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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戰亂史 /第四章. 高句麗의 內外戰雲 /魏將의 來侵과 丸都城의 亂   
律坤

 

 

 

  第四章. 高句麗의 內外戰雲

 


   ㉮ 魏將의 來侵과 丸都城의 亂

 


   11代 東川王 19년 겨울 10월에는 군사를 출정시켜 新羅의 북쪽 변방을 침범하였다.

 

  20년 가을 8월이었다. 위(魏)나라는 유주자사(幽州刺史) 무구검(毋丘儉)을 파견하여 군사 만 명(萬名)을 출동시켜 현도군(玄菟郡)을 침범해왔다. 王은 장수와 함께 보병과 기병(騎兵:말탄 군사) 2만 명(二萬名)을 거느리고 비류수(沸流水) 상류에서 적병과 맞아 싸워 이기고 3천여(三千餘) 명의 목을 베었다.

 

또다시 군사를 이끌고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다시 전쟁을 하여 魏나라 군사를 패하게 하고 3천여(三千餘) 명을 참하거나 사로잡았다.

 

  王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魏나라 大軍兵이 도리어 우리 작은 군사만 못하도다. 무구검(毋丘儉)이란 자는 魏나라의 명장인데 금일 나의 수중에 달렸단 말이냐, 라고 하면서

 


 

       

이내 철기(鐵騎:철로 무장한 기마병) 5천 명(五千名)을 거느리고 진격하였다.

 

  이때 무구검(毋丘儉)이 사방에 진을 치고 결사 항전하므로 우리 군사가 크게 무너져 죽은 자가 1만8천여 명(一萬八千餘名)이었다. 王은 겨우 1천여(一千餘) 기병(騎兵)과 함께 압록원(鴨淥原) 즉 압록의 들로 달아났다.

 

  겨울 10월에는 무구검(毋丘儉)이 환도성(丸都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이내 파견되어 온 왕기(王頎) 장군을 시켜 王을 추격했다. 王은 남옥저(南沃沮)로 달아나 죽령(竹嶺)까지 이르렀다. 군사는 흩어지고 기진맥진했다.

 

유독 東部 밀우(密友)가 홀로 곁에 있어 아뢰기를, 지금 쫓는 병사가 매우 절박하니 세는 불가하여 벗어나지 못할 형편입니다. 신이 청하건대 결사 항전으로 막을 것이니 王께서는 그 틈을 타 도망하십시오, 하고 밀우(密友)는 결사대를 모아 함께 적진에 달려가 힘껏 싸웠다.

 

  王은 그 틈을 타서 탈출하였다. 그런 뒤 산골에 의지하여 흩어진 군사를 모아 자기를 방어하고 이르기를, 만약 밀우(密友)를 구해오는 자가 있다면 후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하부(下部)의 유옥구(劉屋句)가 앞에 나와 말하기를, 臣이 가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전지(戰地)에 가서 밀우(密友)가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등에 엎고 돌아왔다. 이때 王이 自己의 무릎에 뉘었더니 한참만에 깨어났다.

 

  王은 샛길로 헤매며 남옥저(南沃沮)에 이르니 魏나라 군사가 쉬지 않고 쫓아오는지라 王은 계략도 없고 힘도 꺾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東部 유유(紐由)가 나와 아뢰기를, 형세가 매우 위험하고 절박하니 헛되이 죽어서는 안되겠습니다. 臣이 어리석으나 한 꾀가 있으니 음식을 가지고 가서 魏나라 군사를 대접하면서 기회를 노려 그 장수를 찔러 죽이겠습니다. 만약 신의 꾀가 成功하거든 王은 들이쳐서 승부를 결단 내십시오, 하니 王은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유유(紐由)는 魏軍의 진(陳)으로 들어가 거짓으로 항복하여 말하였다. 우리 임금이 大國에 죄를 짓고 도망하여 넓은 땅으로 왔으나 몸둘 곳이 없어 장차 진(陳) 앞에 와 항복을 청하고 죽음을 사법관에게 맡기겠다고 합니다. 먼저 소신(小臣)을 시켜 변변치 못한 것이나마 종자(從者:따르는 자)의 음식을 삼도록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魏나라 장수가 듣고 그의 항복을 받으려고 할 때 유유(紐由)는 칼을 밥그릇 속에 감추어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 칼을 빼 魏將의 가슴을 찌르고 더불어 함께 죽으니 魏나라 군사가 드디어 어지러워졌다. 王은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급히 공격하므로 魏나라 군사는 소란하여 진(陳)을 갖추지 못하고 드디어 낙랑(樂浪)으로 퇴각하였다.


 

 

  
 
王은 나라를 회복하고 공을 논하매 있어 밀우(密友)와 유유(紐由)를 제 1등 공신으로 삼아 밀우에게는 거곡(巨谷)과 청목곡(靑木谷)의 땅을, 옥구(屋句)에게는 압록(鴨淥)에 있는 두눌하원(杜訥河原)의 식읍(食邑)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魏將을 죽이고 자결한 유유(紐由)에게는 벼슬을 올려 구사자(九使者:아홉의 使臣을 거느릴 수 있는 자)를 삼고 또 아들 다우(多優)는 대사자(大使者:우두머리 사신)로 삼았다.


  이 전지역에 무구검(毋丘儉)은 숙신(肅愼)의 남쪽 경계에 이르러 돌을 새겨 공을 기록하고 또 丸都山 불내성(不耐城)에 각각 기념비를 세우고 돌아갔다.

 

  처음 신하인 득래(得來)가 王이 중원을 침범하여 변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수차 간하였으나 왕이 듣지 아니하므로 득래(得來)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장차 이 땅은 쑥밭이 될 것을 머지않아 볼 것이다, 하고 드디어 먹지 않고 죽었다. 무구검(毋丘儉)이 그 사실을 듣고 제군(諸軍)에게 명령하여 그 무덤을 헐지 못하게 하고 무덤에 있는 나무도 베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그 처자를 찾아서 모두 놓아주었다.

 

  괄지지(括地志)에 의하면 불내성(不耐城)은 즉 國內城이라 하였다. 城은 돌을 쌓아 만든 것이며 이곳은 丸都城과 더불어 國內城이 서로 접해 있다고 했다.

 

  梁書에는 사마의(司馬懿)가 공손연(公孫渕)을 토벌할 때 王이 장수를 파견하여 西安平을 습격하므로 무구검(毋丘儉)이 와 침범하였다고 했다.

 

  통감(通鑑)에는 득래(得來)가 王을 위해 궁(宮:고구려 6대 太祖大王의 죽은 후의 호)이 王位에 오를 때의 일이라고 했으나 그릇된 것이라고 적고 있다.

 

  21년 봄 2월에 王은 丸都城에 선비들의 난이 일어나 城邑을 유지하기는 불가했다. 그리하여 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기게 되었다. 平壤은 본래 선인(仙人:신선된 사람)인 왕검(王儉) 즉 요임금(堯壬儉.BC.2357년)이 살던 집이다. 혹 말하기를 王이 都邑한 왕험(王險:왕이 살고 있는 곳은 매우 험하다는 뜻)이라 했다고 되어있다.


  本文에서 平壤城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西安에 있는 長安城을 말함이다. 11대 東川王이 平壤城을 쌓았다고 하는 것은 堯王儉 즉 요임금이 살았던 곳으로 세월이 수천 년이 지나 낡아 있었다. 東川王이 都邑하고 있던 丸都城에서 선비의 난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옮길 城이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수리할 겸 새로 쌓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平壤城은 요임금이 살 때는 난공불락의 城이라 하여 王險城이라 했으며, 城 주위는 10미터 넓이로 깊이 파서 적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해자(垓字) 형식으로 물이 있어 물도랑의 城이 험하다는 뜻으로 험독성(險瀆城)이라고도 했다. 그후 고구려 24대 양원왕(陽原王) 8년에는 長安城을 쌓았다고 했다.

 

  본래 王儉城의 길이는 6리(六里:10里가 4㎞임)였는데, 高句麗가 兵器를 저장하고 군사가 주둔하고 王이 살기에는 규모가 짧았으므로 길게 城을 짓는다는 뜻으로 長安城이라 하였다.

  筆者는 西安에 있는 長安城을 3번 가보았는데 城의 길이가 13.6㎞나 되었다. 城 위에는 망루처럼 기와집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魏나라 장수의 침공과 丸都城의 선비의 亂으로 因하여 11대 東川王은 엄청난 수난을 겪는 것을 엿볼 수 있다. 兵法에 이르기를 경적필패(輕敵必敗)란 구절이 있다. 東川王은 魏나라 군사를 격퇴시키고 참수를 하는 기쁨에 魏將 무구검(毋丘儉)을 가벼이 보고 진군한 것이 화근이었다. 오늘에 사는 우리들은 이 대목을 다시 한번 음미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 2014년 04월 11일 19시 57분   조회:1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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