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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국 ①신독국(身毒國)과 천축국(天竺國)  
律坤

 

 

 

  신독국(身毒國)은 전한(前漢,BC.206∼AD.8년) 때까지 214년 간 중원대륙의 북방과 서역지방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있었던 나라이다.

  신독국이란 무서운 힘을 지닌 부족이란 뜻이다. 몸이 날쌔고 재빠르며 기마술에 능하고 활과 창칼을 잘 사용하는 용맹스런 부족이란 뜻이다.

 

  한(漢)나라 초기에는 아주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한나라 후기에 들면서 신독국은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청해성ㆍ감숙성ㆍ신강성ㆍ서장성 지방으로 확산되어 운남성에서부터 서역(西域) 전반에 걸쳐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방의 넓이는 약 3만 리였다. 워낙 강역이 넓은 탓으로 후한(後漢,AD.25∼220년) 때 와서 다섯 제후국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섯의 나라로 분리된 것이 이름하여 천축국(天竺國)이다.

  東으로는 운남성(雲南省)과 사천성(四川省), 南으로는 서장성(西藏省)과 인도(印度) 북부지방, 北으로는 신강성(新疆省)과 천산(天山) 북쪽지방이다. 西쪽으로는 신강성 서쪽 유럽 일부 지방이며, 가운데 있는 신강성과 청해성(靑海省), 그리고 인도 북쪽 서장성 서북부 지방은 중천축국(中天竺國)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동‧남‧북‧서‧중(東南北西中)의 다섯 천축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오천축국(五天竺國)이다.

 

  다섯 천축국 중에서 가장 불교가 성했던 나라는 중천축국이다. 중천축국(中天竺國)의 강역은 곤륜산 남쪽과 서장성 서북이며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돈황까지 걸쳐 있었다.

 

  불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돈황(燉煌) 지방과 서장성 서부(인도 북경지대)와 곤륜산의 맥이 이어진 총령지대이다.

 

  그런데 같은 천축국이라도 서쪽에 있는 천축국은 바라문(婆羅門)교의 성지였다. 특히 바라문교가 성행하던 유럽 일부와 신강성 서부에는 광범위하게 미신적인 종교가 성행하던 지역이다.

통전(通典)의 천축국전(天竺國傳)을 보면 후한 때부터 천축국으로 불리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전한(前漢)시대 때는 신독국(身毒國)이며 장건(張騫)이 서역에 갔을 때 대하(大夏)라는 제후국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또 공(邛)이라는 곳에서는 죽장(竹杖)을 보았고, 촉(蜀) 땅에서는 포목을 보았다고 되어 있다.

 

  대하(大夏) 사람들 말에 의하면 대하국(大夏國)도 신독국(身毒國) 사람들과 함께 오고가며 왕래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다 천축국(天竺國)이라 했다는 기록이다. 혹은 어떤 사람들은 마가타(摩伽陀)라 하고 또는 바라문(婆羅門)이라 했다고 되어 있다. 이들은 총령(蔥嶺) 남쪽이라 했다. 총령 남쪽이라면 곤륜산(崑崙山) 바로 아래이며 서장성 서쪽을 말한다.

 

  월씨국(月氏國) 東南으로 1천리이며 지방으로 3만여 리(三萬餘里)라 되어 있다. 이들이 나뉘어져 오천축(五天竺)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왈(一曰) 중천축(中天竺), 이왈(二曰) 동천축(東天竺), 삼왈(三曰) 남천축(南天竺), 사왈(四曰) 서천축(西天竺), 오왈(五曰) 북천축(北天竺)이며 각 지방마다 수천리(數千里)이며 성(城)과 읍(邑)은 수백 개라고 적고 있다.

 

  특히 남천축국(南天竺國)은 남쪽으로 큰 바다가 연이어져 있다. 그리고 북천축국(北天竺國)은 설산(雪山)이 있으며 사방으로 山이 벽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북천축국 남쪽으로는 계곡이 있어 나라 간에 통하는 문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동천축국(東天竺國)은 동해(東海)와 연결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월남인 부남(扶南) 임읍(林邑) 등이 인접해 있다. 지금의 대만해협과 해남도(海南島)를 말한다.

 

  서천축국(西天竺國)은 계빈(罽賓)과 접해 있었다. 계빈은 중국 서부와 유럽으로 이어져 있는 접경지대이다. 그리고 파사(婆斯)도 함께 인접해 있었다. 파사는 지금의 파키스탄 접경지대이다.

  중천축국(中天竺國)을 거점으로 하여 사대(四大) 천축국간의 사이에 나라들이 서로 병립하여 국왕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한(漢)나라 때는 연독국(捐毒國)이라 했으며 서안(西安)으로부터 9,800리 떨어져 있었다. 중천축국은 도읍지를 중심하여 2,800리의 강역이었으며 남쪽으로 뻗어있는 곤륜산(崑崙山)인 총령을 서로 연결하고 있었다.

 

 

  석가(釋迦)가 태어난 곳은 중천축국이다.

  석가의 활동무대는 주로 설산(雪山)이 있는 서장성 고원(高原)지대와 감숙성(甘肅省) 북부지대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남산(南山) 줄기에 우뚝 선 기연산(祁連山)이다. 이곳 기연산이 바로 석가가 득도(得道)한 설산(雪山)이다.

 

  석가는 신강성 남부와 감숙성 동남, 청해성 지역과 서장성 북부지방의 중천축 강역에서 도(道)를 닦기 위해 고해(苦海)를 겪었다.

 

  너무 뜨거운 지방이나 아주 추운 지방에서는 道를 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뇌신경은 체온과 적정온도가 아니면 머리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도를 통하려면 가장 알맞은 온도가 경도(經度) 33도선에서 40도 이하이다.

 

  한반도는 평안도에서 제주도 위쪽이다. 경도 40도선을 옆으로 하면 천산(天山)과 돈황(燉煌)을 연결한 선상이며, 북경에서 산동반도 아래까지의 폭을 의미한다.

 

  중국의 서안(西安)과 낙양(洛陽)까지가 33도에서 약 40도 선상이다. 경도 40도 이하에서 33도선까지가 가장 기후의 다변화지대이며 춘하추동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이다.

  산동성에 있는 태산(泰山)은 道를 통하기에 가장 알맞은 기후조건과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도통(道通)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석가는 40도에서 33도 선상에서 유랑하고 고행하면서 道를 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도는 열대지방이므로 道를 통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기후조건이므로 불교가 성행할 수 없었다.

 

  기원후 5세기 이후부터 불교가 인도에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천축국은 불교나라이다. 불교의 불(佛)자는 ‘道를 통해 깨달았다’는 뜻이다.

 

  후한(後漢,AD.25∼220년) 때부터 동한(東漢)의 환제(桓帝,AD.147∼149년) 때까지 천축국의 속국이었던 월씨국(月氏國)과 위(魏,AD.220∼265년) 나라, 그리고 진(晉,AD.265∼420년) 나라까지 천축국은 번성했다. 그 후 위진(魏晉)시대에 일시 쇠퇴하였으나 양(梁)나라 무제(武帝,AD.502∼519년) 천감(天監) 초에 천축국에서 비단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후위(後魏) 선무제(宣武帝,AD.500∼503년) 때에는 남천축국에서 준마(駿馬)를 바쳤다고 되어 있다.

 

  천축국에서는 담비(貂)ㆍ표범(豹) 등의 가죽이 많이 생산되었고 무소ㆍ코끼리 등이 많았다는 기록이다. 천축국은 고원지대이므로 금ㆍ동ㆍ철ㆍ아연ㆍ주석과 바위에서 나는 꿀벌ㆍ생강ㆍ옥ㆍ산초ㆍ향ㆍ산호, 감귤 같은 과일 종류가 많이 생산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역나라였던 대진(大秦)과 남쪽에 있던 안식(安息:월남지방)과 부남(扶南)국 간에 무역을 활발히 했다는 기록이다.

 

  특히 천축국에서는 문자가 발달되어 천문(天文)과 역서(曆書), 그리고 산술(算術) 서적 등이 매우 뛰어났다. 또 전투용의 활ㆍ창ㆍ갑옷과 병법(兵法)과 지리가 발달되어 고도의 문명국임을 알 수 있다.

 

  수(隋)나라 양제(煬帝,AD.605∼617년) 때는 서역나라인 토번국(吐蕃國) 외 여러 서역국과의 교역이 활발했지만 유독 천축국과는 교역이 불통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唐)나라 무덕(武德,AD.618∼626년) 왕 때는 동‧서‧남‧북 네 개의 천축국과 함께 교역하였는데 이때 중천축국은 당나라에 합병되었다는 것이다.

 

  당나라 정관(貞觀,AD.627∼649년) 15년, 중천축국 왕의 성은 걸리질(乞利晊)이었다. 걸리질의 이름은 시라일다(尸羅逸多)이다. 또 다른 성은 찰리씨(刹利氏)이며 당나라의 파견사로서 일했다. 정관 22년, 우위솔부장사(右衛率府長史와 함께 천축국을 세웠으나 시라일다(尸羅逸多)가 죽은 후 나라 안에 큰 변란이 일어났다. 신하 중 아라나순(阿羅那順)이 자립하여 군사를 일으켜 항거했다.

 

  이때 현책(玄策)은 토번(吐蕃) 서남쪽으로 도망가 버렸다. 달아난 현책은 주위 나라의 군사를 징집하여 토번국 군사 1,200명과 니파라국(泥婆羅國) 기병 7천 명을 이끌고 부장수 장사인(蔣師仁)과 함께 화라성(和羅城)을 공격했다. 이곳은 중천축국이 있던 곳이다. 전쟁을 연일 했지만 연전연패하였다. 참수당한 자가 3천여 명, 익사자가 1만여 명, 왕비와 왕자 등 포로로 잡힌 남녀가 1만3천 명, 소와 말은 3만여 마리였다. 이때 천축국은 쑥밭이 되고 말았다. 성(城)과 읍(邑)은 모두 580여 개소였다. 이후 아라나순(阿羅那順)은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가 당나라 고조(高祖) 이연(李淵)이었던 무덕(武德,AD.618∼626년) 때로 천축국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던 시기였다. 다섯 천축국들은 당태종(唐太宗 李世民.貞觀, AD.627∼649년) 때 평정이 시작되었다.

 

  이상과 같이 신독국이었던 천축국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중천축국의 제후국인 아유타국(阿踰陁國)도 이때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때 현장 법사(玄奘法師)가 답사할 때만 하더라도 중천축국 속에 건타라국(建駄羅國)이 있었다. 건타라국 주위에는 가엽미라국(迦葉彌羅國)이 西北으로 있었고 돌궐(突厥)도 있었다. 돌궐 주위에는 바라문(婆羅門)이 있었고, 계빈(罽賓)왕과 돌궐 왕들은 강한 군사를 가지고 있었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위서서역전(魏書西域傳), 고승전(高僧傳),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의하면 서북부 주위로는 파사(波斯)ㆍ반반(盤盤)ㆍ계빈(罽賓)ㆍ언기(焉耆)ㆍ구자(龜慈)ㆍ소륵(疏勒)ㆍ고묵(姑墨)ㆍ우전(于窴)ㆍ구반(句盤) 등의 강대국이 있었다. 이들 나라 남동쪽에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제5권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허황옥(許黃玉)의 조국인 아유타국(阿踰陁國)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유타국은 중천축국의 제후국인 셈으로 건타라국의 옛 도읍지와 인접해 있었던 나라이다. 이들 나라는 모두 중천축국의 속국이었으며 불교의 본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유타국은 대승불교(大乘佛敎)를 숭앙하고 있었음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서 밝히고 있다.

 

 

( 2008년 04월 03일 16시 29분   조회:2521  추천: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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