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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과 기(氣)와의 관계(關係)  
律坤

제 1 장 기(氣)의 개론(槪論)   
 
  
    1. 공(空)과 기(氣)와의 관계(關係)   
  
 

옛 성인(聖人)들은 선(禪)을 통하고 도(道)를 얻어 무한대의 空의 世界를 알아냈다. 그 결과 우주(宇宙)의 공(空)은 아홉 단계임을 지혜로서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학의 기초가 되는 1, 2, 3, 4, 5, 6, 7, 8, 9를 완성하였다. 아홉이란 숫자는 우주를 아홉 층으로 본 숫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도 구층탑(九層塔)을 세운 것은 우주의 원리를 상징한 것이다.
 
공(空)의 세계(世界)는 理의 작용에 의해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理의 작용은 空의 世界를 근본(根本)으로한 본질적 바탕이라는 점에서 氣와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空의 본체(本體)는 리(理)라면 理는 본질적 바탕이다. 본질적 바탕이란 우주의 空을 형성(形成)하고있는 근본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근본적인 요소는 空의 世界가 무한대이긴 하지만 空으로 形成되어 있는 근원적인 질(質)을 뜻함이다. 空은 아홉 층으로 되어있지만 人間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聖人의 지혜(智慧)만이 감지(感知)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空의 世界를 인간(人間)의 힘으로서는 이해 할 수 없으며 갈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科學)의 힘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人間은 聖人의 경지에 이르면 空의 世界를 인지(認知) 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기에 옛 聖人들은 원각일(圓覺一)이라고 하였다. 즉 우주가 둥글다고 보았을 때 하나라는 것이다. 둥근 우주라고 깨닫고 보니까 하나이며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우주는 둥글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우주는 성인들의 가르침에 의해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철학이나 科學에서도 실증(實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世界까지 과학(科學)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空은 얼마나 넓고 방대하고 또 무한대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빛은 일초동안에 3억m 즉 30만Km나 달린다. 우리눈에 보이는 제일 가까운 은하계까지 가려면 10만光年을 달려도 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빛이 일년(一年)을 달리는 것을 일광년(一光年)이라고 한다. 빛이 10만년을 달려도 은하계 중심부까지 도달할 수 없다면 은하계의 거리는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은하계까지 빛이 달린다고 한다면 200만光年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空의 世界에서는 빛의 작용이 극히 미미하고 작은 역할밖에 할 수 없다. 空은 광활한 공간세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가득찬 소립자(素粒子)와 프랑크상스 같은 미세한 수포(水泡)의 분자(分子)가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에 空의 世界는 빈 것이 아니고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허공(虛空)으로 보이며 허공은 빈 것으로 보일 뿐이다.

 

제일 위층의 空의 世界는 정(靜)의 世界이다. 정(靜)의 世界란 곧 고요하고 잔잔하고 조용한 공간의 世界를 뜻한다. 이곳은 백정(白靜)의 고요함이다. 백정의 고요함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잡히지 않고 분간 할 수도 없는 神의 世界이다. 神의 世界란 우주(宇宙)의 氣가 움직이는 영의 世界이다. 흰 힘을 지닌 世界지만 보이지 않는 무색 투명한 우주의 기(氣)를 가진 世界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이 곳은 우주의 흰 힘의 본질을 갖고있는 무한대의 공간세계가 한없이 펼쳐져있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우주의 기(氣)가 고요 속에서 잉태하듯 움직이는 힘이 생겨나는 것을 氣라한다. 이 때의 氣는 우주기(宇宙氣)라고 이름한다. 우주기에는 흰 공간의 世界가 한없이 공존(共存)하고 있다. 흰 힘은 영(0)으로 표현되며 흰 힘의 본체를 리(理)라한다. 이 곳을 백공(白空)의 世界라하여 우주의 본바탕을 흰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흰 힘의 바탕으로 이룩되어있는 것이 宇宙이다. 이 곳을 형이상학원(形而上學源)속에 형이상학이라 하여 리(理)의 자리로 보았다. 흰 힘으로 우주의 본체가 형성(形成)되어있다는 뜻을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물질(萬物質)에도 흰 힘을 본바탕에서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수박씨는 검어도 씨안은 흰 것을 알 수 있다. 흑인의 몸에 있는 호르몬도 까마귀의 정액(精液)도 흰 것이다. 비록 바탕은 검어도 본질은 空의 본체와 같이 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한민족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했던 것이다.

 

空의 世界를 이루고있는 것은 본바탕이 흰 것이지만 전술한바와 같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무색(無色)한 것과 같이 투명하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물이 얼면 흰색의 얼음으로 변한다. 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氣?가 되면 물은 증발해서 무색하여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空의 본바탕이 리(理)라면 理의 본체는 흰 것이다. 흰 것의 본질은 곧 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물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宇宙를 形成하고 있는 흰 힘의 고요함은 조용히 理의 世界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始作)하는 그 순간부터 空과 氣가 함께 어울러져 순환의 틀 속에서 힘차게 공생(共生)하는 과정을 낳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氣의 뿌리가 발생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空의 世界에 가득찬 수포(水泡)인 프랑크상스의 무리가 움직임을 나타내는 그 순간부터 氣의 작용(作用)이 본격적으로 태동한다는 뜻이다.

 

空의 世界는 물인 소립자(素粒子)보다 미세한 물의 分子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氣의 분신은 물(水)과 빛(光), 소리(音)이므로 물과 빛이 소리에 의해 움직이는 상태를 기동(氣動) 즉 氣가 움직인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주에서 물, 빛, 소리에 의해 氣가 형성되어 태동하므로 인해 자연(自然)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본시 空의 世界는 어둡고 혼돈(混沌)하고 캄캄한 암흑시대(暗黑時代)였다. 空은 혼돈한 가운데 빛도 없고 어둠과 암흑이 뒤범벅되어 분간할 수 없는 미증유의 世界였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맑음과 탁함이 걸러지면서 점차 분열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우주는 空의 世界가 形成되면서 물과 빛의 조화(造化)로움으로 소리에 의해 宇宙의 空의 世界는 탄생된 것이다. 이때를 우주(宇宙)기(氣)라 한다. 宇宙의 氣가 形成되는 그 순간부터 空의 世界의 구분이 시작되며 空이 있으므로 氣가 함께 공존(共存)하면서 생성(生成)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空과 氣는 절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차 생성(生成)되는 것이다. 宇宙의 空의 世界는 氣에 의해 성장(成長) 발전하면서 무한에너지원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宇宙의 本?를 이루는 근본(根本)이며 구층 세계를 뜻한다.

아홉 층의 공간(空間) 세계(世界)는 너무나 광활하고 끝이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므로 무한에너지원이라고 한다. 이곳을 철학적 개념으로 형이상학원(形而上學源)속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 한다. 형이상학을 리(理)라하며 理를 本?라고도 한다. 理를 空이라 하기도 하지만 한편 宇宙氣를 공(0)이라 표시하기도 한다.

 

우주기(宇宙氣)의 흐름을 타고 氣는 쉴새없이 흘러간다. 아니 흐른다기보다 돌고 돌고 선회하며 다시 다른 世界로 進行하고자 하는 宇宙 속의 법칙(法則)이 自然속에서 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백정(白靜)의 世界에서 다시 진정(眞靜)의 空間世界를 연결되어 가는 것이다. 진정의 세계는 천체기(天體氣)로서 진공(眞空)을 뜻하며 형이상학원 속에 형이중학(形而中學)에 속한다. 이곳은 宇宙속에서 진정한 기(氣)의 흐름이 표출되는 곳이다. 진정의 世界는 0+0=0으로서 空(0)에서 무(無)의 世界로 진입(進入)하는 관문이다.

 

무의 世界는 空의 世界와는 달리 宇宙의 本體가 선회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물질(物質)이 보이지 않는 氣의 흐름을 뜻한다. 氣의 흐름은 우주기(宇宙氣)에서 천체(天體)의 기(氣)로 연결되면서 다음 단계로 대기기(大氣氣)인 무극(無極)에 연결되어 간다. 이곳을 시정(時靜)이라 하여 색(色)의 世界를 뜻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의 世界가 아니라 空間속에서 물질(物質)이 잉태되어 갈 수 있는 시공(時空)의 世界임을 알 수 있다. 시공의 世界는 0+0+=-0으로서 무극(無極)의 空間世界를 말한다. 이곳은 宇宙속에서 제일 아래 즉 下界인 색(色)의 世界를 말하며 삼라만상의 본체가 空의 세계(世界)서 神의 조화(造化)에 의하여 물질이 氣를 타고 탄생할 것이라는 과정(過程)에 이르게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대기(大氣)의 氣가 下空의 世界를 선회하면서 미래(未來)에 물질(物質)의 잉태를 창조하려는 우주(宇宙) 본체(本體)의 손짓 속에서 기다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무한한 우주공간(宇宙空間)에서 무한한 시간(時間)속을 넘어오는 과정은 우주에 있는 氣의 약속(約束)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氣의 約束없이는 우주(宇宙)의 생성(生成)은 불가능(不可能)하다.

 

그리고 氣의 흐름 없이는 미래(未來)의 삼라만상과 宇宙의 존재(存在)도 있을 수 없다. 氣는 보이지도 않고 색도 없으며 느끼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 물이 空의 世界서 수증기처럼 기체화(氣體化) 되었을 때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감지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分明한 것은 氣가 흐르고 있으며 氣가 움직이면서 空의 世界를 生成해 간다는 사실이다.

 

人間은 육체(肉體)를 갖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精神)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육신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정신과 마음으로 움직이듯이 空의 세계(世界)또한 氣가 끊임없이 충만하면서 움직이게 한다. 空氣속에 산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 속에 산소는 엄연히 존재(存在)하면서 만물(萬物)을 육성(育聲)하고 생성(生成)시키고 있다. 그와 같이 空의 世界는 보이지 않는 氣에 의해 끝없이 연결되면서 이어지고 있다.

 

우주(宇宙)의 무한 에너지원에서 점차 人間이 살고있는 공간(空間) 세계(世界)로 돌입해온다. 우주에서 人間이 살고있는 세계(世界)까지 오는 시간(時間)은 우주(宇宙)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일주기는 일조삼천구십구억육천팔백년이다.(139,968,000,000년) 즉 사람으로 따지자면 一年이다. 우주의 한 살은 인간의 한 살과 같다는 뜻이다. 우주의 一年이 일조삼천구십구억육천팔백년임을 뜻한다. 이와 같은 계산법은 천(天), 인(人), 지(地)의 삼원일체(三元一體)사상에 의한 것이다. (한민족 우주철학사상 후편을 참고 바람. 필자의 저서)


이상과 같은 시간(時間)의 흐름을 타고 人間의 世界에 이른다. 宇宙氣에서 天體氣로 천체기(天體氣)에서 大氣氣로 내려와 중력(重力)에너지원의 世界로 다가온다. 이곳은 형이중학원(形而中學源)속에 형이상학으로 천공(天空)이라 한다. 천공(天空)에는 천동(天動) 즉 하늘이 동한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태극(太極)자리이다. 태극은 태극기(太極氣)로서 0-1=-1인 백무(白無)의 世界에 이른다. 이곳을 형이중학권 속의 리(理)라고 한다. 태극(太極)을 현묘(玄妙)라 하며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은하계이다. 은하계는 6,000억개 이상의 별로서 물의 보고(保庫)이다. 그러기에 한문(漢文)이라 했다. 한자(漢字)는 은하수 한자이다. 그리고 물 많을 한, 검은 물 한이다. 은하계에 물이 많은 것은 광석 때문이다. 광석은 3분의 1을 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000억개의 광석은 모두 살아있는 별로서 3분의 1이상의 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 땅이나 사람은 3분의 2의 물을 지니고 있다. 지구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萬物의 生命體는 풀잎이든 바위든 모두 ⅔가 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광석에서 물을 가지고 있으므로 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밤하늘의 공간세계(空間世界)는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태극(太極)을 만물(萬物)의 창조주라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태극에서 많은 물로 인하여 빛이 스며들 때 비로소 소리를 내게되고 소리가 생기므로 인하여 물질이 창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리가 난다는 것은 氣의 움직임이다. 태극은 많은 물질을 창조하는 보고의 역할과 파수꾼의 산실(産室) 역할을 하는 곳이다.

 

우주에서 태극(太極)을 거치지 않으면 물질(物質)의 창조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한민족은 太極을 본체로 보았던 것이다.

 

물과 빛과 소리의 조화(造化)로움 속에서 물질은 창조된다. 물과 빛이 있더라도 氣의 분신(分身)인 소리가 없다면 物質은 창조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물, 빛, 소리가 氣이다. 절름발이 氣로서는 물질이 창조되지 않는다.

 

空을 타고 흐르는 것도 氣이라. 氣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이 아니다. 氣는 분명(分明) 형이중학(形而中學)이다. 왜냐하면 宇宙의 本體가 있다고 하더라도 形而中學인 氣가 매개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물질(物質)의 창조는 불가능(不可能)하기 때문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물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안된다. 또 빛이 있더라도 물이 없으면 안된다. 물과 빛이 있어도 소리가 없으면 物質로서 탄생할 수 없다.

 

氣의 절대 역할을 하는 것이 소리이다. 소리는 물질을 창조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空의 世界를 창조하게 하는 것 또한 소리에 의해 生成한다. 空의 世界가 존재(存在)하게 하는 것도 氣의 삼대요건(三大要件)인 물과 빛 소리에 의해 조정된다. 그러므로 空속에 있는 氣가 보이지도 않는다. 물도 氣?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만 먼 공간(空間)속에서는 빛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소리는 우주공간(宇宙空間)속에서 더더욱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氣를 물질(物質)인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볼 것이냐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주자학(朱子學)은 망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空은 氣에 의해 운행(運行)되고 氣는 空의 세계(世界)를 존재(存在)하게 하므로 因하여 대자연의 주인공(主人公) 역할을 하고있는 것이다.

 

氣의 本體는 흰 것이다. 흰 힘이라고 볼 수있다. 흰 힘의 본질은 물이다. 물의 본래 색은 흰 것이다. 그러나 물만으로는 물질이 창조되지 않는다. 빛과 소리에 의해 空의 世界에서 충만한 氣의 흐름을 타고 생성(生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空은 空으로서 홀로 존재(存在)되지 않는다. 물론 空속에는 흰 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空은 空만의 世界에서 存在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不足)하다. 무한 空의 세계(世界)에서도 空이 존재(存在) 할 수 있는 힘은 역시 氣의 에너지 때문이다. 氣는 전술한 바와 같이 보이는 물질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로 본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성리학(性理學)은 완전히 빗나간 학문이 되어 버렸다.

 

空속에서 氣의 생명(生命)이 살아 움직이므로 因하여 진정(眞正)한 의미(意味)에서 空의 世界가 존재(存在)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氣가 산(散)하여 죽으면 空의 世界는 存在 할 수 없다. 그 이유(理由)는 氣가 흩어져 죽는다면 空의 생명체(生命體)가 죽기 때문에 空의 世界는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空과 氣의 관계는 육신과 정신 그리고 맘과 같은 일신(一身)의 관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空 속에 氣가 없거나 氣가 空의 世界에서 존재(存在) 가치(價値)를 잃는다면 空도 氣도 存在하지 않을 것이다. 空속에 氣의 흐름이 충실(充實)하고 또 충만(充滿)했을 때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이는 大自然의 삼라만상이 눈앞에 찬란하게 나타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에게 맘이 있어 움직이듯이 말이다. 그리고 空氣가 있어 모든 生命體가 살아 숨쉬고 있듯이 空과 氣의 조화(造化)로움은 영원(永遠)히 大自然속에서 살아 숨쉬기에 생명(生命)을 잉태 창조하고 생성(生成)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2011년 04월 15일 20시 55분   조회:1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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