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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骨文字와 漢字의 三味  
律坤

  律坤 李重宰 著「한民族史」(1990年干) 발췌.

 

  갑골문자(甲骨文字)를 간략하게 소개하려 한다. 갑골문자는 사학자(史學者)들이 이구동성으로 은(殷)나라 때 점을 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갑골문자의 본체(本體)는 무엇인가. 바로 간지(干支)와 오행(五行)이다.

 

  갑골문(甲骨文)의 시작은 은(殷)나라 때가 아니다.

  아득한 옛날, 第一世 창힐(倉頡)이었던 천황씨(天皇氏)가 선대(先代)에서 사용하고 이용했던 干支와 五行을 다시 이론적으로 정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연대는 B.C.8479 甲午年 천황씨의 시대이다. 물론 은대(殷代)에 사용하던 갑골문자처럼 세련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갑골문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다음 해동역사(海東繹史)에 나오는 글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해동역사 본문 17쪽을 보면, 반고 성인(盤古聖人)이 있었는데 그가 환인(桓因)이었다. 그때 법화경(法華經)이 있었으며 그 후 단군시대(壇君時代)와 삼국시대(三國時代)에도 병법(兵法)과 경전(經典) 그리고 국사(國史)가 비장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동굴이나 바위에 새겨두었지만 소실되고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만약 한 사람의 현자(賢者)라도 있었다면 모든 자료를 소중히 잘 정리하고 보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멸되고 탕진되었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해동역사를 편찬한 한치윤(韓致奫)은 뼈저린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한치윤의 사서(史書)에서 보는 것처럼 갑골문(甲骨文)은 殷代(殷代라고 주장하는 것은 中日國 史學者들이 고의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만약 은대(殷代)의 것이라면 은대(殷代)에 성행(盛行)할 수가 없다. 태고(太古) 때 만들어진 글자가 은대(殷代)에 와서 널리 사용되었다는 증거이다. 은대(殷代)에 만들어진 글이 은대(殷代) 때에 성행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한글이 세종대왕(世宗大王) 때 만들어졌지만 한글은 5백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성행하고 있다. 甲骨文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아니라 사서(史書)들이 잘 입증하고 있다(甲骨文이란 책이 심재훈에 의해 出刊됨).

 

  대만 학자인 동작빈(董作賓)이 3,500년 전 은대(殷代)에서 점을 치던 것이라고 풀어놓은 甲骨文을 여기 옮겨 소개해 보려한다.

  동작빈이 해설한 것을 日本人인 등당명보(藤堂明保)가「漢字의 思想」이란 책에 옮겨놓은 것을 그대로 옮겨 해설해 볼까한다.

  甲骨文字를 中·日 學者가 잘못 보고 잘못 해설했기에 바로잡고자 한다.

 

  아래에 갑골문자의 본래 것과 중국학자가 푼 것 두 종류가 있다.

  왼쪽 것은 중국학자가 原文을 보고 해설한 글자이다.

  그런데 틀린 글자 때문에 해설이 엉뚱하게 빗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中日學者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계미(癸未) 날에 王이 점을 쳤다. 지금부터 十日 王을 亡하게 할 東夷人(山東省에 있는 部族)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甲骨文 본문에서 ‘견(畎)’ 자를 ‘우(尤)’ 자로 잘못 보았고, ‘옥(玉)’ 자를 ‘왕(王)’ 자로 잘못 보았다.

 

  필자가 글자를 고쳐 해설해 보기로 한다.

 

                            

 

  癸未年에 옥점(玉占)을 쳐보니 견이(畎夷:河伯 즉 犬夷이며 東夷<東人>을 뜻한다)들이 우리들을 쳐부수기 위해 十日 안쪽에 올 것 같으므로 옥매(玉麥:점치는 사람을 뜻함)는 증인(證人)이 되어 주시오.

 

  甲骨文字가 이와 같이 잘되고 세련된 것으로 보아서 太古 때부터 있던 文字임이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癸未年이란 干支는 第一世 창힐(倉頡)이었던 천황씨(天皇氏)가 창조한 干支五行法이 아니던가.

  이미 上上古時代 즉 B.C.8479 甲午年부터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문자이다.

 

  은상(殷商) 시대라면 B.C.1766 己亥年 이후이다. B.C.2679 辛未年에 황제(黃帝)는 경서(經書)를 140여 권이나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반고환인(盤古桓因) 때 B.C.8937 上元甲子年 이후에 이미 동굴이나 바위에 법화경(法華經)과 국사(國史)가 비장되어 새겨져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한民族은 우주(宇宙)를 집으로 보았다. 그래서 집 우(宇) 집 주(宙)라고 했다. 宇宙를 집으로 보고 우주철학사상(宇宙哲學思想)을 창출해 낸 위대한 민족이었다. 인류 최초의 민족이자 인류의 시조(始祖)이다.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그리고 철학사상상(哲學思想上) 최초 최상(最初最上)의 민족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문자(漢文字)가 만들어진 天人地 三源一體 사상이라든지 甲骨文字가 干支法과 陰陽五行의 글자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아도 알 것이다.

 

  영국의 동양철학자인 에버하르트(Eberhard)가 말하기를 서구의 정신적 멸망 뒤에 오는 유일한 해결책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법칙밖에 없다고 하였다.

 

  漢文字의 창시(創始)는 단순히 육서(六書)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漢文字 속에는 한民族의 오묘한 우주의 진리에서부터 만유만물(萬有萬物)에 이르기까지 기막힌 철학사상이 내포된 한民族의 글자임을 고증한 바 있다.

  漢文字를 中國글이라고 하는 어리석은 학자가 있다면 자숙 자성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干支는 陰陽五行(金·水·木·火·土)이다. 陰陽五行은 干支이다. 즉 干支는 天人地의 三源一體 사상을 대변한 우주와 대자연의 철학사상이다. 여기에 진리가 담긴 표음(表音)ㆍ표식(表識)ㆍ표의(表意)ㆍ표리(表理)ㆍ표진(表眞)의 대명사(代名詞)이다.

 

 

  특히 漢文字에는 삼미(三味:세 가지 맛)가 있다.

  첫째, 보고 알았을 때.

  둘째, 뜻을 알았을 때.

  셋째, 글자에 대한 思想을 알았을 때이다.

 

  그리고 漢文字는 삼독(三讀)을 해야 한다.

  첫째, 눈으로 읽는다.

  둘째, 바르게 읽는다.

  셋째, 사려(思慮) 깊이 읽는다.

  다시 말하자면 눈으로 한번 읽고, 바르고 읽은 다음, 깊은 뜻을 새겨 읽는다는 뜻이다.

 

  이상과 같이 漢文字와 甲骨文은 한民族이 최초로 만들어놓은 훌륭한 작품이다. 干支와 五行은 눈으로 보고 끝나는 글자나 부호가 아니다. 干支와 五行에는 宇宙의 모든 眞理를 풀 수 있는 오묘한 神法이 있음을 밝혀둔다. 공자(孔子)가 오죽했으면 五行에는 神法이 있다라고 했겠는가.

 

  이제부터 한民族은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철학사상과 사관(史觀)을 바로잡는데 온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한民族 史觀과 思想이 바로 잡히는 날 한民族뿐만 아리하 전 세계 인류가 평화의 진미(眞味)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 2008년 07월 17일 19시 00분   조회:2842  추천: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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