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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箕子朝鮮)의 건립과 한(漢)나라의 도읍지  
律坤

 

    기자조선(箕子朝鮮)의 건립과 한(漢)나라의 도읍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뿌리는 상(商)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商)나라의 시조 성탕(成湯.B.C.1766∼1754년)은 황제(黃帝.B.C.2679년)의 18세손이며,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B.C.2482년)의 둘째 부인인 간적씨(簡狄氏:일명 유웅씨)의 소생인 설(契)의 14세손이다.

 

  상(商)나라는 20대 반경(盤庚.B.C.1401∼1374년) 원년(元年)인 경자(庚子) 년에 왕위 분쟁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다.

  상(商)나라 19대 양갑(陽甲.B.C.1408∼1402년)의 동생인 반경(盤庚)은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서 하남성(河南省) 안양(安陽) 소둔촌(小屯村)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상(商)나라를 은(殷)나라로 국호를 고쳤다.

 

  은(殷)나라 27대 무을(武乙.B.C.1198∼1195년) 왕의 차자(次子)로 기자(箕子B.C.1115년)가 태어났다.

 

  기자(箕子)는 기원전 1115년 음력 11월 12일 신시(申時)에 태어난 것으로, 기자통기(箕子通紀)에는 기록되어 있다. 간지(干支)로는 년(年)이 병술(丙戌), 월(月)이 경자(庚子), 일(日)이 계축(癸丑), 시(時)는 경신(庚申)이다.

 

  기자조선이 도읍한 곳은 평양(平陽)이며,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했다.

 

  이때의 평양은 서경(西京)이다. 지금의 서안(西安)이며, 지금도 서안에는 기자의 묘(廟)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수종제(守宗齌)와 송달수(宋達洙)의 말에 의하면, 서경(西京)은 기자(箕子)가 다스리던 옛 도읍지(都邑地)라고 했다.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의 말에 의하면, 평양(平壤)인 서경(西京)은 기자(箕子)가 다스리던 곳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기자조선성적사(箕子朝鮮聖蹟史) 236쪽에서 오사도(吳師道)가 말하기를, 조선(朝鮮)은 기자(箕子)가 등극하여 다스렸다고 전국책(戰國策)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주득거(周得擧)가 말한 바에 따르면, 東北의 넒은 곳이 모두 기자조선이 다스리던 옛 땅이라고 했다. 본문에서 한해동북(瀚海東北)이라 한 것은, 지금의 하북성 일대와 산서성, 산동성 지방 등 광활한 지역을 말한다.

 

  그리고 단목효사(端木孝思) 역시 말하기를, 추국(鄒國)과 노국(魯國)이 있던 나라들의 땅이 모두 옛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추(鄒)나라와 노(魯)나라는 모두 산동성 추평현(鄒平縣)과 곡부(曲阜) 일대를 말한다. 특히 추(鄒)나라가 있던 곳은 옛날 주루국(邾婁國)이 있던 곳이다.

 

  기자(箕子)의 성(姓)은 상은(商殷)과 같이 자(子) 씨이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기자조선(箕子朝鮮)은 대륙 이곳저곳으로 도읍지를 옮긴 것으로 되어있다.

 

  기자가 처음 도읍한 곳은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이다.

 

  당고(唐臯)의 글에 따르면, 조선차서경기자유유향(朝鮮此西京箕子有遺響)이라고 되어있다. 조선은 서경(西京)이며, 기자가 있었던 흔적들이 남아 울리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정몽주(鄭夢周)가 남긴 글에는, 기자이명이만세훈황극(箕子明夷萬世皇極)이라고 되어있다. 기자는 명이(明夷:밝고 뛰어난 東夷)이며, 황극(皇極:황제격으로 최고의 위치)으로서 만세에 교훈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기자가 처음 조선 땅인 서경(西京)의 평양(平壤)에 도읍하고 있었으나, 기자조선이 41대로 이어오는 동안, 도읍지가 옮겨진 곳은 진번(眞番)인 산서성 태원(太原)이었다.

 

  이 당시 연(燕)나라인 연조선(燕朝鮮)은 하북성 북경(北京) 남쪽 대흥현(大興縣)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기(史記) 조선편(朝鮮編)에 따르면, 조선왕만(朝鮮王滿)은 옛 연(燕)나라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기자조선이 내려오는 동안 연(燕)나라와 위(魏)나라에 속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기에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위만조선(魏滿朝鮮)이라고 되어있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은 애왕(哀王)으로서, 애왕 때에 연(燕)나라 노관(盧綰)의 반란으로 인해 기자조선의 후예였던 조선왕만은 산서성 태원(太原)에서 기자의 첫 도읍지였던 서경인 평양으로 무리 1천여 명과 함께 패수(浿水:西安의 동쪽 潼關에서 洛陽으로 흐르는 강. 일명 大洞江 또는 禮成江이라고함)를 건너 서경인 평양의 옛 고토(故土)로 내려왔다.

 

  이때 함께 온 무리는 만이(蠻夷)들이라고 했다.

 

  만이(蠻夷)들과 연(燕), 제(齊) 나라 사람들과 함께 위만조선(魏滿朝鮮)의 왕(王)은 동쪽이 아닌 서남(西南)으로, 지금의 장안성(長安城) 즉 옛 평양성이었던 서경으로 망명한 것이다.

 

  다시말해 기자조선의 후예가 위만조선(魏滿朝鮮)의 왕이며, 그가 바로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41대 애왕(哀王)이다.

 

 

   ★ 기자조선의 41대 왕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 1대 태조문성대왕(太祖文聖大王:箕子, 재위 40년)

   • 2대 장혜왕(莊惠王, 재위 25년)

   • 3대 경효왕(敬孝王, 재위 27년)

   • 4대 공정왕(恭貞王, 재위 30년)

   • 5대 문무왕(文武王, 재위 28년)

   • 6대 태원왕(太原王, 재위 4년)

   • 7대 경창왕(景昌王, 재위 11년)

   • 8대 흥평왕(興平王, 재위 14년)

   • 9대 철위왕(哲威王, 재위 18년)

   • 10대 선혜왕(宣惠王, 재위 29년)

   • 11대 의양왕(誼襄王, 재위 53년)

   • 12대 문혜왕(文惠王, 재위 50년)

   • 13대 성덕왕(盛德王, 재위 15년)

   • 14대 도회왕(悼懷王, 재위 2년)

   • 15대 문열왕(文烈王, 재위 15년)

   • 16대 창국왕(昌國王, 재위 13년)

   • 17대 문성왕(文成王, 재위 26년)

   • 18대 정경왕(貞敬王, 재위 19년)

   • 19대 낙성왕(樂成王, 재위 28년)

   • 20대 효종왕(孝宗王, 재위 17년)

   • 21대 천로왕(天老王, 재위 24년)

   • 22대 수도왕(修道王, 재위 19년)

   • 23대 휘양왕(徽襄王, 재위 21년)

   • 24대 봉일왕(奉日王, 재위 16년)

   • 25대 덕창왕(德昌王, 재위 18년)

   • 26대 수성왕(壽聖王, 재위 41년)

   • 27대 영걸왕(英傑王, 재위 16년)

   • 28대 일민왕(逸民王, 재위 17년)

   • 29대 제세왕(濟世王, 재위 21년)

   • 30대 청국왕(淸國王, 재위 33년)

   • 31대 도국왕(導國王, 재위 19년)

   • 32대 혁성왕(赫聖王, 재위 28년)

   • 33대 화라왕(和羅王, 재위 16년)

   • 34대 설문왕(說文王, 재위 8년)

   • 35대 경순왕(慶順王, 재위 19년)

   • 36대 가덕왕(嘉德王, 재위 27년)

   • 37대 삼로왕(三老王, 재위 25년)

   • 38대 현문왕(顯文王, 재위 39년)

   • 39대 장평왕(章平王, 재위 19년)

   • 40대 종통왕(宗統王, 재위 12년)

   • 41대 애왕(哀王)

 

  애왕(哀王)의 죽은 후의 휘호(諱號)가 준(準)이다.

 

  위(魏)나라는 처음 도읍지를 낙양(洛陽)에 두었으나, 한(韓)․조(趙)․위(魏) 세 나라는 주(周)나라 위열왕(威列王) 23년에 진(晉)나라 제후국으로부터 독립되었다.

주(周)나라 말기 칠웅(七雄)인 진(秦)․연(燕)․조(趙)․위(魏)․한(韓)․초(楚)․제(齊)의 등장으로 주(周)나라가 망하게 되자, 위(魏)나라는 산서성 안읍(安邑)으로 도읍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산서성 하현(夏縣) 북쪽으로 다시 옮기게 된다.

 

  칠웅시대(七雄時代)가 끝날 무렵 위(魏)나라 말기 연(燕)나라 노관(盧綰)의 반란으로 인해 조선왕만은 무리 1천여 명과 함께 망명하게 된 것으로, 사기(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위만조선(衛滿朝鮮)은 바로 위만조선(魏滿朝鮮)이다.

 

  그렇다면 위만조선(魏滿朝鮮)의 왕은 만(滿)이며, 만(滿)의 아버지는 방(邦)이다. 즉 유방(劉邦)이다. 유방은 한(漢)나라 고조(高祖)이다.

 

  연(燕)나라 노관(盧綰)의 반란이 있기 전, B.C.206년 한고조 유방은 하남성 낙양에 있었으나, 노관의 반란으로 서안의 서쪽인 함양(咸陽)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유방의 아버지는 태공(太公)이며, 어머니는 오(媼)이다. 태공이 어느날 꿈에 용(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아들을 낳았는데, 바로 고조 유방이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용안(龍顔)으로 평평하면서도 고르게 솟아 수려한 얼굴을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왼 다리에는 72개의 검은 점이 있다고 했다.

 

  응소(應劭)가 말하기를, 융고야(隆高也)라고 했다.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준협권준야(準頰權準也)라고 했다. 뺨이 고르고 평평하고 고르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고조 유방은 죽은 후의 휘호(諱號)가 준(準)이다.

 

  고조 유방은 장원급제한 후 사상(泗上)이란 지방의 정장(亭長:고을 관청의 장)이 된 후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왕오(王媼)인 어머니가 무부(武負)와 때때로 술에 취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유방이 술을 많이 마신 것으로 한서(漢書)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조(高祖)는 언제나 함양(咸陽) 즉 서경(西京)의 서쪽에서 진시황(秦始皇)을 배알하고 크게 한숨지었다고 적고 있다.

 

  그 후 진시황제가 죽은 후 낙양(雒陽)에서 한(漢)나라를 세운 후 함양(咸陽)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으나, 한(漢)나라가 점차 세력이 커지자 하남성 낙양으로 도읍지를 옮긴 것으로 한서(漢書)에는 기록되어 있다.

 

  한고조 5년(B.C.202년)에 연(燕)나라 노관의 반란으로 산동성 태원에 있던 한고조의 태자였던 위만조선(魏滿朝鮮) 왕인 위만왕(衛滿王)은 무리 1천 명을 이끌고 서경(西京)으로 달려오게 된다.

 

  그후 고조 12년에 이르자 연(燕)나라 노관의 반란으로 흉노가 침입하여 대륙은 온통 어수선하게 되고, 급기야 한고조는 병이 들어 재위 12년만인 5월에 죽게 된다.

 

  고조의 죽음으로 여태후(呂太后)가 정사를 전담하면서 그 해 12월 여태후의 주선으로 위만조선(魏滿朝鮮) 왕이었던 왕만(王滿)인 영(盈)이 한(漢)나라 2대 왕인 혜제(惠帝)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하여 장안성(長安城)인 서경에 도읍지를 정하게 된다.

 

  그러니까 위만(魏滿)인 위만(衛滿)이 혜제(惠帝)로 등극하여 7년간 다스렸고, 어머니인 여태후가 다시 9년간 집정(執政)했다고, 국사연표(國史年表)와 역대제왕연표(歷代帝王年表)에 기록되어 있다.

 

  한서(漢書) 혜제(惠帝)의 기록에 따르면, 효혜황제(孝惠皇帝)인 왕만(王滿)은 고조의 태자라고 했으며, 어머니는 여황후(呂皇后)라고 되어있다.

 

  5살 때 고조의 태자인 영(盈)을 한왕(漢王)으로 세웠는데, 2년 후 고조 12년 4월에 고조가 죽자, 영(盈)이 한(漢)나라 혜제(惠帝)로 등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통기(箕子通紀)와 기자조선성적사(箕子朝鮮聖蹟史)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애왕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41世 왕으로서 도읍지를 평양으로 정한 뒤 마한 왕으로 8世로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한 왕의 2世가 강왕(康王)으로 등극한지 4년 후 죽고, 죽은 뒤의 휘호가 혜제(惠帝)로 기록되어 있다.

 

  한고조(高祖) 유방(劉邦) 준(準)이 죽은 뒤, 여태후가 집정한 것으로 역대제왕연표에는 적고 있다. 여하간 조선왕만인 영(盈)은 마한(馬韓) 왕으로 이어졌다는 게 기자통기(箕子通紀)의 기록이다.

 

  그러나 한서(漢書)에는 한(漢)나라 왕으로 적혀있는 것을 보면, 역사가(歷史家)들이 마한(馬韓) 왕으로 이어져 내려오다 후일에 한(漢)나라라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기자통기나 기자조선성적사의 기록의 보면,

 

  애왕이 마한(馬韓) 왕 1世이다.

  2世는 강왕(康王)으로 죽은 후의 휘호는 혜제(惠帝)로 되어있다.

  3世는 안왕(安王)으로 죽은 후의 휘호는 감혜제(龕惠帝)이다.

  4世는 혜왕(惠王)인데, 죽은 후의 휘호는 식문제(寔文帝)이다.

  5世는 명왕(明王)으로, 죽은 후의 휘호는 무경제(武景帝)이다.

  6世는 효왕(孝王)이다. 죽은 후의 휘호는 형무제(亨武帝)이다.

  7世는 양왕(襄王)이다. 죽은 후의 휘호는 섭선제(燮宣帝)이다.

  8世는 원왕(元王)이다. 죽은 후의 휘호는 훈선제(勳宣帝)이다.

  9世는 계왕(稽王)이다. 죽은 후의 휘호는 정성제(貞成帝)이다.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한(漢)나라 왕은 초기에는 마한(馬韓)의 왕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한(漢)나라의 고조 유방과 혜제(惠帝)․문제(文帝)․경제(景帝)․무제(武帝)라고 기록된 것은 모두 죽은 후의 휘호(諱號)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고조 유방은 전술한바와 같이 조선왕만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조선왕만은 위만조선(魏滿朝鮮)의 왕(王)이며, 따라서 위만조선(衛滿朝鮮)과 같은 의미이다.

 

  다시말해 한(漢)나라 왕은 처음부터 마한왕(馬韓王)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 기자통기(箕子通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위만조선(魏滿朝鮮)의 왕만(王滿)은, 한(漢)나라라는 마한(馬韓) 왕의 2世 왕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한 왕의 1世는 애왕(哀王)이며, 애왕이 곧 한(漢)나라 고조인 유방으로 되어있다.

 

  특히 한고조는 패풍읍(沛豊邑) 중양리(中陽理) 사람으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조선왕만은 한(漢)나라 혜제인 영(盈)이며, 왕만의 손자가 우거(右渠)이다.

 

  우거는 바로 한(漢)나라 무제(武帝.B.C.140∼135년)라고 사기사전(史記辭典)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마한(馬韓)으로 시작되어 한(漢)나라로 나라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과 같이 본다면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은 기자조선의 41世 마지막 왕인 애왕(哀王)이며, 2世인 혜제가 위만조선(魏滿朝鮮)의 왕이었던 만(滿), 즉 영(盈)은 고조 유방의 태자(太子)임이 정사(正史)를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조선의 왕인 만(滿)의 손자가 한(漢)나라 무제(武帝)인 우거(右渠)라는 사실이다.

 

  무제(武帝) 원봉(元封.B.C.110∼105년) 당시 한사군(漢四郡)인 진번(眞番)․현도(玄菟)․낙랑(樂浪)․임둔(臨屯)을 두게 된 것이다. 고로 위만조선(魏滿朝鮮)에서 세운 사군(四郡)이라 하여 조선사군(朝鮮四郡)이라하고, 사군(四郡)이 한(漢)나라 때 있었다고 하여 한사군(漢四郡)이라 한다.

 

  그후 왕망(王莽.A.D.9∼13년)이 한(漢)나라를 격파하고 고구려가 다스렸다고 하여 고구려사군(高句麗四郡)이라고도 한다.

 

  사실 고구려는 고리국(櫜離國)에서 갈라져나온 부여(扶餘:北京 南. 지금의 河間縣 남서쪽)에서 구려(句驪)와 고리(高酈)로 출발한 것으로 되어있다. 왕망에 의해 한(漢)나라가 망한 후 고구려라는 나라이름을 고쳤다는 것을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서 밝히고 있다.

 

  중국사서(中國史書)에서는 한(漢)나라 다음으로 신(新)이라 했고, 다음으로 동한(東漢), 즉 후한(後漢)으로 되어있으나, 신(新)이라는 나라는 고구려를 말한다.

중국 사서에서는 후한(後漢) 다음으로 삼국(三國)인 위(魏)․촉(蜀)․오(吳)는 고구려와 백제의 강역 속에 있는 속국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상 중국대륙은 고조선(古朝鮮)의 강역임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한(漢)나라는 기자조선의 후예로 세워진 것이 정사(正史)를 통해 보았을 때 확실해지고 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B.C.1134∼1116년)은 요(堯) 임금의 형님인 후직(后稷:棄)의 후손이다. 다시말해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의 큰 아들은 후직인 기(棄)이다.

 

  고로 주무왕은 기(棄)의 후손으로 주(周)나라는 낙양(洛陽)을 무대로 도읍하였다.

  이때 기자는 지금의 서안인 서경(西京)의 평양(平壤)에 도읍했음을 기자통기(箕子通紀)와 기자조선성적사(箕子朝鮮聖蹟史)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주(周)나라와 기자는 같은 시대에 공존하고 있었지만, 정사(正史)에서는 주(周)나라를 하(夏), 은(殷)나라를 천자국(天子國)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숨길 수 없는 고로 기자와 주(周)나라가 같은 시대에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주(周)나라가 망할 무렵 진(秦)․한(韓)․조(趙)․위(魏)․초(楚)․연(燕)․제(齊)의 칠웅(七雄)이 난립하다가, 진(秦)이 6국(六國)을 통일했으나, 진(秦) 말기인 B.C.206년 초(楚)나라와 서초(西楚) 때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애왕(哀王)인 한고조 유방은 한(韓)나라를 세운 지 4년 후인 B.C.202년에 서경(西京)으로 도읍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서경(西京)은 평양성(平壤城)이 있는 곳이다.

( 2008년 01월 08일 17시 27분   조회:2666  추천: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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