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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律坤

 

 


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이름 : 律坤
 2003/4/1(화)
 
  序   論


 가.  漢字의 發達史

    ㉠ 漢字의 始作

    ㉡ 漢字의 歷史

    ㉢ 漢字의 思想


 
나.  漢字는 中國人의 글이 아니다

    ㉠ 漢文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다.

    ㉡ 三讀法과 三味法

    ㉢ 中國의 祖上은 四夷이다


 
結   論 (결론 부분 자료 없음 . 미완성)


 


    

   序 論

 

漢字가 中國人의 글인줄 알고 있다. 그리고 漢字는 漢나라 때 中國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怪說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事實 漢文字의 發達은 紀元前 8937年 以後부터 始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證據로는 韓致奫 著 海東繹史 世紀二 檀君朝鮮 편에 적혀있다. 또 1673년경 淸나라 康熙 때 저술된 歷代神仙通鑑 太極判化生五老인 三才立發育蒸民 편에도 잘 記錄되어 있다. 뿐만아니라 1610년경 田以采와 朴致維가 共同으로 著書한 史要聚選 卷一 帝王편에도 나타나있다.

 


그리고 1577년경 朝鮮王朝 때 宣祖 10年에 著書된 幼學須知는 程允升과 程錫山 兄弟가 共著한 第一卷 統系편에도 紀錄하고 있다.

 

특히 幼學須知는 朝鮮王朝 宣祖 10年부터 純祖 17年까지 무려 240여년간 어린이들의 敎科書로서 使用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1577년 丁丑年에 著書한 幼學須知는 240年이 지난 1817년 丁丑年까지 朝鮮王朝에서 敎科書로서 脈을 이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幼學須知는 1736年 淸나라 乾隆 때 다시 校訂本으로 나온 것이 오늘날까지 傳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漢字는 中國人들이 漢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漢字는 中國人들이 만든 글이 아니며 漢나라에서 만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漢文字의 순서가 순 한民族의 言語體系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國語辭典에서 보듯이 約 80퍼센트가 우리들이 항상 쓰고 있는 漢文字의 소리말에서 뜻글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大韓民國, 朝鮮, 學校, 道路, 國會, 政治, 經濟, 文化 등 모든 言語의 구사가 순 우리말임을 알 수 있다.

 

漢字는 하늘 天(천)자 한 글자에도 네가지 발음인 四聲音이기 때문에 혼돈되기 쉽다. 그러기에 世宗大王은 뜻과 소리를 구분하여 소리인 訓을 달아 方言(방언, 사투리)을 막기위해 訓民正音이라했다. 즉 訓民正音이란 백성들에게 바른 음을 가르키기 위함이었다. 世宗大王이 한글인 언문을 만든 것은 한글을 쓰기 위함이 아니었다. 복잡한 네가지 음을 사용했을 때 사투리가 될 우려가 많으므로 정확한 소리의 발음으로 漢文字를 통일시켜 백성들에게 올바른 意思 소통을 전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현재 中國語의 경우를 보면 漢字를 네가지 발음으로 사용하다보니 方言이 된 경우이다. 고로 사투리가 地方마다 퍼져 지나치게 方言이 심해지자 글자로 表現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고로 漢文字를 적당히 골라 빌려쓴 것이 中國글이라 할 수 있다.


지면상 中國말을 한가지만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우리말로 빨리 오라고 漢字로 表記할 때 快來(쾌래) 또는 速來(속래)라고 하면 될 것을 쾌쾌드래래(快快的來來)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現在 中國에서 使用하고 있는 말 그대로 文章을 쓰게 되면 말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지방마다 말이 다르므로 사투리가 심해 글로 表現할 수 없다. 사투리로 말할 때는 끼리끼리 통하지만 일단 글로 文章을 나타낼 때는 표준인 한民族의 言語順으로 表記하고 있다.

 

만약 現在 쓰고 있는 中國말로 文章을 엮는다면 中國말을 모르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투리를 사용하는 中國사람들도 글을 쓸 때는 標準語인 한民族의 言語體系대로 쓰기 때문에 요즘 中國에서 發行되고 있는 原典을 理解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筆者는 한글로 된 책은 速讀하지 못해도 漢字로된 책은 速讀이 可能한 것이다. 하루에 수월하게 30卷의 漢字로된 史書나 道學, 思想, 經典 等을 읽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原典을 꼭 보아야할 경우에는 하루에 150권까지 速讀이 可能한 것이다.

 

漢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므로 눈에 익으면 쉽게 速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理由는 간단하다. 數萬권의 原典을 읽다보면 눈에 익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速讀을 할 경우 內容을 깊이 알 수 없기 때문에 精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精讀을 할 경우 하루에 6권정도 밖에 보지 못하지만 內容을 充分히 理解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할 것이다.

 


筆者 自身도 漢字를 많이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漢字의 수가 워낙 많기도 하지만 常用漢字가 아니고 古字나 모르는 글자가 있기 때문이다. 前 某敎育部長官은 筆者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 적이 있다. 李 會長은 뭘 먹고 工夫를 했기에 漢字를 어찌 많이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하기를 오늘날까지 물만먹고 살았고 漢字工夫는 先生님이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그 때 某長官은 先生님이 누구냐고 되물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玉篇이 첫째 스승이고, 두 번째 스승은 祖上님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人間은 누구나 努力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漢字는 뜻글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렵다고 여기면 그때부터 漢字工夫는 틀린 것이다. 한民族의 後孫은 白衣民族이자 倍達의 子孫이다. 또한 天孫族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누구든 하면 된다는 信念으로 공부한다면 不可能하지 않는 것이 人間이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가 나빠 工夫가 안 된다고 단념한다면 그때부터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人間의 腦構造이다. 그러나 漢字는 工夫하면 할수록 뜻이 깊고 오묘하므로 漢字의 思想을 알게되면 정말 희열에 넘치고 재미있는 것이 漢字工夫이다.


假稱 한民族大學에서 一年間 歷史原典으로 各種 史書를 工夫시키고 있다. 그 결과 漢文字를 모르던 젊은 世代들은 一年이 지나자(5個月, 7個月) 歷史原典을 읽고 解說하면서 보람찬 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3月 15日 假稱 한民族大學에서 歷史原典 解說과 老子道德經, 老子西昇經, 그리고 自然哲學인 五行哲學과 한民族의 精神修鍊法인 踰伽學을 工夫시키고 있다.


불과 7個月만에 漢字原典을 읽고 해설할 수 있다는 것은 漢字가 한民族의 言語體系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7월부터 3개월간 美國 하버드大 學生과 延大 그리고 펜실바니아大 學生 등 8명이 漢字敎育을 받은바 있다. 영어만 잘알고 있던 學生들은 漢字를 전연 모르고 있었다. 첫날부터 漢字를 찾는 것에서부터 漢字를 익히는 方法 등을 通하여 2주일간 速讀하는 漢字敎育을 하였다. 그후 約 2주간에 걸쳐 간단한 歷史와 思想으로된 原典敎育으로 進行되었다. 나머지 1個月은 집중적으로 歷史原典을 익히고 다음부터 老子道德經과 老子西昇經 등을 指導하였다. 3個月이 되어 漢字敎育을 通한 學習을 알아보기 위해 試驗을 보았더니 8名 모두가 80점에서 95점까지 나왔던 것이다. 그후 1년이 지난후 다시 漢字敎育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本人이 事情上 가르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漢字가 어려운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첫째 글자의 획수가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漢字 한글자에 많은 뜻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漢文字의 풀이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글과는 달리 漢文字의 글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어디서 떼고 어떻게 解說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漢文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기 때문에 글자 順으로 풀이하면 된다는 점이다.

 


특히 漢字의 풀이는 完全한 解說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漢文字는 名詞, 助辭, 副詞, 動詞 그리고 修飾詞의 순서를 잘알고 풀어보면 쉽게 解說할 수 있는 것이다.


漢字敎育은 잘못하면 20년 50년을 하여도 글자만 알뿐 歷史와 道學 그리고 經典 등을 풀이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牧民心書, 明心寶鑑, 四書三經 등을 工夫하여도 歷史原典을 解說하기란 不可能한 것이다. 또한 자칭 漢字를 자유자재로 풀이할 수 있다는 金容沃도 道可道非常道를 道는 道인데 道가 아니라고 풀이하였다. 그뿐만아니다. 靈자를 虛자로 보고 虛其心 허기심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谷神不死를 산골 신은 죽지 않는다고 해설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漢字만 안다고 해서 漢文字를 바르게 理解할 수 없는 것이다.


漢文字를 根本的으로 익히고 解說할 수 있게 하려면 쉽게 이해하고 숙독할 수 있는 方法이 있다. 즉 文理를 모르면 안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漢文字를 50년만에 익힐 수 있는 것을 단 2년내로 理解하고 풀이할 수 있는 智慧가 열리면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漢文字는 한民族의 言語이자 글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들의 말이자 한국인의 소리글이며 뜻을 지닌 글자이므로 쉽게 速讀도 解說도 가능하다는 것을 强調하고 싶다. 고로 漢字를 버린다는 것은 先祖들의 혼과 뜻과 思想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최소한 漢字를 버리지말고 混用하는 길만이 祖上님들에게 謝罪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國民政府에 이르기까지 한글전용만을 주장해온 결과 歪曲된 植民史觀으로 인해 한民族의 偉大했던 歷史와 自然思想을 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倫理와 道德은 무너지고 生命의 尊嚴性과 孝思想마저 失踪되었다. 따라서 社會는 奢侈와 享樂이 판을 치게 되었고 犯罪者가 亂舞하는 가운데 不正腐敗와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마디로 亡國의 時點에 도달한 韓國의 現實은 급기야 放火로 因해 大邱 大慘事도 發生하게 되었다.


現在 韓國의 現實은 總體的 危機意識에 直面하고 있다. 그것은 前者에도 언급했듯이 歷史와 思想이 알알이 담긴 漢文字를 使用하지 않고 저버렸기 때문이다. 雪上加霜으로 한글만 主張하다보니 한民族의 精神思想은 무너지고 民族正氣는 抹殺되어 갔다. 한글도 훌륭한 言語의 表現임은 否認할 수 없다. 그러나 한글은 漢文字의 訓에 불과하기에 歷史와 思想이 단절된 상태이다. 고로 한글만 使用할 경우 言語의 表現은 自由로울지 모르나 歷史와 思想은 完全히 失踪되고 날조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한글학자들은 漢字를 中國글이라고 하여 극구 경원시하여 왔다. 그리고 漢文字를 使用하는 것은 마치 賣國奴인양 몰아 세웠다. 그리고 漢字를 使用하게 되면 漢字가 어려워 文化의 發達이 더디다는 것을 强調하여 왔다. 그렇다면 中國이나 日本은 漢字를 使用하고 있고 더구나 네가지 音인 四聲으로 쓰고 있는데도 文化는 한국보다 高度로 發達하고 있다. 漢字를 使用한다고 文化가 發達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漢字의 깊은 思想을 알므로 因하여 民族의 將來는 물론 祖國의 歷史는 다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끝으로 盧武鉉大統領 政府는 하루빨리 한民族史觀定立委員會를 두어 歷史와 思想을 定立하여 敎科書에 싣고 漢字도 함께 倂用하여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國家와 民族 그리고 祖國을 爲하는 지름길임을 다 함께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가. 漢字의 發達史


㉠ 漢字의 始作

 

일반적으로 漢字가 언제 어느 때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漢字가 漢나라 때 중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漢字의 시작에서부터 발달과정은 실로 오랜 세월을 거쳐 道通者들의 지혜에 의해 창안된 것이다. 특히 모든 학문의 본체는 自然이다. 故로 자연을 대변한 글자가 干支이다. 즉 간지는 天地이다.

 

干을 살펴보면 하늘을 뜻한다. 하늘은 太極을 말하며, 태극에서 陰을 발생시킨다. 다시말해 태극의 銀河界에서 道一이 나타나는 것이다. 性理學에서는 兩儀 즉 陰陽이 동시에 發한다고 했다. 하지만 태극에서 음양이 함께 나타난다고 하는 性理學은 잘못된 이론이다.

 

자연의 본체인 太極에서 -1인 陰이 발생한 후 陰의 氣가 확산되는 過程에서, 陰 속에서 陽의 核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陰의 확대과정에서 陽의 씨앗이 싹트게 되는 것을 意味한다. 그러므로 太極에서 -1인 陰으로부터 시작된 후 陰의 循環法則에 의해  (기)의 작용으로 확산되면서, 陽의 씨앗인 核이 발생됨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찬물이 모여 고도의  에 의해 회전하는 速度에 따라 따뜻한  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를 말한다. 다시말해 하늘에 떠있는 素粒子가 모여 이슬이 되고, 더 크게 뭉치면 구름이 된 후, 구름끼리 부딪치면 번갯불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原理이다. 그러므로 聖人들은 道一에서 自然의 萬物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歷代神仙通鑑 제1권 제1절 太極判化生五老 三才立發育蒸民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由一元而分二氣而現五行然後三才立而品物流行이라고 적고 있다. 本文을 풀면 다음과 같다.


오직 하나의 근본이 둘로 나누어져 氣가 되고, 두 氣는 現實에 五行(水 木 火 土 金)이 된 연후에, 三才인 天人地가 되면서부터 만물이 나타난다고 했다.

 

古代 道學者들은 모두 道를 자연으로 보았다. 그러기에 釋老인 老子의 道德經에서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이라고 읊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自然인 太極에서 하나(一)가 시작된다 고하여 한 일(一)자부터 數의 根本으로 본 것이다.

 

한 일(一)자는 漢字의 첫 번째 글자이다. 고로 하늘인 太極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 銀河水 漢이라고 한다. 즉 漢字는 은하수가 南北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한 일(一)자라고 이름지어진 것이다. 하늘에 있는 銀河界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 눈에 보이는 은하수는 약 6천억 개 이상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그럼 왜 은하계를 은하수라고 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漢자는 은하수 한(漢), 큰물 한(漢), 검고 큰물 한(漢)자이다. 한편 한나라 한(漢)자이다. 한나라 한(漢)자란 漢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銀河界인 은하수가 한없이 큰 나라라고 하여 한나라 한(漢)자이다. 밤하늘에 떠있는 銀河界는 天文學者들이 주장했듯이 최소한 6천억 개 이상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어 한없이 물이 많다는 뜻으로 銀河水라고 하였다.

 

모든 생명체는 2/3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풀잎도 나무도, 모든 동식물, 그리고 사람도 지구와 달·태양도 모두 2/3가 물로 형성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宇宙의 空間世界인 9층도 모두 ⅔가 물인  로 進行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聖人들은 漢字를 처음 만들 때 하늘인 한 일(一)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로 한 일(一)자는 하늘의 글자이다.

 

玉篇과 字典을 보면 漢자는 은하수 한(漢)자로 되어있다. 干支라는 干자도 한 일(一)자인 하늘에서 始作되었음을 볼 수 있다.
 
干자가 形成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一乾天幹干으로 되어있다. 하나인 하늘은 언제나 건조한 것 같이 보이기에 마를 건 또는 하늘 건(乾)이라고 한다. 즉 한 일(一)자는 乾자와 같은 뜻이며, 한 일(一)자는 하늘이기에 하늘 天자와 같은 뜻이다. 幹자는 하늘을 줄기로 본데서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은 기둥과 같다는 뜻으로 엮어진 글자이다. 幹자는 천간 간(干)변에 속해있다. 하늘은 萬物을 창조하는 뿌리와 같다고 해서 줄기 간, 하늘 간(幹)이라고 했다. 幹의 약자가 干자이다.

 

두 이(二)자를 살펴보면 二氣人中心이다. 즉 사람은 氣에서 창조되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中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보이지 않으므로 干支를 엮을 때 빠져있는 것이다.

 

다음은 석 삼(三)의 數를 헤아려보고자 한다. 三坤地枝支이다. 三의 수를 땅으로 보았다. 그러기에 坤은 땅을 말한다. 하늘이 있기에 사람이 있고 땅이 있어 三源으로 理論化한 것이다. 三은 땅인 坤이자 地이다. 그리하여 天·人·地의 三源一體를 이룬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기로 한다. 一乾天幹干이며 二氣人中心이다. 그리고 三坤地枝支이므로 干支는 天地를 뜻하고 있다.

 

이상의 기록은 歷代神仙通鑑 제1권 제1절 太極判化生五老 三才立發育蒸民 편에서 十干(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十二支(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되어있다.

 

즉 十干과 十二支는 단순히 動物의 이름으로 된 것이 아니고 自然思想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B.C.8364년 地 (지갱)이었던 地皇氏가 天文을 열어 창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干支의 사상에 대하여 朴致維와 田以采가 1610년 共同으로 著書한 史要聚選 제1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地 인 地皇氏는 干支를 정리하고 해와 달이 하루 밤 하루 낮이 지나는 것을 연구 관찰한 후 律呂인 律法, 즉 자연의 순환법칙을 成文化한 것이다. 1日이 30日로 되었을 때 1개월이 되고, 12개월이면 1년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春夏秋冬 4계절을 정하고, 1년을 12절기로 나누었다. 15일을 기준하여 절기를 정한 것은 달의 궤도에 따라 1년을 24절기로 나누었다고 역대신선통감에는 기록되어있다.

 

이상과 같은 과정을 겪은 후 漢字의 제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韓致奫의 著書 海東繹史 第二卷 世紀二 檀君朝鮮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本文을 싣고 풀어보기로 한다.

 

桓因帝釋等語出於法華經羅麗之代尊尙異敎其幣至此東方屢經兵 國史秘藏蕩然無存緇流所記得保巖穴之間以傳後世作事者悶其無事可記時或編入正史世諭久而言愈實以至流傳中國遂使一隅仁賢之邦歸於語怪之科可勝歎哉

 

桓因帝釋(B.C.8937년)은 한民族의 제일 조상이다. 盤固 桓因氏의 말씀으로 法華經을 설하였다. 羅麗 즉 新羅와 高句麗 대를 거쳐 다른 가르침처럼 언제나 존중되어 왔다. 그러나 異敎를 숭상하여 그 폐단이 이에 이르렀다. 동방에는 여러 經과 병법과 國史가 비장되어 내려왔으나 언제인가 없어져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바위나 굴 사이에 기록되어 보존되어 있었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에는 민망하고 답답한 일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옛 당시만 하더라도 무사하리만치 보존된 시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正史에 편입되어 세상에 오래도록 탈 없이 이어지도록 바랬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되어 근심에 이르자 중국에 전해지면서 흘러갔다. 마침내 모퉁이에 어진 현인이 한 사람이라도 부릴 수 있었다면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괴이한 말들로 인하여 옳게 견디지 못한 것이 탄식할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海東繹史 檀君朝鮮 편에는 桓因氏 때부터 法華經을 처음으로 說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B.C.8937년경에도 이미 文字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干支는 天地이다. 干支는 두 글자로 이루어지고 있다. 干支로 因한 自然法則인 律呂로서 漢文字가 形成되었음을 正史로 通해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干支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적어보기로 한다.
 
干을 하늘로 보았으므로 天干이라고 한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干支는 샤머니즘적인 槪念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大自然의 심오한 理論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支는 땅에 해당되므로 地支라고 한다. 그럼 干支에 대한 理論에서 五行(水 木 火 土 金)이 정립되는 것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史要聚選 卷一 帝王편 참고)

 

다음은 十干을 설명해보기로 한다. 甲은 木이다. 木은 仁에 해당하고, 인간에게는 肝을 의미한다. 계절로 따지자면 春에 해당하고, 자연의 위치에서 보면 삼라만상 중 草木에 해당하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性情으로 본다면 한없이 어질고 착하다고 하여 仁으로 보았다. 또한 人間의 육신으로는 肝과 神經을 뜻하는 것이다.

 

甲은 閼逢言萬物副甲而出(알방언만물부갑이출)이다. 자연 속에서 잠겨있던 氣를 만나 萬物은 땅을 뚫고 나타나려는 現象을 甲이라 했다.

 

乙은 旃夢言萬物之軋軋(전몽언만물지알알)이다. 어두운 곳에서 움츠려 있던 만물이 서로 다투듯 나타나는 氣의 현상을 뜻한다.

 

丙은 柔兆言陽道著明(유조언양도저명)이다. 부드러운 징조로 陽의 氣運을 따라 밝게 나타나는 氣의 現象을 말한다.

 

丁은 彊圉言萬物丁壯(강어언만물정장)이다. 강력하게 막고 있을 때 萬物은 힘차게 돋아나는 氣의 作用을 意味하고 있다.

 

戊는 著雍言萬物之固也(저옹언만물지고야)이다. 化하기 위해서는 만물을 단단하게 하려는 氣의 활동을 뜻한다.

 

己는 屠維言陰氣穀物(도유언음기곡물)이다. 陰氣를 억제시키고 모든 곡물을 生하게 하는 작용을 말한다.
 
庚은 上章陰氣庚萬物(상장음기경만물)이다. 庚은 최고의 陰氣로서 만물을 알차게 生하게 할 때 일어나는 氣의 현상을 뜻한다.

 

辛은 重光言萬物辛氣方生(중광언만물신기방생)이다. 거듭 강한 햇빛의 陽氣에 의해 萬物에게 여러 곳으로 辛의 氣運을 生하게 하는 作用을 말한다.

 

壬은 玄黙言陽氣壬養於下(현묵언양기임양어하)이다. 亥의 검은 氣와 함께 陽의 氣運을 길러 作用하므로서 壬의 氣가 나타남을 意味한다.

 

癸는 昭陽言萬物可揆度(소양언만물가규도)이다. 陽의 기운에 의해 만물은 절도 있고 규범있게 作用할 때 생기는 氣의 현상을 뜻한다.

 

다음은 十二支를 설명해보기로 한다.

 

子란 困敦言混沌(곤돈언혼돈)이다. 子水는 어두운 空間世界를 뜻한다. 本文에서 困敦이란 지친 듯 두터운 것을 말한다. 그리고 混沌이란 혼탁하고 어두운 것을 말한다. 즉 혼돈한 가운데서도 순수한 氣의 現象을 의미하는 것이다.

 

丑은 赤奮若言陽氣奮迅萬物皆若其性(적분약언양기분신만물개약기성)이다. 붉은 기운이 쉴새없이 일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陽氣의 빠른 움직임에 만물은 모두 生氣를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寅은 攝提格言萬物承陽而起(섭제격언만물승양이기)이다. 寅木은 모든 陰의 氣를 포용하고 수용하여 만물을 陽의 기운에 의해 소생케하는 現象을 뜻하고 있다.

 

卯는 單閼言陽氣惟萬物而起(단알언양기유만물이기)이다. 卯木은 단순히 막은 듯 하면서 陽의 氣를 유지하는 가운데 萬物이 일어나는 現象을 意味하고 있다.

 

辰은 執徐言伏蟄之皆 徐而起(집서언복칩지개칙서이기)이다. 辰土는 陰의 氣運속에 움츠리고 있다가 서서히 일어나는 氣의 現象을 뜻한다.

 

巳란 大荒落言萬物皆大出而荒落(대황락언만물개대출이황락)이다. 巳火의 氣運을 크게 떨어지게 하거나 萬物을 모두 크게 나타나게 한 후 거칠게 떨어뜨리는 作用을 뜻한다.

 

午는 敦詳言萬物盛壯之意(돈상언만물성장지의)이다. 午火는 氣에 依해 두텁게 萬物의 成長을 강건하게 作用하는 意味가 있음을 뜻한다.

 

未는 協治言萬物和合(협치언만물화합)이다. 未土는 협동하여 다스림에 있어 萬物을 和合하게 하는 氣의 作用을 뜻한다.

 

申은  灘言棄萬物吐之兒(군탄언기만물토지아)이다. 申金은 물을 토하듯 습기를 제거하려는 自然의 現象을 말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토하는 것처럼 物質속에 있는 물기를 품어내려는 섭리를 뜻하는 것이다.

 

酉는 任 言萬物皆起之兒(임악언만물개기지아)이다. 酉金은 맡은바 임무를 엄숙하리만치 萬物은 모두 어린아이들이 일어나려는 氣의 現象을 뜻하는 것이다.

 

戌은 閹茂言萬物皆閹冒(엄무언만물개엄모)이다. 무성하던 만물이 모두 성장을 멈추려는 氣의 狀態를 意味한다.

 

亥는 大淵獻言大獻萬物於天陽氣深藏於下也(대연헌언대헌만물어천양기심장어하야)이다. 亥水는 큰 물결이 잠겨있듯이 萬物의 成長을 촉진하고 따라서 크게 공헌하기 위해 하늘의 陽氣를 깊이깊이 저장시키려는 氣의 現象을 意味한다.

 

十干 十二支에서 보는 것처럼, 쥐띠니 소띠니 하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럼 왜 쥐·소·범·토끼 같은 動物의 이름이 생겨났는가를 역사적인 면에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甲骨文字가 생기게 된 것은 B.C.1766년 殷商 시대였다. 上古時代에는 道를 여는 것을 業으로 삼았을 때 점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平和時代였으므로 구태여 주술적인 行爲가 필요치 아니했다. 그러나 殷나라 때는 36국이 난립하여 사회가 점차 혼란해지자 돌이나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干支의 글자를 새겨 점을 치게 되었다.

 

물론 象形文字로도 함께 글을 새겼다. 이때에는 이미 사상적인 문자도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이미 B.C.2679년 黃帝軒轅인 有熊氏는 141권의 저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B.C. 770∼476년경의 춘추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술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되었고, 干支는 완전히 주술적인 글자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 戰國時代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干支는 한民族의 위대한 天·人·地 사상으로, 최초에 엮어진 漢字이다. 고로 한民族의 대표적 사상으로 시작된 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民族은 하늘인 한 일(一)자로 시작되므로 天孫族이라 불려왔다. 특히 干支의 자연철학을 대변한 것이 敬天愛人地 사상이다. 또한 萬有法則을 깨달은 한民族이기에 白衣民族이라 제창되어 왔다. 그뿐만 아니라 道脈을 이어왔기에 倍達의 자손이라고도 한다.

 

이상과 같이 한民族은 桓因氏(B.C.8937년) 이후 天皇氏(B.C.8479년)에 의해 정식으로 干支와 五行은 물론 총체적 律呂의 法이 公布되었던 것이다.

 

<要. 十干十二支와 五行의 구성 方法은 필자의 저서「五行神法論」 참고>

 


㉡ 漢字의 歷史


漢字가 만들어진 歷史는 前述한 바와 같이 오래 되었다.


『海東繹史』에 있는 것을 보면 기원전 8937년 上元甲子年에 漢字가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 누구에 의해 무슨 글자를 만들었는지 자세한 記錄은 남아있지 않다.


확실한 記錄으로는 桓檀古記 第三 神市本紀 본문 321쪽에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原文을 싣고 解說해보기로 한다.

 

反復審思廣察萬象不多日悟得創成文字是爲太古文字之始矣但後世年代邈遠而太古文字沒泯不存抑亦組成也猶有不便而然歟亦嘗聞南海島郞河里之溪谷 及鏡珀湖先春嶺與夫烏蘇里以外巖石之間時或有發見彫刻非梵非篆人莫能曉此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於是而更恨吾國之未振吾族之不强也

 


반복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넓고 넓은 森羅萬象도 관찰하였다. 또한 깊이 있게 究明하려고 했다. 허구한날 많은 나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文字를 창시한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太古의 文字가 始作되었던 것을 말한다.


애써 만든 글자를 後世에 남기려고 하니 아득하고 막연했다. 왜냐하면 太古文字가 낡아빠지고 망가져 보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글자를 만들어 이룩하여야만 했다. 그렇다고 太古의 文字와 똑같게 할 경우 불편할 것 같아 반드시 보고 느끼며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남해도 낭하리 계곡에 있는 경박호 앞 춘령이란 봉우리에도 있고, 그리고 그외 다른 바위와 돌 사이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조각이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며 西域에 있는 불경도 아니며 사람이 쓴 글이었다. 글씨는 똑똑하고 밝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이 쓴 글임을 능히 알 수 있었다.

 


B.C.3000年頃 神誌氏(신지씨)가 있던 곳에서 옛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의문이라 했다. 太古때 文字가 있었던 것을 내 나라안에서 널리 백성들간에 알리지 못한 것이 다시 한번 통탄을 금할 길 없는 것은 나라가 强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적고있다.


본문에서 南海島 郎河里라고 하는 곳은 한반도의 경상도 남해가 아니고, 中國古今地名大辭典 590쪽에 보면 지금의 中國 廣東省 廣東灣에 있는 湖安縣(호안현) 남쪽이라고 되어 있다. 한반도 남해에는 鏡珀湖라든지 春嶺이 없으며 또한 夫蘇里란 곳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北崖老人이 著書한 揆園史話 本文 14쪽에도 桓檀古記와 똑같은 記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神市本紀편에 보면 桓雄天皇의 명을 받고 神誌氏와 赫德氏가 글자를 만들었다고 되어있다. 桓雄 때라면 B.C.3898년경이다.


이 당시부터 古代에 있었던 干支의 律呂法에 의해 漢字가 본격적으로 제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正史에는 나와있지 않는 것이 흠이다.

 

한民族은 본래부터 天 . 人 . 地 思想으로 된 干支法으로 歷史 年代와 節氣를 기준하였다. 12時의 표준을 정한 것도 역시 十二支法에 의한 것임을 볼 수 있다. 全世界 共産國家를 막론하고 日 .月 . 火 . 水 . 木 . 金 . 土의 요일은 陰陽五行法이며 한民族의 自然哲學思想으로 엮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社會에서는 天地人, 天地人이라고 主張하는 學者들이 많은데 學問的으로 볼 때는 대단히 誤謬를 犯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數의 槪念으로 보았을 때 1, 2, 3으로 되어있다. 물론 하늘이 먼저 생긴 다음 땅이 생긴 후 사람이 創造되었음을 否認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땅 위에서 살고 있으며, 사람 위에는 하늘이 있기 때문에 하늘?사람?땅의 순서인 1, 2, 3으로 되어있다는 事實이다. 다시말해 哲學思想의 立場에서 보면 天은 일(一)이며, 人은 이(二)이고, 地는 삼(三)이 됨을 알 수 있다.


한民族의 言語體系와 글자인 漢字는 자연의 道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대단히 훌륭한 思想과 文化를 創出할 수 있었던 것이다.


日本만 보더라도 미음(ㅁ) 발음이 잘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범’이라고 하라하면 ‘벙’ 또는 ‘번’의 발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말해 日本이나 中國은 漢字의 네 가지인 四聲音으로 使用하기 때문에 放言으로 흘러 正確한 發音의 구사가 어렵게 되어있다는 事實이다.


日本이나 中國뿐만 아니라 全世界人들은 한국어를 똑바로 말하기란 대단히 어렵게 되어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民族의 後孫인 한국인은 前述한바와같이 天孫族이며 倍達의 子孫이자 白衣民族이므로 自然의 法則에 의해 만들어진 漢字의 言語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正確性의 音을 지닌 民族이기 때문이다.


21世紀는 知識의 時代이다. 고로 智慧를 겸비하지 않고는 文化의 發達은 期待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말해 高度의 情報化時代나 文化時代에 들어서려면 高度의 知識이 쌓인 智慧의 문이 열려야 可能한 것이다.


歷史學者 토인비나, 詩人 타골, 哲學者 임어당, 그리고 小說家 게오르기 등은 21世紀는 東邦이 主導한다고 말하였다.


古代社會는 戰亂의 時代였다면 20世紀는 物質的 戰爭의 時代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1世紀는 尖端的인 知識의 競爭時代이다. 그러므로 高度의 學問을 터득하지 않는다면 情報化時代에 발맞출 수 없을 것이다. 故로 敎育의 革命이 要求되고 있다. 오늘날 西歐物質文明은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高度의 學問의 길잡이는 바로 漢文字이다.


漢文字에는 歷史?哲學思想은 勿論 人間의 最高 智慧를 제공하는 學問의 産室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러기에 漢文字를 熟讀하지 않고는 高度의 知識과 智慧를 創出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고로 漢字의 思想까지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漢字의 思想편을 參考)

 

漢字의 歷史는 以上과 같이 大自然의 思想觀에서 出發했기 때문에 正史에 나타난 年代別로 整理해 보기로 한다.


① B.C.8364년 地?(지갱)에 의해 干支와 五行 등을 律呂의 법으로 제정되었다.
② B.C.4796년 有蠶氏(유잠씨)는 누에에 關하여 蠶業에 대한 象形文字를 만들었다.
③ B.C.4055년 史皇氏(사황씨)는 일명 倉?(창힐)로서 六書之法을 硏究했다고 되어있다.
④ B.C.3386년 帝鴻氏(제홍씨) 역시 일명 倉?로서 思想的인 文字를 만들었다.
⑤ B.C.3071년 神農氏(신농씨)도 一名 倉?로서 벼 화(禾)자와 구름 운(雲)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

 


특히 神農氏는 藥草를 알아내기 위해 하루에 열두 번이나 毒에 취한 일이 있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신농씨의 부인은 聽으로서 신농씨를 도와 藥草를 손질했으며, 신농씨가 農耕社會를 開發하는데 헌신적으로 協助했다는 記錄이, 泰山神文化(山東大學 出版)와 歷代神仙通鑑(1673년 淸나라 康熙 때 著述한 책임, 參考), 그리고 史記辭典(山東大學 出刊), 炎黃源流史(江西敎育出版社. 河光岳著), 幼學須知(程允升?程錫山 共著) 등에 잘 記錄되어있다.


⑥ B.C.2978년 有?氏(유모씨)는 一名 倉?로서 ‘새 조(鳥)’자와 ‘고기 어(魚)’자에 대한 思想的인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⑦ B.C.2679년 黃帝 有熊氏(유웅씨)는 一名 倉?로서 思想的인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글자와 글자를 연결하여 의미가 있는 글자를 만든 것을 뜻한다.


⑧ B.C.2563년 蒼?氏는 黃帝의 어머니인 附寶의 要請에 의해 ‘계집 여(女)’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中山經 第五 本文 36쪽의 윗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河圖曰倉?. 爲帝南巡狩. 登陽虛之山臨. 于玄扈洛?. 靈龜負書丹. 甲靑文以授之出此水中也라고 적고 있다.

 

河圖를 말한다면 倉?이다. 즉 倉?이 河圖를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황제가 남쪽으로 사냥을 가기 위함에서였다는 것이다.


陽虛의 山에 다다라 올랐다. 검은 물줄기가 굽이쳐 도는 것이 흡사 불길이 솟는 듯했다. 그곳에는 영험한 거북 등에서 붉은 글이 있었고 푸른 글자와 같은 것이 물 가운데 나타나 주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竹書紀年 第二卷의 위쪽 本文 36쪽을 참고해 보기로 한다.

 

聖人帝曰. 已問天老力收容成矣. 史北面拜曰. 龜不違聖智. 故?之天乃甚雨. 七日七夜魚流. 於海得圖書焉. 龍圖出河. 龜書出洛. 赤文篆字. 以授軒轅接萬神於明庭. 今塞門谷口是也라고 적고 있다.

 

聖人이나 帝王을 말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어른의 힘으로 분부했을 때 수용하여야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즉 하늘에서 능력이나 힘을 주지않으면 聖人도 帝王도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선비는 얼굴을 돌리지말고 절하며 말하여야한다고 했다.


성인의 지혜는 거북과 틀리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거북처럼 묵묵히 행해여야하며 敬天愛人地의 自然을 우직하리만치 거북처럼 증진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 고로 초지일관 불꽃처럼 학문에 임한다면 하늘에서 심한 비가 쏟아지듯 너에게 줄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하늘에서 智慧의 문을 열어 줄 것임을 말한다.


7일 낮 7일 밤 고기가 흘러 바다를 얻은 듯 글 그림으로 대신해 보여줄 것임을 뜻한다. 바로 그것이 물에서 낙수 물에서 거북의 글과 붉은 글 그리고 전자체의 글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헌원(軒轅)인 黃帝는 萬의 神으로부터 밝은 뜰에서 받았음을 말한다.


이제부터 골문이 막혀있던 입에서 옳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또한 高麗 때 忠臣이었던 李承休가 지은 帝王韻紀에도 少典氏의 아들 黃帝有熊氏의 어머니 附寶의 명령으로 倉?은 女字를 받아 글을 지었다는 記錄이 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漢字의 歷史는 上古代社會 때 道를 通한 聖君들에 의해 끊임없이 制定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특히 黃帝는 舊唐書와 新唐書에 記錄되어 있는 것을 보면 141권의 著書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著書目錄을 적어보기로 한다.

 

구당서(舊唐書) 서록(書錄):황제명당경(黃帝明堂經)3권·黃帝81難經1권·黃帝12經
五藏圖1권·황제침경(黃帝針經)10권·黃帝12經明堂 偃側人圖12권·황제구령경(黃帝九靈經)12권·황제침자경(黃帝鍼炙經)12권·황제소문(黃帝素問)8권·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30권
 (舊唐書 2046쪽 參考)

 

신당서(新唐書) 서록(書錄):황제내경명당류(黃帝內經明堂類)13권·황제문현녀법(黃帝問玄女法)3권·황제용병법결(黃帝用兵法決)1권·황제병법고허추기(黃帝兵法孤虛推記)1권·황제태일병력(黃帝太一兵曆)1권·황제태공삼궁법요결(黃帝太公三宮法要決)1권·황제식용상양경(黃帝式用常陽經)1권·황제용수경(黃帝龍首經)1권·황제집령(黃帝集靈)3권 등 (新唐書 1550~1556쪽 參考)

 

보는바와 같이 黃帝가 많은 책을 지었다는 것은 上古代부터 漢文字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黃帝는 本作品 끝머리에 ‘中國의 祖上은 四夷이다’에서 밝힐 것이다.


漢字의 歷史는 正史에 記錄된 사람 외에도 오랜 歲月을 거쳐 끊임없이 제정되어 왔다.


特히 漢字의 創造를 倉힐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本文에서 보듯이 倉힐 한 사람이 漢字를 만든 것은 아니다. 漢字를 만든 사람은 앞에서 記錄한 8명 외에도 더 있었을 것이다. 고로 倉힐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官職의 이름이었다. 앞에서 기록된 8명 중에 6명이 倉힐임을 볼 수 있다.


8명 중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은 蒼힐氏로 되어있다. 즉 氏자가 붙은 것은 諸侯王이거나 帝王에 해당된다. 官職名이 後世에 내려오면서 諸侯王의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漢字를 만든 사람이 官名을 갖고 있다가 諸侯王이 되면서 蒼힐氏라는 官職名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보아진다.


漢字는 時代의 變化에도 不拘하고 면면이 創造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漢字玉篇을 보면, 唐나라 때까지 글자가 만들어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漢字의 歷史에 對하여 보다 더 깊은 硏究가 있어야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행해야 할 것은 漢字의 思想을 整理하고 幼兒敎育에서 初等學校는 물론 中 高 大學에서 時急히 漢字敎育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漢字敎育을 하지 않는다면 한民族의 思想은 勿論 歷史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民族의 魂과 情神마저 저버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社會는 現在 混沌속에 彷徨하고 있다. 그리고 民族正氣는 땅에 떨어져 亡國의 지경에 이르고 있는 實情이다. 고로 漢字의 歷史를 찾아 歷史와 思想을 바로 하고 敎育하는 것이 急先務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가. 漢字의 發達史

 

㉢ 漢字의 思想

 

사람들은 漢字를 대하면 무조건 어려운 글자라고 認識한다. 그리고 中國人의 글이며 쓰기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또한 획수가 많고 외우기도 쉽지 않아 漢字를 대할 때마다 敬遠하는 習慣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보면 아름다운 大自然을 보는 것처럼 대단히 親近하게 된다. 그 理由로는 첫째 漢字를 알게 되면 知識人이 된 듯한 氣分에 뿌듯한 自負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갑갑하고 답답하던 가슴이 열리는 氣分이 된다. 따라서 漢字를 쓸 수 있게 되면 무언가 自身이 생기게 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矜持를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다. 漢字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뜻을 알고 나면 文理인 理致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學問을 하는 것은 學問의 智慧를 터득하는 것이 가장 重要하다. 學問의 智慧가 열리지 않고는 100年을 工夫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英語는 단순히 말의 構造에 不過하다. 單語 하나에 깊은 뜻이나 思想이 없는 것이다. 단순히 말의 表現에 지나지 않는다. 思想을 表現하게 하려면 여러 單語가 엮어져야만 可能하다.


日本語는 漢字와 混用하여 使用하고 있지만 깊은 思想을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 世界에서 言語로 通用되고 있는 글은 모두 말의 表現이자 意思의 傳達에 不過하다. 한글도 그와 같은 것이다.


世界의 言語中에 意思의 表現이 가장 정확한 것은 한民族의 言語이다. 왜냐하면 한民族의 言語體系는 漢字의 順으로 엮어진 思想的인 말이기 때문이다. 特히 日本은 漢字를 섞어 使用하고는 있지만 四聲音으로 混用하다보니 放言으로 흘러 思想性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民族의 言語는 그 나라의 歷史와 哲學思想을 代辯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重要한 意味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言語의 表現이 歷史性과 思想性이 加味된 言語體系는 知識과 智慧의 힘이 번득인다고 할 수 있다.


漢字는 글 한 자에도 엄청난 歷史觀과 思想觀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學問의 寶庫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漢字의 思想觀에 대하여 記錄해 보기로 한다.


하늘 천(天)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 천(天)자는 한 일(一)변에 없다. 왜냐하면 한 일(一)자도 하늘이기에 한 일자 변에 하늘 천(天)자가 없는 것이다. 하늘 천(天)자는 큰 대(大)자변 한 획에 하늘 천(天)자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 일(一)자가 위에 있으면 하늘에 해당하고, 한 일(一)자가 아래 있으면 땅에 해당한다. 고로 땅에서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땅인 한 일(一)자에 사람 인(人)자를 연결해보면 큰 대(大)자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땅에서는 사람이 제일 크다는 것을 뜻한다. 큰 대(大)자에 한 일(一)자를 연결하면 하늘 천(天)자가 된다. 즉 땅에서는 사람이 크기 때문에 큰 대(大)자가 된 것이며, 땅위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는 하늘이 있기에 큰 대(大)자 위에 한 획을 그으면 하늘 천(天)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일(一)자가 왜 하늘이란 뜻인지 앞장에서 說明했지만 다시 간략하게 기술해 보기로 한다.
옛 聖賢들은 밤하늘에 있는 銀河水는 南北으로 6,000억 개 이상 늘어져 있다. 空間世界에 올라 銀河界를 옆면에서 보면 한 일(一)자로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것이 한 일(一)자이다.


그러기에 한(漢)자는 은하수 한(漢)자이다. 銀河界는 물의 寶庫라는 뜻에서 큰물 한(漢), 검은 큰물 한(漢)자로 되어있다. 銀河界는 별구름이라고 하는 星雲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별에서부터 큰 별 등은 모두 生命의 별로서 2/3가 물을 갖고 있다.


고로 銀河界를 銀河水라하며, 銀河界를 기준하여 한 일(一)자로 한(漢)자의 첫 글자를 땄기 때문에 銀河水 漢이라한다.


위와 같은 事實은 物理學界나 天文學者들에 의해 밝혀진바 있다. 이러한 것은 옛 上古代 聖賢들간에 學問의 智慧를 通해 공공연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것은 學問의 得道에 의해 하늘의 理致를 事前에 알았던 것으로 古代文獻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以上과 같은 事實들은 漢字가 지니고 있는 玉篇이나 字典에서 잘 나타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어두울 암(暗)자를 보면 알 수 있다. 暗字의 글자를 풀어보면 太陽의 에너지는 무엇이며 太陽의 生成과 太陽속에 있는 흑점(黑點)은 왜 생기고 있으며,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글자이다.


또 太陽의 온도가 섭씨 6,000도가 넘는 高熱은 왜 생기는 것인지…, 高度의 熱을 發散하는데 그 理由가 무엇인지…, 그리고 강력한 불꽃이 발생하고 있으면서도 매연이나 연기가 없고 타지 않는 것인지, 그 解答은 어두울 암(暗)자에서 秘密의 眞理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民族은 글자를 만들 때 大自然의 思想에 의해 創案하였음을 첫 글자인 한 일(一)자나 하늘 천(天)자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英語를 보면 하늘에 대한 單語는 단어 그 자체에서 말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英語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의 本質은 天竺國語이다.


天竺國은 본시 殷나라 後裔들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임을 經注疏水(수경주소)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英語는 古代 한民族의 言語에서 유래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러나 英語는 오늘날 全世界에서 公用으로 쓰여지고 있다.


筆者는 英語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英語辭典을 찾아 하늘에 關한 單語를 찾아보았다. 말로서 構成된 英語單語에는 대략 몇 가지가 있었다.


天空 또는 蒼空으로는 firmament이고 하늘 또는 天國은 heaven이며, 하늘은 the sky로 되어있다. 또한 天體와 하늘을 말하는 단어는 celestial이라고 했다. 그리고 둥글다는 것과 天體 또는 하늘을 말하는 단어로는 sphere라 했다. 또 다른 하늘의 뜻을 말하는 단어로는 upper라고 되어있다.
英語는 歷史性과 思想性이 전연 나타나 있지 않고 한글처럼 文章으로 엮었을 때만이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길 도(道)자를 보면 英語로는 單純히 單語인 말로서 이루어져 있다. way, road, street, path, lane으로 되어있다. 이 말은 길, 도로, 노선, 통로, 가도, 오솔길, 거리, 가로, 차선, 규정, 항로의 말소리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大自然의 哲學史想이 담긴 道자는 英語에서 찾아볼 길 없다. 道字의 思想을 說明하려면 英語로는 많은 單語의 構成이 必要할 것이다.


東洋人의 立場에서 보면 道하면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이 아니라는 事實을 쉽게 理解한다. 그러나 西洋人의 경우는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英語로 道字에 대하여 理解할 수 있게 풀려면 상당한 文章을 구사하여야할 것이다.


道字에 대하여 思想的으로 解說하자면 老子인 釋老의 道德經을 引用할 수 밖에 없다.


道는 自然이라했다. 왜냐하면 太極에서 하나인 陰이 發生하는 것은 道에서 出發한다고 하였다. 고로 道는 人間이자 땅이며, 따라서 하늘인 동시에 自然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道字를 풀어보면 머리 수(首)자에 책받침(? ?)변자를 합한 글자이다. 착(?)은 쉬엄쉬엄갈 착이라고도 하며 또 뛸 착(?)이라고도 한다. 착(?)자의 본 뜻은 책받침(?)변자를 의미하고 있다.


도(道)字는 책받침(??)변에 머리 수(首)자가 합한 글자이다. 즉 책에 목숨을 함께 한다면 길(道)이 보일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목숨과 책과 함께 한다면 人間이 살아갈 수 있는 目的의 길과 하늘과 自然의 法則인 自然의 길이 보일 것이라는 심오한 理論과 思想이 번득이는 글자이다.


이와 같은 人間의 삶의 길과 自然의 生命의 길을 알려고 하려면 목숨을 책에 걸든지 아니면 책과 목숨을 함께 해야 할 것이라는 깊은 思想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眞理가 내포되어 있는 道字를 英語로 記錄하고 思想까지 나타나게 하려면 高度의 學問의 水準이 要求될 것이다.


筆者는 얼마 전 인터넷을 通해 老子道德經(81章) 10章을 한 달간 講論한바 있다. 또 五行哲學史想을 漢醫學徒를 對象으로 1개월간 講義하였다. 그런데 자막을 넣기 위해 英文學 敎授들이 8명이나 번역에 착수하였다.

 


한 사람이 번역하는 게 아니고 몇 사람의 敎授가 번역 중에 있는데 진땀을 내고 있는 것이다. 1個月 講義時間은 320分으로, 老子道德經을 5시간 정도, 五行哲學史想 강의 역시 5시간 정도에 불과한 양이다.


다시말해 한국어로 된 글이 1쪽이라면 英語로 풀면 약 3쪽이 되어야만 제대로 해설이 可能하다는 것이다.


筆者는 英語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美州立大를 나온 姜相源 博士의 말을 引用한 것에 不過하다.


漢字의 思想이 담긴 글자는 수없이 많다. 그중 우리 社會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몇 글자를 思想的인 立場에서 풀어보기로 한다. 아직도 우리 社會에서 有名人士나 學者들이 主張하고 있는 孝字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 期會를 통해 간략하게 解說하기로 한다.


孝字를 풀어보면 흙 토(土)자에 삐침 별(?)자이다. 즉 삐침 별(?)자는 빛을 말한다. 空間世界에서 땅속으로 빛이 스며들 때 생기는 現象으로 늙을 로(老)자가 되는 것이다.


땅속에 빛이 스며들어 늙을 로(?)자변에 아들 자(子)자가 생기는 것이 효도 효(孝)자이다. 孝字는 단순히 어른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라는 뜻을 가진 글자가 아니다. 孝字의 본뜻을 보면 땅속에 빛이 스며들어 아들인 生命이 생겨났으므로 生命을 所重하게 생각하게 하는 글자가 孝子이다. 單純히 윗사람을 공경하고 孝道해야 한다는 것은 儒敎思想에서 비롯된 편협한 가르침이었다.


孝字는 옛 聖賢들이 森羅萬象의 偉大한 生命思想을 貴하게 해야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고로 超科學的인 時代에 사는 人間들은 物質에 눈이 어두워 生命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있다. 이제 相爭을 그만두고 生命의 尊嚴性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思想이라 할 것이다.


仁字에 對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孔子는 論語에서 81字의 仁을 論한바 있다. 그러나 孔子 自身이 說한 仁의 思想은 單純히 人間關係와 禮를 主로 論했을뿐 眞正한 仁의 本思想을 論하지 못했다.
高麗大 哲學博士인 尹絲淳 敎授는 仁에 對하여 두 사람이라 하고 참을 인(忍)과 같다고 孔子가 말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寒心한 思考를 지닌 學者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그렇게 說明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仁字의 根本的인 思想은 알고 보면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늘 천(天)자와 仁字를 비유해 보기로 한다. 天字는 하늘인 한 일(一)자와 땅인 한 일(一)자를 사람이 하늘과 땅을 연결한 글자이다.


그러나 仁字의 경우는 사람 인(人)자변에 하늘인 한 일(一)자와 땅인 한 일(一)자가 합(合)해진 글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늘과 땅을 안고 있는 글자가 어질 인(仁)자이다. 그러므로 진정(眞正)한 어짐은 하늘과 땅을 사람이 안을 수 있어야만 어질다는 사상(思想)을 가진 글자가 어질 인(仁)자라고 보아야한다.


하늘 천(天)자가 天?人?地의 三源一體 思想을 가진 글자라면 孝字는 生命을 尊重하게 하여야한다는 偉大한 先祖들의 生命思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仁字는 한없는 人間의 慈悲와 사랑, 그리고 犧牲을 표방한 人間의 慈愛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工夫의 글자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工字는 前述한바와 같이 하늘과 땅을 연결한 글자가 工字이다. 즉 工字는 사람이 하늘과 땅을 잇는 道通의 경지를 뜻한다. 다시 말해 得道를 通해 智慧의 門이 열려야함을 意味한다.


夫字는 앞에서 言及한바와 같이 하늘을 뚫는 글자이다. 夫字는 지아비 부, 사나이 부, 무릇 부, 영부인 부자로 되어있다. 夫字의 根本的인 뜻은 뿌리 또는 本體를 意味하고 있으며, 사나이는 하늘을 솟아오르듯 뚫어야함을 뜻한다. 그러기에 工夫란 뜻은 하늘을 뚫고 하늘에 닿게 해야한다는 뜻이므로 天門의 道를 通하여야함을 말한다.


工夫는 單純히 책을 읽고 보는 게 아니라 高度의 學問을 通해 끊임없이 增進 또 增進하여 得道하여야함을 채찍질하는 글자가 工夫이다.

 

앞에서 漢字의 思想을 論述해 보았다. 筆者는 玉篇을 整理하여 다시 쓰고자 하였으나 時間이 없어 한 일(一)자만 원고(原稿) 79매(枚)를 집필(執筆)하다가 中斷된 狀態이다. 앞장에서 言及하려다가 하지 못했지만 하늘에 關한 글자가 10개가 있음을 記錄하였다. 언제인가 時間이 주어진다면 玉篇을 다시 써서 祖國을 爲해 남기고 싶은 것이 마지막 바램이다. 그러나 그러한 여건이 주어질지가 問題이다.


漢字의 思想에 對하여 많은 글을 쓰고 싶으나 지면 관계상 이만 줄이기로 한다.


끝으로 筆者가 바라고 싶은 것은 하루빨리 敎育의 革命이 이루어져 幼兒때부터 漢字의 思想敎育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希望임을 强調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나. 漢字는 中國人의 글이 아니다

 

㉠ 漢文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다

 

 

앞장에서 누누이 强調한 바와 같이 漢文字는 中國人의 글이 아님을 理解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半世紀 以上 잘못된 敎育으로 인해 漢文字는 中國人의 글이라고 洗腦敎育을 해왔기 때문에 筆者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漢文字는 한民族의 先祖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否認할 수 없다. 왜냐하면 漢文字는 한民族의 言語順으로 記錄되어 있기 때문이다.


筆者는 길을 갈 때나 電鐵을 타고 갈 때 잠깐을 利用하여 漢詩를 쓰곤 한다. 틈틈이 漢詩를 쓴 것은 약 10餘年前이다. 그간 써둔 漢詩만해도 240餘首가 넘는다. 漢詩를 잠깐동안 쓸 수 있는 것은 漢文字가 한국인의 言語 순서로 되어있어 漢詩를 쓰기 쉽기 때문이다. 漢詩 몇 수를 적어본다.
1994년 8月 17日 大陸 陝西省 西安에서 祖上들의 故土를 보고 쓴 ‘祖國統一’이라는 漢詩를 紹介해본다.

 

支那大陸四次行 古代遺蹟多寶庫
文化革命大破壤 祖上聖業荒廢化

先祖聖地肥沃土 祖國統一回復時
廣大肥土勝華後 千計萬年子孫榮

 

以上에서 보는 것과 같이 우리말 순서로 漢詩를 쓰면 되는 것이다. 1977年 12月 1日 ‘發光’이란 漢詩를 적어본다.

 

水水交合水爭鬪 水暴雷震水發火
火解鎭鎭閃光起 空間世界滿花光

光速抄時參億來 水火相鬪發光體
億兆創生生不滅 自然根本亦水源

 

1999年 8月 2日 서울에 暴雨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쓴 詩이다.

 

大氣集體積雲霧 瞬間氣流停滯化
濁濁地病烝水亥 天怒激吐降暴雨

居地居空暗黑界 黑雲激突雷霹聲
折折激雲降降雨 處處山野水沒也

 

1999年 8月 4日 ‘卵’에 對한 詩를 적어본다.

 

天人之址坤命生 人間創造卵造室
地有萬物循環生 空虛萬有無限歸

靜室空空玄妙有 世情人間多情難
址地創生生命力 萬有萬物卵生造

 

다음은 1999年 8月 14日 새벽에 山海經을 10개월만에 原稿 6,000枚를 脫稿한 후 쓴 詩.

 

四千餘年上古史 秘事諧謔難難記
天下道力七代王 上古社會明鏡史

初期完卷參拾貳 後晋郭璞十八卷
校注誤譯中學者 東夷歷史黑壁?

十八卷內深奧史 見察秘史表勇出


上古歷史現狀化 六通自眼白鏡視
世界學者山海經 見經見字盲人如
智覺佛聖易理解 脫稿十月光明史

 

끝으로 한 수만 더 紹介하고저 한다. 筆者가 大陸 新疆省에 있는 天山天池인 白山을 다녀온 후 쓴 詩이다. 그리고 2002年 9月 6日 다시 天山天池를 갔다왔으나 漢詩는 己卯年인 99年度에 記錄한 것이다.

 

天山玉瑤滿華鏡 雪山玉水淸瑤入
高山峻嶺連峰秀 奇巖絶壁白山也

白山精氣桓民族 人類始源本産也
黑水生育人類史 民族史曆天池也

 

앞에서 보는 것처럼 漢字는 우리 글이자 우리들의 말이므로 우리들이 말하는 대로 漢詩를 記錄하면 되는 것이다. 漢詩쓰는 게 熟達되면 格을 높여 諧謔的이며 諷刺的으로 적으면 되는 것이다. 비록 漢字를 많이 몰라도 쉽게 詩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漢詩를 쓰겠다고 하면서 格을 높이고자 한다면 될 수 없으므로 우리말 우리의 소리나는 대로 간단 간단하게 써보면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朝鮮王朝 때 김삿갓 詩人은 다니면서도 漢詩를 自由自在로 읊었다고 한다. 漢詩는 어렵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막혀 쓸 수 없는 것이다.


筆者는 지금의 中國大陸을 여섯 번이나 踏査하면서 그때그때 느낀 바를 漢詩로 表現하였다. 그것은 짧은 時間內 생각나는 대로 記錄을 남기기 쉬웠기 때문이다.


時間은 生命임을 언제나 强調하는 筆者는 언제 어디서나 15分 程度의 時間이 있으면 漢詩를 적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젊을 때는 詩作을 하느라고 主로 敍事詩를 많이 써왔다. 詩集을 내기 위해 쓴 것이 아니고 習作하기 위해 써놓은 것이 무려 原稿紙로 3,000枚가 넘을 것이다.


그러니까 틈만 나면 펜을 긁적거려 보는 習慣을 기른 셈이다. 따지고 보면 20代 後半부터 70代 初半까지 잠깐 쉬는 時間이면 休息을 하기 위한 手段으로 習作을 하였다.


우리 先祖들은 어릴 때부터 漢字를 工夫하여 漢文字로 詩, 哲學, 歷史를 記錄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쓰는 것과 같이 日常生活에 常用되었던 것이다. 고로 漢字의 表記가 自由로왔고 또 漢文字를 다닥다닥 붙여 記錄해도 우리가 한글을 읽듯이 줄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慶南 합천 海印寺에 八萬大藏經이 보관되어 있는데 高麗때 古代에서 내려오던 經을 모아 集大成한 漢字로 된 表本이다. 옛 先祖들은 漢文字의 글을 한글처럼 使用하여 왔다.


筆者가 前章에서 言及했듯이 漢字로 된 책은 하루에 平均 30卷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고 경우에는 하루에 150卷까지 可能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無理한다면 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삼가는 편이다. 勿論 速讀을 하는 것은 內容을 깊이 알 수 없다. 하지만 번 듯 번 듯 번득이는 눈에서는 책장을 넘길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있지만 詳細하게 알 수 없는 것이 速讀의 短點이다. 그러기에 正讀法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正讀을 할 경우 하루에 6卷이면 알맞은 편이다.


어리석은 植民史學者들이 말하기를 古朝鮮과 三韓, 그리고 高句麗?新羅?百濟?高麗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하니까 歷史를 工夫하지 않는 無知한 考古學者들은 마치 證明이나 하듯 한반도에 古代國家가 있었던 것처럼 떠들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KBS에서는 컴퓨터로 歷史를 날조하면서 同調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現實을 하늘에 계신 天地神明이나 先祖祖上들께서 얼마나 痛哭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이와 같은 民族的 反逆行爲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만약 正史에 의해 밝혀진다면 오늘날까지 한반도에 있었다고 가르쳐온 史學者, 考古學者, 그리고 KBS와 敎育部는 어떻게 責任을 져야 할 것인가를 묻고 싶다.


漢文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므로 우리 先祖祖上任들이 記錄한 歷史 책에는 한반도에 朝鮮王朝 以前에 國家가 없는 것으로 모든 正史에 記錄되어 있다. 다시 말해 글이나 言語 그리고 風俗은 習慣대로 되어간다는 事實이다.


오늘날까지 漢字를 廢止시키고 朴正熙 때 初代 敎育部長官이었던 安浩相에 의해 한글專用으로 因해 漢字廢止論이 始作된 후부터 歷史와 思想이 망가지고 말았다.


즉 엉터리 史學者에 의해 歷史가 날조되듯이 한글학자 때문에 漢字를 廢止시킨 것은 한民族의 魂을 抹殺시키고 民族正氣를 깡그리 뭉개버린 결과를 낳게 하였던 것이다.


漢字는 엄연히 한民族의 祖上에 의해 創案된 偉大한 自然思想을 담은 글이다. 또한 民族의 魂이 서린 한民族의 소리글이자 뜻글이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日帝植民史觀을 답습한 것은 反民族的 行爲이다.


만약 漢字가 中國人의 글이라 한다면 왜 中國人들은 言語와 漢文字의 體系가 다른지 묻고 싶다. 하지만 中國人들은 한民族의 後裔임을 뒷장에서 똑똑히 밝힐 것이다. 特히 中國人들은 말과 글이 틀리는 것은 中國人들이 漢字를 만들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오늘날 中國人들이 말하는 그대로 글자를 쓴다면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외에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中國人들도 말할 때와는 달리 글을 쓸 때는 한국인의 言語體系로 쓰기 때문에 현재 漢字를 工夫한 한국인들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中國人들이 말하는 言語順으로 글을 썼다면 무슨 뜻인지 전연 알 길이 없을 것이며 따라서 아무도 理解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앞에서 漢詩 몇 首를 紹介한 바와 같이 漢文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기 때문에 누구나 보면 한국인의 言語順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고보면 漢字는 글자의 획수가 많고 다소 복잡하지만 익힌다면 쉽고 또 速讀이 可能한 것이다. 지금 中國에서 新聞이 發行되고 있는 것은 모두가 漢文字로 되어있다.


그러나 筆者는 한국에서 나오는 新聞을 보듯이 쉽게 읽는다. 만약 中國人들이 쓰는 말로 新聞을 發刊한다면 筆者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中國에서는 1958年 文化革命 以後로 漢字를 모두라 할만큼 簡字로 쓰고 있다. 簡字란 간결하게 漢字를 줄여서 만든 것을 말한다. 무려 3,000字가 넘게 簡字體를 만들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奇想天外하여 상상을 초월한 글자가 있어 적어본다. 는 옳을 의(義)자이다.   는 위할 위(爲)자이다.   는 요임금 요(堯)자이다.   은 용 룡(龍)자이다.  는 머리 두(頭)자이다.  은 성인 성(聖)자이다. 또는 괴이할 괴(怪)자라고도 한다.  는 호위할 위(衛)자이다.


앞에서 보는 것처럼 中國人들은 自己나라 조상이 漢字를 지었다면 簡字體로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간자체로 바꾼 후 학생들이 간자체로 工夫하고 있다. 그런데 問題가 생긴 것은 歷史를 배우는 學生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또다시 原字인漢文字를 배워야하는 不便이 심하다고 한다. 그리고 古代 原典으로 工夫할 사람들은 簡字로 배웠기 때문에 二重으로 漢字를 工夫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어 不滿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만의 경우는 漢字를 바꾸지 아니했다.


요즘 中國의 學生들과 中國人들은 工夫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筆者에게 實吐하였다. 그래서 中國에서는 본래의 漢字를 써야한다는 소리가 높다고 하였다.


漢字는 大自然의 思想과 形象을 調和롭게 만들어진 글이다. 그러므로 머리가 나쁜 사람들은 도저히 만들 수도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머리가 좋고 道를 통해 뛰어난 智慧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不可能한 것이다.


後漢書 東夷傳에는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王制云 東方曰夷 夷者柢也 言仁而好生 萬物 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 不死之國

이라고 적고 있다. 本文을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禮記* 왕의 제도에 의하면, 하는 것은 人類歷史上 王의 制度가 생기게 된 動機를 말하는 것이다. 동방을 말하면 東夷들이다. 즉 王의 制度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東夷라는 뜻이다.
夷者柢也라고 한 것은 東夷들이 人類의 뿌리라고 했다. 特히 東夷들은 말이 어질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기에 萬物이 땅에서 뿌리에 의해 나타나듯이 東夷 역시 人類의 뿌리임을 强調하고 있다.


고로 天性이 유순하여 쉽게 道를 通한 임군이다. 따라서 君子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기에 죽지 않는 나라라고 記錄하고 있다.


後漢書 東夷傳에서 보듯이 東夷들이 아니면 道를 通할 수 없고 아울러 大自然思想을 담은 漢字를 創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漢文字를 만든 것은 東夷들이며 中國人이 아니다. 中國人도 勿論 後孫이지만 中國이라는 나라는 漢字가 만들어진 古代에는 없었다.


中國이라고 칭한 時期는 1910년 孫文에 의해 中華民國이라하여 그때부터 ‘中國’ ‘中國’이라고 主唱되었던 것이다.


中國人에 對하여 뒤편에서 記錄하겠지만 漢나라 훨씬 以前부터 漢字가 만들어졌음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때문에 漢文字는 中國人의 글이 아니라 한民族의 祖上인 東夷들에 의해 漢文字는 소리글에서 뜻글로 制定되어 이루어졌던 것이다.

 

 
㉡ 三讀法과 三味法


漢文字는 읽는 法을 모르면 연달아 글을 이어 썼기 때문에 싫증나게 되어있다. 옛 先祖들이 글을 쓸 때 띄지 않고 연결하여 책을 엮었기에 어려운 漢文字만 보면 보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漢文字에는 띄어쓰지는 않았지만 어조사의 글자에서 문장의 단락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王朝 때 어린아이들을 敎育시키기 위해서 十四世 宣祖에서 二十三世 純祖에 이르기까지 무려 240餘年間 鄕校에서 가르쳐온 敎科書가 있다. 이 책에 보면 첫장에 역대제왕국호가(歷代帝王國號歌)와 역대세통가(歷代世統歌)로 되어있다. (幼學須知 參考)

 

어린아이들이 쉽게 알고 외울 수 있도록 노래 가사식으로 古代帝王들의 歷史를 記錄하고 있다. 本文만 全篇을 紹介하고 이어서 간략하게 說明하기로 한다.


天皇地皇人皇氏. 名曰三皇居上世.
太昊炎帝及軒轅. 唐虞紹之爲五帝.
夏商周秦東西漢. 後漢魏吳三國判.
漢亡於魏魏禪晉. 晉遂平吳天下定.
擾西晉者有五姓. 劉石慕容 姚競.
神州從此遂瓜分. 南北烽烟久不靜.
南爲東晉居江左. 宋齊梁陳踵其都.
北朝元魏倂五姓. 東魏西魏分爲二.
東傳北齊西禪周. 周又滅齊禪隋帝.
隋能平陳海宇一. 曾幾何時禪唐室.
唐祚終兮爲五季. 梁唐晉漢周相繼.
宋代周兮天下平. 中南渡兮迫於金.
倂金代宋祚歸元. 明祖承元十六傳.
軒轅甲子訖有明. 總揆歷數幾多春.
四千三百四十一. 神器萬年歸大淸.

 

三 皇.

鑿開混沌分天地. 天地分從攝提歲.
是生萬物人最靈. 斯人之初盤古氏.
天皇兄弟十三人. 人各一萬八千歲.
地皇兄弟有十一. 亦各一萬八千歲.
人皇兄弟九人優. 兄弟九人分九州.
相傳一百五十世. 四萬五千六百秋.
三皇以後有巢出. 구木爲巢食木實.
有巢氏後燧人興. 鑽燧改火敎民食.


五 帝.

奧自太昊伏羲氏. 首 八卦造書契.
女 共氏 無懷. 風姓相傳十五世.
後有神農號炎帝. 始嘗白草敎來 .
傳及楡岡姜姓終. 八世五百二十歲.
公孫軒轅爲黃帝. 垂裳而治法乾坤.
金天小昊是其子. 高陽顚頊是其孫.
曾孫帝 高辛氏. 玄孫伊祁放勳字.
放勳是爲陶唐堯. 禪于虞舜其姓姚.


夏.

禹啓太康與仲康. 帝相少康 槐芒.
泄不降  孔甲. 帝皐帝發履癸亡.
家天下者始夏禹. 取天下者始成湯.


商.

成湯太甲幷沃丁. 太甲小甲雍巳承.
太戊仲丁外壬立. 河亶甲兮祖乙興.
祖辛沃甲祖丁繼. 南庚陽甲與盤庚.
小辛小乙武丁續. 祖庚祖甲兼 辛.
庚丁武乙太丁嗣. 帝乙至紂國祚 垂.
盤庚以前爲商號. 盤庚以後號爲殷.


周.

文武成康與昭穆. 共懿孝夷 宣幽.
平桓莊釐惠襄頃. 匡定簡靈景悼 .
敬元貞哀思考烈. 安烈顯愼赦東周.
威烈以後爲戰國. 平王以後爲春秋.

 

春秋戰國.

成王以魯封伯禽. 齊與陳兮曹燕秦.
衛宋楚晉鄭吳國. 十二分據春秋成.
秦始 姓後滅周. 韓魏趙氏分晉都.
更有楚燕與齊國. 俱幷于秦六國休.


秦.

滅周之祀莊襄王. 幷呑六國始皇强.
高弑二世子 立. 項羽滅之秦乃亡.
得秦之號自非子. 滅秦之姓自始皇.


漢.

高惠呂后文景承. 武昭宣元成哀平.
光明章和 安繼. 順沖質桓靈獻更.
西漢高帝起 沛. 東漢光武起春陵.


後漢三國.

漢始昭烈終後主. 魏文明齊高貴公.
傳及陳留王已矣. 吳王旣逝會稽逢.
止於景帝及鳥程. 是爲三國相憑陵.
後漢討賊爲正統. 魏吳滅漢皆簒臣.


兩晉.

武惠懷愍元明成. 康穆哀奕井簡文.
孝武安帝及恭帝. 兩晉之時十五君.
武帝洛陽爲西晉. 建康元帝作東京.
南北朝宋齊梁陳隋.

宋武少文孝武至.  明蒼梧及順帝.
齊高武明東昏和. 梁武簡文元敬繼.
陳武文臨宣長城. 隋文煬帝恭帝畢.
五朝二十有五君. 共歷二百有八歲.


唐.

高太高武中睿玄. 肅代德順憲穆傳.
敬宗文武宣宗續. 懿僖昭 哀宗完.
高宗以後多女亂. 肅宗以後藩鎭叛.
更有奄宦竊大柄. 竟爲唐室之世患.


五代梁唐晉漢周.

梁有太祖及末帝. 唐莊明閔潞王締.
晉有高齊漢高隱. 周則太祖世恭繼.
五代相傳十三君. 僅曆五十餘三歲.


宋.

太祖太宗眞仁英. 神宗哲宗幷徽欽.
高孝光宗寧理繼. 度恭端兮帝昺 .
太祖太宗成帝業. 高宗南渡號中興.


元.

元之克宋始太祖. 大宗定憲蠶九有.
世祖混一滅宋君. 成宗繼以武仁英.
泰定明文寧順絶. 八十九年傳十葉.


明.

太祖首出大明君. 孫蒙祖號乃建文.
成祖燕藩入正位. 洪熙宣德正統配.
弟襲兄統景泰移. 天順復位干古奇.
成弘太平正德繼. 嘉隆萬歷稱盛治.
泰昌天啓逢否運. 崇禎殉國社稷正.


大淸.

帝心簡在大淸昌. 天明十一歸帝鄕.
天總十年崇德八. 順治十八遂陟方.
康熙垂拱六十一. 雍正十三宣重光.
富今卽位春常在. 南山萬壽永無疆.

 

天皇氏(B.C.8479 壬寅年), 地皇(B.C.8364 丁酉年), 人皇氏(B.C.8247 甲午年)를 말한다면 三皇은 上古時代 때 살았던 왕이다.


太昊伏羲氏.(태호복희씨 B.C.3512 己丑年), 炎帝神農氏(염제신농씨. B.C.3071 己丑年), 그리고 軒轅黃帝氏(헌원황제씨. B.C.2679 壬午年)와 唐氏唐虞陶 堯王儉(B.C.2357 甲辰年), 有虞氏 帝舜(B.C.2284 丁巳年) 등은 五帝이다. 즉 五帝란 다섯 사람의 帝王들이 이어왔음을 말한다.


夏(B.C.2224 丁巳年), 商(B.C.1766 乙未年), 周(B.C.1122 己卯年), 秦(B.C.221~207 庚辰年), 東西漢(B.C.206~A.D.8 乙未年), 後漢(A.D.25~220 乙酉年)을 거쳐왔다. 그리고 魏(A.D.220~265 庚子年), 蜀(A.D.221~263 辛丑年), 吳(A.D.222~280 壬寅年)의 三國은 전쟁으로 판을 벌려왔다.
漢나라와 魏나라가 망할 때 魏나라에서 禪을 통해 晋(A.D.265~420 乙酉年)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司馬炎이었다. 晋나라는 吳나라를 망하게 한 후 드디어 天下를 평정하였다.


西晉(A.D.265~317 乙酉年)은 五代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대단히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그 당시 劉石(유석)과 慕容(모용) 그리고 ?姚(부요) 등이 서로 힘을 겨루며 다투었다. 그때 神州를 한 울타리로 하여 나누어져 있었다.


여기서 神州를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謂中國也. 詳赤縣神이라 했다. 즉 말한다면 神州는 中國이란 뜻이다. 더 상론하자면 赤縣이 神州라고 적고 있다. 赤縣神州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中國古今地名大辭典 742쪽 416쪽 參考)

 

史記孟子荀卿傳. 中國名曰赤縣神州. 赤縣神州內自有九州. 禹之序九州是也. 不得爲州數. 中國外如赤縣神州者九. 乃所謂九州也.

 

史記 孟子 荀卿傳에는 中國이란 이름을 말할 때 赤縣神州라 한다. 赤縣神州內에 있는 것은 九州이다. 다시말해 현재 中國大陸을 夏나라 禹임금 때 아홉 고을로 나누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멸실공히 中國大陸은 아홉의 단위로 지경을 나눈 것을 말한다. 이것은 禹임금의 서문에 九州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中國大陸이 워낙 방대하므로 부득이 고을(州)의 수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中國大陸 밖에와 같이 赤縣神州는 아홉이다. 以上과 같이 中國大陸을 있는바 대로 설명하자면 九州라고 한다고 記錄하고 있다.


이와같은 관계상 南과 北은 붕화불의 연기처럼 오래도록 조용하지 못했다. 南쪽은 東晉(동쪽 진나라)이 강 왼편에 살았고, 宋(A.D.420~479 庚申年)·齊(A.D.479~502 己未年)·梁(A.D.502~557 壬午年)·陳(A.D.557~589 丁丑年)은 도읍지가 가까이 있었다.


北朝(A.D.386~581 丙戌年: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 等)는 본시 魏나라가 다섯 성(五性)으로 합한 것이었다. 특히 東魏(A.D.534~550 甲寅年)·西魏(A.D.535~556 乙卯年)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동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北齊(A.D.550~577 甲午年)는 서역에서 禪을 통해 北周(A.D.557~581 丁丑年)가 되었다. 周는 다시 北齊를 멸한 후 禪通을 하여 隋(A.D.589~618 己酉年)나라를 세우고 제왕이 되었다. 隋나라는 陳나라를 평정한 후 陳나라의 바다와 같은 넓은 땅을 하나로 만들었다.


A.D.618年 隋나라가 망할 당시 禪을 통한 李淵은 唐(A.D.618~626 戊寅年)나라를 세웠다. 唐나라는 A.D.684年에 武周(A.D.684~705 甲申年)에게 망하게 되었다. 唐나라 高祖인 李淵이 나라를 세운지 66年만에 武周에 의해 몰락하는 것이다. 그후 後唐(A.D.705~907 乙巳年)으로 이어졌으나 끝내 종말을 맞고 말았다.


뒤를 이어 梁(A.D.907~923 丁卯年), 唐(A.D.923~936 癸未年), 晋(A.D.936~946 丙申年), 漢(A.D.947~950 丁未年), 周(A.D.951~960 辛亥年)까지 서로 이어져왔다.


宋(A.D.960~1279 庚申年)나라 때 周(A.D.951~960년)나라는 끝나고 天下 태평시대가 되었다. 그후 北宋(A.D.960~1127 庚申年)과 南宋(A.D.1127~1279 丁未年)이 끝나고 글안(契丹. A.D.907~1211 丁卯年)과 遼(A.D.947~1211 丁未年)가 망한 후 金(A.D.1115~1234 乙未年)나라는 大陸의 中南인 河南省으로 건너와 세력을 넓혔다. 이때 宋나라는 金나라에 합병되었다. 다시말해 金나라 때 와서 宋나라를 굴복시키고 말았다.


元(A.D.1206~1363 丙寅年)나라에 이어 明(A.D.1368~1648 戊申年)나라는 16대까지 전해졌다.
軒轅黃帝(B.C.2679年)가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마친 것은 甲子年이었다. 총체적으로 軒轅 때부터 역사적으로 헤아려보면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따져보면 軒轅黃帝로부터 明나라가 망할 때까지 4341年간이다.


上古時代 天皇, 地皇, 人皇 때부터 大淸(A.D.1583~1908 戊戌年)까지 돌아보면 1만년의 세월이었다.

 

三皇


혼돈한 天地는 뚫리면서 열리게 되었다. 天地가 나누어지고 다스리는 과정에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萬物의 최고 영장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사람으로 말한다면 최초에 盤古氏(B.C.8937年)이다. 반고씨는 桓仁氏를 말하며 일명 渾沌氏 또는 有神氏라고 한다.


天皇의 兄弟는 13명이며 사람마다 각각 18.000세를 지냈다. 여기서 18,000세란 한 사람의 수명을 살아있는 동안을 말한 게 아니라 死後의 世界서 살았음을 意味하는 것 같다. 아니면 子孫이 18,000년까지 後世에 이어졌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와같은 記錄은 李承休가 지은 帝王韻紀에 나타나있다. 帝王韻紀는 古代史書인 三五曆紀를 引用하고 있다.


地皇의 兄弟는 11명이 있었다. 역시 각각 18,000세를 지냈다. 人皇의 兄弟는 9명이 있었는데 兄弟 모두 뛰어났다. 아홉의 兄弟는 九州에서 나누어 살았다. 즉 九州란 현재 中國大陸 전체를 뜻한다. 그리하여 9명의 兄弟가 150世代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고로 45,600년 동안 세월을 겪어왔다.
三皇 以後 有巢氏(B.C.3898 壬申年)가 나타났으며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열매를 먹었다. 有巢氏 이후 燧人氏(수인씨 B.C. 3739 壬寅年)에 의해 흥하게 되었으며, 燧人氏는 금광석을 개량하고 따라서 백성들을 불로 익혀 음식을 먹게 하였다.

 

五帝


사실 따지고보면 太昊伏羲氏(B.C.3512 己丑年)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복희씨는 밤낮을 가리지않고 八卦의 글을 문서로 만들었다.


女?氏(B.C.3419 壬戌年)와 共工氏(B.C.3394 丁亥年)에 이르러 생각할 수도 없이 편안하지 못했다. 풍씨(風氏) 성(姓)은 무려 15世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그후 신농씨(神農氏.B.C.3071 庚戌年)가 나타나 약초와 농사기구를 만들어 농경사회를 일구었다고 하여 별칭을 신농(神農)이라 하였고, 또한 호칭을 염제(炎帝)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神農氏, 炎帝氏라고도 한다. 또는 炎帝神農氏라고도 한다.


특히 神農氏는 1만 가지 약초를 처음 맛보았으며 논갈이 밭갈이를 가르쳤다. 농사짓는 밭갈이와 논갈이 기구로는 따비 끝나무로 만들었고, 약초를 맛보는 과정에서 하루에 열 몇 번의 毒에 감염되었다고 泰山神文化(山東大學敎育出版社刊)에서 밝히고 있다.

 

느릅나무처럼 강건한 강씨(姜氏)의 뿌리가 전해져 내려오던 것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王들은 8世 동안 520年에 이르렀다.


헌원황제(軒轅黃帝)는 公孫이었으며 치마를 드리운 것처럼 하늘과 땅을 법으로 다스렸다.


金天小昊氏의 아들은 전욱(顚頊) 고양씨(高陽氏.B.C.2491 庚寅年)이다. 여기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B.C.2578 癸亥年)는 黃帝의 아들로서 新羅의 最初 祖上이라고, 三國史記 義慈王 마지막 편에 記錄하고 있다.


고로 黃帝의 孫子가 전욱고양씨(?頊高陽氏)이다. 또한 黃帝의 曾孫子는 요왕검(堯王儉)의 아버지 제곡고신씨(帝?高辛氏.B.C.2482 己亥年)이며, 五代 孫子는 이기씨(伊祁氏.B.C.2357 甲辰年)이다.
즉 伊祁氏는 도당씨(陶唐氏)이며 도당씨는 요왕검(堯王儉)이다. 요왕검은 단군(壇君)이었으며 요왕검의 이름은 방훈(放勳)이라 했다. 放勳 역시 도당씨(陶唐氏)로서 요왕검임을 뜻한다. 고로 요단군왕검(堯壇君王儉)에 이어 선(禪)을 통해 우순씨(虞舜氏.B.C.2284 丁巳年)로 이어지며, 우순씨는 순임금(舜壬儉)으로 요(姚)의 성씨이다.

 


하(夏).

 

우(禹.B.C.2224 丁巳年)임금 계(啓)에 이어 태강(太康.B.C.2188 癸巳年)과 더불어 중강(仲康.B.C.2159~2147 壬戌年), 그리고 소강(少康.B.C.2079~2068 壬午年), 저(?), 괴(槐), 망(芒)의 제상(帝相)들에 의해 왕통은 전해져갔다.


國史年表에 의하면 대우(大禹.B.C.2205 丙子年)는, 전욱고양씨(?頊高陽氏.B.C.2491 庚寅年)의 孫子이다. 즉 숭백(崇伯)이었던 곤(?)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歷史의 記錄에는 高陽氏의 아들이 곤(?)이며, 곤의 아들은 禹임금이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禹임금은 高陽氏의 증손자가 아니라 孫子라 할 것이다. 그러나 國史年表 四種인 歷代帝王年表의 記錄에는 전욱(顚頊)의 증손이 숭백곤(崇伯?)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후 설(泄), 불강(不降), 경(?), 근(?), 공갑(孔甲)으로 이어지고 고(皐), 발(發)의 帝王을 거쳐 계(癸)를 끝으로 망하였다.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天下의 가문으로 始作되었으나 상(商)나라인 성탕(成湯.B.C.1766~1754 乙未年)에 의해 天下를 빼앗기고 말았다.

 


상(商).

 

상(商)나라는 성탕(成湯.B.C.1766~1754 乙未年)이 태갑(太甲.B.C.1753~1721 戊申年)과 옥정(沃丁.B.C.1720~1692 辛巳年)을 합하였다. 그리고 태갑(太甲.B.C.1753~1721 戊申年), 소갑(小甲.B.C.1666~1650 乙亥年)과 옹사(雍巳.B.C.1649~1638 壬辰年)로 이어졌다. 그후 태무(太戊.B.C.1637~1563 甲辰年), 중정(仲丁.B.C.1562~1550 己未年), 외임(外壬.B.C.1549~1535 壬申年) 등이 왕위를 계승했다.


특히 하단갑(河亶甲.B.C.1534~1526 丁亥年)과 조을(祖乙.B.C.1525~1507 丙申年)에 이르러 商나라는 흥하게 되었다.


조신(祖辛.B.C.1506~1491 乙卯年), 옥갑(沃甲.B.C.1490~1466 辛未年), 조정(祖丁.B.C.1465~1434 丙申年)에 이어 남경(南庚.B.C.1433~1409 戊辰年), 양갑(陽甲.B.C.1408~1402 癸巳年)과 더불어 반경(盤庚.B.C.1401~1374 庚子年) 때 都邑地를 옮기면서 은(殷)나라로 고쳤다.


소신(小辛.B.C.1373~1353 戊辰年), 소을(小乙.B.C.1352~1325 己丑年), 무정(武丁.B.C.1324~1266 丁巳年)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조경(祖庚.B.C.1265~1259 丙辰年), 조갑(祖甲.B.C.1258~1226 癸亥年), 름신(?辛.B.C.1225~1220 丙申年)이 계속 겸하여 이었다.


경정(庚丁.B.C.1219~1199 壬寅年), 무을(武乙.B.C.1198~1195 癸亥年), 태정(太丁.B.C.1194~1192 丁卯年) 때까지 잘 이어져왔다. 그러나 제을(帝乙.B.C.1191~1155 庚午年)과 주신(紂辛.B.C.1154~1122 丁未年)에 와서 殷나라는 버려지게 되었다.

 


주(周).

 

文王이었던 무왕(武王.B.C.1122~1116 己卯年)과 成王, 康王, 그리고 昭王과 穆王과 더불어 周나라는 始作되었다. 共王과 의왕(懿王), 孝王, 夷王, 여왕(?王), 선왕(宣王), 유왕(幽王) 등은 善政을 베풀었다. 그후 平王, 桓王, 莊王, 이왕(釐王), 惠王, 양왕(襄王), 경왕(頃王)에 이어 광왕(匡王), 定王, 간왕(簡王), 영왕(靈王), 景王 등은 슬픔이 비등하였다.


敬王, 元王, 貞定王, 孝王, 威烈王 등은 생각하면 불쌍한 왕이었다.


安王, 烈王, 顯王, 신정왕(愼?王), 난왕(?王) 등은 東周의 王이었다.


특히 위렬왕(威烈王.B.C.425~402 丙辰年) 이후부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접어들었고 평왕(平王.B.C.770~720 庚戌年) 때부터 春秋時代로 이어진 것이다.


다시말해 평왕(平王.B.C.770~720 庚戌年) 때부터 春秋時代이며, 威烈王 때 이르러 戰國時代인 B.C.221年까지 지속되었음을 말한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성왕(成王.B.C.1115~1079 丙戌年)은 周武王의 둘째 아들로 天子의 王位에 올랐다. 이후 백금(伯禽)을 노(魯.B.C.999~248 壬午年)나라의 제후왕(諸侯王)으로 봉(封)하였다.


成王이 天子에 등극하던 해(年)인 B.C. 1115年 11月에 殷나라 무을(武乙.B.C.1198~1195 癸亥年)왕의 차자(次子)로 기자(箕子)가 태어났다.


周武王의 큰아들은 大夫韓万이고, 成王이 둘째이며, 진당숙우(晉唐叔虞)는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大夫韓万인 韓과 晉唐叔虞의 晋은 각각 諸侯王으로 봉(封)하게 된다(史記辭典 參考). 그후 제(齊.B.C.909 壬子年)나라의 여씨(呂氏)와 진(陳), 조(曹), 연(燕), 진(秦)과 더불어 각각 제후국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후 B.C.770~720년까지 위(魏)·송(宋)·초(楚)·진(晋)·정(鄭)·오(吳) 나라 등 열두 곳으로 나누어져 웅거하면서 春秋時代를 이루었다.


진(秦)나라는 처음 양공(襄公.B.C.778~776 癸亥年)으로부터 영씨(?氏)라는 성(姓)으로 출발(出發)했으나 그후 주(周)나라에 망하였다.


진(秦)나라가 생기게 되는 것은 黃帝의 손자인 전욱고양씨(?頊高陽氏,B.C.249 庚寅年)의 孫女인 여수(女脩)로부터 始作되었다. 女脩의 血統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계보(系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女脩, 非子, 秦仲, 莊公에 이어 양공(襄公.B.C.778~776 癸亥年) 때 와서 秦나라가 諸侯國으로 등극하게 된다.


2代가 文公, 3代 寧公, 4代 出子, 5代 武公, 6代 德公, 7代 宣公, 8代 成公, 9代 穆公에서 16代 도공(悼公.B.C.477 甲子年) 때까지 春秋時代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후 七雄인 진(秦)·한(韓)·조(趙)·위(魏)·초(楚)·연(燕)·제(齊) 나라 이전까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秦나라는 六國을 統一한 후 秦王의 아들인 영(?.B.C.207 甲子年) 때 와서 亡하게 된다. 秦나라가 멸한 다음 韓·魏·趙와 함께 晋나라의 都邑地에서 나누어졌다. 다시 楚·燕 나라와 더불어 齊나라와 함께 갖추어졌으나 이미 秦나라는 끝나게 되었다.

 


진(秦).

 

秦나라는 30代 장양왕(莊襄王.B.C.250~247 辛亥年) 때 周나라에 의해 亡하였다. 그러나 秦나라는 다시 일어나 31代 진시왕(秦始王.B.C.221~207 庚辰年)은 六國을 統一한 强한 나라가 되었다.
秦나라의 二世였던 호해(胡亥.B.C.209 壬辰年)인 太子는 始皇帝인 아버지 政을 시해한 후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에서 都邑하였다. 호해(胡亥)의 아들인 영(?)이 王位에 올랐으나 秦나라는 끝내 항우(項羽)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항우(項羽.B.C.232~202 己巳年)는 秦나라 말기 農民 20만 명을 봉기시켜 秦王이었던 영(?)을 죽인 후 궁실(宮室)을 불태워버렸던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은 秦나라를 얻었지만 自己 스스로의 호(號)를 비자(非子)라 했다. 즉 非子란 秦나라가 亡한 후 다시 秦나라를 얻었음으로 秦나라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비록 秦나라는 멸망했지만 스스로 始皇이라는 이름을 가졌음을 말한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전욱고양씨의 孫女인 女脩로부터 뿌리로 내려온 것만은 否認할 수 없는 歷史的인 記錄인 것이다.

 


한(漢).

 

한(漢)의 고조(高祖.B.C.202~195 己亥年)에 이어 혜제(惠帝.B.C.194~188 丁未年), 여후(呂后.B.C.187~180 甲寅年), 문제(文帝.B.C.179~164 壬戌年), 경제(景帝.B.C.156~150 乙酉年)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무제(武帝), 소제(昭帝), 선제(宣帝), 원제(元帝), 성제(成帝), 애제(哀帝), 평제(平帝)로 이어졌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漢高祖 유방(劉邦)은 준(準)이라 하였다. 漢書 주석에 따르면 응소(應?), 복건(服虔), 이비(李斐), 문영(文穎), 진작(晋灼), 사고(師古) 등은 모두 준(準)이라고 했다.


특히 응소(應?)는 ‘隆高也. 準頰權準也’라 했고, 문영(文穎)은 ‘音準的之準’이라고 했다. 또한 史記에도 이와같이 記錄하고 있으며, 기자조선성적사(箕子朝鮮聖蹟史)에는 마지막 왕이 준(準)이라고 적고 있다.


準은 哀王이 죽은 후의 휘호(諱號)이다. 箕子朝鮮聖蹟史에는 箕子의 마지막 王은 哀王이며, 哀王은 準이며, 都邑은 平壤으로 41世라고 되어있다.


따라서 哀王은 馬韓王이며, 二世인 康王은 漢나라 혜제(惠帝.B.C.194~188 丁未年)로서 이름은 왕만(王滿)이다. 만(滿)은 영(盈)이며, 漢나라 二世 惠帝의 이름을 유영(劉盈)이라고 적고 있다. 영(盈)은 만(滿)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滿의 손자는 효왕(孝王)으로 漢나라 때 무제(武帝.B.C.140~135 辛丑年)이다.

 

이상과 같은 記錄은 山東敎育出版社에서 刊行된 사기사전(史記辭典)에서 볼 수 있다. 史記辭典 534쪽에 따르면 조선왕만(朝鮮王滿)은 燕나라 때 노관(盧?)의 반란으로 무리 1천여 명을 이끌고 왕검성(王儉城)인 平壤에 都邑을 했으며, 王滿은 漢나라 二世인 혜제(惠帝.B.C.194~188 丁未年)이라고 記錄하고 있다.


그리고 王滿의 孫子는 朝鮮王 우거(右渠)로서 漢나라 무제(武帝.B.C.140~135 辛丑年)라고 되어있다.


특히 朝鮮王 右渠는 漢四郡(眞番·臨屯·樂浪·玄?)을 두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漢나라는 왕망(王莽.A.D9~13 己巳年)에 의해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했다. 사실 新이란 後漢書 高驪傳과 三國史記 高句麗 二世 유리왕(琉璃王) 31年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新은 高句麗이다.


즉 왕망(王莽)은 漢나라를 격파한 후 高句麗라고 했던 것이다. 그후 유수(劉秀) 광무제(光武帝.A.D25~56 乙酉年)는 後漢인 東漢을 세워 명제(明帝), 장제(章帝), 화제(和帝), 상제(?帝), 안제(安帝)로 계속되었다. 그후 순제(順帝), 충제(?帝), 질제(質帝), 환제(桓帝), 영제(靈帝), 소제(少帝), 헌제(獻帝)로 이어졌다.

 

西漢은 漢高祖가 패현(沛縣)인 패풍(沛豊)에서 일어났고, 後漢인 東漢의 光武帝는 춘릉(春陵)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후한삼국(後漢三國).


漢始라고 記錄하고 있는 것은 四川省 益州인 파현(巴縣)에서 일어난 촉한(蜀漢.A.D220~263 庚子年)을 뜻한다. 즉 촉(蜀)나라를 말하며 전촉(前蜀)이라고도 한다.


蜀나라는 後漢을 계승한 나라이다. 이 당시 후한(後漢.A.D221~263 辛丑年)은 소열제(昭烈帝.A.D221~223 辛丑年)와 후주(後主.A.D223~237 癸卯年)에서 끝났다.
魏나라 文帝는 조비(曹丕.A.D220~226 庚子年)로서 조조(曹操)의 아들이다. 魏나라는 文帝에 이어 明帝 여공(?公)과 高貴公, 그리고 원제(元帝.A.D264~265 甲申年)까지 洛陽에 都邑하고 있었다.


특히 三國時 魏나라는 진(陳.A.D557~589 丁丑年)나라 왕으로 머물어 전해졌다. 또한 오왕(吳王.A.D222~229 壬寅年)을 생각해보면 이미 죽을 때를 만난 것이다.


吳나라가 都邑한 곳은 교주(交州)이다. 交州를 살펴보면 귀주성(貴州省) 보안현(普安縣) 西쪽 100里라고 되어있다.


吳나라가 끝인 것은 경제(景帝.A.D258~264 戊寅年) 때이지만 그 후로 조정(鳥程)의 제후왕 때까지 이르렀다.


이리하여 三國은 서로 언덕을 기대고 지냈다. 즉 등을 지고 으르렁댔던 것이다. 그리하여 正統이었던 後漢은 도적들에게 토벌 당하였다. 魏, 吳와 함께 漢나라 모두 신하들에 의해 빼앗기고 말았다.

 


양진(兩晋).

 

兩晋은 西晋과 東晋을 말한다. 西晋은 武帝 사마염(司馬炎.A.D263~274 乙酉年) 泰始로 建國되었고, 東晋은 元帝 사마예(司馬睿.A.D317~318 丁丑年) 建武로 시작된 나라이다.


특히 西晋은 武帝로부터 양제(?帝), 민제(愍帝)이고, 東晋은 元帝로부터 명제(明帝), 성제(成帝), 강제(康帝), 목제(穆帝), 애제(哀帝), 海西公인 사마혁(司馬奕)과 간문제(簡文帝)까지 우물물이 마르지 않듯이 이어졌다. 따라서 효무제(孝武帝), 안제(安帝), 공제(恭帝)로 미치게 되었다.


이리하여 西晋과 東晋은 모두 열다섯 임군 시대였다. 특히 武帝인 司馬炎은 西晋으로 洛陽에 都邑했다. 그리고 元帝인 사마예(司馬睿)는 동경(東京)에서 始作했다. 여기서 東京이란 日本의 東京이 아니다. 晋나라가 東京에서 都邑했다고 했으므로 東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古代부터 東京에 대한 定義를 둔 것은 經度80을 基準하였다. 經度80을 기준하고 보면 지금의 신강성(新疆省)에 있는 天山과 곤륜산(崑崙山)을 가로지르는 경계가 화전(和田)이다.


和田은 人類가 最初로 古代國家가 形成되었던 곳을 基準한 것이다. 和田은 구약성서(舊約聖書) 제2장 제8절에 記錄되어 있는 곳이 옛 地名인 이전원(伊甸園)이다. 이곳에서 서쪽을 요서(遼西)라 하고 동쪽은 요동(遼東)이라 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지금의 西安은 동쪽에 속하므로 東京이라 했다. 이와같은 記錄은 장형유(張衡有)가 저술한 ‘東京賦’에 실려있다.


그리고 中國古今地名大辭典 483쪽 東京편에 보면 西漢 때까지 지금의 西安은 東京이었다. 後漢 광무제(光武帝.A.D25~56年) 때부터 遼東·遼西의 槪念을 經度110度로 바뀌게 되자, 西安이었던 東京은 서쪽이 되어 西京이 되었다. 이때 洛陽은 동쪽이 되므로 東京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후 계속하여 東京은 唐나라 때 北京으로 옮겨져 東京이 되었다.


宋史 地理志에는 河南省 開封縣이 東京이라 했으나, 金나라 太宗 천회(天會.A.D1123~1135年) 때는 東京을 南京이라 하고 東京은 요양(遼陽)으로 옮겼다.


淸나라 太祖 천명(天命.A.D1616~1626年) 7年 東京의 이름을 10年間 천도(遷都)를 통해 지금의 심양(瀋陽) 즉 옛 봉천(奉天)으로 옮겼다고 記錄하고 있다. 그러나 東京은 日本으로 옮겨졌다. 現在 日本 東京의 옛 이름은 에도, 즉 강호(江戶)라 불렀다.

 


南北朝宋齊梁陳隋.

 

南北朝時代는 송(宋.A.D.420~479 庚申年)·제(齊.A.D.479~502 己未年)·양(梁.A.D.502~557 壬午年)·진(陳.A.D.557~589 丁丑年)·후양(後粱.A.D.555~587 乙亥年)이 南朝이다.


그리고 北朝는 북위(北魏.A.D.386~534 丙戌年)·동위(東魏.A.D.534~550 甲寅年)·서위(西魏.A.D.535~556 乙卯年)·북제(北齊.A.D.550~577 庚午年)·북주(北周.A.D.557~581 丁丑年)이며, 수(隋.A.D.581~600 辛丑年)까지를 말한다.

 

宋나라는 무제(武帝.A.D.420~422 庚申年)에서 少帝, 文帝, 孝武帝에 이르고 폐제(廢帝), 명제(明帝), 창오왕(蒼梧王)과 순제(順帝)에서 끝난다.


齊나라는 고제(高帝.A.D.479~482 己未年), 무제(武帝), 명제(明帝), 동혼후(東昏侯), 그리고 화제(和帝)에서 멸하는 것이다.


梁나라는 무제(武帝.A.D.502~519 壬午年), 文帝 때 長城을 펼쳐 다다르게 했다. 그리고 경제(敬帝.A.D.555~556 乙亥年) 2년에 망하였다.


隋나라는 문제(文帝.A.D.581~600 辛丑年), 양제(煬帝), 공제(恭帝) 때 마치게 된다.


오조(五朝:다섯 조선이라는 뜻)까지 25명의 군주이며 그 역사는 208년(年)이다.

 


당(唐).

 

高祖 이연(李淵) 무덕(武德.A.D.618~626 戊寅年), 태종 이세민(太宗李世民) 고종(高宗), 중종(中宗), 예종(睿宗.A.D.684 甲申年)에서 망한다.


그후 後唐 때 와서 다시 중종(中宗) 이현(李顯) 신용(新龍.A.D.705~707 乙巳年)에 이어 예종(睿宗), 현종(玄宗), 숙종(肅宗), 대종(代宗), 덕종(德宗), 순종(順宗), 헌종(憲宗), 목종(穆宗)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경종(敬宗), 문종(文宗), 무종(武宗), 선종(宣宗), 의종(懿宗), 희종(僖宗), 소종(昭宗), 소선제(昭宣帝)에서 불쌍하게도 기울어지고 말았다.


특히 唐나라 고종(高宗.A.D.650~655 庚戌年) 이치(李治) 以後 많은 女子들의 음란함이 계속되자 숙종(肅宗.A.D.756~758 丙申年) 李亨인 至德 以後 제후국들이 반란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다시 오래된 내관들이 큰 도둑질을 하는 것을 잡았다고 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唐나라 집안에서는 세상에서 우환이 끊일사이 없었던 것이다.

 


五代梁唐晋漢周.


五代時는 양(梁.A.D.907~911 丁卯年)나라 太祖와 唐나라 장종(莊宗.A.D.923~926 癸未年), 晋나라 고조(高祖.A.D.936~941 丙申年), 漢나라 고조(高祖.A.D.947 丁未年) 天福, 그리고 周나라 태조(太祖.A.D.951~953 辛亥年)로 이어졌다.


梁나라는 太祖에서 末帝까지 이르고, 唐나라는 莊宗에서 明宗, 閔宗, 노왕(潞王)에서 닫혀졌다. 晋나라는 高祖가 있을 때 漢나라 고조(高祖.A.D.947 丁未年)는 등극하자마자 자취를 감추었다. 周나라 太祖에 이어 世宗, 恭帝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五代時는 열셋 임군으로 서로 전해지고 53年間의 역사는 겨우 지속되었다.

 


송(宋).

 

宋나라 태조(太祖.A.D.960~963 庚申年) 다음으로 태종(太宗), 진종(眞宗), 인종(仁宗), 영종(英宗), 신종(神宗), 철종(哲宗)과 아울러 휘종(徽宗), 흠종(欽宗)으로 北宋은 끝이 났다.


이어서 南宋은 고종(高宗.A.D.1127~1130 丁未年), 효종(孝宗), 광종(光宗), 영종(寧宗), 이종(理宗)으로 계속되고, 도종(度宗), 공제(恭帝), 단종(端宗), 제병(帝昺)으로 침몰하였다.


宋나라 太祖, 太宗은 왕업을 이루었으나 高宗은 남으로 건너와 바르게 흥했다고 記錄하고 있다.

 

 


원(元).

 

元나라는 宋나라 太祖를 극하기 시작했다. 태종(太宗.A.D.1229~1241 己丑年), 정종(定宗), 헌종(憲宗) 때까지 누에처럼 아홉의 임금이 물고 늘어졌다.


세조(世祖.A.D.1260~1264 庚申年)시 혼란하던 宋나라 임군을 단숨에 멸망시켰다. 그후 성종(成宗)으로 계속되어 무종(武宗), 인종(仁宗), 영종(英宗), 태정제(泰定帝), 명종(明宗), 문종(文宗), 순종(順宗)에서 끊어졌다. 겨우 89년 동안 10명의 임군으로 가랑잎처럼 내려왔다.

 

 


명(明).

 

明나라 태조(太祖.A.D.1368~1398 戊申年) 朱元璋 洪武는 우두머리처럼 大明君으로 군림했다. 손몽(孫蒙)은 조상이었으며 호칭은 건문(建文)이었다.


그후 성조(成祖.A.D.1402 壬午年) 때는 연(燕)나라를 정식으로 제후국으로 들어올렸다. 인종(仁宗)이었던 홍희(洪熙)와 선종(宣宗)인 선덕(善德), 그리고 영종(英宗)인 正統을 배출시켰다.
아우가 형을 엄습하여 英宗이었던 正統을 옮기게 하고 代宗인 景泰가 물려받았다. 英宗인 天順은 간고기(干古奇)를 복위시켰다. 憲宗인 成化와 孝宗인 弘治, 그리고 武宗인 正德이 계승한 이래 太平을 누렸다.


그후 世宗인 가정(嘉靖)과 穆宗인 융경(隆慶), 그리고 神宗인 만력(萬曆) 때 이르러 번창한 정사를 했다고 칭했다.


光宗인 태창(泰昌)과 희종(憙宗)인 천계(天啓)는 不運을 만나게 되고, 思宗인 숭정(崇禎)에 이르러 나라의 사직(社稷)이 바르지 못하고 따라죽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대청(大淸).

 

帝王의 마음은 眞實로 중요한 것이 大淸이 昌盛하는 것이다. 천명(天命.A.D.1616~1626 丙辰年)에 이어 열한 명의 제왕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천총(天聰.A.D.1627~1636 丁卯年)은 10년, 숭덕(崇德)은 8년이었다.


순치(順治)는 18년 동안 帝王으로 오를 수 있었다. 聖祖인 강희(康熙)는 무려 61년간이나 손잡고 베풀 수 있었다. 世祖인 옹정(雍正)은 13년 빛나는 정사를 펼쳐 在位동안 언제나 봄을 맞이하듯 나라를 富强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남산(南山)에서 오래도록 만수무강하였다.


여기서 南山은 中國古今地名大辭典 582쪽에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南山은 卽 종남산(終南山)이다. 漢書 東方朔傳에는 天下가 막혀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험하고 험한 산임을 말해준다.


南山은 곤륜산(崑崙山) 끝머리인 신강성(新疆省) 南部에서 始作하여 감숙성(甘肅省) 양도(凉道)의 땅에 있는 기연산(祁連山)인 雪山에서부터 섬서성(陝西省)과 하남성(河南省)으로 뻗어간다.


이어서 西安 남쪽에 있는 太白山과 東으로는 강소성(江蘇省) 각 곳으로 뻗어나간 산이다. 한편 太白山을 끼고 南으로 가로지르는 山脈들을 총칭하여 南山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世宗인 옹정(雍正)은 어느 곳에 있는 南山으로 들어가 만수무강의 수명을 누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以上 朝鮮王朝때 240年間이나 어린이 敎科書인 유학수지(幼學須知)에서 보는바와 같이 漢文字의 表記法은 소리글이자 뜻 글로 이어지면서 세 가지 읽는 法과 세 가지 맛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漢文字를 노래가사 식으로 소리나는 순서로 쓰여져 쉽게 읽을 수 있는 方法으로 되어있다. 고로 漢文字는 三讀法과 三味法에서 읽는 법과 맛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特히 漢字의 三讀法이란 첫째, 눈으로 보고 읽는 目讀法이 있다. 둘째, 소리를 내면서 읽는 낭독법(朗讀法)이 있다. 셋째, 깊이 있게 思想的으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바르게 읽는 正讀法이 있다. 正讀法을 일명 深讀法이라고 한다.

 


目讀法에도 몇 가지 方法이 있다. 눈으로 보고 읽을 때 건성건성 보면 안 된다. 뚫어지게 集中하여 보아야한다. 또한 뚫어지게 문장을 理解할 수 있을 程度로 目讀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 읽을 때 펜이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서서히 읽어야한다.


낭독법(朗讀法)에도 몇 가지 소리내어 읽는 방법이 있다. 첫째, 낮은 소리로 천천히 읽어야한다. 둘째,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재미가 있는 듯 즐거운 氣分으로 읽어야한다. 셋째, 낭독할 때 노래를 부르듯이 몸짓을 하면서 흥미롭게 읽어야한다.


正讀法에도 몇 가지 읽는 법이 있다. 첫째, 글자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읽는다. 둘째, 몇 자를 모아 깊은 뜻을 새기면서 읽는다. 셋째, 한 단락의 글 전체를 깊이 있게 숙독 하면서 읽는 법이다.
물론 속독법(速讀法)이 있는데, 이것은 目讀法과 朗讀法, 그리고 正讀法의 세 가지 읽는 方法이 숙련되었을 때 可能해진다.


석노(釋老)인 老子는 단경(丹經) 즉 眞理로 된 어려운 漢文字의 책을 만권(萬卷)이나 읽었다는 記錄이 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에 있음을 본다.

 

다음은 삼미법(三味法)이다. 漢文字에는 세 가지 맛이 있다. 첫째, 한자를 보고 알았을 때. 둘째, 한자의 뜻을 알았을 때. 셋째, 한자의 思想을 알았을 때이다.


그리고 漢文字를 보고 알았을 때 몇 가지 더 맛이 있다. 漢字는 무슨 무슨 변에 있구나 했을 때이다. 또 무슨 변에 몇 획수에 있구나 했을 때 가벼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漢字를 보고 알았을 때 긍지를 느끼면서 이제 나도 이 글자를 알았을 때 자긍심이 가득했을 때이다. 둘째, 漢字의 뜻을 알 때인데, 아! 이런 뜻이 있었구나 할 때이다. 어떤 한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아! 맞아 바로 이런 뜻이야 했을 때이다. 마지막으로 漢字에는 35가지가 넘은 뜻을 가진 글자가 있다. 예를 들면 무거울 중(重)자는 37가지의 뜻이 있다. 여러 가지 뜻 중에 얼토당토 않는 상반된 뜻이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검을 현(玄)자를 보면 검을 현, 아득할 현, 하늘 현, 붉을 현, 마음 현, 구월 현, 간지이름 현, 심오한 도리 현, 현묘한 진리 현, 밝을 현, 빛날 현, 현손 현, 물 현, 신선의 나라 현, 노자장자의 도 현, 성 현, 산이름 현, 신선이름 현, 현무 현 등으로 되어있다.

 


도대체 아리송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없는 때가 있다. 특히 검다고 하는 것과 빛나다거나 밝다고 하는 것은 정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때 이치를 알았다면 진정코 漢字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漢字의 思想을 알았을 때이다. 全世界 어떤 學者도 漢字의 思想을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漢文字를 만든 사람들은 형상으로 글을 만든 漢學者도 있고, 思想的인 意味로 만든 漢字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일(一)의 思想을 알지 못하고는 아무리 漢文의 글자를 많이 안다고해도 수박겉핥기 식이다. 다시말해 껍데기 工夫를 한 것에 不過하다.

 

漢文字의 세 가지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한다면 漢字가 中國 사람들이 만들 글이 아님을 알 것이다. 漢字의 思想이 깃든 몇 글자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孝字를 보면 땅인 흙 토(土)에 하늘에서 빛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늙을 노(?)자가 된다 땅속에서 生命인 아들이 태어나면 효(孝)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孝란 웃어른과 父母에게만 공손하라는 것이 아니고 萬物의 生命을 所重히 하라는 自然의 本體思想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識과 德을 지니고 倫理와 道德을 重要視하는 人格을 갖추어야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漢字임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모집(募集)이라는 글자를 보면 모(慕)자는 풀 초(?)변과 아래는 날 일(日)자가 있다. 또한 날 일(日)자 아래에는 길게 한 일(一)자가 있는데, 한 일(一)자는 땅을 뜻한다.


땅속으로 뻗어있는 것을 땅속으로 빛이 스며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땅속에서 힘(力)이 생기게 되므로 땅밖으로 草木이 자라난다는 뜻에 나무 목(木)자가 된다.

 


大地에서 나무가 자라나 무성해지면 새가 날아와 앉는다는 뜻에서 새 추(?)자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募集이라는 글자를 自然思想을 대입하고 있다.

 

앞에서도 言及한바와 같이 밤하늘에 6천 억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는 은하계(銀河界)를 상징하여 한 일(一)자로 만든 것이 漢字이다. 그러기에 漢文字는 하늘에서부터 始作되었다고 해서 은하수(銀河水) 한(漢)이라고 한다.


즉 한 일(一)자는 하늘이다. 한民族은 하늘의 氣運으로부터 이루어졌으므로 천손족(天孫族)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道를 通한 民族이므로 배달민족(倍達民族)이라고 한다.


특히 한民族은 우주(宇宙)의 本體가 희(白)고 萬物의 本體가 희(白)다는 뜻에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했다. 宇宙와 自然, 그리고 萬物의 本體가 희므로 인해 한民族은 흰옷을 입고 살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民族은 大自然思想을 대입하여 漢文字를 만들었으며, 따라서 歷史를 일구어 왔던 것이다. 고로 유학수지(幼學須知)에서 보는바와 같이 古代로부터 三皇, 五帝, 夏, 商, 周, 春秋戰國, 秦, 漢, 後漢三國, 兩晋, 南北朝宋齊梁陳隋, 唐, 五代梁唐陳漢周, 宋, 元, 明, 大淸의 뿌리는 朝鮮으로 이어져왔다. 朝鮮王朝 선조(宣祖) 때부터 敎科書用으로 어린이들에게 읽혀져 왔던 것이다.


고로 幼學須知에 있는 歷史의 記錄은 한民族의 歷史이자 言語順으로 表記되어 엮어져 있다.


비록 高句麗·百濟·新羅 등은 記錄되어 있지 않지만 古朝鮮의 歷史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民族의 言語로 엮어져 소리나는 대로 漢字를 배열시켰기 때문에 漢字는 소리글이자 뜻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漢文字는 세 가지 읽는 법과 세 가지 맛으로 능히 수백 권의 速讀이 可能한 것이다.

 


 

 

中國의 祖上은 四夷이다 

 

 

 한국인은 中國人과 根本的으로 말과 글 그리고 사람의 종자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 中國에는 56개 민족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중 中國人은 漢族이라고 다른 部族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아는 朝鮮族 처녀가 漢族과 결혼하여 山東省 위해(威海)에서 방송국 경제 담담 직원으로 勤務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 마침 詩人 李昌源君과 함께 北京 西安을 답사하고 山東省 어느 호텔에 들렀을 때이다.


  둘이서 食事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엘르베이트를 탔을 때이다. 李昌源君과 함께 엘르베이트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아가씨가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니까 한국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기에 호텔 커피숍에 들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때 筆者는 한民族의 上古史에 대한 歷史를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아가씨는 自己의 이름이 金仁麗라고 하면서, 漢族 총각과 결혼한 후 정신적으로 무척 괴로웠다고 실토하였다. 이유로는 少數民族이라하여 은연중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金仁麗氏는 한民族의 上古史를 들은 후부터 한民族의 偉大性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후로 한국에 나올 때마다 찾아주었고 筆者가 大陸에 답사하러 갔을 때 便宜를 보아주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病的 상황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날조되고 歪曲된 歷史로 인하여 한국인들은 완전히 몽유상태(夢遊狀態)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歷史는 미래의 거울이다. 歷史의 뿌리가 잘라지면 국가는 미아(迷兒) 상태가 되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日帝 때 조작 날조된 植民史觀으로 한民族의 歷史는 동강나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광복이후 朴正熙 정권 때 안호상(安浩相) 문교부장관 시절 한글을 전용하는 법이 채택되었다.

  歷史의 기록은 漢文字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歷史를 抹殺하려는 親日派들에 동조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日帝 植民地 政治가 시작된 후 광복은 되었지만 93年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의 역사는 아직 바로 되지 않고 있다. 이 얼마나 통탄(痛嘆)할 일인가?

 

  한民族의 후손으로서 國家와 民族 그리고 祖國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태에 있음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필자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55년간 한民族의 歷史와 哲學 思想을 찾는데 헌신해 왔다. 그 결과 많은 上古史의 古書를 접하면서 中國의 祖上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싶었다.

 

  또한 中國의 歷史라고 하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堯), 순(舜), 하(夏), 은(殷), 주(周), 진(秦), 한(漢), 그리고 송(宋), 당(唐)나라에 이르기까지 古代史書를 찾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그 중에 中國의 歷史라고 하는 秦나라와 漢나라, 그리고 唐나라의 실체를 밝히면 한民族의 歷史가 빛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中國歷史의 오류(誤謬)를 발견(發見)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秦, 漢, 唐 나라의 血統과 歷史의 脈을 찾게 되었을 때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다.

그 후로 筆者는 中國의 祖上을 찾게 되고 中國人의 祖上이 사이(四夷)라는 사실을 正史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환희(歡喜)에 찬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四夷는 도대체 어떤 민족인지를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東夷는 九夷라고 後漢書에 기록되어 있다. 九夷 중 四夷라 했으므로, 먼저 여기서 九夷에 대하여 적어본다.

 

  ①견이( 夷) ②우이(于夷) ③방이(方夷) ④황이(黃夷) ⑤백이(白夷) ⑥적이(赤夷) ⑦현이(玄夷) ⑧풍이(風夷) ⑨양이(陽夷)이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①현도(玄 ) ②낙랑(樂浪) ③고려(高麗) ④만식(滿飾) ⑤부유(鳧臾) ⑥소가(素家) ⑦동도(東屠) ⑧왜인(倭人) ⑨천비(天鄙) 등이다.

 

  그리고 아홉의 한국이 三國遺事 馬韓편에 실려있다. ①일본(日本) ②중화(中華) ③오월(吳越) ④둔라(屯羅) ⑤응유(鷹遊) ⑥말갈(靺鞨) ⑦단국(丹國) ⑧여진(女眞) ⑨예맥(濊貊)으로 되어있다.

 

  이상과 같이 九夷와 九韓國에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서 四夷에 해당하는 민족은 어떤 것인지를 찾아야했다.

 

  唐나라 때 두우(杜佑)가 지은 통전(通典) 第一 東夷上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①조선(朝鮮) ②예(濊,穢) ③마한(馬韓) ④진한(辰韓) ⑤변진(弁辰) ⑥백제(百濟) ⑦신라(新羅) ⑧왜(倭) ⑨부여(夫餘) ⑩하이(蝦夷)

 

   第二, 東夷下의 記錄을 살펴보기로 한다.
  ①고구려(高句麗) ②동옥저(東沃沮) ③ 婁(靺鞨) ④부상(扶桑) ⑤여국(女國) ⑥문신(文身) ⑦대한(大漢) ⑧유구(流求) ⑨민월( 越) 등으로 되어있다.

 

  통전(通典)의 記錄으로는 四夷를 알 길이 없는고로 송(宋.A.D.420∼479年)나라 때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通志)의 記錄을 살펴보기로 한다.

 

  通志 194권 四夷傳에는 四夷1, 2, 3, 4, 5, 6, 7까지 記錄되어 있다. 特히 四夷傳 1편에 보면 ①조선(朝鮮) ②예(濊) ③마한(馬韓) ④진한(辰韓) ⑤변한(弁韓) ⑥변진(弁辰) ⑦百濟(耽牟羅國附) ⑧신라(新羅) ⑨왜(倭) ⑩부여(夫餘) ⑪고구려(高句麗) ⑫東沃沮(北沃沮附) ⑬읍루( 婁) ⑭勿吉(又曰 靺鞨) ⑮扶桑(女國附) 文身(大漢附) 유구(流求) 민오( 奧)로 되어있다.

 

  여기서 四夷에 대한 정확한 나라를 찾아야겠기에 本文을 조사해 보았다. 크게 나누어 四夷는 朝鮮·濊·馬韓·辰韓이었다. 四夷에 해당하는 나라는 百濟·新羅·高句麗·倭였다.

 

  그렇다면 中國의 祖上은 四夷라 했으므로 첫 번째가 朝鮮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濊)와 마한(馬韓), 진한(辰韓)은 조선(朝鮮)의 후예(後裔)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백제(百濟),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왜(倭)이다. 다시 말해 중국인(中國人)의 祖上은 四夷에서 유래되었다했으므로 기록을 찾아보기로 한다.

 

  北宋 때 史學者인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193卷에 있는 당기(唐紀) 9卷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中國如根本四夷라고 적고 있다. 이 말은 中國의 根本은 四夷와 같다고 했다. 또 195卷 唐紀 11卷에 보면 中國根幹也 四夷枝葉也라고 했다. 즉 中國의 根本的인 뿌리는 四夷의 가지와 잎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말해 中國이라고 하는 것은 東夷九族中 四夷가 뿌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四夷가 뿌리라면 中國의 祖上들은 四夷라는 것을 뜻한다. 즉 中國人들의 祖上은 四夷이므로 中國祖上들은 四夷들의 가지와 잎에 해당함을 말한다. 그렇다면 四夷가 中國의 祖上인 셈이다.

 

  여기서 四夷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한다. 後漢書에 기록되어 있는 東夷들은 漢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이므로 中國人들이 주장하는 漢族이 아니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三國遺事에 기록된 四夷는 漢나라 후에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漢나라 건국 이전에 있었던 朝鮮 때 四夷를 기록한 통지(通志)에 따르면, 百濟·新羅·高句麗·倭임이 分明했다. 그렇게 본다면 中國의 祖上은 漢나라 때 있었던 四夷가 바로 百濟·新羅·高句麗·倭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四夷의 뿌리는 朝鮮임을 기록한 通志와 通典에서는 놀라운 사실들을 적고 있다. 四夷인 百濟·新羅·高句麗·倭에서 파생되어 나간 나라들은 무려 195개국이었다. 여기서 195개국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結   論 (결론 부분 자료 없음 . 미완성)

( 2011년 10월 22일 14시 50분   조회:1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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