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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해자학회 홈페이지 개설 2013-01-12
 
     
새 高麗史(서론)
새 高麗史(서론)  

 

서    론

 


1945년 광복된지 50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식민사학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식민사관이란 어떤 것일까?

1905년 乙巳강제조약이 있은 뒤 5년 후였다. 대전大田에 있는 이병연李秉延은 일본의 조종에 의한 것인지 대륙大陸에 있는 한민족民族의 역사를 현 한국 땅에 있는 양 옮겨 놓기 시작했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물론 삼한三韓과 고려高麗까지도 몽땅 한국 땅에 있는 것처럼 옮겨 놓는 작업作業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자면 한사군漢四郡이었던 진번眞番 임둔臨屯  현도玄도 낙랑樂浪을 현재 한국 땅인 양 옮겨 놓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사군은 조선사군朝鮮四郡이다.

한사군을 세운 사람은 조선 왕만의 손자 우거右渠가 세운 것이다. 연燕나라 노관蘆管의 반란으로 인하여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으로 옮겨온 것이다.

섬서성 서안西安에는 장안성長安城이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 장안성이 평양平壤이며 조선의 평양성이었다. 그런데 이병연李秉延은 준왕이 도망가서 세운 평양성 즉 장안성이 이북평양인 것처럼 엉터리 사서史書를 엮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역사의 지명을 한국 땅에 있는 지명에 맞추어 버린 것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한자의 땅이름은 고려초기부터 시작하여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AD.1332년) 때까지 완전히 한자지명漢字地名이 정착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지에 한자지명이 옮겨지는 사실이 잘 기록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662년에 한반도에는 한자로 된 땅이름이 완전히 정해진 것이다. 물론 고려 초기 태조왕건(太祖王建AD.918년)이후 혜종(惠宗 2대 AD.1332년) 때부터 한반도에는 순수 한국식 땅이름이 한자로 된 지명地名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한다.

고려는 대륙大陸 서안西安에서 건국된 것으로 사서史書는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三國과 고려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현재 있는 한국 지명地名으로 옮기는 모순을 낳게 한 것이다. 본시 한국 땅은 처녀지로서 “모래내”“뚝섬”“새섬”“딱섬”“솔섬”“밤골”“대추골”“감골”등으로 불리워 왔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고려 초기부터 한자의 이름을 한국 땅에 옮겨 놓기 시작한 것이다.


일정日政 때 조선 총독부 역사 편수관이었던 금소룡今小龍과 이병도李秉燾가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그리고 삼한三韓이 한국 땅에 잇는 것처럼 꾸며서 대륙역사를 반도사관半島史觀으로 축소 조작한 것이다.

역사를 축소 조작하게 된 것은 한民族을 노예화하여 속민(屬民이란 자기나라 백성으로 만듦)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다시 말해 역사를 형편없이 축소 조작하여 별 볼일 없는 역사를 가진 국민이라는 것을 인식케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역사 없는 민족은 반드시 망한다. 형편없는 역사를 가진 민족은 노예화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구한 역사의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고려高麗는 염연히 고구려, 백제, 신라, 당唐나라의 혼합된 혈통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고려는 대륙에서 건국하고 도읍 했으며 강역을 갖고 있었다. 생활권이 모두 대륙임을 정사正史들은 입증하고 있다.

고려는 분명히  당唐나라의 혈통으로 태어났음을 제왕운기帝王韻紀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신라가 망할 무렵 신라 56대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敬順王~敬襲王 AD927년)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물려주면서 항복한 자리가 대륙 산서성山西省 운주계運州界이다.

운주계는 훗날 이름을 고쳐 안읍安邑이라 했으나 다시 운성運城으로 지명을 고쳤다. 요즘 지도에는 안읍安邑과 운성運城으로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고려사를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고려사를 쓰지 않고는 안될 정도였다.

독자들이나 민족사관이 투철한 사람들이 빗발치게 독촉했다. 특히 전 충암고등학교 지리 선생인 윤재남씨尹在男氏가 강력하게 제언해 주었다. 고려사를 쓰지 않으면 상고사가 연결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고려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자연적으로 한반도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려가 대륙이냐 한반도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고려사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려사는 부산 동아대학 고전연구실東亞大學古典硏究室에서 11책의 방대한 번역본이나와 있었다. 그러나 강역이 모두 현 한국 땅으로 잘못되어 있다.

역사란 가장 중요한 것이 강역 즉 영토이다 어디서 도읍 했으며 강역은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현재 한자로 되어 있는 모든 정사正史는 고려가 도읍하고 고려가 활동한 무대가 현 중국대륙으로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러면 한국에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가... 그 해답은 간단하다. 모든 사서史書는 중국대륙에서 한자로 써왔지만 1945년 광복이후 엉터리 사학자史學者들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려이후 한자漢字 땅이름이 한국 땅에 정착된 줄 모르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역사책은 모두가 한자로 쓰여져 있다. 그러므로 한자의 해석능력이 부족하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고려사는 고대사古代史와 근대사近代史의 접목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김상기金庠基가 쓴 고려시대사高麗時代史와 동아대학고전연구실東亞大學古典硏究室에서 번역한 고려사 등 여러 가지 고려사 역시 한반도에 고려가 있는 것으로 번역했다. 역사의 강역을 제일 중요시해야 하는데도 잘못 번역되어 식민사학으로 전략된 대표적인 책이다. 이병도 외 그의 제자들 중 변태섭, 이기백, 김철준, 한영우, 김정배, 동국대 이기동, 서강대 이종욱 등 많은 식민 사학자들은 모두 강역을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에 식민사학자라고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 있는 식민사학자는 모두가 교단학자들이다. 따라서 일본학자들 보다 스스로 자기나라 역사를 축소조작하고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학자들은 역사를 조작하려 하지만 뿌리부터 한民族史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잘라 버릴 수 없다. 그리고 정사正史들은 모두가 동이東夷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 왜곡시킬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이후부터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남북조南北朝 수隋, 당唐, 오대(五代 즉 梁, 唐, 晉, 漢, 周), 송宋, 북송北宋, 남송南宋, 글란契丹, 요遼, 금金, 몽고蒙古, 원元, 명明, 청淸나라로 거쳐오는 동안 정사正史들은 많은 부분이 동강나고 잘라져 왔다. 특히 청나라 건융(乾隆,高宋AD 1736~1795 丙辰) 때는 사서史書의 많은 부분이 잘라져 나갔다. 그중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조선朝鮮편은 몽땅 잘라지다시피 했다. 청나라 건융때는 25史 즉 스물 다섯 역사를 다시 교정보는 과정에서 조선朝鮮과 고구려, 백제, 신라 편은 상당부분 난도질당했다.

필자는 고려사를 집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강역이다. 영토관계와 땅이름에 대한 세심한 고증을 통해 밝히려 한다. 고려의 건국은 어디이며 고려의 도읍과 변천, 고려의 활동무대가 어디인지를 중점적으로 고찰할 생각이다. 그리고 고려의 혈통과 지리지地理志를 중점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고려사 책이 출간되어 국민과 독자들의 호된 질책과 비판을 바라면서 바른 역사가 태어나도록 성원있으길 빌면서 펜을 놓는다.

   上 古 史 學 會

會長 律坤 李重宰 씀

이하생략...위의 글은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 새고려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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