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한民族史 > 역사강론
百濟의 八大姓과 官名  
律坤

 

출처 :  백제사의 비밀

 

 

百濟의 八大姓과 官名

 


  百濟의 八大姓을 살펴보면 百濟初期부터 망하기까지 한반도에는 八大 姓氏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에는 百濟가 있었던 사실이 正史에는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高句麗 . 百濟 . 新羅가 쇠퇴하거나 亡한 후에 유민들이 조상들의 유물을 가지고 오거나, 아니면 한반도에 와서 만든 것들이다.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유물들은 유민들이 옮겨온 물건이므로 고구려. 백제 . 신라 사람들이 한반도로 옮겨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물이 나왔다는 것은 민족의 이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고학(考古學)은 글자 그대로 옛것을 생각한다는 의미이므로 民族의 이동사라고 볼 수 있다.

 

  고로 엄밀히 따져보면 考古學은 民族이 옮겨온 이동사이다. 그러기에 考古學은 正史가 아니라 민족의 이동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百濟가 초기부터 한반도에서 도읍을 했다면 百濟의 八大 姓氏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와야 하고 따라서 무덤과 都邑地, 그리고 城이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백제왕릉이 없다. 무녕왕릉이 하나 있다고 하는 것은 백제후예들이 와서 새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百濟가 망한 후 백제의 유민들이 망국의 한을 노래한 것이 산유화이다. 산유화 가사 중에 百濟가 망한 한을 노래한 가사가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어 있다.

 

  百濟의 八大 姓氏에 대한 正史의 기록으로는 太平御覽 . 唐書 . 北史 . 隋書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럼 八大 姓氏에 대해 적어보기로 한다.

 

  사씨(沙氏) . 연씨(燕氏) . 협씨(劦氏. 一名 氏) . 해씨(解氏) . 진씨(眞氏) . 국씨(國氏) . 목씨(木氏) . 백씨(苩氏)이다.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현재 한국에는 이러한 姓氏가 없다. 왜냐하면 한반도에는 百濟가 없었기 때문이다.

 

  三國史記 百濟本紀는 모두 6권으로 되어있다. 그런데도 百濟의 姓이 扶餘氏라는 것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사실 百濟는 색리국(索離國)에서 나왔다거나 扶餘에서 나왔다거나 또한 朱蒙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태씨(優台氏)의 아들로 沸流와 溫祚가 기록되어 있고, 한편에서는 유구태(有仇台)씨가 百濟를 건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百濟의 始祖인 溫祚와 沸流의 姓이 무엇인지 자세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正史에 기록되어 있는 百濟의 姓氏가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여덟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百濟는 한반도에 없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다음은 百濟의 官名에 대하여 論하기로 한다. 官名은 十六品으로 되어있다. 周書와 通志 그리고 通典, 太平御覽, 그리고 三國史記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本文을 통해 싣기로 한다.

 

  百濟의 官의 이름 중에 좌평(左平)을 다섯 명으로 一品은 좌솔(左率)이며 十六品은 다음과 같다.

 

  二品 달솔(達率), 三品 은솔(恩率), 四品 덕솔(德率), 五品 한솔(扞率), 六品 나솔(奈率). 六品 以上은 관모에 은꽃을 장식하였다. 七品은 장덕(將德)으로 자색의 띠를 둘렀다. 八品은 시덕(施德)으로 검은 띠를 두르고, 九品 고덕(固德)의 벼술이 주어진 자는 붉은 띠를 두르게 했다. 十品 계덕(季德)은 푸른 띠를 두르게 하였다. 十一品 대덕(對德)과 十二品 문독(文督)까지는 모두 누른 띠를 두르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十三品은 무독(武督)이며, 十四品은 좌군(佐軍), 十五品 진무(振武), 十六品 극우(克虞)이다. 十六品까지는 모두 흰띠를 둘렀다. 특히 十五品은 周書 . 通志 . 通典에서는 극우(克虞)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太平御覽에서는 권우(卷虞)라고 적고 있다. 본 官名의 수를 좌평(佐平)은 5명으로 하였고, 달솔(達率)의 벼슬자는 32명으로 되어있다.

 

  二品 은솔(恩率) 이하는 官과 상관없이 상시 근무자로 되어있다. 각 부서마다 벼슬한 사람의 업무에는 관청의 안에서 맡는 內部를 두었다. 그 부서는 다음과 같다.

 

  곡부(穀部:양식을 다루는 부서) . 육부(肉部:육류를 다루는 부서) . 내약부(內掠部:관내서 다스리는 부서) . 외약부(外掠部:밖으로 다스리는 부서) . 마부(馬部:말을 관리하는 부서) . 도부(刀部:무기와 칼을 다루는 부서) . 공덕부(功德部:공덕을 다루는 부서) . 약부(藥部:병에 대한 약을 다루는 부서) . 목부(木部:건축토목을 다루는 부서) . 법부(法部:법을 다루는 부서) . 후관부(後官部:관직의 승직관계를 다루는 부서)이다.

 

 또한 외관유사군부(外官有司軍部:바깥관직에 있는 군의 부서를 다루는 부서)로는 사도부(司徒部:군사를 주관하는 부서) . 사공부(司空部:군사를 충원시키는 부서) . 사구부(司寇部:군사의 도둑이나 난동을 다스리는 부서) . 점구부(點口部:군졸을 점검하는 부서) . 객부(客部:외부에서 찾아온 군의 손님을 관장하는 부서) . 외사부(外舍部:외부의 군사를 모시게 하는 부서) . 도부(綢部:모든 군기를 다루는 부서) . 일관부(日官部:날마다 군부 인사들의 현황을 다루는 부서) . 도시부(都市部:군사의 주둔지를 다루는 부서)이다.

 

  특히 군사의 주둔지를 다루는 都市部는 1만여 호를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五部를 나누어 두었다고 했다. 上部 . 前部 . 中部 . 下部 . 後部를 두고 각 부마다 군사 5백 명을 두고 다섯 부서마다 각각 한 사람씩 수령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二品직을 가진 달솔(達率)에게는 군(郡:군은 제후국의 수준)에 세 사람의 장군을 두었다. 그리고 四品직을 가진 덕솔(德率)에게는 주위 군사 1200명 이하 700명 이상을 통솔케 하였다. 그리고 성(城) 안팎으로 백성과 서민들은 작은 성을 나누어 지키도록 하였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百濟의 官職제도는 어느 大國 못지 않게 철저히 분담하여 제도화가 잘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족벌과 성씨를 초월하여 자기의 관직에 따라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2009년 05월 22일 11시 49분   조회:8221 )   
  
48 새 高麗史(서론)   律坤 2011/08/24 5,450
47 신라원전정역(新羅原典正譯) 서문   律坤 2009/11/15 7,158
百濟의 八大姓과 官名   律坤 2009/05/22 8,221
45 百濟와 위(魏) 촉(囑) 오(吳)   律坤 2009/05/22 7,604
44 반고환인씨(盤古桓仁氏)는 구통도인(九統道人)   律坤 2009/05/22 7,927
43 신라 42대 진덕왕興德王(AD 823年)   律坤 2009/05/22 5,154
42 다파나국多婆那國은 백제百濟의 속국이다   律坤 2009/05/22 3,383
41 신라新羅 도읍都邑의 이동설移動說   律坤 2009/05/22 3,039
40 신라(新羅)의 혈통(血統)   律坤 2009/05/22 3,291

123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