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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戰亂史 / 新大王 伯固는 漢軍을 大敗시키다  
律坤

 

 

 

 高句麗 戰亂史 / 新大王 伯固는 漢軍을 大敗시키다
 
  고구려 8대 신대왕 백고(伯固)는 6대 太祖大王의 막내동생이자 7대 次大王 수성(遂成)의 친동생이다. 新大王의 본 이름은 왕망(王莽)이며 죽은 후의 휘호가 백고(伯固)이다. 

  新大王은 친 형님 次大王이 臣下인 명림답부(明臨答夫)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에 한사코 王位를 사양하였다. 하지만 군신(羣臣)들이 말하기를 次大王은 나라를 버리고 폭정과 죄없는 사람을 죽이므로 인해 생긴 일이므로 신망이 두터운 왕망(王莽)께서 王位에 올라야 한다고 간청하였다. 왕망은 3번이나 사양했으나 후에 마지못해 승인 후 王位에 오른 것은 77살(七十七歲)이었다.
 
  4년 漢나라 玄菟郡 太守인 경림(耿臨)이 침입해 왔다. 그때 우리 군사 수백 명이 살해당하고 왕이 항복하여 현도군(玄菟郡)에 속하게 되었다.

  5년 王은 대가(大加)의 벼슬인 우거(優居)와 주보(主薄), 연인(然人)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현도태수 공손도(公孫度)의 장병을 도와 부산(富山)의 적을 토벌하였다.

  8년 겨울 11월이었다. 漢나라가 큰 군사를 보내어 우리를 치기 위해 오므로 왕은 여러 신하에게 전쟁하는 것과 수비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편하겠는가 물었다. 그때 공론이 있었는데 많은 신하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漢나라는 많은 군사만 믿고 우리를 가벼이 경멸하므로 만약 나가서 싸우지 아니하면 漢나라 군사들이 우리가 겁을 먹는다고 여겨 자주 올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산이 험하면서 산길이 좁으므로 한 사람의 장부가 문을 지키면 만 사람의 장부라도 당적하기 어려운 법이다. 비록 漢나라 군사가 많지만 우리를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군사를 내어 방어하셔야 합니다.

  이때 명림답부(明臨答夫)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漢나라는 크고 백성도 많은데 지금 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멀리 와 싸운다면 漢軍의 기세에 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병력이 많은 자는 싸워야 하고 군사가 적은 자는 지켜야하는 것이 병가(兵家)의 상도(常道:항상 바른 길)입니다. 지금 漢나라 사람이 千里 길로 군량을 수송하는 터이므로 오랜 시일을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참호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면서 적이 이용할 수 있는 전야(田野:들에 있는 밭)의 모든 것을 없애고 차분히 기다리면 漢나라 군사들은 열흘이나 한 달이 못 가 굶주리고 피곤하여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날랜 군사를 출동시켜 추격한다면 뜻대로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던 왕은 과연 그렇다고 하면서 명림답부의 말에 영성(嬰城)의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고 있었다. 漢나라 군사들은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사들이 굶주려 끌고 되돌아가므로, 명림답부는 수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이들을 추격하여 좌원(坐原)의 들에서 싸워 漢나라 군사를 크게 大敗시켰다. 그때 말 한 필도 돌려보내지 아니했다고 했다.

  王은 크게 기뻐하며 명림답부에게 좌원(坐原)과 질산(質山)을 하사하여 식읍(食邑:먹고 살 수 있는 고을)을 내주었다고 했다.

  本文에서 질산(質山)이 있는 좌원의 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198쪽에 질주(質州)가 있는 것으로 보아 質州에 質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질주를 보면 四川省 成都 바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무현(茂縣)이라고 되어있다.

  12년 봄 1월 여러 신하들이 太子를 세우기를 청하였다. 두 달 후 王子인 남무(男武)를 王太子로 삼았다.

  14년 겨울 10월 병자일(丙子日)에 일식(日食)이 일어났다.

  다음 해 15년 가을 9월에 국상(國相)이었던 명림답부(明臨答夫)가 11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王은 친히 상가를 찾아 애통했으며 7일 동안 조회(朝會)를 파하였다. 이내 질산(質山)에 예로서 장사지내고 20가호를 두고 묘를 지키게 했다.

  그 해 겨울 12월에 王이 돌아가니 고국곡(故國谷)에 장사지내고 호를 신대왕(新大王)이라 하였다.

  本文에서 보는바와 같이 6대 太祖大王의 막내아들로 형님인 수성(遂成)의 언행에 충고했으나 듣지 않고 오히려 형님인 태조대왕(太祖大王)의 나이가 늙어서도 양위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형님인 太祖大王을 시해하려는 반역의 성품이 있었다.

이를 보다못해 우보(右輔)의 벼슬을 지닌 고복장(高福章)이 수성(遂成)은 반역할 장수라 太祖大王에게 청했으나 듣지 아니했다. 고복장(高福章)은 다시 간하기를, 만약 동생인 수성(遂成)에게 양위한다면 王子를 해할 지 모르므로 가만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간청했지만 太祖大王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공을 인정하여 王位를 물려주었다. 그가 바로 7대 次大王이었다.

  次大王이 王位에 오른 지 3년 여름 4월이었다. 王은 사신을 시켜 太祖大王의 元子인 막근(莫勤)을 살해하므로 그의 동생인 막덕(莫德)은 두렵고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次大王이 王位에 올라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국사(國史)를 등한히 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명림답부(明臨答夫)는 보다못해 次大王을 시해하였다.

비록 명림답부는 王을 죽이는 일이 있었지만 次大王의 동생인 왕망(王莽)을 보위에 오르게 한 뒤 漢나라 大軍을 무찌르는 功을 세우게 되었다. 고로 次大王은 명림답부의 지혜로 인해 漢軍을 大敗시키는 大業을 이룬 후 高句麗를 强國으로 세운 王이 되었던 것이다.

 

 

 

( 2014년 04월 11일 19시 15분   조회: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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