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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이것이 인생이다 / 책속에서 찾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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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이것이 인생이다 / 책속에서 찾은 희망  
 


 책속에서 찾은 희망 
  
 방송일: 20031104  
 
 동영상 : 방송일: 20031104   

      
 


 1. 주요내용

 

노자의 도덕경을 새롭게 해석한 이중재씨!!

하루에 250여권에 이르는 책을 읽어내는 그는 70평생을 책과 원고지를 벗삼아 살았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공부에 전념하다보니 가족들의 생활은 산거지와 다름없었다. 끼니를 거를망정 그는 하루라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국회강의 중국연변대학 초청교수를 지냈고 대학강의와 저술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중재씨는 일본제국주의의 한민족 역사 왜곡에 강력한 항의를 하고 축소되고 오도된 한국 역사를 수정하고 새로운 민족사관을 심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중재씨의 학자적인 자긍심과 민족역사 정립을 향한 열정을 통해 가난과 시대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대가의 면모를 만나본다.

 

2. 줄거리

 

1931년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 태어난 이중재씨. 해방 전이였던 그 당시 일본은 전쟁 군수물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놋수저, 놋그릇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탈취해 갔다. 어린 중재는 나라가 힘이 있어야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때부터 그는 지게를 지고 다니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평범한 아이였던 그는 만물박사 이박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총명한 아이로 거듭났다.

넉넉치 않은 집안 살림으롤 중학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는 외사촌의 소개를 받아 이발소에 취직한다. 어떤 날은 하루에 270명을 이발 할 정도로 고된 나날을 보냈지만 월급을 모아 학교를 갈 생각으로 2년의
세월을 참고 견딘다.

그리고 꿈에도 원하던 중학교를 입학하고 첫 시험을 본다. 그러나 그가 받은 성적은 15등 중재씨는 믿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2년이나 늦게 진학한 학생이 만점에 가까운 답안을 제출했기에 컨닝을 했을 거라는 오해로 생긴일이였다. 이 후 그는 뛰어난 총명함으로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친다.

1950년 6.25가 일어나고 21살 그에게도 영장이 나왔다 중재씨는 전쟁터로 끌러나가는 것보다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슬펐다. 당시 면사무소에서 자유당 군역분과 부위원장이였던 누나의 도움으로 전쟁을 피해 그는 공부를 하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 일본 이발소에 취직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귄 일본 친구의 도움으로 명치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편하게 공부할 운명이 아닌지 밀고를 당한다. 밀항을 했다는 죄목으로 일본법정에 서게 된다. 중재씨는 그동안 갈고 닦은 학문과 조리있는 언변으로 일본 재판관에게 호통을 친다. 그에
당당함에 감동한 일본 배심원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이 일은 일본 메이지 신문에까지 실리게 된다. 1년 반만에 일본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3.8선이 그어진 한국으로 호송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곧바로
군대를 가게 된다. 군에서도 그의 해박함으로 장교들의 사랑을 받아 고된 훈련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몇 시기하는 사람들에게 구타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허리 디스크를 얻어 제대 후 3년동안 꼼작없이 누워서 지낸다. 중재씨는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통증을 잊기 위해 6개월간 단식을 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6개월 간의 단식으로 인해 망상이 오기 시작했다. 도포를 입고 배낭을 맨채 동냥을 다니기 시작하는 중재씨...

마을에는 그가 공부하다 미쳤다는 소문이 떠도는데 그는 평생을 공부만 하는 자신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헌신적인 내조를 해 준 아내와 부족한 자신의 학문과 인품을 보고 스스로 자청해 시집 온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한다. 그의 가족을 통해 진정한 공부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 본다.

 ** 프로듀서 : 황제연

 ** 연출 : 이상재

 ** 대본 : 박남준

 ** 제작사: (주) 해오름 프로덕션

 ** 기획 : kbs

 ** e-mail : ajani77@hanmail.net


 

 

 

 

 

 

 

律坤 李重宰 선생님을 보내다

 

朴民宇


1932년 11월 경남 통영군 섬 욕지도에서 태어난 율곤 李重宰 선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 다리가 먼저 나와 소위 거꾸로 태어난 아기였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늘 아이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했는데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도 없어 보리 암죽만 먹고 자랐다.

어릴 적 율곤선생은 야위고 신체가 작았다고 한다. 또한, 병치레를 자주 하여서 동네에서는 쫌뱅이 난장이라 놀리기도 하였는데 늘 이러한 열등감을 지니고 살았던 이중재는 오히려 漢學을 열심히 배우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등감을 극복해 나갔다.


생전 율곤선생님의 말씀

" 키는 작고 몸은 허약하기 짝이 없고, 집은 지지리도 가난하고, 게다가 나라가 일본 사람들의 식민지라는 의식이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아주 어릴 때부터 제 가슴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까지는 그럭저럭 졸업했는데 돈이 없으니까 중학교는 못 갔습니다. 제 열등감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면서도 무조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주로 어려운 책을 읽었습니다." 

" 하루는 이발사 하는 팔촌 형님이 저희 집에 왔습니다. 저더러「너는 몸도 약한데 나무를 하러 댕길 것이 아니라 내 밑에 와서 이발 기술을 배워라. 여가에 공부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 밑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머리 감기기만 하다가 나중에도 면도·이발도 하게 되었습니다. 추석 대목에 이발소 손님이 많았는데 열심히 일했다고 월급 5백 원 외에 따로 5백 원을 더 받았습니다. 그 돈을 부모에게 드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욕지중학교 교장 선생님을 다짜고짜 찾아가서 입학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학교에 낼 입학금과 공납금은 준비되어 있다고 했지요. 정기 모집 신입생이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였지만 간단한 시험을 치고 입학시켜 주었습니다. 그러고서는「너 앞으로 큰놈 되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이 내 평생 언제나 엊그제들은 말처럼 한시도 떠나지 않고 귀에 쟁쟁합니다." 

(1995년 06월 03일 중앙일보 강위석의 '들으며 생각하며') 


중학교 3학년이 되든 스무 살 때, 한국전쟁(6.25)이 터지고 그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키 1백50㎝의 약골 청년을 전쟁터에 보내려고 징병관이 몇 번이나 붙들어갔지만 허약하다는 이유로 매번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다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군대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생각한 이중재는 일본으로 가서 대학으로 진학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집에 있는 땅 전부인 밭 3백 평 가운데 반을 팔아 달라고 졸라 그 돈으로 배 삯을 내고 연화도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 

청년 이중재는 낮에는 이발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대학의 꿈을 꾸었지만 친구 노무라의 배신으로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두고 밀항자로 붙들려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그 이후 8개월을 수용소에서 지낸 다음 휴전되던 해 이중재는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한국으로 송환되자마자 제주도 훈련소에 보내졌다. 훈련을 마치고는 22사단 교육대에 배치되었다. 심한 참나무「빳다」에 기합을 받은 다음 약한 몸을 추스리지 못해 의무대에 입원했다. 야전병원을 거쳐 대전 63병원에 후송되었다가 군대생활 1년 10개월 만에 의병 제대한다. 26살 때였다. 


생전 율곤선생님의 말씀

" 집에 돌아와서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일본 밀항·수용소·군대생활을 거치면서도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문은 어릴 때 아버지한테 배워 중학교 다닐 때는 제가 한문 선생보다도 글이 나았습니다. 철학·문학·한문 원전을 손에 닿는 대로 읽었습니다. 제대하고 집에 누워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있었던 그동안도 책을 손에서 뗀 일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기력이 쇠잔해서 그랬는지 환상과 망상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망상은 도통(道通)을 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1995년 06월 03일 중앙일보 강위석의 '들으며 생각하며') 


한날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공부를 하던 청년 이중재는 28살 무렵 전국을 떠돌며 방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걸인이 되어 1년여의 세월을 보내다가 서른 살 때 동네 처녀와 결혼을 했다. 부산 영도다리 근처에서 여관방을 얻어 관상 보는 일을 업으로 살면서  저서1966年『現代人相論』을 발표하였다.

1981년부터는 서울 충정로 현재 자택으로 옮겨와 역사 연구만 50여 년을 몰두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지만 아직 뚜렸히 두각을 나타내는 제자는 없다. 파란만장했던 율곤선생의 인고의 세월도 2011년 9월 10일 향년 80세를 일기(一期)로 마치게되었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구) 율곤학회 때 약력
      
 
        1932년 경남 통영군 욕지 출생.
 
        1959년 단국대학교 政經學 수료.
        1981년 前 五星硏究會 會長.
        1984년 한국예술문화협회 초대작가.
        1986년 서울대학교 인문대 東洋史學 회원.
        1987년 민족정기수호협의회 위원.
        1988년 한哲學 통일헌법연구소 고문.
        1989년 5월 15일 대한민국 현대인물사 수록.
        1996년 중국 연변대학 초청교수.
        1996년 5월 일본동경대학 리다회 전 고문.
        1996년 9월 미국 LA 한미신문 전 편집위원.
        1997년 8월 1일 중앙일보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등 수록.
        1998년 5월 평생교육신문 논설위원.

       
 구) 율곤학회 때 경력

 


        1981년 12월 10일  KBS TV 五行思想 출연 방송.
        1983년 1월 26일  KBS 라디오 방송.
        1987년 4월  韓民族宇宙哲學史想 출판기념 강연.
        1991년 6월  韓民族 정립 대강연회, 프레스센터.
        1991년 10월  대전대학교 대학원 초청강연.
        1993년 9월  上古史大講演會,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
        1993년 12월  국방대학원 초청강연회.
        1993년 3,4,5월  전국 丹學硏修院 3차 강연.
        1993년 5월  일본동경대학 유학생 강연.
        1994년 3월  韓民族史 정립 대강연회, 세종문화회관.
        1994년 9월  대구 계명대학교 초청강연.
        1994년 9월  국민대학교 초청강연.
        1994년 10월  天山기행 대강연회, 세종문화회관.
        1994년 10월  개천절 KBS 라디오방송.
        1995년 6월 17일  중앙일보 신입기자 강연회.
        1995년 9월  일본 출판노조 간부 강연.
        1996년 3월  교육부내 지방행정국 강연.
        1996년 3월  중국 연변대학교 유학생 강연.
        1996년 4월  북경 중앙민족대학 강연.
        1997년 8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1997년 11월  대구 경상대학교 한의과대학 강연.
        1998년 6월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강연.
        1999년 2월  한국전통경영학회 강연.
        1999년 9월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강연.
        1999년 10월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북한학과 2차 강연.
        1998년, 99년 10월  동부중학교 학생 3차 강연.
        1999년 11월  승가대학 강연.
        1999년 11월  대학서당 교사연수원 강연.
        1999년 12월 10일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워크숍 강연.
        2000년 8월 25일  덕성여대 교직원 강연.
        2000년 6∼9월  하버드대학, 연세대학 학생들에게 歷史, 老子道德經·西昇經 강의.
        2000년 11월 30일  국회 '21세기 동북아연구회' 국회의원 특강.
        2001년 2월 7일  MBC PD 특강.
        2001년 5월 18일  국회 사무처 특강.
        2001년 6월 21일  한국자연의학총연합회 강연.

 

 


현재 상고사학회 연혁


1932年 慶南 統營郡 欲知 出生.

1959年 檀國大學校 政經學 修了.

1959年∼1980年 歷史·道學 修學.

1981年 五星硏究會 會長.

1984年 韓國藝術文化協會 招待作家.

1986年 서울大 人文大 東洋史學會員.

1988年 한哲學 統一憲法硏究所 顧問.

1989年 5月 15日 大韓民國 現代人物史 收錄.

1996年 中國 延邊大學 招請敎授.

1996年 5月 日本東京大學 리다회 顧問.

1996年 9月 米麴 LA 韓美新聞 編輯委員.

1997年 8月 1日 中央日報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등 수록.

1998年 5月 平生敎育新聞 論說委員.

2001年 한民族大學 學長.

現 社團法人 上古史學會 會長.


저서 . 논문 . 강연


1966年『現代人相論』

1986年『한民族宇宙哲學思想』

1990年『한民族史』

1992年『五星公論』

1993年『上古史의 새발견』

1995年『처음으로 밝혀진 새 高麗史』

1997年『古代朝鮮과 日本의 歷史』

1997年『伽倻史』와 三國列傳』

1998年『氣란? 물과 빛과 소리』

1999年『五行神法論』

1999年『새四柱神法』

2001年 세계최초로 완역한『山海經』譯

2001年『새로 밝혀진 佛敎뿌리歷史』

2001年 세계최초로 완역한『老子 西昇經』譯

2001年 세계최초로 완역한『老子 道德經, 十戒經』譯

2001年『李氏의 뿌리 歷史』


◉ 五星에 對한 哲學的 考察

◉ 理氣論에 對한 東洋哲學的 考察

◉ 廣開土大王의 碑文

◉ 高句麗뿌리 歷史

◉ 高句麗戰亂史

◉ 高句麗史略

◉ 百濟史의 비밀

◉ 新羅 뿌리 歷史

그外 47編


1981年 12月 10日 KBS TV 五行思想 出演 放送.

1983年 1月 26日 KBS 라디오 放送.

1987年 4月 한民族宇宙哲學史想 出判記念 講演.

1991年 6月 프레스센터 ‘한民族史 定立’ 大講演會.

1991年 10月 大田大學校 大學院 招請 特講.

1993年 9月 世宗文化會館 大會議室, 上古史大講演會.

1993年 12月 國防大學院 招請 特講.

1993年 3,4,5月 전국 丹學硏修院 3次 特講.

1993年 5月 日本에서 東京大學 留學生 2次 特講.

1994年 3月 世宗文化會館, 한民族史 定立 大講演會.

1994年 9月 大邱 啓明大學校 招請 特講.

1994年 9月 國民大學校 招請 特講.

1994年 10月 世宗文化會館, 天山紀行 大講演會.

1994年 10月 開天節 KBS 라디오放送.

1995年 6月 17日 中央日報 新入記者 特講.

1995年 9月 日本에서 出判勞組 幹部 特講.

1996年 3月 敎育部內 地方行政局 特講.

1996年 3月 中國 延邊大學校 留學生 特講.

1996年 4月 北京 中央民族大學 特講.

1997年 8月 SBS ‘그것이 알고싶다’ 放送.

1997年 11月 大邱 慶尙大學校 韓醫科大學 特講.

1998年 6月 京畿大學校 敎育大學院 特講.

1999年 2月 韓國傳統經營學會 特講.

1999年 9月 漢陽大學校 經營大學院 特講.

1998年∼99年 10月 동부중학교 학생 3차 特講.

1999年 10月 東國大學校 會計學科·北漢學科 2次 特講.

1999年 11月 僧伽大學 特講.

1999年 11月 大學書堂 敎師硏修院 特講.

1999年 12月 10日 漢陽大 工大 敎授워크숍 特講.

2000年 8月 25日 德成女大 敎職員 特講.

2000年 6~9月 하버드大 留學生 講義.

2000年 11月 30日 國會, 21世紀 東北亞硏究會 招請, 國會議員 特講.

2001年 2月 7日 MBC PD 特講.

2001年 5月 18日 國會 事務處 職員 特講.

2001年 6月 21日 韓國自然醫學總聯合會 特講.

2002年 11月 4日 KBS ‘이것이 人生이다’ 放送.

2003年 12月 5日 6사단 靑星부대 特講.

2003년 12월 11일 空軍 보라매 硏修院 高級將校 特講.

2004年 6月 15일 KBS KOREA ‘리얼토크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放送.

2004年 9月 10日 EBS ‘미래의 조건’ 放送.

2004年 11月 12日 國會, 21世紀 東北亞硏究會 招請, ‘東北아시아의 古代史에 대한 새로운 視覺’ 特講.

2004年 11月 17日 大田空軍大學 招請 特講.

2004年 12月 14日 世宗文化會館 건벤션센타, ‘高句麗뿌리 歷史’ 大講演.

2005年 4月 6日 忠北大學校 招請 特講.

2005년 5月 21日 이화여대 삼성교육문화관, ‘高句麗 戰亂史’ 大講演.

2005年 7月 9日 고당 조만식 기념관, ‘古代朝鮮과 日本의 歷史’ 特講.

2006年 3月 18日 世宗文化會館 컨벤션센타, ‘百濟史의 秘密’ 大講演.

2006年 8月 23日 全國文人 招請 特講.

2006年 9月 27日 國會, 21世紀 東北亞硏究會 招請, ‘고구려는 中原대륙의 주인이었다’ 特講.

2006年 9월 29日 國史編纂委員會 초청 特講.

2007年 4月 17日 國會도서관 대강당, ‘新羅의 뿌리 歷史’ 大講演.

 

( 2013년 12월 22일 19시 13분   조회: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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