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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잡고(地名雜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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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잡고(地名雜考) 라고 해서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 떠도는 中國古今地名大辭典의 지명관계 문서들을 그대로 수집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예전에 율곤학회에서 해설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90% 정도)

검색어 : 고금 지명, 지명 사전 etc

 

中國古今地名大辭典 p.1102

漢朝代 漢高祖 滅秦有天下 國號漢 故城在今陜西長安縣 西北三十里 黃河 長江(揚子江) 珠江(淮水) 三流域 朝鮮


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102

秦나라를 한고조가 멸하고 천하를 가졌으며 국호를 漢이라 하였는데 현재 '섬서성 장안현 서북 삼 십리'에 그 城이 있었다. (그 지역은) 황하, 장강, 주강(회수) 등 3개의 강이 흐르는 지역으로 조선이다. (三流域 朝鮮) 다시말해 중원대륙은 처음부터 조선이었기에 漢이 집권하기까지 황하 양자강 회수 지방은 고대의 조선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내용들은 주로 '중국지명대사전' 을 전고 한 것이다.

 

평양(平壤)

1931년 中國古今地名大辭典을 저술한 장려화(臧勵?)는 지명(地名)이 바뀌어진 過程을 적으면서도 일부분 有名한 歷史의 흔적이나 나라이름 등은 자국을 남기고 있다.

平壤을 平襄이라고 약자를 쓴 곳도 있고, 平壤이라는 글자를 아예 平陽城 또는 平陽府, 平陽郡, 平陽縣으로 바꾸었다.


평양현(平陽縣)

 中國古今地名大辭典 215쪽

 平陽縣은 본래 平壤이며 옛부터 堯王儉이 都邑한 곳으로 지금의 山西省 臨汾縣 남쪽이라고 되어있다. 한편 平陽府는 古帝堯 즉 옛 堯임금의 都邑地로서 山西省 臨汾縣 西南이라 했다. 또한 옛 城은 山東省 추현(鄒縣)에서 다스렸다는 說과 湖北省 운서현(?西縣) 서북이라 했다. 그러나 山東省과 湖北省이라고 하는 것은 歷史를 故意로 歪曲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217쪽

漢나라 때 두었는데 後魏 때 폐하였다. 옛 古城이 있던 곳은 지금의 甘肅省 通渭縣 西南이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平陽府를 보면 옛날 堯임금이 都邑했던 곳으로 三國時 魏나라가 둔 곳이 平陽郡이다. 이곳을 예로부터 다스려 오던 곳은 지금의 山西省 臨汾縣 西南으로 되어있다.
 
여하간 平壤城의 본 位置는 三國遺事 古朝鮮편에 있는 것처럼 堯임금이 都邑한 王儉城이며 후일 平壤城으로 지금의 西安임을 나타내고 있다.


 패수(浿水) (黃河의 中流地域)

  漢魏時代之浿水爲今之鴨綠江.(史記朝鮮傳)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漢興.爲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隋唐時代之浿水.卽今朝鮮平安道之大同江.[隋書高麗傳]都於平壤城.南臨浿水.古百濟國北境之浿水.或云卽禮成江.或云卽臨津江.[三國史記]「渡浿帶二水.至彌鄒忽.」按彌鄒忽卽今朝鮮之仁川.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27p」
                                                       

한나라 위나라 시대의 패수다. 지금에 와서는 압록강이다. (사기조선전)처음에 연나라(七雄時代)시대다. 진번조선(山西省 太原)에 속해 있었다. 한나라가 흥할 때. 그곳이 멀어서 지키기 어려웠다. 요동의 옛 땅을 다시 수리했다. 패수의 경계에 이른다. 수나라(AD 589年-618年)?당나라(AD 618年-907年)시대의 패수이다. 지금의 조선 평안도(山西省 一帶)의 대동강이다. [수서고려(高句麗)전]도읍을 평양성에 했다. 남쪽에는 패수가 임하고 있다. 옛날 백제국 북경의 패수다. 혹 이르기를 예성강이다. 혹 이르기를 임진강이다. [삼국사기] 「패수와 대수(河南省 一帶)를 흘러 미추홀(河南省 洛陽西)에 이른다.」按皇甫謐에 의하면 미추홀(河南省 三門地域)은 즉 지금 조선의 인천이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27p」

 

 

패수현(浿水縣)
漢置.以浿水名.後漢因之.誤作具水.卽今朝鮮鴨綠江南岸之義州.其地當遼東與樂浪郡治之間.蓋衝要之區也.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27p」

한나라때 두었다. 패수의 이름이다. 후한까지 이르렀다. 구수라는 말은 잘못 쓴 것이다. 즉 지금의 조선 압록강 남쪽 기슭의 의주(河南省 汲縣)다. 그 땅은 분명 요동과 낙랑군 사이에서 다스렸다. 모든 나라의 요충지의 구역이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27p」

 


의주(義州)
  後魏置.北齊廢.故治在今河南汲縣.唐復置.尋廢.隋置.見義陽郡條.唐置南義州.尋廢.後復置義州.改曰連城郡.尋復曰義州.宋改曰南義州.尋廢.故置在今廣西岺溪縣東二十里.唐置.後改牢州.詳牢州條.五代唐置.宋改爲儀州.詳儀州條.宋置羈?州.今闕.當在貴州舊思南府境.金置.見義縣條.
                                      「中國古今地名大辭典 1406p」

후위(AD 386年-581年)때 두었다. 북제(AD 550年-577年)가 폐했다. 옛날부터 다스려 지금에 이르러 河南省 汲縣이다. 당(AD 618年-907年)나라가 다시 두었다. 찾아서 폐했다. 수(AD 589年- 618年)나라 때 다시 두었다. 의양군조를 보라. 당(AD 618年-907年)나라 때 두어서 남의주다. 찾아서 폐했다. 후에 다시 두었는데 의주다. 고쳐서 말하기를 연성군이다. 다시 찾아서 의주라고 했다. 송(AD 906年-1279年)나라 때 고쳐서 말하기를 남의주다. 찾아서 폐했다. 옛날에 두어 지금에 이르러서 광서성 영계현 동쪽 20리 이다. 당(AD 618年-907年)나라 때 두었다. 후에 고쳐서 뇌주다. 뇌주조를 상세히 보라. 오대당때 두었다. 송(AD 906年-1279年)나라 때 고쳐서 의주라 하였다. 의주조를 상세히 보라. 송(AD 906年-1279年)나라 때 기미주에 두었다. 지금 집은. 마땅히 귀주성 구 사남부 경계선이다. 금나라 때 두었다. 의현조를 보라.
                                         「中國古今地名大辭典 1406p」


대방군(帶方郡)
  漢置帶方縣.後漢末公孫康割樂浪郡南部爲帶方郡也.以帶水爲名.晉因之.後沒於高麗.卽今朝鮮京畿道及忠淸北道之地.故治在今平壤西南.帶水乃今之漢江也.自高句麗倂樂浪後.帶方遂爲高句麗百濟競爭之地.後魏復置帶方縣於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96p」

한나라 때 두었는데 대방현이다. 후한말 공손강이 낙랑군(河南城 一帶) 남부를 나누어서 대방군이다. 그럼으로써 대수의 이름이 되었다. 진나라 때 이르러. 후에 고구려가 몰수했다. 즉 지금의 조선 경기도(陝西省 一帶) 및 충청북도(四川省 東部와 湖北省 西쪽 一帶)의 땅이다. 옛부터 다스려 왔는데 지금의 평양성(陝西省 西安) 서남이다. 대수는 이내 지금의 한강이다(즉 漢水를 말한다). 고구려가 낙랑을 병합한 후에. 마침내 대바은 고구려와 백제가 경쟁하는 땅이 되었다. 후위때 다시 두어서 대방현이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96p」

 


말갈(靺鞨)
  靺鞨國.卽勿吉國.在今松花江印際海.混同江以南抵長白山之地.爲古肅愼.漢魏?婁舊壤.北魏 (AD 386年-534年)<北朝北魏>道武帝 拓跋珪 登國-永熙(AD 532年-534年). 要, 東魏 孝靜帝(AD 534年-武定 AD 543-530). 西魏 文帝 元寶 拒 大統(AD 535年 - 恭帝 AD 554年-556年) 北魏始曰勿吉.北史云.一名靺鞨.分七部.其後互相兼幷.至唐初僅存黑水粟末二部.粟末靺鞨自萬歲通天 (北周 AD 696年-679年) 以後改稱渤海黑水靺鞨則女眞之所出.(參看勿吉國條)

지금 松花江(중국 東北의 吉林 ? 黑龍江 두 省을 灌流하는 河川)에서 동쪽으로 걸쳐서 있는 바다. 혼동강(遼河 -중국 東北 지방 남부 평원을 灌流하는 江- 의 支流)의 남쪽 장백산(백두산)이 있는 땅이다. 옛날에는 숙신의 땅이다. 한나라 위나라 때는 읍루의 옛 땅이다. 北魏 (AD 386年-534年)<北朝北魏>道武帝 拓跋珪 登國-永熙(AD 532年-534年). 要, 東魏 孝靜帝(AD 534年-武定 AD 543-530). 西魏 文帝 元寶 拒 大統(AD 535年 - 恭帝 AD 554年-556年). 북위 때 처음 말하기를 물길이다. 북사에 의하면 일명 말갈은 7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후 상호간에 병합되어 있었다. 당나라 초기에 이르러 겨우 흑수속말 2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속말말갈 만세통천(北周 AD 696年-679年) 이후 개칭해서 발해 흑수말갈이라 하고 즉 거기서 여진이 나왔다.(참고로 물길국 조를 보아라.)


구천(拘川)

中國地名大辭典 526쪽

拘川은 拘山에 속해 있으므로 拘山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拘山은 본시 직예성(直隸城) 즉 지금의 河北省으로 永平縣 西쪽  60里에 있다고 적고 있다.

 

환도(丸都)

中國地名大辭典 51쪽

  丸都, 高句麗故鄕.「通典」城在丸都山下沸流水之東.「唐書地理志」自鴨綠江口, 舟行百餘里, 乃小舫?流, 東北三十里至泊?口, 得渤海之境, 又?流五百里至丸都城, 故高麗王都, 按城在今遼寧輯安縣, 有魏母丘儉破高句麗勒功碑.


  丸都는 高句麗의 옛 都邑地이다. 通典에는 城이 있는 곳은 丸都山 아래 비류수(沸流水)가 동으로 흐른다. 唐書地理志에 따르면 압록강(鴨綠江) 입구로부터 뱃길로 1백여 리이다. 작은 배로 거슬러 올라 흘러가야 한다. 東北으로 30里에이르면 박작구(泊?口)에 이른다. 여기서 박작구란 배가 머무를 수 있는 포구(浦口)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渤海의 경계에 닿게 된다. 또한 물길로 거슬러 가면 5百里에 丸都城에 이른다. 이곳이 옛 高句麗王의 都邑地이다. 안황보밀(按皇甫謐)에 의하면 城이 있는 지금에 와서는 遼寧에 있는 집안현(輯安縣)이라 했다. 魏나라 모구검(母丘儉)이 공격해 왔을 때 고구려(高句麗)가 격파한 공덕비가 새겨져 있다고 적고 있다.

 

본문에서 집안현에 城이 있다고 한 것은 高句麗가 AD.600年頃 그러니까 보장왕(寶藏王.AD.634년) 二十六年 羅唐 연합군에 밀려 집안현(輯安縣)에 왔을 때 세워진 비석임을 말한다.

  本文에서 보면 丸都城은 丸都山 아래 비류수(沸流水)가 동으로 흐르는 곳이라고 했으므로 비류수를 地名辭典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519쪽을 보면 沸流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奉天에 있는 동가강(?家江)이라 했으며 通典에는 丸都山 아래 沸流水가 동으로 흐른다고 했다. 中國地圖를 보면 奉天에는 강이 동으로 흐를 곳이 없고 모두 남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렇다면 沸流水는 지금의 河南省 동쪽으로 흐르는 黃河의 支流가 高麗末까지 압록강(鴨綠江)이라 했으므로 渤海의 경계에서 거슬러 흐르는 곳에 丸都城이 있고 丸都山 아래 沸流水는 발해만으로 흘러 동으로 가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沸流水가 동으로 흐른다는 말이 맞다. 地名辭典은 1931년에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먼 훗날 高句麗가 망한 뒤 奉天쪽으로 丸都城이나 丸都山이라는 地名을 옮긴 것을 記錄한데 불과하다고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강물이 흐르는 것은 추호의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안시성(安市城)

地名辭典 302쪽

안시현(安市縣)

安市城은 分明히 安市縣에 있는 게 正論일 것이다. 그것은 安市城이 다른 지역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本文을 싣고 풀어보기로 한다.


  安市縣, 漢置, 後漢及晋因之, 後入高句麗, 故城在今奉天蓋平縣東北, 唐太宗伐高句麗, 功安市城不下, 遂班師, 後魏置, 北周廢, 故治在今京兆密雲縣東北五十里.


  安市縣은 漢나라 때 설치된 것이다. 後漢에서 晋나라에 걸쳐 있었다. 그러나 그후 高句麗의 강역으로 들어왔다. 故城이 있던 곳은 奉天의 蓋平縣 동북이다. 唐나라 太宗 李世民 정관(貞觀.AD.627~649년)은 高句麗를 치려고 安市城 아래까지 들어와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장수들이 나누어 함락하려 했지만 불가했다.

後魏 때 다시 설치했지만 北周 때 폐지되었다. 옛날 다스리던 곳은 京兆 密雲縣 東北 50里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서 京兆는 지금의 西安을 말한다. 그렇다면 高句麗 安市城은 처음 西京인 西安에 있었으나 羅唐軍에 의해 奉天에 있는 蓋平縣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前述한 바와 같이 重要한 모든 地名을 奉天으로 옮긴 것을 볼 수 있다. 여하간 丸都城이나 安市城은 强力한 天子의 나라였을 때 모두 섬서성(陝西省) 西京인 西安에 있었음을 뜻하고 있다.

  中國이 地名을 이리저리 옮기고 특히 모두라 할만큼 奉天으로 밀어붙여 高句麗가 中國 中原의 大陸에 없었음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도 모든 正史의 記錄과 같이 中原大陸인 西京이었던 西安에 丸都城이나 安市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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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18일 22시 31분   조회: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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