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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民族의 역사는 표류하고 있다  
律坤

한民族의 역사는 표류하고 있다

 

 

 

한民族의 역사는 표류하고 있다.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상, 위대하고 찬란했던 학문까지도 모두 표류하고 있다.

 

기원전 8937년 인류 역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환인씨(桓因氏)께서는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의 훌륭한 철학사상을 반포하였다.

 

단군조선 제1기인 환국시대(桓國時代)에는 5,424년간에 걸쳐 부권사회였다. 그러나 복희씨(伏羲氏) 어머니였던 화서씨(華胥氏)가 152세로 죽게되고, 복희씨가 등장하면서부터 모권사회가 시작되었다.

복희씨는 가야금을 처음 만들었으며,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혼인법을 제정하여 내혼제(內婚制)에서 외혼제(外婚制)를 시행했다.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의 별칭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복희(宓犧)·태호(太 )·포희( 羲)·포희씨( 犧氏)·복희씨(伏希氏)·밀희씨(密犧氏)·희씨(姬氏) 복희씨 이후 희성(姬姓)을 지닌 모권사회의 뿌리는 주(周 B.C.284년)나라 때까지 무려 3,228년 동안 이어 내려오게 된다.

 

신농씨(神農氏)는 강씨(姜氏)였고, 황제의 성(姓)은 공손(公孫)이다. 그러나 복희씨의 후손으로 희성(姬姓)에서 파생되었다.

 

신라의 운조(雲祖)라 할 수 있는 황제(黃帝)의 아들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도 희성(姬姓)이다. 고구려의 운조로 알려진 고신씨(高辛氏)도 희성(姬姓)이다. 황제(黃帝)도 희성(姬姓), 요왕검(堯王儉)도 희성(姬姓)을 지니고 내려왔다.

 

대략 40개 국가가 희성(姬姓)을 가진 나라였으며, 희성(姬姓)의 뿌리를 이어 뻗어나간 나라는 무려 1천8백 국이 된다.

 

B.C. 2679년 황제(黃帝)와 치우(蚩尤)간의 탁록 혈전 이후 한民族의 대이동사는 시작되었다.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삶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죽음을 면하기 위한 필사의 대이동이요 탈출이라고 할 수 있다.

 

동(東)으로 간 자는 동이(東夷), 서(西)로 간 자는 서융(西戎) 또는 서이(西夷), 남(南)으로 간 자는 남만(南蠻), 북(北)으로 간 자는 북융(北戎) 또는 흉노(匈奴)로 일컬어졌다. 우리들은 역사를 너무 망각한 채 살아왔다.

 

위대했던 선조들의 업적을 연구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아니했다. 그저 역사가 있는가보다라는 안일한 생각 속에서 서양의 물질문명에만 탐닉하며 삶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필자가「처음으로 밝혀진 한民族史」서문에 토로해 놓았듯이, 내가 태어남은 역사가 태어나는 것이요, 내가 살아있음은 역사가 살아있는 것이다. 역사가 살아 숨쉴 때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이요, 위대한 역사가 탄생될 때 나와 내 조국은 영광의 그날이 올 것이다. 영원히 살아 숨쉬는 역사가 탄생했을 때 비로소 내 생명과 내 조국은 영원해 지리라.

 

우리에게는 환인(桓因) 이후 10,927년의 빛나는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가와 역사가들은 한民族의 역사를 마음대로 동강내고 뭉개버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한民族史는 수난의 역사에서 단절된 역사로, 단절된 역사에서 다시 왜곡된 역사로 탈바꿈하는 통한을 겪어왔던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가 처음 세워질 때 거서간(居西干)은 13살이었다. 국호를 서야벌(徐耶伐)이라 하고, 알천 양산촌(閼川陽山村)·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자산 진지촌( 山珍支村)·무산 대수촌(茂山大樹村)·금산 가리촌(金山加利村)·명활산 고야촌(明活山高耶村)을 합친 것이 진한육부(辰韓六部)이며 육촌(六村)이라 했다.

 

그러나 육촌(六村)이 모여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말이 되지않는다.

 

25사 중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에서는, 진한(辰韓)은 진한(秦韓)이라 했으며, 육국(六國)을 합쳐 진한(秦韓)이라고 했다.한 나라 즉 소국(小國)이었던 제후국은 사방 1백리였다. 당시에는 5.6㎞를 10리로 잡았는데, 현재 서울시의 행정구역과 비슷하다.  제후국 6국이 합친 것이라면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를 합친 지역쯤 되는 넓이다. 신라가 강성했던 시기에 25국의 소국(小國)을 거느렸다면 사방 2천리 이상이 된다. 사방 2천리라면 부산에서 평양 거리지만, 넓이는 1천리가 안되므로 한반도에 신라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만약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한다면, 78개국을 거느린 백제와, 54개국을 거느렸던 고구려는 어디 있어야겠는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6 의자왕편에 보면, 김춘추(金春秋)를 우이도행군총관( 夷道行軍總管)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우이( 夷)들이 살고있던 곳은 산서성, 산동성, 하남성 일부 지방이었다.

 

또한 백제본기 제6에는 '分居國西州縣'이라는 기록이 있어 서주(西州)를 찾아보았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344쪽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서주는 당나라 때 서주(西州) 교하군(交河郡)이었다. 신강성 토노번현이다. 요즘에 와서 불리는 지명은 토노번 동쪽 합찰이 있는 화주(火州)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경주편을 보면, 신라 때의 경주의 별칭을 낙랑(樂浪)이라고 적고 있다. 그곳은 안강현(安康縣)으로 되어있다. 안강현은 산서성 서안(西安) 아래쪽에 있는 지명이다.

 

 이상의 몇 가지 사실만 보아도 삼국(三國)은 한반도에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삼국사기원문을 잘못 해석한 탓으로 대륙사관에서 한반도사관으로 축소 왜곡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오늘 이 시점부터 국사(國史)가 아닌 한民族史의 바른 사관(史觀)을 정립하기 위해 모두 함께 일어서야 할 때이다. 그리하면 한民族 대웅비의 그날이 오리라.

 

 

 

 

( 2008년 01월 09일 23시 01분   조회:2141  추천: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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