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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氣의 용변(用變)의 법칙  
律坤

 

  4. 氣의 용변(用變)의 법칙

 

  우주가 생성될 때 암흑시대였다면 분명한 것은 공간 속에 있는 별들의 나타남이라 보아야한다. 공간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에서 별과 태양ㆍ지구ㆍ달이 생성되었다고 했다.

 《역대신선통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無에서 형체가 생겨났다고 했다.《규원사화》에서는 흙탕이 엉켜서 별이 생성되었다고 되어있다. 우주는 본시 암흑세계에서 출발했다. 그때 먼지와 흙덩이가 뒤범벅이된 채 따로따로 별들은 생성되어갔음을 알 수 있다.

  태초에는 우주의 생성이 흙먼지로부터 차츰차츰 분리되면서 맑은 기운은 높은 곳으로 탁한 기운은 낮은 곳으로 나누어져 점차로 공간세계에서 각각의 기능으로 뭉쳐진 것이 별이 된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태극본무극(太極本無極)’이라 기록하고 있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왔으며 태극의 근본은 무극이라 했다. 이 말은 옳은 대답일지 모르나 상당히 모호하고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논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주자(朱子)는 무극에 대하여 ‘정기무방소무형상(正以其無方所無形狀)’이라 말하였다. 아무리 바르게 보려고 해도 사방팔방 정해진 곳도 없고 또 형상도 없다 하였다. 결국 空의 세계는 사방팔방이 있을 수도 없고 또 어떤 형상도 없다는 말이다.

 

  다시 주자가 말하기를 ‘무극(無極)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으며 냄새도 없는 묘한 것’이라 하였다. 주자(朱子)의 이 말은 이론적으로 말할 때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극(無極)은 소리와 모양, 그리고 냄새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자는 다음과 같이《태극도설》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지시설무형이유리(只是說無形而有理). 추지어전이불견기시지합(推之於前而不見其始之合). 인지어후이불견기종지이(引之於後而不見其終之離).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생겨난다. 이러한 설은 무형(無形)의 본체는 理가 있었기 때문이다. 理를 따라 쫓고, 쫓아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理가 시작하고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이 끌어당긴 후에도 보이지 않고 결국은 떨어지는 것이다.

 

  주자(朱子)의 이론은 우주와 사물의 본체를 理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극은 理로 음양(陰陽)을 氣로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주자학은 빗나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주자학에서는 空의 세계와 사물의 본체를 理로 본 것에 비해 모든 사물을 氣로 보았다면 음양은 氣로 보아서는 안된다. 만약 음양을 氣로 보았다면 사물은 氣로 보아서는 더더욱 안된다. 주자학의 모순된 이론은 여기서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음양(陰陽)은 볼 수도 없는 것이며 또 보이지도 않는다. 태극이 보이지않는 본체를 理로 보았다면 음양도 보이지 않으므로 마땅히 理로 보아야만 한다.

 

  그러나 음양을 理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본이 태극이다. 태극이 물질의 근본이라면 태극도 주자학의 이론대로라면 氣로 보아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물질을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음양 또한 理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태극이나 음양은 모두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냄새도 없다. 그러나 태극과 음양은 똑같이 물질을 창조해낼 수 있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자학의 기론(氣論)은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이기론(理氣論)은 우주의 본체론으로 성안시켰다. 다시 말해 理는 태극으로서 우주의 본체론으로 보았으며 氣는 우주의 창생원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氣를 사물의 원리로 보았고 한편 우주의 창생원리로도 보았다면 모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주자는 분명히 기론(氣論)에 대하여는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이다. 물론 주자의 학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 황도부(黃道夫)라는 사람에게 주자가 대답한 것을 적고 살펴보기로 한다.

 

천지지간(天地之間). 유리유기(有理有氣). 이야자(理也者). 형이상지도야(形而上之道也). 생물지본(生物之本). 기야자(氣也者). 형이하지기야(形而下之器也). 생물지구야(生物之具也). 시이인물지생(是以人物之生). 필품차리(必稟此理). 연후유성필품차기(然後有性必稟此氣). 연후유형(然後有形). 기성기형(其性其形). 수불외호일신(雖不外乎一身). 연기도기지간(然其道器之間). 분제심명(分際甚明). 불가난야(不可亂也).

 

  천지 사이에는 理와 氣가 있다. 理는 형이상(形而上)의 길이요, 즉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도 한다. 생물의 본체이다. 그리고 氣란 형이하(形而下)의 그릇이다. 즉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도 한다. 생물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물건이 태어났음을 뜻한다. 그러기에 理란 반드시 理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이며, 氣란 반드시 氣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형체가 나타난다. 그 형체에 따라 각각 성(性)이 있으며 비록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몸이다. 그리하여 제각기 다른 그릇이라도 길이 나타나며 쓰임새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

 

  본문에서 보면 理는 생물의 근본이라 했고 氣는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氣는 형이하학, 즉 그릇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물질을 본 것으로 되어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氣가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요건을 갖춘다고 했다. 하나는 갖춘다라는 뜻이요 하나는 그릇과 같은 물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대단히 모순됨을 의미하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품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말과, 물건 즉 그릇이라고 하는 말의 차이는 전연 다른 의미를 갖는다. 황도부란 사람에게 대답하는 짧은 글에서도 주자학은 길을 잃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론의 부재이다.

 

  《태극도설》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태극도설》에는 ‘태극동이생양(太極動而生陽) 정이생음(靜而生陰)’이라고 되어 있다. 태극이 동하여 양(陽)이 나타나고 고요한 가운데 음(陰)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자의《태극도설》은 잘못되어 있다.

  주자학에서는 엄연히 태극과 음양을 분리하고 있다. 그리고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나온다고 했다. 양의란 곧 음양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주장한 것이 주자학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태극이 동하면 양(陽)이 나오고 정(靜), 즉 고요하면 음(陰)이 나온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잘못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태극에서 음양이 동시에 나오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태극이 동할 때는 양(陽)이 나타나고 정지하거나 고요할 때는 음(陰)이 나타난다고 한 것은 주자학의 이원론(二元論)을 야기시킨 결과이다. 태극은 엄밀히 따져서 음(陰)이다. 태극 자체가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은 자연히 본성(本性)대로 양의(兩儀), 즉 음양을 동시에 낳는 것이 아니라, 음을 먼저 잉태한다.

   즉 마이너스 일[-1]이다. 음(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속에, 즉 기운 속에 양(陽)의 성질(性質)을 가지고 있다가 음의 기운이 사라질 때 비로소 양(陽)의 본성(本性)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과 양은 서로 반복하여 잉태하면서 태어난다. 그렇다고 陰陽의 기운은 보이거나 들을 수도 없으며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태극은 순전히 陰의 기운(氣運)이며 음기(陰氣)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氣의 움직임에 의해 음(陰) 속에 양기(陽氣)를 산출한다는 법칙이다. 따지고 보면 공존(共存)한다고 보겠으나 그렇지 않다. 음(陰)과 양(陽)을 주자학에서는 태극과 같이 엄연히 분리시키고 있다. 따로따로 있는 것처럼 되어있는 것이 주자학의《태극도설》이다.

 

  태극은 음기(陰氣)이므로 당연히 음을 먼저 잉태하여 배출시킨다. 음(陰)은 일정 시간 동안 氣의 흐름을 타고 상존(常存)하고 있다가 생명의 氣가 다 되어지면 자연히 양(陽)의 氣가 동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양(陽)의 氣가 다되어지면 다시 음(陰)의 기운이 성(盛)하여 상호간 떨어지지 않고 반복 작용하면서 연관성(聯關性)의 고리를 물고 공존함을 뜻한다.

 

  여기서 주자학(朱子學)과 필자(筆者)가 보는 학문의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성리학(性理學)에서는 태극(太極)과 음(陰), 그리고 양(陽)을 따로따로 분리된 것처럼 보아왔다. 물론 어떤 대목에서는 음양이 동시에 상존한 것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주자학에서는 엄연히 陰은 陰으로 분리하고 陽은 陽으로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기록해왔고 그렇게 이해되어 왔다. 또 성리학에서는 氣의 활동에 의해 동(動), 즉 움직일 때 陽이요, 정(靜) 즉 조용하고 고요할 때 陰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음과 양의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음양의 동정(動靜), 즉 움직이고 고요함이 이루어지는 근본은 理라고 주자학은 말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陰과 陽의 반복 작용에 의해 순환한다고 하는 것은 陰과 陽을 따로 분리해 보았다는 데 잘못이 있다. 물론 陰과 陽, 그리고 氣와 理는 보이지 않으므로 학문적으로 매우 난해하다. 그러나 지혜없는 사람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다.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자만이 현자(賢者)이다.

  여지껏 주자학인 성리학은 태극(太極), 음(陰), 양(陽)을 구분하여 따로 따로 보았기 때문에 큰 모순이 생긴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처음 달리는 지점에서는 대개가 같을런지 모르나 시간이 흐를수록 큰 격차가 생기는 것처럼, 성리학은 엄청난 잘못 때문에 조선왕조 때부터 크나큰 화근을 불러 일으켜 왔던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리학에서는 理의 본체를 보았지만 空과 우주, 그리고 사물에 이르기까지 理의 구분이 뚜렷하지 못해 결국에는 氣와의 호발론(互發論)이 야기된 것은 웃지 못할 넌센스이다.

 

  주자는 또한 ‘추뉴근저(樞紐根柢) 생물지본(生物之本) 만선지원(萬善之源)’이라 했다. 추뉴근저란 노끈처럼 단단한 뿌리도 운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생물지본이란 생물의 본체이며, 만선지원은 만 가지 원인은 착한 것이라 했다. 다시 말해 하늘의 道와 인간의 道는 관통하므로 理라고 하였다.

 

  순자(荀子)는 정명편(正名篇)에서 ‘생지소이연자위지성(生之所以然者謂之性). 생지화소생(生之和所生). 정합감응(精合感應). 불사이자연(不事而自然). 위지성(謂之性).’ 이라 말하였다.

 

  생명이란 자연에서 연유된 순수한 성(性)이며 性이란 생명을 바르고 곧고 정당하게 자연처럼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에 있는 정(精)이 교감하여 감응하지 않으면 자연의 인연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생(生)과 정(精)은 곧 성(性)이라 하였다. 性이란 품성을 뜻한다. 平和스러운 가운데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의 본성(本性)이라 하였던 것이다.

 

  순자는 자연 그대로를 性으로 보았다. 性은 생명의 원천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곧 理요 氣임을 암시하고 있다.

 

  앞에서 보는 것처럼 성리학은 理와 氣를 나누어서 보았다. 우주의 본체나 사물의 본체, 그리고 인간의 본성까지도 모두 理로 보았던 것이다. 理란 근본의 원리를 뜻한다. 그렇다면 근본의 원리를 무조건 理로 볼 것이냐에 의문이 따른다.

 

  천문학과 물리학에서는 우주에 대하여 아직 이렇다 할만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의 생성론을 별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뚜렷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막연히 별의 생성을 연구하다보니 먼지와 흙, 돌, 바위들이 뭉친 별들의 세계인 근본적 창조론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주가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생겨난 것인지는 과학자들도 규명이 안된 상태이다. 다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력(道力)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쓴《규원사화(揆園史話)》조판기에서나《회남자》 원도훈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주는 암흑세계일 때 흙먼지가 천지를 덮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때 어둠이 가득찬 공간에서 물이 생기면서 밝은 빛이 생겨나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때 무엇에 의해 그렇게 되었는가를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성리학에서는 理가 우주의 본체라고 했으니까 우주 본체는 본체일 뿐 어떤 작용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氣의 작용인 陰陽이 생겨 순환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그럼 음양이 氣일까? 그렇다. 음양이 氣일 수도 있다. 氣란 물과 빛, 소리의 복합체이다. 그러나 음양은 氣에 속할 뿐 완전한 氣의 작용은 불가능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태극에서 陰이 생긴 후 陰이 사라지면서 陽이 나타남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음양은 완전한 氣의 작용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그러나 陰은 물기를 머금고 있으므로 氣의 일부이다.

 

  그리고 陽도 따뜻한 기운을 갖고 있으므로 역시 氣의 일부이다. 그러나 음양의 움직임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작용하는 과정이 매우 완만하고 느리다. 이것은 氣로서는 아주 허약함을 뜻한다. 완전한 氣의 형체는 물과 빛이 교합 되었을 때 소리에 의해서만이 氣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중력의 작용이 교감되어야만 氣로서 생명을 지닐 수 있다.

 

 《규원사화》에서 언급되었듯이 암흑천지일 때 뒤범벅된 먼지 흙덩이가 뒤엉켰을 때 물과 빛이 서로 교합하면서 쉴새없이 머물지 않고 움직여주는 것이 바로 氣로서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럼 氣의 용변(用變)의 법칙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해진다. 어둠이 묻힌 진흙땅에서 빛에 의해 생명이 잉태되듯이 우주가 암흑세계일 때 먼지와 흙덩어리가 뭉치면서 중력과 인력에 의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상호 회전작용을 하면서 쉴새없이 움직여 나가는 그 순간에 물과 빛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氣의 작용이 시작됨을 뜻하는 것이다.

 

  氣의 용변은 이때부터 작용하며 물과 빛이 서로 상극으로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반동의 작용에 의해 소리의 움직임이 생기게 된다.

  이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묘합(妙合:묘하게 합함)하면서 우주의 세계를 순환하는 가운데 맑은 곳은 맑아서 하늘이 되고 흙먼지가 엉켜서 뭉친 것은 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 밑에도 하늘이 있으며, 별 위에도 아래도 별은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도 하늘이면서 땅일 수 있고 은하계도 하늘이면서 땅이며 수억 광년 밖에 있는 별도 하늘이면서 땅인 것이다.

 

  우주의 생성은 모두가 氣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理란 우주의 본체라고 규정한다면 생명창조의 원리는 모두 氣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보아야한다.

  氣는 우주에도 있고 지구에도 있고 사람에게도 있고 없는 곳이 없다. 다만 우주에 있는 氣의 질량이 다르고 사람과 모든 사물에 있는 질량이 다를 뿐 어떤 생명에도 氣를 함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그마한 풀잎도 작은 조약돌도 모두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氣를 함유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럼 氣의 용변은 어떤 사물에서, 아니면 어떤 곳에서 그 법칙이 이루어지느냐가 문제이다. 그 답은 간단하다. 보이지 않는 空의 세계에서도 물질이 생겨난다. 다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만물이 만들어지는 용변(用變)의 작용은 氣가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氣는 단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은 있을지라도 직접 생산하거나 보태(保胎)할 수 없다.

  생명을 보태할 수 있는 것은 空의 세계와 흙, 즉 땅뿐이다. 땅이라 해서 무조건 생명을 생산하거나 보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흙과 땅이 죽어있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여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흙이란 물과 빛과 소리가 조화되어 생기를 가져야한다는 뜻이다.

  空의 세계도 한 부분이 사기(死氣)일 때는 사기에 휩싸인 별의 세계는 블랙홀 속으로 영구히 자취를 감추지 않으면 안된다.

 

  氣의 쓰임은 우주에서부터 한낱 미물에 이르기까지 천변만화의 조화를 하게 된다. 어느 특정한 곳에서가 아닌,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물에도 물과 빛, 그리고 소리가 함유되어 있다고 보아야한다.

  단 생명이 있는 물질은 반드시 물질의 3분의 2가 물의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예를 들면 돌도 생명이 있는 것은 자란다. 나무나 풀잎도 마찬가지다. 3분의 2 이상의 물의 기운이 없다면 생명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토(死土), 사석(死石)은 자라지도, 생명을 잉태시키지도 못한다. 여기는 생명의 존립(存立)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氣의 쓰임새는 우주뿐만 아니라 어떤 물질이든 변화의 법칙에 따라 유용하게, 그리고 다방면으로 氣가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理는 단지 우주나 만물의 본체라고 한다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과 성장 그리고 변화는 모두 氣의 몫에 의해 이룩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氣를 형이하학인 물질로 보았다가 때로는 생성(生成)으로 보는 모순을 야기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한마디로 잘못이다. 氣는 물질인 형이하학이 아니라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요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氣의 용변법칙(用變法則)은 실로 방대하고 위대하다. 때로는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에서부터 조그마한 미물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생명의 원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氣에도 강(强)과 약(弱)이 있고, 크고 작음이 있으며, 작용하는 용변도 모두 어떤 것에 의해 다르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지구는 3분의 2가 물이다. 지구의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氣의 용변과 풀잎의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氣의 용변이 다름을 뜻한다.

 

  그러므로 氣의 용변의 변화법칙은 실로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氣의 척도가 다르며 氣의 감각도 氣의 작용과 변화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우주를 창조할 때의 氣의 용변과 질량이 다를 뿐이다. 그와 같이 理 또한 다름을 알 수 있다.

  理의 구분은 空의 세계에서부터 물질까지 위치에 따라 본질적인 뜻이 다르게 나타나듯이 氣의 용변법칙이 다르게 작용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나 할 것이다.

 

 

( 2008년 07월 17일 19시 14분   조회:3451  추천: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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