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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의 혈통(血統)  
律坤

 

  신라(新羅)의 혈통(血統)

 

 

 

신라新羅가 생기게 되는 것은 진秦나라가 망한 후 조선유민朝鮮遺民들이 진한辰韓으로 발전된 것으로 앞에서 기록하였다. 그러나 사료史料를 엄밀히 검토해보면 황제黃帝(BC 2679년)의 아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가 신라新羅의 시조始祖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욱 상세히 들어가면 실제로는 황제黃帝의 손자인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BC 2554년)의 손녀인 여수女脩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정사正史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여수女脩의 계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수女脩와 비자非字 ⇨ 진중秦仲 ⇨ 장공莊公 ⇨ 1대 양공襄公(BC 778~766) ⇨ 2대 문공文公(BC 766~716) ⇨ 3대 영공寧公(BC 716~704) ⇨ 4대 출자出子(BC 704~698) ⇨ 5대 무공武公(BC 698~678) ⇨ 6대 덕공德公(BC 678~676) ⇨ 7대 선공宣公(BC 676~664) ⇨ 8대 성공成公(BC 664~660) ⇨ 9대 목공임자穆公任好(BC 660~621) ⇨ 10대 강공앵康公罃(BC 621~609) ⇨ 11대 공공화共公和(BC 609~604) ⇨ 12대 환공桓公(BC 604~577) ⇨ 13대 경공景公(BC 577~537) ⇨ 14대 애공哀公(BC 537~501) ⇨ 15대 혜공惠公(BC 501~491) ⇨ 16대 탁공悼公(BC 491~477) ⇨ 17대 여공공厲共公(BC 477~443) ⇨ 18대 조공躁公(BC 443~429) ⇨ 19대 회공懷公(BC 429~425) ⇨ 20대 영공靈公(BC 425~415) ⇨ 21대 간공簡公(BC 415~400) ⇨ 22대 혜공惠公(BC 400~387) ⇨ 23대 출자出子(BC 387~385) ⇨ 24대 헌공사습獻公師隰(BC 385~362) ⇨ 25대 효공거량孝公渠梁(BC 362~338) ⇨ 26대 혜문왕사惠文王泗(BC 338~311) ⇨ 27대 무탕武蕩(BC 311~307) ⇨ 28대 소양왕칙昭襄王則(BC 307~251) ⇨ 29대 효문왕주孝文王柱(BC 251~250) ⇨ 30대 장양왕초莊襄王楚(BC 250~247) ⇨ 31대 시황제정始皇帝政(BC 247~210) ⇨ 32대 2세 황제皇帝 호해胡亥(BC 210~207) ⇨ 33대 진秦 왕자王子 영嬰(BC 207)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직계 뿌리는 여수女脩이다. 그렇다면 진秦나라에서 진한辰韓으로 내려와 시림始林, 즉 계림鷄林으로 이어져온 신라新羅의 뿌리는 진정 누구인가?

 

신라新羅의 시조始祖는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라고 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여수女脩에서 뿌리가 이어져 내려온 것은 진시황제秦始皇帝이다. 그러므로 진秦나라가 망한 후 진한秦韓은 진한辰韓으로 이어오고, 진한辰韓에서 갈라져 신라新羅가 된 것은 정사正史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新羅의 선조는 여수女脩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신라新羅의 직계 조상은 진시황제秦始皇帝라고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본다면 여수女脩의 할아버지가 고양씨高陽氏(BC 2554년)이고 고양씨高陽氏의 아버지벌 되는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BC 2578년)가 직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정사正史에서는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를 신라新羅의 선조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고로 신라新羅의 선조는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에서 고양씨高陽氏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신라新羅의 시조는 박씨朴氏가 아닌 김씨金氏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럼 왜 거서간居西干이 돌아가신 후 ‘박朴’이라는 성姓을 붙여서 박혁거세朴赫居世라고 휘호諱號를 사용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부식金富軾은 고려高麗 16대 예종睿宗때 삼형제 모두가 과거에 급제한 명문집안이다. 진秦나라가 망하여 진한秦韓인 진조선秦朝鮮 유민遺民들은 집과 전답을 잃고 유랑하면서 도둑질을 했다고 정사正史에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조선유민朝鮮遺民이란 기록은 신라본기新羅本紀 거서간居西干 편에 실려 있다. 고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한역왈진한秦韓亦曰辰韓’이라 했듯이 진秦나라 후예들이 신라新羅라고 한다면 엄연히 천자天子의 집안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진秦나라 유민遺民의 일부가 도둑질을 하고 얻어먹고 다녔다고 해서 수치스럽게 여긴 김부식金富軾은 김혁거세金赫居世라고 하지 않고 박혁거세朴赫居世라고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김씨金氏 가보家譜에 치욕을 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고대 정사正史를 보면 박씨朴氏라는 성姓은 없었다. 김부식金富軾이 박씨朴氏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고려高麗 인종仁宗 이후 박씨朴氏가 나오게 되었다. 고로 박씨朴氏의 시조는 김부식金富軾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에 사단법인社團法人 상고사학회上古史學會에서 국비를 받아 편저한 신라본기新羅本紀와 정사正史로 묶은 고증본을 참고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제본기百濟本紀 제6권 마지막 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신라고사운新羅古事云, 천강금궤天降金櫃, 고성김씨故姓金氏, 기언가괴이불가신其言可怪而不可信, 신수사臣修史, 이기전지구以其傳之舊, 부득산락기사不得刪落其辭, 연이우문然而又聞, 신라인자이소호금천씨지후新羅人自以小昊金天氏之後, 고성김씨故姓金氏

 

 


‘신라의 옛 일을 말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금괴가 내려왔기에 옛날부터 성을 김씨라 하였다. 하지만 그 말이 가히 괴이하여 믿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신(김부식)은 역사를 고치노라. 오래전부터 그 말이 전해져 왔지만 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니기에 그 말을 빼버렸다. 그러나 또다시 듣건대 신라사람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기에 성을 김씨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진시황제秦始皇帝의 후손이던, 또는 여수女脩로부터 내려온 후손이던 간에 분명한 것은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로부터 고양씨高陽氏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고로 신라新羅의 혈통은 황제黃帝,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 고양씨高陽氏, 여수女脩, 진시황제秦始皇帝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정사正史가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 2009년 05월 22일 11시 39분   조회:3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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