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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세기총서(世紀總書) 서문  
律坤

저서 '처음으로 밝혀진 상고사의 새발견' 발췌

 

 

 

해동역사(海東繹史) 세기총서(世紀總書) 서문

 

 

 

해동역사(海東繹史)를 지은 한치윤(韓致奫)은 서기 1765년부터 서기 1814년 이조(李祖) 순조(純祖)때 사람이다. 한치윤은 세기총서(世紀總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원문(原文)은 생략하고 서문을 풀이해 보기로한다.

 

옛날 사람중에 삼황(三皇: 天皇,地皇,人皇)이 있었다.이들은 아홉 형제였다. 서로 돌아가면서 선(禪)을 통했다. 그리하여 끊일사이 없이 평화속에서 번영되어 왔다. 그 당시는 욕되거나 더럽히려는 자는없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설형문자가 나타나 인간 생활에 유익함을 주었다. 동방에서 아홉부족 즉 구이(九夷)가 있었다. 구이중 최초라 할수 있는 사람은 당요(唐堯란 요임금)였다. 바로 당요(唐堯)시대때 단군(壇君)이 나라를 건국하였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도읍지는 렬양(列陽)이며 조선이었다.. 아버지와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동래(東萊) 사람들이며 문사(文士)들이었다.

 

특히 위만조선(衛滿朝鮮)이 개벽할 당시 창과 무기를 갖고 패수(浿水)의 강을 건넜다. 이들은 스스로 한(漢)나라 사람이라했다. 한(漢)나라 이래 렬수(列水는 한국의 물이름. 지금 지나의 黃河 즉洛陽을 기준함) 이북으로 흩어져 살았다.

 

그러나 평양(平壤은 지금 지나 섬서성에 있는 西安)기준하여 한국(韓國은 섬서성, 산서성, 하남성 일대를 말함, 즉 西安을 中心하여 한국이라 함. 中國古今地名대사전 본문 1305, 1306페이지 韓과 韓原, 韓城, 韓州, 韓江, 韓村,韓城鎭을 참고)의 남쪽 여러 나라들은 바다 근처나 산중의 석실(石室 바위굴) 등에서 살았다. 특히 동궤(동박金櫃)는 은(殷)나라 서울때 사용하던 금궤라는 뜻으로 석실은 문채와 문양이 화려하고 찬란했다.

 

삼황(三皇: 天皇, 地皇, 人皇)과 아홉 형제들은 대대로 선(禪)통을하여 이어왔다. 도통(道通)의 맥은 고구려 신라시대를 거쳐 단군(壇君)이래 삼국(三國)과 육가야(六加耶)에 이르기까지 전해져왔다. 그러나 오래 갈수록 선통(禪通)의 맥은 약해지고 부족했다. 그렇지만 수천년을 겹치는 동안 만들어진 글자 즉 문자와 함께 중심의 나라로서 이어져왔다.

 

하우씨(夏우氏 BC, 2224年)때부터 도이(島夷)족들은 둥근 대광주리를 조공해왔다.

 

주(周)나라 성왕(成王 5대 BC,1038 一名 言甬)때 훌륭한 경서(經書)가 벽장 속에 무덤처럼 많이 쌓여 있었다. 경서의 종이는 주로 폐백할 때 쓰느 폐백지로서 엮은 책이다.

 

이와 같은 경서들은 사군(四郡)의 역혁(역革) 예맥(濊貊)의 호(號)그리고 한(韓)나라의 제후(諸侯)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진한(唇韓)변한(弁韓)과 더불어 옥저(沃沮)의 동북에 있는 제국들까지 역사적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록이 끊어지지 않고 진(晉)나라 위(魏)나라를 거쳐 내려왔다.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 당(唐)나라때까지 윤택하게 보존되어 내려왔다. 그러나 원(元)나라때 와서 태만하게 한관계로 많은 부분이 없어졌다. 특히 평양(平壤)이 설치한 도호부(都護府란 도읍지에 설치한 정부청사와 청사록 등을 의미함)와 개성(開城)에 정동(征東이란 군의 총사령부)성에 관한 문권 자료 등이다. 그리고 군영(軍營)에서 서로 오고갈 때의 문서와 많은 자료들도 있었다. 수천리에서 외이(外夷 : 멀리 살고 있는 동이부족)들이 세방면에서 가지고 온 옥으로 된 그릇과 보물들도 많이 있었고 문헌도 같은 것이 있었지만 없어졌다. 그러나 많은 경사(經史란 역사를 기록한 책)중 가리고 가려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도록 하였다.

 

그중 동이총기(東夷總記 : 동이에 관한 모든기록)와 단군, 기자, 위만의 세 조선(朝鮮)과 삼한(三韓) 예맥(濊貊) 부여(夫餘) 옥저(沃沮) 여러나라는 계속 취하였다.

 

그리고 사군(四郡)과 삼국(三國 :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渤海) 고려(高麗) 기타 적은 속국과 제후국을 통털어 무려 17부로 기록했다. 이로서 본시 고조선의 기록은 사실대로 상세하게 된 것이다. 본 사서(史書)를 기록함에 있어 조카와 자식 그리고 숙부의 논술로 엮어진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감회가 깊음을 금할길 없다라고 서문에서 실토하고 있다. 그러면 해동역사 세기(世紀) 내권에 있는 삼한(三韓) 전문(全文)을 싣고 기술해 보기로한다.

 

 

( 2009년 05월 22일 11시 37분   조회:2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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