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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국 ④천축국(天竺國)의 위치  
律坤

 

 

  지금으로부터 1851년 전에는 인도에 천축국이란 이름조차 없었다. 불교계의 주장처럼 석가모니(釋迦牟尼)가 기원전 5∼6세기경에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700여 년쯤 후에 천축국(天竺國)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釋迦牟尼)와 천축국(天竺國)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천축(天竺)의 대표적인 큰 나라를 일컬을 때 오천축국이라 하지만, 소천축국(小天竺國)은 수십 나라가 있었다.

  천축국(天竺國)은 가비여국(伽毗黎國)이며, 후한(後漢) 환제(桓帝) 5년에 월애(月愛)라는 파견사를 통해 상소를 받은 바에 의하면 천축국(天竺國)은 강과 바다가 접해 있는 곳이라고 되어있다. 산천이 견고하게 둘러있고 오묘하리만큼 잘 갖추어져 있으며 맑고 깨끗하면서 장엄하였다고 했다.

  주위에 있는 성(城)들은 마치 엄숙하여 멈춘 듯 했으며 궁전(宮殿)은 장엄했다고 되어있다. 시가지는 평평하고 넓었으며 백성들은 충만하고 즐거운 가운데 안락했다고 했다.

 

  천축국의 성왕(聖王)은 인자하고 자애로웠다고 했다. 그리고 중생은 해로운 일을 하지 않았고 여러 나라에서 우러러보았다고 했다. 나라는 부강하고 넓은 바다와 같았으며 나라 백성들은 순하고 어질어 법을 잘 지켰다고 했다.

 

  대왕(大王)은 어질어 성인다웠으며 도(道)를 통한 사람 같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기에 자비로움으로 중생을 다스렸으며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남는 것이 없더라도 애석해 하지 아니했다.

제왕(帝王)은 스스로 수도(修道)하면서 맑아 계율을 잘 지키므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아니했다.

 

  벼슬아치들은 서로 즐거워하며 원수를 짓지 아니했다. 그리고 하늘을 받들고 만신(萬神)을 거느렸으며,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항복을 받아 바른 사람으로 돌아오게 했다.

왕 자신도 엄숙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아침 해를 맞았으며, 어질고 넓은 마음으로 성현(聖賢)의 업적을 이어받기 위해 힘쓴다고 했다.

 

  또한 월애(月愛)는 왕에게 아뢰기를 천축국(天竺國)이 있는 곳은 가비하(伽毗河)이며, 동쪽 경계의 바다 가까운 변두리에는 4개의 성(城)이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자색의 돌로 이루어진 성(城)이며 이름은 수라천(首羅天)이라고 했다.

 

  국왕(國王)과 승상(丞相)과는 단절되지 아니했고 나라에 있는 백성은 모두 수행으로 착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함께 도법(道法)을 존중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절간에서 함께 지내고 있으며, 그곳은 모두 칠보형상(七寶形像)과 같다고 했다.

 

 

  위의 문장이 기록된 곳은 487년 양(梁)나라 심약(沈約)이 지은 송서(宋書)의 천축가비여국(天竺伽毗黎國)편이다.

 

  다음은 당(唐)나라의 요사겸(姚思廉)이 지은 양서(梁書) 중천축국(中天竺國)편을 일부 소개해 보기로 한다.

 

  中天竺國在大月支東南數千里 地方三萬里 一名身毒 漢世張騫使大夏見 邛竹杖蜀布 國人云市之身毒 身毒天竺 蓋音字不同 其實一也 從月支高附以西南至西海 東至槃越 列國數十每國置王 其名雖異皆身毒也.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대월지국(大月支國)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은 3만리(三萬里)이다. 일명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한다.

 

  한(漢)나라 때의 장건(張騫)이 대하(大夏)의 사신으로 갔을 때, 그는 그곳에서 공(邛)의 죽장(竹杖)과 촉(蜀)의 포목을 보았다. 나라사람들은 신독(身毒)의 시장에서 샀다고 했다. 신독(身毒)은 천축(天竺)이다. 비록 소리와 글자는 다르지만, 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월지(月支)의 고부국(高附國)에서 서남(西南)으로 가면 서해(西海)가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반월국(槃越國)에 이른다.

 

  수십 나라(數十國)가 있고 모두 왕을 두었는데, 그 나라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모두 신독국(身毒國)이다.

 

 

  본문에서 보면 중천축국은 본래 월지국이었으며, 월지국(月支國)은 신독국(身毒國)이라 했다. 다시말해 신독국의 후예가 월지국(月支國)인 월씨국(月氏國)이며, 월지국이 돈황(燉煌)과 기연산(祁連山) 중간에 있을 때 흉노(匈奴)의 공격으로 서역(西域)인 토노번(吐魯番) 쪽으로 도망을 갔다.

  

  월지국이 있을 이전에도 신독국(身毒國)이라하여 곤륜산 일대와 서장성 남부인 항하(恒河) 북쪽인 네팔과 부탄, 그리고 운남성(雲南省), 청해성(靑海省) 일부와 사천성(四川省) 일부에서 광서성(廣西省), 광동성(廣東省)까지 신독국(身毒國)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본문에서 대월지국(大月支國) 동남으로 수 천리에도 있었으며 지역은 삼만리(三萬里)라 했으므로 천축국 이전에 있었던 대월지국의 강역은 엄청나게 넓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지역들은 신독국(身毒國)이 천축국이라 했고 동쪽으로 이르면 반월(槃越) 즉 월남 북부와 동쪽으로까지 강역이 펼쳐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천축국의 열국(列國)들은 수십 나라이며, 그곳에는 비록 왕의 이름은 다르지만 왕이 있는 것은 모두 신독국(身毒國)이라고 적고 있다.

 

  양서(梁書)에서 보는바와 같이 신독국의 나라는 열국(列國)이었으며 수십 나라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말해 한(漢)나라 때 장건(張騫) 대사가 대하(大夏)라는 나라를 보았을 때 공(邛)은 죽장(竹杖)과 촉(蜀)나라의 포목을 거래하는 아주 작은 나라들의 사람들은 물건을 팔고 사는 시장 사람들 모두는 신독국(身毒國)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신독(身毒)을 천축(天竺)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서역(西域)에서 대륙의 남부와 동남으로 걸쳐 있던 나라가 모두 신독의 후예인 월지(月支)였으며, 월지(月支)인 월씨(月氏)의 후예들이 천축국(天竺國)이 되었음을 정사(正史)는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신독국(身毒國)은 전한(前漢.B.C.206∼A.D.220년) 때 있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서, 월지국(月支國)은 후한(後漢)인 화제(和帝.A.D.89∼105년) 때 생겨나 흉노(匈奴)에게 망한 후 후한(後漢)의 환제(桓帝.A.D.147∼149년) 때 천축국(天竺國)이 세워진 것으로 정사(正史)는 기록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851년 전에 천축국(天竺國)이 세워진 것으로 보아서 그 당시 서역이나 대륙남부와 동부에는 천축국(天竺國)이 있었음을 정사(正史)에서 밝히고 있다.

  1851년 전에는 인도에서 천축국이란 이름조차 없었으며, 1851년 후에 천축국이란 나라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서 석가모니보다 700여년 후에 천축국(天竺國)이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釋迦牟尼)와 천축국(天竺國)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오천축국(五天竺國)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통전(通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天竺後漢通焉. 卽前漢時身毒 國初張騫使大夏 見邛竹杖蜀布 問曰安得此 大夏國人曰 吾賈人往身毒國市之 卽天竺也 或云摩伽陁 或云婆羅門 在葱嶺之南 去月氏東南數千里 地方三萬餘里 其中分爲五天竺 一曰中天竺 二曰東天竺 三曰南天竺 四曰西天竺 五曰北天竺 地各數千里 城邑數百 南天竺際大海 北天竺距雪山 四周有山爲壁 南面一谷 通爲國門 東天竺東際大海與扶南 林邑鄰接 但隔小海而已 西天竺與罽賓 波斯相接 中天竺據四天竺之閒 國並有王 漢時又有捐毒國 去長安九千八百里 去都護理所二千八百里 南與葱嶺相連 北與烏孫接 衣服類烏孫 隨水草 故塞種也 顔師古云 捐毒卽身毒 身毒則天竺也 塞種卽釋種也.

 

  천축은 후한(後漢.A.D.25∼220년) 때 있었다. 전한(前漢.B.C.206∼AD.220년) 때는 신독국(身毒國)이다. 전한 초에 장건(張騫)이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갔는데, 그는 그곳에서 공(邛)의 죽장(竹杖)과 촉(蜀)의 포목을 보았다.

 

  어떻게 이것을 얻었으냐고 대하국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말하기를, 신독국의 시장에 가서 사왔다고 했다.

 

  신독국이 곧 천축국(天竺國)이다. 천축을 혹 마가타(摩伽陁)라고도, 바라문(婆羅門)이라고도 했는데, 총령(葱嶺)의 남쪽에 있었다. 즉 총령은 곤륜산맥(崑崙山脈)을 뜻한다. 이곳은 신강성(新疆省) 남부이며 서장성(西藏省) 북부지역을 말한다.

 

  월씨국(月氏國)에서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인데, 지역은 3만여리(三萬餘里)였다.

 

  여기서 월씨국(月氏國)에서 동남으로 수천 리 떨어져 있고 그 강역이 3만여 리라고 한다면, 인도(印度) 항하(恒河) 북쪽으로 천축국이 걸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서장성(西藏省)에서 운남성(雲南省), 감숙성(甘肅省) 북부, 청해성(靑海省) 등지에 걸쳐 있는 거리라고 보아야한다. 한반도 전체가 3천리(三千里)임을 비교해 보면 10배가 되는 강역이라고 보아야한다.

 

  천축(天竺)은 다섯 천축으로 나누어졌다. 첫째 중천축(中天竺), 둘째는 동천축(東天竺), 세째는 남천축(南天竺), 네째는 서천축(西天竺), 다섯째는 북천축(北天竺)인데 각각 그 지역이 수천리(數千里)였다. 그리고 성(城)과 읍(邑)은 수백(數百) 곳이었다.

 

  남천축국은 대해(大海)와 접해 있었다. 북천축국은 설산(雪山) 가까이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막혀 있는데, 남쪽으로 계곡이 있어 나라의 문으로 통하고 있다.

 

  동으로는 동천축국(東天竺國)이 있었는데 대해(大海)의 경계라고 했다. 여기서 동쪽 지경에 있는 큰 바다라면 지금의 광동성(廣東省)이나 복건성(福建省) 가까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특히 동천축국은 부남(扶南)과 임읍(林邑)과 인접해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부남(扶南)은 베트남의 접경지대까지를 말하며, 임읍(林邑)은 태국(泰國) 북부지역을 뜻한다. 그리고 부남(扶南)과 임읍(林邑)은 소해(小海)로 막혀 있다고 했다.

 

  서천축국(西天竺國)은 계빈(罽賓)과 파사(波斯)와 서로 접해있다고 했다. 계빈(罽賓)은 신강성(新疆省) 접경 지대이며, 파사(波斯)는 신강성과 파미르 고원과의 접경지대에 있다.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네 천축국 사이에 있다.

 

  오천축(五天竺)에는 모두 왕(王)이 있었다.

  한(漢)나라 때는 또한 연독국(捐毒國)이 있었는데, 장안(長安)으로부터 9,800리에 있다. 장안(長安)에서 9,800리라고 한다면 신강성(新疆省) 남부에 있는 지금의 화전(和田)인 옛 이전원(伊甸園) 일대를 말한다.

  도호부가 있는 곳으로부터는 2,800리 떨어진 곳이다.

  남쪽으로는 총령(葱嶺)인 곤륜산맥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오손(烏孫)과 접하고 있다. 오손(烏孫)은 신강성(新疆省) 천산(天山) 일대에 있었다.

  연독국 사람들의 의복은 오손 사람들과 비슷했으며, 물과 풀을 따라 이동했다. 옛날의 색종(塞種)이다.

 

  안사고(顔師古)의 말에 의하면 연독(捐毒)은 즉 신독(身毒)이며, 신독(身毒)은 천축(天竺)이라 했다.

  색종(塞種)은 즉 석종(釋種)을 말한다. 말하자면 깨달은 사람들의 가문, 석씨(釋氏) 가문의 혈족이라는 말이다.

 

 

  이상으로 통전(通典)의 본문에서 보는바와 같이 오천축국(五天竺國)은 우리가 지금까지 인도(印度)에 있었다고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오천축국은 후한(後漢) 때까지 인도가 아닌 중국 대륙의 서역(西域)으로부터 동남부에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천축국(天竺國)에 대한 고증본은 다음과 같다.

 

  태평어람(太平御覽)ㆍ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ㆍ통지(通志)ㆍ후한서(後漢書)ㆍ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ㆍ위서(魏書)ㆍ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ㆍ구당서(舊唐書)ㆍ신당서(新唐書)ㆍ양서(梁書)ㆍ책부원구(冊府元龜)ㆍ송서(宋書)ㆍ법화경(法華經:妙法蓮華經)ㆍ금강경(金剛經)ㆍ아함경(阿含經)ㆍ반니원경(般泥洹經)ㆍ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ㆍ중본기경(中本起經)ㆍ소품반야파라밀경(小品般若波羅密經)ㆍ통전(通典) 등

 

 

( 2008년 04월 20일 17시 51분   조회:2692  추천: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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