다.
이 름    비밀번호   

              
율곤 선생님의 강의 녹취록-오행신법론   노성매 2016/07/09 1,954
문의사항 연락처입니다   율곤학회 2013/04/03 5,854
603 무(巫)의 근원(根原) / 도통(道統)과 선통(禪統....   bc8937 2017/09/24 70
602 21세기 인문학을 여는 언어역사학 세미나 / 공개....   bc8937 2017/06/08 249
601 경세유표(經世遺表)에 언급되는 압록강   노성매 2017/03/20 718
600 [경세유표]8도(道)→12성(省) 지방재분할론   노성매 2017/03/20 681
599 종묘대제(宗廟大祭)에 날고기 쓰는 이유   노성매 2017/03/20 405
598 환단원류사 춘계 학술발표회   bc8937 2017/02/22 344
597 유투브 환단원류사 링크   bc8937 2017/02/08 436
596 환단원류사 학술 발표 원고 모집   bc8937 2017/01/29 436
595 환단원류사 강연 3월 중 예정   bc8937 2017/01/23 384
594 6.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7/01/05 372
593 ②-5.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6/10/02 596
592 ②-4.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6/09/23 553
591 ②-3.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6/09/16 517
590 ②-2.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취리산회맹   노성매 2016/09/12 348
589 연(燕)과 제(齊)의 혈투 ③전단, 齊나라를 지켜....   노성매 2016/09/10 351
588 연(燕)과 제(齊)의 혈투 ②28년간 복수의 칼을 ....   노성매 2016/09/07 310
587 연(燕)과 제(齊)의 혈투 ①어리석은 왕의 표본,....   노성매 2016/09/05 334
586 禮莫大於分②-1.삽혈로 되짚어보는, 부여융과....   노성매 2016/08/27 431
585 왜곡과 진실의 경계 ①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   노성매 2016/08/15 424
584 禮莫大於分 ①종묘대제의 희생   노성매 2016/08/08 448
583 대륙에 실존하는 수만 권의 고려(高麗) 장서(藏....  [1] 박 민우 2016/07/21 477
582 님금나무 중에서 룡(龍)의 이미지 형성에 대한 ....   류재선 2016/06/19 599
581 6/22 환단시편 출간   환단서림 2016/06/19 532
580 청구(靑邱)에 진다  [1] 박 민우 2016/06/04 495
579 간지는 율려를 연구하는 천문학 기호   박민우 2016/05/22 547
578 우리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준 정신문화, 사람....  [2] 이규진 2016/05/15 594
577 환단(桓檀)의 천문적 의미  [1] 박 민우 2016/05/08 574
576 상고사학회 후학들의 새책   bc8937 2016/04/08 767
575 무인(巫人)과 묘인(苗人)   박민우 2016/04/04 599
574 [이 사람] 상고사 연구가 박민우씨 소설 ‘님금....   영남일보 2016/03/29 655
573 일본의 재단 지원금 받은 '식민지 근대화론....   홍명철 2016/03/24 563
572 환단원류사 제 2권 중에서 / 유호씨의 행상(行....   박민우 2016/03/23 545
571 환민족 산스크리트 문학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박민우 2016/03/03 708
570 님금나무 미리보기   환단서림 2016/02/22 964
569 * 이덕일박사 유죄판결을 반박한다.  [2] 강기철 2016/02/22 671
568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출간 인사   박민우 2016/02/14 723
567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출간  [1] 박민우 2016/02/14 709
이땅의 역사를 날조한 기록상의 첫 인물  [1] 이규진 2016/01/15 927
565 하늘의 삼원 및 그 명칭에 관한 질문  [1] 박민우 2015/12/30 996
564 환단원류사 신간 안내  [2] 환단서림 2015/12/30 1,063
563 자신들의 학문권력의 아성을 방어하기 위해 뿌려....   강민규 2015/12/27 858
562     단군의 계보와 고구려 기록들(박병섭)  [1] 박민우 2015/12/30 700
561 때를 기다리며  [1] 우주류 2015/12/26 772
560 추억을 그리며  [1] 우주류 2015/12/10 943
559 수경주를 볼 수 있는 싸이트 소개   박민우 2015/11/28 1,003
558 수경주 책 구할 수 있나요  [2] 우주류 2015/11/28 896
557 '사르타야(Sarthaya) 살매(買) 팔매(賣)   bc8937 2015/11/24 893
556 후손들을 가르치겠다고 정성을 다 해 만든 한국....   기세훈 2015/11/21 854

123456789101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