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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 본문(本文) 정역(正譯) / 책을내면서…  
律坤
  

 

책을내면서…

 

삼국사기(三國史記) 본문(本文) 정역(正譯) 사업은 국회에서 통과 된 예산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고로 교육과학부에서 지원되는 국가의 재산이자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는 고려인종 20 년(1142 년)  국왕의 명을 받아 김부식(金富軾) 등14 명이 3년에 걸쳐 기전체(紀傳體)로 편찬한 삼국의 정사(正史) 이다. 

 

삼국사기는 본기(本紀)28 권 지(志) 9권 연표(年表)3권 열전(列傳)10 권으로 되어 있고 그 중에 본기는 신라12 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으로 되어있다. 이 책은 신라본기 12권을 정역(正譯)한 것이다.

 

신라(新羅)의 원 선조(先祖)는 황제(黃帝 BC 2679 년) 아들인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BC 2578 년)이다. 그러나 신라의 직계뿌리라고 한다면 진(秦)나라 진시황제(秦始皇帝)일 것이다.

 

진(秦)나라가 망한뒤 秦나라사람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었다. 대륙에서 六國을 통일했던진 秦나라 백성들은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秦나라 백성들은 마한(馬韓)의 동쪽으로 와서 진한(辰韓)이라 하고 뭉쳤던것이다.

 

처음에는 여섯나라였다가 나중에 열두나라로 나누어졌다. 그 중 하나가 신라로 되는 것이다.

 

秦나라가 망한 후150 년이 흐른 뒤 였다. 그러기에 신라의 바로 직계 조상은 秦나라의 진한(秦韓)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국의 사학계(史學界)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서(史書)라고 맹렬히 비난하고있다. 삼국사기 내용을 알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하는 것인지 자세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三國史記는 엄연한 정사(正史)이다.

 

사대주의사서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한마디로 무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삼국사기가 어떤 곳은 모호한 면도 있고 경우에 따라 해석상 지나친 면도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신라의 발생에서 부터 신라가 완전히 태평세월이 되기까지 약7백여년간의 파란만장함을 사서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때로는 구걸(求乞)아닌 구걸행위의 기록이 보이기도한다.

 

신라가 처음 도읍 한 후 네번째 도읍지까지 기록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대문무왕(文武王AD 658 년) 이전까지 신라가 어디로 옮겨갔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보이지않는다.

 

다만 경덕왕(景德王)때 부터 전대륙에 작은서울 즉, 소경(小京)을 다섯군데에 두었으며 땅이름도 대폭적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강역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지난날의 치욕을 깨끗이지워버리기 위함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삼국사기를 대할 때 마다 아찔한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라도 없었다면 高句麗ㆍ 百濟ㆍ新羅의 정확한 위치와 도읍 그리고 강역은 물론 어디에 있었던 지명인지도 찾을 수 없었을것이다. 사실 삼국사기에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없지도 않다.

 

예를 든다면 육촌(六村)에서 신라가 세워졌다든가 혁거세(赫居世)를 박혁거세(朴赫居世)로 성(姓)을 만들어 붙인 부분 등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육촌(六村)이라는 부분은 김부식(金富軾)이 기록하면서 조선유민(朝鮮遺民)들이 육부(六部)로 뭉쳐 나라를 세운 것으로 다시 쓰고 있다. 하지만 가짜로 만든 박씨(朴氏) 만은 어떤 곳에도 정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정사(正史)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상세하게 설명했으므로 참고 하기바란다.

 

필자는 삼국사기를 정역하기 전 부터 高句麗ㆍ百濟ㆍ新羅에 관련된 수 만권의 원전(原典)을 수 십번 책이 닳도록 정독한 일이있다. 그때마다 느낀 것은 왜? 삼국이 한반도에 있다고 교육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짜 놓은 각본대로 날조ㆍ조작한 것을 교육부나 대학에 있는 사학자(史學者) 들이 왜, 바르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승만(李承晩) 정권 때 친일파(親日派)를 대거 등용 시킨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학자들이 한자(漢字)를 중국글이라고 외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전술 한 바와 같이 신라본기(新羅本紀)를 보면 거서간(居西干) 때 부터 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 까지는 금성(金城)이 있던 시림(始林)에서 도읍 한 것으로 확실하게 기록되어있다.  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9년에 시림(始林)은 계림(鷄林)으로 국호(國號) 즉, 나라 이름을 고친 것으로 되어있다. 5 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14 년 겨울10 월에 경도(京都) 즉, 왕이 도읍 하고 있는 곳에서 지진(地震)이 일어났다.

 

그리고 19 년 4월에 또 다시 경도(京都)인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난주시(蘭州市)에 지진이 일어났다. 21 년 겨울10 월 세번째로 경도(京都)에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왕은 22 년 봄 2월에 월성(月城)을 쌓고 7월에 월성(月城)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그후15 대 기림이사금(基臨尼斯今) 10 년 나라이름을 계림(鷄林)에서 신라(新羅)로 바꾸었다. 이때는 신라가 부흥기를 맞이하는 시기 였다. 왜냐하면 이당시 신라 는대륙의 서쪽인 감숙성(甘肅省) 남쪽인 금성(金城) 즉, 지금의 난주(蘭州) 주위에 있을 때 이다. 대륙 동쪽에서는 양자강을 무대로 위(魏)ㆍ오(吳)ㆍ촉(蜀) 나라의 전쟁이 수 십년간 계속되다 60년 만에 망(亡)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후 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8 년에 다시 명활성(明活城)으로 도읍지를 옮긴다. 그리고 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10년에는 또 다시 먼저있던 월성(月城)으로 도읍지를 옮기게된다.

 

1대거서간(居西干) 부터 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까지는 계림지(鷄林地) 였던 금성(金城)에 도읍하고 있었다.

 

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22 년 가을 7월 월성(月城)으로 왕의 도읍지를 옮긴 후 19 대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 때 까지 도읍지가 월성(月城)이었다.

 

20 대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8 년에 명활성(明活城)으로 도읍지를 옮긴다.

 

21 대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AD 476~496 년) 10 년 옛 도읍지인 월성(月城)으로 다시 옮긴후 부터 56 대경순왕(敬順王) 때 까지 도읍지를 옮긴 기록이 보이지않는다.

 

신라22 대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때 부터 29 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 까지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강세에 밀려 사실상 떠돌이 신세와 같았기에 도읍지의 위치가 모호하게되어있다.

 

물론 26대 진평왕(眞平王)은 수(隋)나라 문제(文帝)에게서 낙랑군공신라왕(樂浪郡公新羅王)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이 당시 신라의 국운은 말이아니었다.

 

이어 27대 선덕왕(善德王), 28대 진평왕(眞德王),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때 까지 신라는 당(唐)나라에 의지하였다. 다시말해 당나라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22 대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이후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 까지 신라는 유랑생활을 하다시피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한 기원후 660년에서 668년이 지난 뒤 부터 신라는 비로소 넓은 강역을 소유하고 안정의 길로 들어서게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 한다면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후에도 신라는 당나라의 입김하에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당나라가 기원후684년에 망하자 신라는 비로소 대강국의 반열에 올라중원대륙의80%  이상을 차지한 천자(天子)의 나라가 되었다. 이 때가 대경덕왕(景德王)시대였다.

 

그후 51대진성왕(眞聖王) 9년 가을 8월 궁예(弓裔)가 나타나 성천(성川)의 두 군(郡)을 약취(掠取) 한 후 한주(漢州)를 파하고 철원(鐵圓) 즉, 현 중국(中國) 감숙성(甘肅省) 민현(岷縣) 천수현(天水縣) 서쪽 지구 등에 있는 십여(十餘)개의 군현(郡縣)을 수중에 넣고 말았다.

 

14년에는 견훤(甄萱)이 나타나 3천명의 보병과 기병으로 나주성(羅州城)을 공략하였다. 여기서 나주성은 지금의 중국(中國) 광동성(廣東省) 화현산(化縣山) 동북지방이다. 이와 같이 신라는 51대 부터 56대 경순왕(敬順王)이 망 할 때 까지 수난의 연속이었다.

 

당(唐)나라가 한반도에 건너와 신라를 도와준 것이아니다.

 

초기신라는 넓은 대륙을 전전하면서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이기지 못해 변방으로 떠돌았다 그후 천신만고 끝에 당나라의 도움으로 대강국을 이룩 할 수 있었던것이다.

 

신라가 992년간 한반도 경주에서 도읍하고 있었다고 한국 사학자들이 날조하는 동안 국민들은 조상의 얼마저 잃은 셈이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 한 바와 같이 신라는 진(秦)나라의 혈통이었다. 그리고 수(隋)나라 문제(文帝)는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에게 낙랑군공신라왕(樂浪郡公新羅王)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그렇다면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일본과 중국은 역사왜곡을 공공연히하고있다. 다시 말해 자기네 역사의 정신을 살려 국력을 키우겠다는 배짱이다. 그러나 그들이 없는 역사를 꾸민다고해서 되는게 아님을 모른다면 일본과 중국 미국등은 서서히 자멸(自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은 오히려 있는 역사를 축소 또는 말살하고있으니 조상님들이 분노하지않겠는가?

 

필자는 대륙을 13 번이상 답사한 바 있다. 그런데놀랍게도 27 대 선덕왕(善德王 AD 629~643 년)과 31대 신문왕(神文王 AD 678~688 년)의 묘지가 함께 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대로 찾아 가본 결과 낭산(狼山)의 동쪽에 있었다. 그리고 41대 헌덕왕(憲德王)의 묘지는 현 중국(中國)산동성(山東省) 천림(泉林) 이란 곳에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과 같이 남아있었다. 이사실을 보고 더욱 놀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35대경덕왕(景德王) 이후의 기록인듯 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주(慶州)편에 보면 금오산(金鰲山) 아래 신라(新羅)의 궁전(宮殿)이 있다는 기록을 보고숭명도(崇明島)에 있는 금오산을 찾아갔다.

 

실제가보니 놀랍게도 옛 모습 그대로 궁전이 있는 것을 보고 사진도 찍었다 다만 아쉽게도 궁전 주위의 담이 모두 헐어져 절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옛 궁전만은 제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중국 복건성(福建省)에도 현재 신라(新羅)라는 지명과 신라현(新羅縣)이 있었다. 이번에 찍은 사진을 모두 수록 할 것이다.

 

신라사(新羅史)의 정역(正譯)을 집필하면서 시간 관계상 신라왕릉(新羅王陵)을 다 찾지못한게아쉬울 뿐이다. 앞으로 시간이 있거나 기회가 있으면 모두 찾았으면 한다. 만약 그렇지못하면후학들이 찾아주길바란다.

 

이번에 신라사(新羅史)를 정역하기위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三國史記 원전(原典)을 찾는일 이었다. 한국의 국보급이라는 삼국사기도 조사해보았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귀중본으로소장 된 것도 모두 복사하여 검토해 보았으나 한결 같이 많은 글자가 빠져있었다. 따라서 김부식이 쓴 최초의 원전 또는 원전을 보고 필사한 필사본이라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왜냐하면 1905년 을사강제조약 때 부터 일본은 계획적으로 원전만 남긴 채 모두 불태우거나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원전이 남아있는 곳은 일본궁실지하고에 있는 서고 밖에 없다. 하루빨리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진실한 역사를 밝히려면 김부식(金富軾)이쓴 진짜 원전(原典)이나, 아니면 글자하나 빠짐없이 기록한 필사본의 책을 입수해야한다.

 

한국에 있는 국보급이라는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많은 글자가 빠진 상태로 였다. 빠른시간내 국가에서 귀중한 문헌을 되찾는데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바로 그것이 국운(國運)을 도약시키는 경제의 본체 일 것이다. 고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하지 않았던가?

 

끝으로 삼국사기를 정역하는데 적극 협조해 주신 권철현(權哲賢) 주일대사(駐日大使)님과 교육과학기술부 인문사회연구과 관계자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2008 년11 월3일

 

社團法人上古史學會

 

會長律坤李重宰記

 

 

 


 

관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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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산狼山 전경全景 (善德王과 神文王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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